인생은 아름다워(383) - 폭염을 누그리는 인연을 찾아서
8월이 문을 여는 날, 일본의 지인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달의 첫날, 누군가 행복을 빌어주면 그달은 행복하다지요? 이달 내내 행복하시기를..'
국민안전처에서 보낸 문자메시지, '8.6일 현재 폭염특보 발령 중! 농사일 및 야외활동 자제, 충분한 물마시기, 주변 노약자 돌보기 등 안전사고 주의'
경북지방은 39도를 기록하고 열대야가 이어지는 등 유난히 더운 때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빈다.
폭염 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순천과 서울을 오가며 더위에 맞섰다. 눈이 부시게 푸른 자연이 아름답고 따뜻한 가슴을 지닌 인연들이 반갑다.
1. 화랑청소년단에 합류한 일본지인들
지난 월요일(8월 3일) 오후, 순천시 송광면 체육관을 찾았다. 10일간 순천, 구례 일원 남도 삼백리를 순례하며 수련 중인 화랑청소년단의 마지막 숙영지다. 백일홍 꽃길과 물빛 영롱한 호반을 거쳐 체육관에 도착하니 행군을 마친 소년소녀들이 샤워를 하고 텐트를 정리하느라 부산하다. 류재천 화랑단 대표는 학생들의 스마트폰 등을 모두 수거하고 부모들에게는 수련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내주며 자립심과 지구력을 강화하는데 신경을 쓴다고 설명한다. 혹서기의 더위를 견디며 고된 수련일정을 잘 치러낸 소년소녀들이 미덥구나.
이 행사에 가와타 시게루, 오노 다카시 등 한일 우정걷기에 함께 한 일본지인들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였다, 그중 가와타 시게루 씨는 한국방문 100번을 넘은 친한 인사, 한국어도 잘 하고 원주명예시민이기도 하다. 6년 전 걷기 중 무릎 고장으로 힘들었을 때 아내의 침술치료로 나았다며 아내를 주치의로 치켜세우기도. 담소하는 중 초면인 동료에게 그 사실을 되새긴다. 다음날 그가 보낸 메시지. '김태호 선생님 김혜경씨, 어제는 너무 고맙습니다. 가져온 복숭아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또 만납시다'

걷기로 친분을 다진 일본지인들
2. 천수를 누리시는 어머니의 생일맞이
지난 수요일(8월 5일)은 어머니의 95회(1920년생) 생일이다. 정신이 흐리고 거동이 불편하여 사촌이 운영하는 산본의 요양원에 계신다. 80세가 넘을 때까지 자녀손들을 보살피며 생활하다가 2002년에 광주로 내려오셨다. 열 명 넘는 자녀들을 키우느라 힘이 부쳤을까, 심신이 점점 쇠약하셔서 2007년에 천혜경로원에 모셨다가 2012년에 서울 쪽으로 가셔 오늘에 이르렀다.
산본으로 가신 후 '사랑하는 어머니, 애지중지 돌본 가족들이 많은 서울 쪽으로 가셨으니 오래 사시면서 후손들에게 장수의 복을 누리게 하고 화목과 우애을 다지는 버팀목이 되소서'라고 썼다. 그 염원을 아시는 듯, 몸과 마음이 쇠미한 가운데도 지금까지 잘 버티시며 명절이면 선물을 보내고 이런 기회를 통해 가족들을 모으신다.
2014년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집계에 의하면 어머니 나이인 95세 이상은 만여 명으로 5천만 인구 중 0.2% 내외다. 간난의 세월을 견디시며 12남매를 잘 기르시고 천수를 누리시는 어머니, 가족의 버팀목으로 하늘이 주는 면류관을 얻으소서.

면류관 대신 고깔모자 쓰신 어머니
* 때에 맞춰 시가 있는 아침(중앙일보, 2015. 8. 8)에 어머니를 기리는 시(물드무, 최금녀)가 올라왔다. '물드무엔 늘 물이 가득했다. 자식들이 오면 모자라지 않게 옹배기로 길어다 부으시는 어머니. 한 생애, 가없는 수평선만 넘실거렸을 수심 깊은 물살을 들여다 본 적 이 없었다. 볼 겨를이 없었다.' 뭇 생명이 물에서 나오고, 사람은 어머니에게서 나온다. 둘 다 생명의 원천이다. 어머니를 잃는 것은 영혼의 피난처를 잃는 것! 오늘 어머니를 찾아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리라(장석주 시인의 해설)
3. 옷깃 스친 인연이 소중하다
어제(8월 6일), 은평 뉴타운에 사는 전 그리스도대학교 총장 기준서 박사 내외와 만나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기 총장과는 1980년대 후반에 그리스도대학의 이사장과 총장으로 인연을 맺은 이래 좋은 관계를 이어온 사이, 이해관계로 얽혀 가까이 지내던 이들과 소원해지는 세태에 수십 년 변함없이 지속되는 교류가 고맙다. 젊은 시절 불광동에서 몇 달 산 적이 있는 은평구 지역은 광주로 내려간 이후 발걸음이 멈춘 곳, 북한산을 비롯한 구파발 주변의 빼어난 풍광이 아름답고 은평역사한옥박물관과 진관사도 역사의 숨결이 서려 있다. 역사한옥박물관에서 살핀 파발과 역관제도가 흥미롭고 평안도에서 유래하여 궁중음식으로 알려진 초계탕 맛도 깔끔하다. 천상병, 중광, 이외수 등 당대의 기인들을 한데 모은 셋이서 문학관이 볼만하고 내시묘가 있는 고즈넉한 둘레길이 운치 있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정자에서 바라본 북한산자락
저녁까지 들고 가라는 친절이 고마운데 선약이 있어서 카페에 들러 팥빙수로 땀을 식히며 다음을 기약하였다. 정담을 나누던 중 아내가 인연과 연인의 차이를 설명하는 우스개로 마무리를 한다. 인연은 옷깃을 스치는 사이, 연인은 옷속을 스치는 사이를 일컫는다고. 저녁의 약속은 사귄지 50년 넘은 친구부부들 모임이다. 폭염이 맹위를 떨치는 주간, 좋은 인연들과의 즐거운 만남이 행복하다.
*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는 손녀를 아내가 부채바람으로 재웠다. '선풍기보다 부채바람이 좋단다'는 할머니의 말을 잠결에 들은 손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연인 대신 죽부인 안고 '더위야 물렀거라.' 하는 운치도 좋으리라.

셋이서 문학관에 걸린 기인 3인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