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선의 시 명상] 고요하다는 것 (김기택) 마음의 소리
픽사베이
고요하다는 것은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고요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당신은 곧 수많은 작은 소리 세포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바람 소리, 물소리, 새소리, 숨소리
온갖 깃털과 관절을 잎과 뿌리들이 음계와 음계 사이에서
서로 몸 비비며 움직이는 소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소리들이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여운이 끝난 자리에서 살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소리들이 희미한 소리와 소리 사이에서
새로 생겨나고 있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소리와 움직임은 너무 촘촘해서
현미경 밖에서는 그저 한 덩이 커다란 돌처럼 보이겠지요
그러므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은 아주 당연하답니다
하지만 한 모금 샘물처럼 이 고요를 깊이 들이켜 보세요
즐겁게 배 속으로 들어오는 음악을 들어 보세요
고요는 가슴에 들어와 두근거리는 심장과 피의 화음을 엿듣고
허파의 리듬을 따라 온몸 가득 퍼져 나갈 것입니다
뜨겁고 시끄러운 몸의 소리들은 고요 속에 섞이자 마자
이내 잔잔해질 것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흔들어도
마음은 돌인 양 꿈쩍도 않을 것입니다
김기택 시인의 "고요하다는 것"을 읽으면 우리를 둘러 싼 모든 것, 우리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또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돌아보게 되지요.
작은 소리들은 어떤 형상으로 녹아 들어가 그 소리 세계를 결정짓는 소리를 만듭니다. 소리와 소리 사이에 있는 소리들, 소리와 소리 사이에 있는 움직임들, 소리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는 여전히 살아남아 다른 소리와 합쳐 새로운 소리를 만듭니다.
이 시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야 합니다. 모든 시가 그러하지만 이 시의 단어와 단어, 구절과 구절은 아주 촘촘해서 천천히 읽지 않으면 의미가 와 닿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고도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이 시가 무엇을 말하는지 잘 와 닿지 않지요.
이 시가 말하고 있는 소리의 세계는 고배율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세계, 양자의 세계일 겁니다.
양자는 진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합니다. 입자이면서 진동이라는 것은 서로 만나 새로운 것을 형성하는 특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든다는 의미지요.
수없이 다양한 떨리는 소리와 스치는 소리가 만나 바람 소리가 되었지만 그 바람 소리 속에는 여전히 그 소리들의 특성이 남아 있습니다. 녹는 소리, 섞이는 소리, 씻기는 소리가 만나 물소리가 되었지만 그 물소리 속에는 여전히 그 소리들의 특성이 남아 있지요.
우리의 숨소리, 동물들의 숨소리는 어떠한가요. 숨소리는 들이마시는 소리와 내쉬는 소리가 합쳐진 소리입니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소리에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온갖 소리가 포함되어 있지요.
차 소리, 물 끓는 소리, 움직이는 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신발 소리, 어쩌면 아픔의 소리, 기쁨의 소리도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엄연한 개인이지만요.
각자 삶의 목적을 지닌 개인으로서 서로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개인인 거지요. 그 사실을 돌이킨다면, 늘 인식하고 있다면 마음은 소리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음은 돌처럼 점잖을 수 있습니다.
함께 연결되어 존재하되 나다운 삶을 살아내는 개인임을 자각하고 살아낼 수 있지요.
글 | 이강선 교수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