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역 정보 - 경상북도 율동역[ 栗洞驛 , Yuldong St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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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 19:14조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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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역 정보
율동역
[ 栗洞驛 , Yuldong Station ]
율동역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서현동 948-5 |
소속지사 | 대구본부 |
노선 | 중앙선 |
취급업무 | 기타 |
열차정차 횟수 | 없음 |
기본정보
경상북도 경주시 율동에 위치한 중앙선의 신호장이다. 현재 여객열차는 정차하지 않고 있다.
연혁
주변 관광지
경애왕릉
55대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후백제 견훤에게 붙잡혀 자결을 강요당하고, 왕비와 궁녀들을 인질로 끌려가게 했다. 재위 기간도 4년. 아무 장식 없이 자그마한 봉분을 보니, 한 왕국이 기울어 가는 시기에는 왕의 생도 그리 녹록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모두 박씨인 삼릉의 주인들과 가까운 혈족의 무덤(경애왕 역시 박씨)이고, 일성왕릉이 경애왕릉이라는 주장도 있다.
• 분류 : 고궁유적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포석로 경애왕릉
• 전화번호 : 054-779-8743
• 역에서의 거리 : 3.8km
경주 무열왕릉
김유신의 적극적인 지지로, 진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왕위에 오른 김춘추. 그가 29대 태종무열왕이다. 특히 외교에 능숙하여 당나라와의 연합을 성사시키고 백제를 멸망시키면서 삼국 통일이라는 대업에 성큼 다가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신라에서 처음으로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았다. 고분의 주인이 하루 식사로 쌀 서 말, 수꿩 아홉 마리를 먹었다고 할 만큼 기골이 장대한 이라서 그랬을까. 고분은 별다른 장식 없이 봉분이 매우 크다. 장식 없이 규모가 큰 신라 초기의 능으로는 마지막이라 할 수 있고, 무열왕릉 이후에는 호석을 세우는 등 화려한 능 양식이 등장한다. 경주에는 많은 고분이 있지만, 주인이 밝혀진 것은 드물고 ‘OOO의 능으로 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열왕릉의 경우에는 왕릉 앞쪽에 무덤의 주인을 밝히는 비가 세워져 있고, 머릿돌에 ‘태종무열대왕지비’라는 글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어 무덤의 주인이 확실히 밝혀진 능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비의 몸체는 사라지고 비석 받침돌(귀부)과 머리 장식돌(이수)만 남아 있는데, 이 머리 장식돌 중앙 부분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당대의 명필이자 아들인 김인문이 썼다고 전하는 전서체 글씨다. 비석 받침돌의 거북이는 살아움직이는 듯 힘차고 사실적인 조각 수법만으로도 주목을 끌고 있다. 삼국 통일을 이루어내고 막 비상하려는 한 국가의 기상을 보여주는 듯하지 않은가. 무열왕에 관해서는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와 인연 맺은 이야기, 고구려가 옛 고구려땅인 죽령 이북의 반환을 요구하자 이를 거절하고 꾀를 내어 고구려에서 빠져나온 이야기, 원효를 요석공주와 인연 맺어준 이야기 등 일화가 많다.
• 분류 : 고궁유적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대경로 경주 무열왕릉
• 전화번호 : 054-772-4531
• 역에서의 거리 : 2km
경주 법흥왕릉
신라 23대 왕인 법흥왕(재위 514년~540년)의 무덤이다. 법흥왕은 신라를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체제로 완성시킨 왕이다. 왕권강화를 위해 상대등과 병부를 설치하였고, 520년 율령을 반포하였다. 532년 금관가야와 합병하여 낙동강유역에 처음 진출하였다. 신라 처음으로 건원(建元)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중국 양(梁)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527년 이차돈이 순교하면서 불교를 국가종교로 수용하고 고대국가의 이념적 기초를 마련하였다. 높이 2m, 지름 14m로 삼국시대 신라 왕의 무덤으로는 작은 편이다. 무덤 아래에는 둘레돌을 받쳤던 자연석이 있다. 법흥왕 이전의 왕 무덤은 평지인 경주 무덤들에 밀집되어 있어 소재파악이 어려우나, 그 이후의 왕 무덤은 구릉이나 교외에 2~3기씩 따로 자리하고 있으며 소재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이러한 변화는 왕 무덤의 형태 변화와도 연관되는 듯한데 그 변화의 시작이 법흥왕릉에서 찾아 볼 수 있어 중요한 곳이다.
• 분류 : 고궁유적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효현동 산 63
• 전화번호 : 054-779-6077
• 역에서의 거리 : 1km
경주 오릉
크기도 간격도 일정치 않게 그야말로 오순도순 마주 누운 고분 다섯 기. 박혁거세와 부인 알영, 2대 남해, 3대 유리, 5대 파사가 묻혔다고 전해진다. 만약 사실이라면 신라의 초기 임금들이 모두 이곳에 모인 셈이다. 오릉에 대한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다섯 기의 능이 아니라 박혁거세의 능이라고 전하고 있다. 박혁거세가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하늘로 올라갔는데, 17일 만에 유해가 흩어져 땅에 떨어졌으며, 왕후도 따라 죽었다고 한다. 이를 합장하려고 하였으나 큰 뱀이 나와 방해하므로, 다섯 동강 난 왕의 유해를 각각 장사지내고 고분의 이름을 ‘사릉(蛇陵)’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 분류 : 고궁유적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탑리1길 18-2
• 전화번호 : 054-772-6903
• 역에서의 거리 : 3.5km
경주 포석정지
‘신라의 역사는 남산에서 시작하여 남산에서 끝맺었다’고 한다.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생 설화에 등장하는 ‘나정’과 신라 55대 경애왕이 견훤에게 생포되어 변을 당했다는 ‘포석정’이 남산에 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박혁거세가 나라를 세우기 전 여섯 고을의 시조 우두머리들에게 제사 지내는 양산재, 신라 최초의 궁궐터였던 창림사, 신라 초기 왕릉인 오릉까지 모두 지척이다. 포석정 일대는 왕이 행차했을 때 머무는 이궁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술잔을 띄우면 술잔이 물길을 따라 흐르며 돌았다는 구불구불한 모양의 석조 구조물만이 남아 있다. 석조구조물은 전복의 구불구불한 모양을 닮았으며, 여기에 있던 정자를 포석정이라 하였다.
• 분류 : 고궁유적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순환로 816
• 전화번호 : 054-745-8484
• 역에서의 거리 : 3.8km
경주 효현동 삼층석탑
탑이 세워진 이 터는 신라 법흥왕이 죽기 전까지 승려로서 불도를 닦았다는 애공사(哀公寺)가 있었던 곳이라 전해오기도 하지만 주변이 논밭으로 변하여 사찰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기단은 사방 네 면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는데, 탑신에 비해 과중한 비율을 보이고 있어 무거운 느낌을 준다. 탑신(塔身)은 각 층의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 뜬 조각을 두었고, 지붕돌은 하늘을 향해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어 경쾌한 곡선을 이룬다. 지붕돌의 밑면 받침이 4단으로 되어있고 각 부분의 조각이 가늘고 약하게 나타나 있어 9세기 무렵 통일신라 석탑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 분류 : 고궁유적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외외2길 효현동 삼층석탑
• 전화번호 : 054-779-6077
• 역에서의 거리 : 1km
여수 산수리 지석묘군
여수 산수리 지석묘군은 여수시와 순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신대마을에 2개군, 순천에 1개군이 있다. 왕바위재에 있는 6기의 고인돌들 중 가장 큰 것은 덮개돌의 길이가 8.65m나 된다. 이곳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인돌들은 율촌분교 앞 논 사이에 21기가 원형을 이루고 있다. 여수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비파형 동검, 옥과 더불어 강력한 권력과 경제력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유적이다.
• 분류 : 고궁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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