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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04월04일(토요일)~04월05일(일요일) [구례군&하동군] 여행일정
회비 129,404원 국민은행 578601-01-308843 노블레스클럽 계좌로 송금 완료, 2열2번 좌석 예약
대장 : 설렘 대장
2026년04월04일(토요일) [구례군&하동군] 여행일정
08:10~11:3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교대역 13번 출구 앞에서 출발하여 전남 구례군 산동면 산업로 1590-62 번지에 있는 지리산 치즈랜드로 이동 [3시간20분, 274.5km]
11:30~12:20 지리산 치즈랜드 탐방
[지리산 치즈랜드 - 노란 수선화가 인상적인 알프스 부럽지 않은 자연뷰
1979년 젖소 두 마리로 착유를 시작했던 초원목장은 30여 년간의 경험을 바탕 삼아 더 많은 사람에게 낙농산업과 우유를 알리기 위해 2012년 체험 목장 지리산치즈랜드를 건립하였다. 지리산치즈랜드에서는 수제 치즈와 요구르트를 유통하고 있으며, 체험장에서는 모차렐라 치즈 만들기, 송아지 우유 먹이기, 풀 썰매 타기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푸른 초원목장에 130 여두의 젖소를 방목하고 있고, 호수가 인접해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지리산치즈랜드의 특별함은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풍경, 꽃 그리고 초지가 어우러진 눈부신 푸르름과 향기가 그 특별함이다.
이용요금
입장료(어른) 5,000원
입장료(5세~13세) 3,000원
양 풀먹이기 2,000원
요거트 플레인 6,000원
요거트 딸기 6,500원]
12:20~13:00 점심식사
13:00~13:23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지리산 치즈랜드를 출발하여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번지에 있는 화엄사로 이동
[23분, 17.9km]
13:23~14:20 화엄사 탐방
[지리산 화엄사(智異山 華嚴寺)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등 (황전리)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화엄종(華嚴宗)을 선양하였던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연원 및 변천
창건
화엄사의 창건 및 중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시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연기(煙氣)라는 승려가 세웠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중관대사(中觀大師) 해안(海眼, 1567~?)이 1636년(인조 14년)에 쓴 『호남도구례현지리산대화엄사사적(湖南道求禮縣智異山大華嚴寺事蹟)』 등의 모든 사적기들은 “544년(신라 진흥왕 5, 백제 성왕 22) 인도의 승려인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세웠다”고 하였다.
그리고 『구례속지(求禮續誌)』에는 “진흥왕 4년에 연기조사가 세웠으며, 백제 법왕이 3,000명의 승려를 주석하게 하였다”고 부연하고 있다. 화엄사의 중건에 대해서도, “신라 선덕왕 때에 자장(慈藏)이 증축하고, 문무왕 때에 의상(義湘)이 장륙전(丈六殿)을 건립하였다”는 등의 기록이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에는 백제 땅에 속하였던 화엄사를 자장이 중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 797년(원성왕 13)에 번역된 『정원본사십화엄(貞元本四十華嚴)』이 의상에 의하여 석각(石刻)되어 장륙전의 사방 벽에 장식될 수 없다고 하는 점, 그리고 양식으로 보아 현존 화엄사의 석조물이 모두 8세기 후반부터 9세기에 걸쳐 조성되었다고 하는 점 등에 의하여, 창건과 중건에 대한 의문이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와 같은 의문은 1978년에 신라 경덕왕대의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新羅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이 발견됨으로써 완전히 풀렸다.
이 사경의 발문에 의하여 연기는 황룡사(皇龍寺)의 승려로서 754년(경덕왕13) 8월부터 화엄경사경을 만들기 시작하여 이듬해 2월에 완성시켰던 실존인물임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창건 연대가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 신라 제24대 왕) 때가 아닌 경덕왕(재위 742~765: 신라 제35대 왕) 때이고, 아울러 자장 및 의상의 중수 또한 사실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다만, 8세기보다 앞선 어느 시기부터 이 터에 가람이 있었고 그것이 연기조사 대에 이르러 대가람으로 확장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중수
이 절은 신라 말 도선(道詵)에 의하여 크게 확장되었고, 고려 광종 때에 홍경선사(洪慶禪師)가 퇴락한 건물을 중수하였으며, 문종이 전라도 및 경상도에서 이 절에 매년 곡물을 헌납하는 것을 허락함으로써, 이를 저장하기 위한 2채의 큰 창고를 일주문 밖에 짓기도 하였다. 또한, 인종은 정인왕사(定仁王師)로 하여금 이 절을 중수하게 하고, 1172년(명종 2) 도선국사의 비를 세우도록 하였으며, 충숙왕 때에는 조형왕사(祖衡王師)가 대대적인 보수를 하였다.
조선시대의 화엄사는 1424년(세종 6)에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으로 승격되었지만, 임진왜란의 병화로 완전히 불타버렸고, 석경(石經)마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에 각성(覺性)은 1630년(인조 8)에 중건을 시작하여 7년 만인 1636년에 대웅전을 비롯한 약간의 건물을 이룩하였고, 1649년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으로 승격되었다.
1702년(숙종 28)에는 각성의 뜻을 이어받은 성능(性能)이 장륙전을 중건하였는데, 숙종은 이를 각황전(覺皇殿)이라 사액(賜額)하고 선교양종대가람(禪敎兩宗大伽藍)으로 격을 높였다. 이후에도 부분적인 보수가 계속 이루어졌지만 대규모의 중수는 없었다. 1757년(영조 33) 대웅전을 중수했고, 1769년 각황전을 중수했다. 1798년(정조 22)과 1827년(순조 27)에 각각 적조당과 보제루를 중수했다.
1977년 각황전 해체보수를 완료했으며, 1984년부터 만월당 · 일주문을 세웠다. 1989년 원융료 · 청풍당을 짓고, 연기암을 복원했다.
내용
주요고승
화엄종의 중심사찰이 되었던 이 절에는 창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승들이 머물면서 창사의 이념인 화엄사상의 구현이 이루어져 왔다. 창건주인 연기조사를 비롯하여 정행(正行) · 낭원(朗圓) · 현준(賢俊) · 결언(決言) · 관혜(觀惠) 등의 화엄학승(華嚴學僧)들이 머물렀다.
특히 신라 말 화엄학이 남북악(南北岳)으로 나누어져 대립할 때, 후백제 견훤(甄萱)의 복전(福田)이었던 관혜가, 고려 왕건(王建)의 복전이었던 해인사의 희랑(希朗)과 대립된 학파(學派)를 형성함으로써 이 절이 중요시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의천(義天)이 이 절에 들러 연기조사의 영정(影幀)에 예를 표하고 그를 찬탄하는 시를 남겼으며, 의천의 문도인 정인왕사는 이곳에서 도량을 베풀었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에서 많은 고승이 배출되었다. 특히, 선수(善修)가 『화엄경』을 강의하여 그 종풍(宗風)을 크게 드날린 뒤 각성 · 처능(處能) · 수초(守初) · 명안(明眼) · 새봉(璽峰) · 조관(?冠) · 윤장(玧藏) 등이 그 뒤를 이어 화엄사상을 펼쳤다. 이들 외에도 해안(海眼)이나 임진왜란 당시 주지로 절을 수호한 설홍(雪泓) · 윤눌(潤訥)을 위시한 많은 고승들이 이 절을 위하여 크게 기여하였고, 근세에는 대강사 진진응(陳震應)이 머무르기도 하였다.
당우와 국가유산
화엄사의 현존 건물은 각성이 중건한 17세기 이후의 것이다. ‘지리산화엄사’라는 편액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면, 좌우에 금강역사(金剛力士) 및 문수(文殊) · 보현(普賢)의 동자상(童子像)을 안치한 금강문(金剛門)이 있다. 그 바로 뒤에는 제3문인 천왕문(天王門)이 있는데, 전면 3칸의 맞배집으로 목각 사천왕상(木刻四天王像)을 안치하였다.
천왕문에서 약 50m 거리에 강당으로 사용되는 정면 7칸의 보제루(普濟樓)가 종루(鐘樓)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이곳을 지나면 화엄사의 중요한 당우들이 있다. 동서 쌍탑(雙塔)의 정면에는 대웅전, 그 서쪽에는 각황전이 있으며, 이 밖에도 영산전(靈山殿) · 나한전(羅漢殿) · 원통전(圓通殿) · 명부전(冥府殿)과 노전(爐殿)으로 사용되는 삼전(三殿) 및 요사(寮舍)인 원융료(元戎寮) · 청풍당(淸風堂) · 만월전(滿月殿) 등이 있다.
이 중 1963년 보물로 지정된 구례 화엄사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로서 조선 중기에 조성된 삼신(三身)의 삼존불(三尊佛)이 봉안되어 있으며, 1757년에 제작된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탱(보물, 2003년 지정)이 있다. 또한, 1962년 국보로 지정된 구례 화엄사 각황전은 정면 7칸, 측면 5칸의 2층 팔작지붕으로 그 건축수법이 뛰어나다. 각황전 내부에는 3여래불상과 4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보제루(普濟樓)는 1974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절에는 각황전 앞 석등(石燈)과 사사자 삼층석탑(四獅子 三層石塔) · 노주(露柱) · 동서오층석탑(東西五層石塔) · 석경 등의 중요한 유물이 전해 오고 있다. 국보인 각황전 앞의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이는 높이 6.36m나 되는 거대한 석등은 8각의 하대석(下臺石)이 병(甁) 모양의 간석(竿石)을 받치고 있고, 중간에 띠를 둘러 꽃무늬를 연이어 새긴 것으로 현존하는 국내 석등 중에서 가장 큰 것이며 통일신라시대의 웅건한 조각미를 간직한 대표적 작품이다.
또한, 각황전 서남쪽의 높은 대상(臺上)에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과 석등이 있다. 이 석탑의 사방에는 머리로 석탑을 받치고 있는 네 마리의 사자와, 그 중앙에 합장을 한 채 머리로 탑을 받이고 서 있는 승상(僧像)이 있다.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인 비구니의 모습이라고 전하며, 석탑 바로 앞 석등의 아래쪽에도 꿇어앉은 한 승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불탑을 머리에 이고 서 있는 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한 연기조사가 석등을 머리에 이고 차공양을 올리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들 석탑과 석등은 그 능숙한 기법과 균형있는 조형미로도 주목되지만, 그 특이한 형태는 더욱 눈길을 끈다. 이 사사자석탑은 창건주 연기의 효성을 나타낸 것이기에 효대(孝臺)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원통전 앞에는 네 마리의 사자가 이마로 방형(方形)의 석단(石壇)을 받치고 있는데, 이를 흔히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1963년 지정)이라고도 한다.
대웅전 앞의 계단 아래에는 양식을 달리하는 동서 양탑이 있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구례 화엄사 동 오층석탑은 같은 해 보물로 지정된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에 비하여 아무런 조각과 장식이 없고, 단층기단(單層基壇)으로 되어 있다. 서탑은 1995년에 해체하여 보수되었는데, 이때 진신사리와 더불어 47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가운데는 신라시대에 조성된 필사본 다라니경과 불상을 찍어내는 청동불상주조틀 등이 있었다.
장륙전의 사방 벽은 화엄석경(華嚴石經)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1990년 보물로 지정된 이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은 의상이 조성한 것이라는 전승이 있지만, 화엄사가 세워진 경덕왕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석경은 불행히도 임진왜란의 병화로 장륙전이 불탈 때 파괴되어 많은 파편만이 남아 있다. 석경의 크기는 흔히 볼 수 있는 방전(方塼: 네모난 벽돌) 정도이고, 사방 벽에 고정할 수 있는 홈이 아래위에 있다. 글자체는 쌍계사 진감국사비(雙磎寺 眞鑑國師碑)를 닮았다.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은1653년(효종 4)에 조성된 것으로서, 199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도 1986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구층암석등과 교지[敎旨: 선조(宣祖)가 벽암선사(碧巖禪師)에게 하사] 1매, 예조사격(禮曹寺格) 1매, 예조홍각대사첩(禮曹弘覺大師帖) 1매, 겸팔도총섭첩(兼八道摠攝帖), 예조대선사각성첩(禮曹大禪師覺性帖) 1매가 있다.
그리고 인조 하사 어석(御席) 1건, 인조 하사 가사(袈裟) 1령, 인조 하사 어작(御爵) 1대, 선조 어필각본(御筆刻本) 1권, 선조 하사 서산대사발우〔西山大師鉢盂〕 1좌, 선조 하사 서산대사 향합(香盒) 1건, 각황전중건상량문(覺皇殿重建上樑文) 1매, 각황전삼여래사보살복장기(覺皇殿三如來四菩薩腹藏記) 1축, 고종(古鐘), 인조 14년간 『화엄사사적(華嚴寺事蹟)』 1책 등이 있다.
산내 암자
이 절의 부속 암자는 신라 경덕왕 때에는 81개나 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에는 원소암(圓炤庵) · 청련암(靑蓮庵) · 적기암(赤旗庵) · 은무암(隱霧庵) · 은선암(隱仙庵) · 백련사(白蓮社) · 도선굴(道詵窟) · 연기암(煙起庵) · 보적암(寶積庵) · 내원암(內院庵) · 봉천암(鳳泉庵) · 문수암(文殊庵) 등의 상당히 많은 암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모든 암자가 없어지고, 구층암(九層庵)을 비롯한 금정암(金井庵)과 지장암(地藏庵) 등의 세 암자만이 있을 뿐이다.
구층암에는 탑신 전면에 여래좌상을 조각한 3층석탑과 석등 · 배례석 등이 있고, 천불을 모신 천불보전(千佛寶殿), 선실(禪室), 요사 등의 건물이 있다. 1562년 설응(雪凝)이 창건한 금정암에는 조선 고종 때에 세운 칠성전(七星殿)과 요사가 있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셨다. 1959년 원응(源應)이 창건한 지장암의 본전인 보광전(普光殿)에는 석가모니불을 봉안하였다. 절 일원이 2009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14:20~16:0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화엄사를 출발하여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1738-9 번지에 있는 삼성궁 주차장으로 이동
[1시간40분, 74.9km]
16:00~17:30 삼성궁 탐방
[삼성궁
청암면 묵계리에 소재하며 한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품속 깊이 청암면 청학동 산길을 휘돌아 1.5㎞가량 걸으면 해발 850m에 삼성궁이 자리하고 있다. 삼성궁의 정확한 명칭은 배달성전삼성궁으로, 이 고장 출신 강민주(한풀선사)가 1983년에 고조선시대의 소도를 복원,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배달민족성전으로 민족의 정통 도맥인 선도를 지키고, 신선도를 수행하는 민족의 도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던 선도를 이어받은 한풀선사가 수자들과 함께 수련하며 돌을 쌓아 올린 1,500여 개 돌탑이 주변의 숲과 어울려 이국적인 정취를 풍겨낸다. 이 돌탑들은 이곳에서는 원력 솟대라 부른다. 삼한 시대에 천신께 제사 지내던 성지, 소도에는 보통 사람들의 접근을 금하려 높은 나무에 기러기 조각을 얹은 솟대로 표시했다. 성황당에 기원을 담듯, 소원을 빌며 지리산 자락의 돌로 솟대를 쌓아 옛 소도를 복원하고 있다. 3,333개의 솟대를 쌓아 성전을 이루고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문화를 되찾아 홍익인간 세계를 이루고자 무예와 가, 무, 악을 수련하는 이들의 터전이다.
이용안내
이용시간 : 08:30~16:40
쉬는날 : 연중무휴
이용요금
어른 8,000원
청소년 5,000원
어린이 4,000원
우대 장애인 유공자 (개인) 5,000원
어른 (단체) 7,000원
청소년 (단체) 4,000원
어린이 (단체) 3,000원
우대 장애인 유공자 (단체) 5,000원]
17:30~18:3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삼성궁을 출발하여 진주시 숙소로 이동
18:30~19:30 저녁식사
19:30~21:30 숙소 객실에서 샤워 후 휴식
21:30~ 취침
2026년04월05일(일요일) [하동군&구례군] 여행일정
06:00~06:30 기상하여 샤워 후 짐 정리
06:30~07:10 아침식사
07:10~08:00 휴식
08:00~09:0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진주 숙소를 출발하여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 번지에 있는 쌍계사로 이동
09:00~12:00 쌍계사,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 하동야생차박물관, 쌍계사 십리벚꽃길, 화개장터를 탐방
[쌍계사
쌍계사(雙磎寺)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사찰로 지리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지어진 쌍계사는 의상대사의 제자인 대비(大悲)와 삼법(三法)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도를 닦은 곳이다.
처음에는 절 이름이 옥천사였으나, 신라 후기 정강왕 때 고쳐 지으면서 쌍계사로 바뀌었다. 지금의 절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벽암선사가 조선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은 것이다.
현재 이곳에는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 쌍계사부도(보물 제380호), 쌍계사대웅전(보물 제500호), 쌍계사팔상전영산회상전(보물 제925호)과 일주문, 천왕상, 정상탑, 사천왕상 등 수많은 문화유산과 칠불암, 국사암, 불일암 등 부속암자가 있다.
지리산 쌍계사는 서부 경남일원의 사찰을 총람하는 조계종 25개 본사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 불교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므로 그 가치가 크다.
문화재
지리산 쌍계사 일원은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21호 지리산 쌍계사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지리산 쌍계사 일원으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되었다.
진감선사탑비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는 국보 제47호이다. 신라 정강왕이 진감선사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앙모하여 대사가 도를 닦은 옥천사를 쌍계사로 고친 뒤 정강왕 2년(887년)에 건립한 것으로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썼으며 승, 빈영이 새겼다.
쌍계사 승탑
하동 쌍계사 승탑(河東 雙磎寺 僧塔)은 보물 제380호로, 통일신라시대의 부도이다. 쌍계사 경내에 있다. 신라 말, 고려 초의 화강암으로 만든 부도로서, 높이는 2.05m이다.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진 기단 위에 탑신·옥개석·상륜이 차례로 얹혀 있는 8각원당형의 승탑이다. 전체적으로 각 부분의 비례가 무겁고 조각 수법이 거친 편이다.
쌍계사 대웅전
쌍계사 대웅전(雙磎寺大雄殿)은 보물 제500호로, 조선 후기의 목조건물이다. 쌍계사 경내에 있는 건물로 크기와 형식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지붕이며, 전체적으로 중앙에 비해 좌우 퇴간(退間)의 너비가 좁고, 기둥 사이의 넓이에 비해 기둥이 높아 산곡간(山谷間)의 형태를 보여준다.]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
소재지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차시배지길 4-5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차나무시배지.
1987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신라 흥덕왕 3년(828)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大廉)이 신라로 돌아올 때 가져온 차나무의 종자를 왕명에 의하여 심은 곳이라 전해지고 있다.
그때 지리산 일대에 심어졌다고 하며, 전설에 따르면 그 뒤 흥덕왕 5년(830)에 진감선사가 차를 번식시켰다 한다. 지금도 화개장터의 동서쪽 산기슭에서부터 쌍계사(雙磎寺)를 지나 범왕리에 이르는 화개천(花介川)의 양쪽의 산기슭에는 야생상태로 된 차나무밭이 12㎞나 뻗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하동현(河東縣)편과 진주목(晉州牧)편에 지방물로 차가 오르고 있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까지도 이곳이 차의 재배와 제차의 기술이 뛰어난 지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쌍계사의 승방에서는 대나무와 함께 혼생하는 차나무잎으로 만든 차를 죽로차(竹露茶)라 하여 한층 그 품질을 높게 하고 있다. 죽로차는 일명 작설차라고도 말하는데 이 차는 대나무의 이슬을 먹고 자란 잎을 따서 제조하여 피로회복과 정신을 밝게 하는데 효과가 있다 한다.]
[하동야생차박물관
소재지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로 571-25 1-2층
하동야생차박물관은 한국 차의 시배지이자 기원지로 알려진 하동군 ‘화개‘에 위치하고 있어 옛 차 문화의 역사성과 전통성을 보전, 계승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하동군은 예로부터 지리산과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느림의 미학과 전통을 중요시하는 지역성이 오랜 시간 차 문화로 꽃 피어져 왔다. 이에 하동야생차박물관은 단순 정보 전달에서 벗어난 참여형 체험 전시와 차를 통해 마음을 나누는 다정지교(茶情之交)의 교육으로, 자연 속 쉬어가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용안내
이용요금 : 무료
이용시간
[하절기(3월~10월)]
10:00~18:00
[동절기(11월~2월)]
10:00~17:00
쉬는날 : 매주 월요일 / 1월 1일 / 설·추석 당일
주차시설 : 가능
문의 및 안내 : 055-884-2955 ]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길
하동 쌍계사 하동십리 벚꽃길은 하동의 대표적인 벚꽃길이자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벚꽃길로 손꼽힌다. 봄이 오면 쌍계사에서부터 화개장터까지의 십리길에는 벚꽃으로 물결친다. 국내의 많은 벚꽃길과 다른 점은 쌍계사 계곡과 멋지게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내는데 있다. 차타고 정신없이 바라보게 만드는 매력적인 은빛 향연은 화개장터까지 계속 이어지고 하이라이트는 길 중간쯤의 일방통행로이다. 잠시 서행을 하며 벚꽃향에 취해볼 수 있다.
ㆍ코스 정보 : 쌍계사 초입~화개장터(약 6.2km)]
[화개장터
소재지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로 15
집필자 : 이상열(李相烈)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서 개설되는 시장.
개관
화개장터는 하동군의 공설시장 중 하나로, 김동리의 소설 〈역마〉와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의 배경이 된 시장이다. ‘장터’란 장이 서는 장소를 뜻하기에 일반적으로 ‘화개장’이라고 불러야 하지만 ‘화개장터’가 시장의 공식명칭으로 통용된다. 이 시장은 전라남도 구례군과의 경계에 위치한 탑리에서 오일장으로 개설되어 왔으나 관광시장으로 개발되면서 장터를 이전하여 상설시장이 되었다.
내용
화개장터는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1770)에 화개장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데, 당시에는 음력으로 끝자리가 1과 6일인 날에 장이 섰다. 장날 변화는 없었으나 장의 명칭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1827)에서는 탑원장塔院場, 『한국각부군시장상황조사서韓國各府郡市場狀況調査書』(1909)에서는 탑촌시장塔村市場으로 바뀌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9)에 따르면 1915년 기준으로 화개장은 장날 변화 없이 쌀, 생선, 잡곡, 무명, 잡화를 주로 거래하는 시장이었다. 연간 거래액 규모는 하동군의 4개 오일장 가운데 가장 적었다.
화개장은 경상남도 고시에 의해 1926년 1월 25일 자로 장터의 이전 및 취급 품목이 허가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장터를 현 화개삼거리 부근에 해당하는 720번지로 옮기고 면적도 기존 100평에서 777평으로 크게 확장한다는 것이었다. 취급 품목은 곡물류, 어류, 담배, 채소, 과실, 직물, 누룩, 가축류, 목탄 및 기타 일용잡화였다.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실제 장터 이전 낙성식은 그해 3월 14일에 이루어졌고, 이때 우시장도 신설되었다. 화개장은 1928년 기준 조사 자료에서도 장날 변화는 없었으나 거래액은 하동군의 7개 오일장 중 3번째 규모로 성장하였다. 그 후 하동군 관내에서 거래액 규모별 순위는 조금씩 낮아져서 1937년 기준 조사에서는 4번째였고, 1938년 기준 조사에서는 5번째였다.
화개장은 광복 후 혼란기에 지리산 일대의 빨치산 활동으로 인해 위축되었다가 1961년 이후 조금씩 성장하였다. 1961년 12월 31일 기준으로 화개장은 장날 변화는 없었고, 연간 거래액은 하동군 관내 11개 오일장 중 10번째에 불과하였다. 1970년 12월 31일 기준 자료에서는 거래액 순위가 8번째로 상승하였다.
한편 1976년 조사 자료에는 당시 화개장의 현황이 상세하게 기록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장터는 부지 566평, 건평 50평이었다. 장날 평균 고정상인 40명, 이동상인 80명, 이용객 1,000명 정도가 출시하였다. 거래액은 225만 원으로 하동군 관내 11개 오일장 중 7번째 규모였다. 또한 오일장에 병설된 부지 25평 규모의 가축시장에는 장날 평균 소 30마리, 돼지 20마리가 출두하였다. 취급 품목의 경우 대한뉴스 1703호(1988년 7월 2일)에서는 미역·김 등 각종 건해초류, 마늘, 약초류, 건어물류, 참게가 소개되었다. 지게와 낫 등 농기구를 판매하는 이동상인의 모습도 보이는데, 이와 같은 물품이 거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수 조영남이 1988년에 발표한 〈화개장터〉라는 대중가요가 유행하면서 1990년대에는 화개장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장터는 화개천을 사이에 두고 현 화개장터 서북쪽의 가탄 마을에 위치한 화개삼거리부터 화개공용버스터미널 일대까지의 구간에 형성되었다. 그 무렵 노후화된 장터의 현대화와 대중가요로 인해 높아진 인지도를 활용한 관광시장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 결과 하동군은 1997년부터 약 16억 원을 들여 장터를 원탑 마을에 있는 현재 위치(화개면 쌍계로15)로 이전하고 장옥과 관광안내소 등을 갖춘 상설시장을 새로 조성하였다. 그 후 장옥을 추가로 건축하고 김동리의 소설 〈역마〉를 주제로 한 공원 조성 등을 추진하였다.
2022년 현재 화개장터는 인정시장으로 등록되어 있고, ‘전통시장 통통’(2022.7.30.)기준으로 면적 8,226㎡에 76개 점포로 구성되어 있다. 점포가 들어선 장옥은 초가 형태와 기와 형태로 이루어져 있고, 장터 내에는 옛 정취를 돋우기 위하여 옹기전·대장간 등이 들어서 있다. 장터 중앙부의 기와 형태 장옥은 2004년 6월 장터 내의 난전이 화재로 소실된 후에 조성된 시설이다. 또한 장터 내에는 소설을 주제로 한 역마공원과 화개장터노래비 등도 조성되었다. 화개장터의 주요 취급 품목은 재첩국 등을 파는 음식점을 비롯하여 입지적인 특성을 반영한 산나물, 약초류, 야생차, 민물생선, 농기구·옹기 등이다.
한편 화개장터는 종종 화재와 홍수 피해를 보았다. 2004년 화재 외에 2014년 11월 27일에도 화재가 발생하여 41개 점포가 불탔다. 2020년 8월 7일과 8일에는 집중호우로 인한 섬진강의 범람으로 장터 내부 107개 점포와 그 옆에 조성된 알프스장터 및 마을이 침수 피해를 보기도 하였다.
특징 및 의의
화개장터는 『동국문헌비고』에 등장한 이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배경이자 가수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로 인해 전국적으로 알려진 시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진행된 관광시장화 과정에서 상설화되었으나, 시장과 지역주민의 관계성이나 오일장 시절에 활발하던 사회문화적 기능이 약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 회복을 위하여 2010년과 2011년에 당시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한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을 통해 커뮤니티시설을 설치하고 주말 직거래장터인 ‘파머스마켓’을 개설하는 등 지역사회 거점 기능을 활성화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과 함께 화개장터는 ‘하동10경’ 중 ‘화개장터십리벚꽃’ ‘화개동천야생차밭’ ‘쌍계사의 가을’ 등 관광명소와 접하고 ‘화개장터벚꽃축제’와 ‘하동야생차문화축제’의 주 무대인 점을 기반으로 하동군을 대표하는 문화관광형시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12:00~13:00 점심식사
13:00~13:15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화개장터를 출발하여 전남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길 59 번지에 있는 운조루 고택으로 이동
[15분, 12.5km]
13:15~14:30 운조루 고택 탐방
[운조루 고택 - 구름속에 새처럼 숨어사는 집, 운조루
구례 운조루 고택은 토지면의 여러 마을 중 오미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운조루는 큰 사랑채의 이름으로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건물은 본래 대구 사람인 류이주가 금환락지의 명당에 매료되어 은퇴하면 이곳에 머물 것을 결심하고 시작하여 7년이라는 세월 동안 건축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73칸 집이었지만 화재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부가 소실되어 현재는 2007년 문화재청의 실측 조사에 따르면 63칸이 보존되고 있다. 이 고택은 ㅡ자형 행랑채, ㄷ자형 안채, ㅜ자형 행랑채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사당과 연당, 가빈터도 남아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상류층 주택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운조루 고택은 각 공간의 위계에 따라 단 차이를 두어 공간을 배치하였다. 특이한 점은 다른 고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경사로를 사용하여 가마가 큰 사랑채까지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이용정보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길 59
이용시간 08:00~18:00
휴일 연중무휴
주차 불가능
지정현황 국가민속문화유산 구례 운조루 고택 (1968.11.25. 지정)
체험 프로그램 : 길동무와 운조루 구석구석 / 한복 입고 나도 명가모델 / 동이민족의 장수로 국궁체험 등
화장실 없음
입장료
- 어른 1,000원
- 학생·군경 700원
- 운조루체험~다도체험 20,000원
- 운조루체험~국궁체험 30,000원
※ 입장료 무료 : 어린이]
14:30~18:0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운조루 고택을 출발하여 서울 교대역으로 이동 [3시간30분, 289.3km]
구례 화엄사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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