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대 한국프로축구 최고 용병이었다. 허정무가 네덜란드에서 델고온 동료선수가 어시1위를 먹기도 했지만, 피아퐁은 단연 앞서는 득점력과 어시스트 배급율로 최고용병자리를 구축했다. 80년대... 아직은 태국축구가 한국에 삐까한 전력을 자랑하고, 일본은 개밥으로 여기지도 않을때... 피아퐁은 한국에 와서 그 이름자를 깊게 남겼다. ...태국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선수로, 97년의 월드컵 아시아 1차예선에서 한국전 후반전때 투입되기도 했다. ...당시 늙은 그가 무슨 실력이 있겠느냐 했었지만, 최용수등이 버틴 한국팀의 골문에 한골을 밀어넣을 정도로 실력이 당당한 선수였다.(비록 3:1로 졌지만...;)
라데
: 포항에서 이 사람 모르면 간첩이라고 했다. 황선홍과 더불어 90년대 초중반까지 포항의 공격라인을 이끌었던 귀재였다. 걸출한 한국욕을 잘 했으며, 포항에서 자신의 축구인생이 시작되고 자랐음을 자랑스럽에 이야기 하는 선수라고 한다. 후에 J리그로 진출했지만, 거기서 또 실력을 인정받아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거기서 또 독일 분데스리가로 진출한다. 이동국이 브레멘에 있던 시절, 이동국의 큰형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빌라벨트에서 있을때 역시 차두리의 큰형 역할을 해줬었다. 선수 말기에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선수생활을 끝내고 싶다고 했지만, 이미 늙은 그를 정답게 받아줄 만큼 K리그의 인심은 좋지 않은 듯 하다... ..현재 카타르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포항아! 뭐하냐! 모셔가라!!)
비탈리
: 수원의 전성시절을 이끌던 동유럽용병선수이다. 당시 수원에는 비탈리-샤샤-데니스로 구성된 동유럽 용병 공격라인이 있었는데, 정말 살벌할 정도로 죽여줬었다.(상대팀이 불쌍했다..ㅡㅜ) 비탈리는 공수를 조율하며 수원의 공격을 이끌었는데, 나중에 고종수와 자리가 점점 겹치고 윙라인에선 서정원이 등장하면서 어느사이 사라지고 말았다. 나중에 J2리그 팀으로 이적했고, 다시 K리그 모팀에 소속되었으나 큰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출전도 못하고 재활훈련에 열중하고 있다고 한다. 2002년 한국축구의 선전을 보면서 자국의 친구들에게 이 나라의 프로리그에 뛴다고 자랑하던 선수... 그의 재기를 기원한다.
쟈심
: 이라크대표선수로 포항의 용병으로 뛰었다. 아시아용병으로 유일하던 터라, 그의 실력을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그가 있던 시절 포항은 지금 보다 상당히 좋은 팀이었다. 그는 기술도 좋고, 프리킥도 잘 차고, 런닝점프도 깜짝할 수준의 선수였다. K리그에 부는 용병바람... 즉.. 동유럽에서 브라질로 옮겨지는 추세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다가 박성화감독 해임 전후를 기해 소리소문없이 포항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는 레바논인가 카타르인가 리그에서 뛰고 있다고 한다.
마니치
: K리그 동유럽 용병의 전성시절의 맴버이다. 본래 수원에 있었으나 부산으로 왔다가 일본에 갔었다가... 활약이 그저 그랬다가 자시 부산으로 와서 실력을 내보인 선수가 되었단다... 이 선수 특징은 발이 무지 빨랐던 것인데 모 아나운서가 '마니치 많이뛰'..라고 불렀던 것이 기억난다. 1998년 김주성이 은퇴하고, 안정환과 뚜따와 짝을 이룬 마니치는 욱일천승의 기세로 부산의 성적을 끌어올렸다. 1999년 4위의 성적... 그러나 당시 플레이오프가 있던 시절이라, 부산은 부천등을 박살내며 수원에 우승컵을 도전하기 이르렀다. ...그리고 당시 초청되었던 몰상식한 중국주심의 눈까리 삔 판정에 의해 그 유명한 '샤샤의 신의손'사태에 억울하게 우승컵을 빼앗기고 말았다. 안정환이 유럽으로 가고... 부산에 남아 있던 마니치 역시 어느 사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유고의 4부리그에 뛰고 있다고 소문이 들려오는 가운데 인천팀이 생기면서 재 영입된다는 소문역시 있었고, 인천으로와서 현재는 3경기연속골,부산시절의 영광을 회복하고있다..
사리체프(신의손)
: K리그에는 왜 외국인 선수가 골키퍼를 못할까? ...전 적으로 이 사람때문이다. 왜? ...너무 잘해서..ㅡㅡ; 사리체프는 러시아리그에서도 알아주는 명 골킵이었다. 골킵의 강국 러시아... 야신의 조국인 러시아에서 그는 철두철미한 교육을 받았고, 러시아에서도 0점대의 방어율을 보여주는 놀라운 사나이였다. 그러다가 K리그에 와서 활약.. 그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바람에 프로연맹은 용병출전 규칙을 바꾸기에 이르렀다... 외국인 골킵들은 못쓰게 된 것이다...(덕분에 같이 왔다가 돌아간 용병골킵도 있었다.) 경기에 뛰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는 코치로서 K리그에 남았다가 귀화를 했다. 실력 그대로 신의손이라는 이름으로... 불혹의 나이가 되었지만, 그의 실력은 여전했고, 안양수비라인 최후에는 그가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조광래와 나이를 맞짱 뜰수 있는 수준이었던 그는 2003년 시즌 초반에 부진을 거듭하였고, 결국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박동석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말았다.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는 한국대표선수로 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투르크메니스탄선수로 단 한경기 출전한 것 덕분에... 못뛰게 됬다. 97년 월드컵 1차예선을 통과한 한국팀이 중앙아시아가 주류를 이룬 조에 속하자, 투르크메니스탄을 대구에 초청하여 시합을 했는데, 쿠르크메니스탄의 골킵이 부상인지 배탈인지 출전을 못하여, 같은 러시아연방인 신의손이 뽑혀서 출전했다. ...당시 김도훈이 골을 터트리는 등 3:1로 한국이 이겼지만, 이 경기 한번 딸랑 출전했던 신의손은 한국대표가 되는 것을 접었어야 했다. ...참고로 구리 신씨의 시조이며^^; 한국말을 무척 잘한다.
샤샤
: 90년대 후반에서 작년시즌까지... 그는 사기유닛이라는 이름에 어긋남 없는 용병이었다. 190cm의 장신에 상대가 겉잡을 수 없는 개인기와 파워플레이... 수원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작년까지 성남의 3연패를 이끈 공신이다. 전형적인 타켓포워드로... 그는 기회가 왔을때 골을 놓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수원에 있던 시절 미국이 조국 유고를 폭격하자, 이에 항거하는 세레모니를 펼쳐보이기도 했고, 삼성측이 그의 가족을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켜주자, 감복하여 한때 한국귀화까지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귀화를 한다면 상당히 쓸만한 선수였다. ...그러나 2001년, 그는 한국에 목발짚고 부임해온 히딩크를 부축해주려다가 졸라 면박만 당했다. "내가 뛰어도 너 보다는 빠르겠다."... ..분명히 그는 히딩크가 원하는 스타일의 스트라이커는 아니었다. 그러나 프로경기 최전방에서 가장 위험한 선수였다. ...90년대 K리그 용병들이 그랬듯... 그는 J리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이 과정에서 박건하와의 진한 인연이 있다. 수원에서 박건하와 뛰다가 아쉬움속에 헤어져 일본으로 이적했고, 이적한 팀에 역시 박건하가 임대되었다. 그는 당시 데니스와 문제를 일으킨 황선홍과 맞트레이드 되어 다시 수원으로 돌아왔는데, 얼마후 박건하가 일본에서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니(샤샤) 얼굴 지겨워!!^^;"
데니스(이성남)
: 수원의 황금시절을 이끌던 용병으로, 현재는 이성남으로 이름을 바꾸고 성남에서 잘 뛰고 있다. 그는 무척이나 어린 나이에 K리그에 왔다. 어린 나이라 혈기가 너무 왕성해서 문제였는데, 수원의 김호감독이 이 때문에 크게 골머리를 앓았다. 그는 또 트러블 메이커이기도 해서 당시 한국축구의 양대 핵인 김주성과 황선홍과 충돌하는 일이 있었다. 98년에 쓰러진 김주성의 목을 발로 밟았다가 언론의 조디에 시달렸으며, 그 후에 수원에 영입된 황선홍과 아시아클럽챔피언쉽에서 황선홍에게 뭐라고 했었다가 그에게 거칠게 밀려 쓰러지기도 했다.(당시 김호감독은 황선홍이 내내 데니스와 트러블을 일으킬 것을 걱정... 황선홍을 다시 일본으로 보내고 대신 샤샤를 받아왔다... 바로 위에 이야기 한 그것이다.) ...데니스는 그후 수원의 황금시절이 끝나고 브라질용병시대가 찾아오자 성남으로 이적했다. 이때는 장가도 가고, 월드컵을 앞두고 러시아대표로도 뽑히고 해서 성숙된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월드컵엔 못 갔고..(바보같은 러시아ㅡㅡ; 데니스가 끼여 있었다면 일본에게 안 졌을 건데...) 그후 한국인 이성남으로 다시 태어났다. ...실력이 무척 뛰어난 선수라 상당히 다혈질이라서 거의 움직이는 폭탄과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성질 죽은 편이다...
싸빅
: 올해 이사빅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했다... 그도 동유럽용병시절에 한국땅을 밟은 유고용병으로 포항에 입단하여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수비수지만 가끔씩 묵직한 슛팅을 터트려 주곤 하였으며, 홍명보가 자리를 비운 포항의 수비라인을 잘 이끌었다. 라데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그는 포항의 지주인 박태하에게 한국말과 욕설을 배웠으며, 일본인을 쪽바리라고 부르는 예의까지 배웠다고 한다.
K리그에 온 용병들이 그렇듯이... 그 역시 일본을 좋아하지 않았고, 성남에서 A3대회 출전때 일본팀만 만나면 극일정신을 활활 태웠다고 한다. 실수를 하여 차경복감독의 맘을 상하게 했을때는 찾아가서 포항사투리로 정중하게 사과를 한 일화도 있다고 하고, 일본이 요새 싸빅의 귀화로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면 그는 무척 좋은 선수이며, 프로건 앞으로 될지 모르는 대표든... 한국축구에 이바지할 수 있는 훌륭한 선수라고 생각된다.
아킨슨
: 대전에 왔던 잉글랜드 용병으로, 별활약은 없었다. 한국에 왔을때 나이는 벌써 34살... 190의 장신이었지만 100키로에 달할 정도의 거구였던지라... 그가 나오는 경기를 보면 시커먼 쇳덩이가 쿵쿵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그런 몸인데 불구하고 개인기는 상당했다...) 별 다른 활약은 못했지만, 그가 한국축구의 한 장을 그을 수 있는 용병에 들어가는 이유는... 그는 90년대 초반 잉글랜드 프리미어에서 날리던 초특급선수였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베스트골 100골 중 10위권에 그의 골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 1000만달러의 연봉에 호가하던 그의 인생이 조져진 것은 사우디클럽에 가면서 부터였다. 당시 따라갔던 부인이 그의 재산을 몽땅들고 토꼈고, 그는 괴씸한 마누라 잡으러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남은 가산도 탕진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아시아에서 재기하기로 하고 K리그에 노크했는데 왠걸... 이 콧대 높은 리그에선 과거 프리미어 최고스타건 뭐건 상관하지 않고 1차 탈락 시켰다. ...그는 이를 악물고 테스트에 성공하여 대전에 입단하였으나 마누라 덕에 망친 몸으로 인해 별 활약도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대전구단은 그가 몸관리만 잘하고, 가정문제가 없었다면 정말 좋은 선수였을 것이라고 하며, 절대 그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는 후문이다.
산드로
: 특급 브라질 용병... 초창기 브라질용병 중에서 스팩이 좋은 선수였다. 실력도 좋아서 고데로 트리오 편대를 이끌며 비탈리-샤샤-데니스의 공격조에서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K리그에 와서 삼바축구의 진수를 보여준 뒤부터 각팀이 브라질 용병 영입에 혈안이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 덕분 왠만한 팀이 브라질 용병 공격수로 쳐바르는 바람에 국내 유망주들의 경험이 약해지는 비극도 초래하기도 했다. 실력은 이미 언급했듯이 너무나 좋아서 수원의 아시아클럽챔피언쉽 우승에 기여했고, 그 밖에 일본이나 중국팀과의 프로경기에서도 좋은 실력을 보여줬었다. 브라질 용병시대를 연 그가 한국에 오래 있지 못하고 일본으로 가버린 것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다...
마시엘
: 전남의 브라질 수비수... 전남에서 상당한 실력을 발휘하던 수비수라서, 월드컵때 수비라인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온 한국축구협회가 그의 귀화를 제의하기도 했지만, 본인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수비수로서 그렇게 뛰어난 체격은 아니지만, 중요한 때 잘 끊어주고, 공격에서도 한 골 거드는 등... 전남의 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파치 김태영이 월드컵 팀을 전전하며 투사로 거듭나고 있는 동안 그는 묵묵히 전남을 지켜왔는데, 어느새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부상인지, 방출인지... 어떻게 된지는 본인도 모르겠다...ㅡㅡ;
첫댓글 라데 산드로 데니스등에서 알수 있듯이 아무래도 어린유망주를 데리고 와서 키우는게 더 좋을듯...나중에 비싼값에 이적시킬수도 있으니....
샤샤 요즘 잘 않보이는데.. 이적했나요?
싸직 예의가 바르군 일본놈들 욕도 할줄알고
역시 싸빅이군, 일본인을 쪽바리라고 부르는 예의도 있다니,,, 후후후
마니치 예전 올스타전 하프타임때 달리기 시합하고 나서 옆구리인가 부상당한이후로 보질 못했네...
아킨슨 내가 정말 좋아하는 선수였는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