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전(1758~1816)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차남으로, 일찍이 성호 이익을 사사하면서 서양의
新학문을 익혔다. 특히 수학에 재능이 뛰어나 처음 보는 공식도 금세 이해하여 문제를 푸는 데 응용
할 수 있었다. 정조 7년(1783) 생원시, 정조 14년 증광별시에 합격하여 승문원 부정자(종구품)에 제수
되었다. 정조는 정약전의 직급이 먼저 급제한 동생보다 낮은 것을 안타깝게 여겨 재위 21년 정약용을
곡산부사에 제수하면서 정약전을 특진시켜 사관(정육품)에 제수했다. 약전‧약용 형제의 인품과 탁월
한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정조의 애정 어린 배려였다.
그러나 재위 24년(1800) 정조가 독살당하면서 약전‧약용 형제의 관운도, 조선의 명운도 함께 끝났다.
1800년은 조선의 실질적인 마지막 해였다. 수많은 명신들과 함께 약전‧약용 형제도 히딴 죄목으로 치
도곤을 당한 끝에 기약 없는 유배에 올랐다. 전라도까지 함께 내려간 형제는 나주에서 길이 갈려 약
전은 흑산도로, 약용은 강진으로 갔다. 약전은 흑산도에서 16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다가 거기서 죽었
다. 흑산도는 원래 복권시키지 않을 중죄인을 보내는 곳으로, 정약전 이전에도 이후에도 거기서 풀려
난 죄수는 없었다. 정약전은 흑산도에 머무는 동안 『자산어보』를 찬술했는데, 그 한 권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과학기술원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정조 사후 권력을 잡은 순조(정조의 아들)의 외척들은 약전‧약용 형제를 비롯하여 숱한 명신들을 ‘황
사영 백서사건’에 연루시켜 단죄했다.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은 순조 1년(1801)에 발생한 대표적 천주
교도 박해사건인 신유사옥의 전말을 흰 비단에 적어 연경에 있는 서양 신부에게 보내려다가 발각되
었다. 황사영은 지금까지 조선에서 일어난 천주교도 박해 내용을 자세하게 쓴 뒤, 청나라 황제에게
간청하여 조선을 압박해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조선을 청나라의 1개 성(省)으로 편입시키든지, 아니
면 서양 전함 수십 척에 5~6만 명의 병력을 싣고 와서 조선을 정벌한 뒤 신앙의 자유를 허용해달라고
덧붙였다. 있지도 않은 남의 나라 귀신을 믿기 위해 자신의 조상과 나라를 멸망시키겠다는 천하의 역
적이었다. 황사영의 백서 내용이 알려지자 그때까지 박해받는 천주교도들에게 동정적이었던 백성들
도 일제히 등을 돌렸다.
정약전은 생업도 외면한 채 오로지 물고기 연구에 평생을 바쳐오고 있는 장덕순이라는 토박이 토박
이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전문적인 식견도 없고 참고할 서책도 없어 이론이 부실했다. 정약전은 장
덕순을 집으로 불러 함께 기거하며 물고기에 대한 공동연구를 계속해나갔다. 유배형은 크게 두 가지
로 나누어 안치와 정배(定配)가 있었는데, 정약전처럼 정배刑을 받은 사람은 정해진 지역 안에서는
거주이전도 자유로웠고 기거하는 집에 본인이나 다른 사람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도 있었다. 정약
전도 흑산도 내에서 한 차례 거주지를 옮겼다.
정약전은 장덕순의 도움으로 그가 평생 관찰해온 결과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이론을 붙여 『자산어
보』를 찬술하게 되었다.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순수한 학자의 감각으로 흑산도 앞바다에서 자
생하는 각종 물고기를 관찰하여 기록한 책이다. 자산(玆山)은 흑산도의 다른 이름이고, 어보(魚譜)는
물고기 백과사전이라는 뜻이다. 정약전은 흑산도라고 하면 서신을 받아보는 가족들이 무섭게 여길까
싶어 섬 이름을 자산으로 바꾸었다. 그는 『자산어보』 서문에서 자신을 ‘박물자(博物者)’, 요즘 용어
로 하면 과학자라고 표현했다.
『자산어보』에는 물고기 100여 종의 외양‧생태‧쓰임새 등 다양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100여 종의
물고기는 총 55개 항목으로 분류되어 각 항목마다 물고기의 별명, 맛, 물고기를 잡는 방법과 도구 등
을 자세히 밝혀놓았다. 정약전은 동네 아이들과 해녀들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물고기를 관찰할 수 있
었다. 어떻게 구했는지 조선은 물론 중국의 서책까지 참고했다. 조선에는 『자산어보』 이전에도 물
고기에 관해 쓴 책이 더러 있었다. 물고기를 좀 더 세밀하게 연구하기 위해 양반 체면에 직접 해부까
지 한 얘기는 『자산어보』의 백미로서 ‘박물자’다운 자세라 하겠다.
흑산도에서 쓴 책이니 홍어가 빠질 수 없다. 홍어 얘기는 『자산어보』 제2권 ‘비늘 없는 물고기’ 편
의 맨 앞머리에 나온다. 8종의 홍어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함께, 홍어를 삭히는 방법과 그에 따라 각
각 다른 맛, 염장(鹽藏)하는 방법, 그리고 홍어에 탁주를 곁들여 마시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수록해놓
았다. 수컷이 교미할 때 두 개의 가시를 암컷의 등에 박아 떨어지지 않는 모양새며, 교미 후에 달이
차서 산란하는 장면까지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한 낚시에 암수 두 마리의 홍어가 걸려 나오는 습성
은 정약전에게도 매우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암컷은 미끼를 따 먹으려는 식탐 때문에 걸리고, 수컷은 미끼를 문 암컷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색탐 때문에 걸린다.’
그래서 정약전은 홍어에게 해음어(海淫魚)라는 음탕한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홍어는 암컷이 훨씬 큰데, 같은 무게라도 암컷이 수컷보다 두 배쯤 비싸다. 육질이 연하고 맛이 훨씬
더 좋기 때문이다. 수컷의 꼬리 양쪽에 달려 있는 기다란 생식기는 힘을 주어 잡아당기면 잘 떨어져
나간다. 홍어 잡이 어부 가운데 수컷이 잡히면 불문곡직 생식기부터 제거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수
컷이 잡혔다고 심술이 나서 그런 경우도 있고, 홍어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암컷으로 속여 팔기 위한
경우도 있다. ‘만만한 게 홍어 좆’이라는 말은 그래서 생겨났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종종 '만만한 게 홍어 좆' 이란 말을 써먹은 적은 있지만 이 유래가 이러 하였는지는 이제사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적 말타기 놀이에서 계속 말등 받이만 했던 수난? 에 큰형, 대장을 욕하며 자조적으로 내뱉은 말 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시원한 아침 입니다. 불과 며칠전 밤새껒 그리고 아침에 눈만 뜨면 에어컨을 켠 일들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주말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