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제주지방법원에서 12명의 천주교 사제, 수도자에 대한 공판이 있었습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불법공사에 항의하다 연행되어 업무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 집회시위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이분들은 징역 6-8개월 집행유예 2년 또는 1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날 재판을 지켜본 강우일 주교는 “법이 정의를 위해 집행되어야 하는데, 문자로서의 법만 집행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재판을 지켜본 소감을 전했습니다.
경찰은 비단 사제뿐만 아니라, 제주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무차별 연행하고 있습니다. 2011년 5월 19일부터 2012년 2월 9일까지 연행된 인원이 197명에 달합니다. 해군기지 건설현장인 구럼비 바위에 갔다는 이유로, 사업의 부당성에 항의했다고 체포 연행 당했습니다.
대규모 국책사업은 사회적 합의가 기본입니다. 사업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고, 잘못된 것을 항의할 권리는 인정되어야 합니다.
강정마을 주민들, 활동가와 종교인들은 다음과 같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불법성을 지적합니다.
1. 강정주민들에게 설명회나 공청회도 없이, 동원된 87명이 박수친 것을 만장일치라며 해군기지 유치를 선포했다. 곧이어, 실제 마을주민 725명이 임시총회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니, 94%가 해군기지를 반대했다. 2.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이며 세계 자연문화유산인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데 환경영향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3. 국무총리 주관 제주해군기지 기술검증위원회는 최종보고서를 통해 “제주 해군기지가 민간 크루즈선이 입항 할 수 없도록 잘못 설계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강정항 시설계획 변경공사가 허가조건을 위반한 채 진행되고 있다. 설계상의 오류가 밝혀지고 검증위원회까지 꾸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강정포구의 시설물을 이동시키고 새로운 공사를 시작했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기존 방파제에서 테트라포드 제거하는 작업을 중단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칠 것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경찰이 이들을 체포ㆍ연행한 것은 공권력의 남용이다. 4. 2012년 국방예산은 33조원이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의 제주해군기지 조사과정에서 ‘이중협약서’의 존재와 민군복합항 설계부적정 등이 드러났다. 국회가 지난 연말 2012년 해군기지 건설 예산 1327억원 중 1278억원을 삭감했다. 남은 49억원은 설계비와 보상비에 쓰여 지고, 실재 공사비는 반영되지 않은 금액이다.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신용인 교수는 “구럼비 바위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기본권이 있으며, 구럼비 바위로 가는 길을 막은 철조망은 헌법이 보장한 우리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로 본다. 구럼비는 공유수면으로 해군의 관할권이 없으며 공사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처벌도 받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검찰과 해군은 해군기지공사로 고통 받는 주민들의 호소와 부당성 지적에 귀를 기울이고, 평화로운 집회 및 시위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해군기지 건설의 재고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부가 내세우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첫째, 국가안보 차원에서 북의 도발을 억제한다는 주장을 하지만, 군사분계선과 제주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둘째, 해저자원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하지만, 국가주권과 외교역량이 중요합니다. 해군기지 건설로 오히려 군사적 긴장유발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주는 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2005년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해군기지 건설로 제주가 평화로운 관광지에서 동북아의 새로운 군사적 긴장의 전초기지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국가 간의 긴장은 군비 증강이나 전쟁이 아니라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상호 신뢰 구축을 통해서 풀어갈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군비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2월 24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던 12명의 사제와 수도자들도 이와 같은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해군기지건설을 막아내고 구럼비 바위와 같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키며 강정이라는 한 마을 공동체를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들을 가리켜 외부세력이라 칭하고 공사방해, 공무집행방해를 했다고 한다면 신앙에서 얻은 것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더군다나 재판을 통해 징역까지 선고한 것은 사제 ․ 수도자가 지향하는 복음적 삶을 탄압하는 것입니다.
또 2월 26일에는 제주국제평화대회에 참가 차 강정마을을 방문했다가 구럼비해안에 들어갔던 국내외 활동가들 16명이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공사의 부당함은 종교와 국경을 떠나 많은 이들이 이미 인지하고 있는 바입니다. 정부와 해군은 더 이상 공사를 강행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성적으로, 그리고 투명하게 제주해군기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재고해 보아야 합니다.
검찰과 사법부는 이제라도 불법적으로 공사를 강행하는 해군에 대한 항의의 정당성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인 거주이전의 자유,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무시하는 판결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구럼비 바위 집회 불허는 헌법 제21조 제2항(집회의 자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고, ‘허가’의 방식에 의한 제한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헌법적 결단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부와 검찰, 사법부에 다음을 요구합니다.
-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의 부당성에 대한 항의는 정당한 기본권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 환경절차를 어긴 공사가 법적으로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사업인지 되짚어봐야 합니다. - 해군기지공사로 고통 받는 주민들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 평화로운 집회 및 시위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 근본적으로 해군기지 건설의 재고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2012년 2월 27일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 (서울대교구정의평화위원회 / 대구대교구정의평화위원회 / 광주대교구정의평화위원회 / 대전교구정의평화위원회 / 마산교구정의평화위원회 / 부산교구정의평화위원회 / 수원교구정의평화위원회 / 안동교구정의평화위원회 / 원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 의정부교구사제연대 / 인천교구정의평화위원회 / 전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 제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 청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 춘천교구정의평화위원회 / 천주교인권위원회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 한국 남자수도회 ․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