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장터로
나는 도심에 살면서도 닷새마다 돌아오는 오일장에 관심이 많다. 창원에서는 소답동에 2일과 7일이면 규모가 큰 오일장이 선다. 현대적 상가와 빌딩이 들어선 상남동에도 4일과 9일이면 전통 오일장이 맥을 잇는다. 같은 날 팔룡동 버스종합터미널 곁에도 오일장이 선다. 이것 말고도 명곡로터리에서 멀지 않은 지귀상가에도 1일과 6일이면 장이 선다. 이웃 진해 경화장은 3일과 8일이다.
전에는 집에서 가까운 농협마트나 할인매장에 가끔 들렸다. 내가 차를 몰지 못하고 집사람 몸이 불편하고는 더 자주 다닌 편이다. 그러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이왕 짐을 양손에 들거나 배낭에 짊어질 바에야 재래시장으로 나가봄직했다. 그래서 한동안 주말이나 방학이면 오일장 장터 순례가 취미가 되다시피 했다. 팔룡장에는 장터 포장에서 돼지국밥을 파는 아주머니와 안면을 터놓았다.
재래시장을 다니다보니 한 가지 생활의 지혜를 터득했다. 고향 냄새 같은 흙냄새는 좋으나 푸성귀나 해산물 신선도 그리 썩 좋은 것이 아님을 알았다. 물건이 싼 만큼 어딘가 제품이 허술한 구석이 있게 마련이었다. 신선도도 문제였지만 친환경 농산물 검증에도 의문이 생겼다. 때로는 중국산을 비롯한 수입 농산물이 국산으로 둔갑해 팔리는 경우도 있을 법했다. 그래서 발걸음이 뜸했다.
구월 둘째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었다. 하루 일과가 저무는 해질녘 나는 퇴근길 방향을 평소와 다르게 잡았다. 봉곡동 주택가를 지나 지귀장터로 향했다. 1일과 6일이면 지귀상가 골목엔 오일장이 선다. 파장이 되어 철시하기 전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때 장유에 사는 지인이 카톡으로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누군가 보내온 버섯을 감별하라는 내용이었다. 드문 자연산 표고버섯을 보았다.
내가 지귀장터를 찾아감은 쪽파 씨앗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북면에서 텃밭을 가꾸는 지인과 오간 통화에서 가을 채소 씨앗은 뿌려 놓았다고 했다. 나는 작년 이맘때 지귀장에서 쪽파 씨앗을 넉넉히 구해 지인 텃밭에 심어 두었다. 달포 사이에 쪽파는 싹이 터 무럭무럭 자랐다. 늦가을까지 대봉감이 주렁주렁했던 지인 텃밭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채소가 그 쪽파였다.
올해도 그 쪽파를 심으려고 마음은 두었지만 그새 시간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 내일모레 틈을 내서 한 번 찾아갈 요량이었다. 인터넷으로 쪽파 종자를 구할 수 있겠으나 절차가 복잡해 지귀 장날을 기다렸다. 마침 주말을 앞두고 지귀장이 열려 찾아간 길이었다. 장터 들머리는 여러 채소를 파는 노점이 펼쳐져 있었다. 과일을 아주 흔하고 즉석 어묵이나 손두부를 파는 가게도 보였다.
나는 복숭을 고르려다 그 곁의 무화과 열매를 한 상자 샀다. 그리고 장터를 찾아온 목적인 쪽파 씨앗을 파는 데가 있는지를 살폈다. 지난해 쪽파 씨앗을 팔던 할머니한테 쪽파 씨앗이 있느냐고 물었다. 오늘 가져온 것은 아침나절 다 팔았다고 했다. 올해는 양파 값이 무척 비싸니 그 대체재로 가을 쪽파 종자까지 인기가 좋은가 싶었다. 어떡하던 쪽파 종자를 구해야 하는데 아쉬웠다.
장터에는 햇밤도 나와 있고 삭 캐 흙이 묻은 땅콩도 보였다. 생선을 파는 가게는 남은 고등어나 갈치가 어서 팔리길 기대했다. 나는 한 손에 무화과를 들고 쪽파 씨앗을 파는 노점이 있는지를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끝내 쪽파 씨앗을 파는 사람은 만나질 못했다. 그러다 어린이집 뒷골목 노천 주점에 들렸다. 간이의자를 펴고 명태전 가지미전 부추전 김치전으로 막걸리를 파는 가게였다.
김치전에다 생탁을 한 병 시켰다. 내 곁 테이블에는 막노동을 끝낸 사내 셋이 날이 저문 강가에서 삽을 씻는 시간이었다. 생탁 병이 바닥이 나자 양이 차지 않아 부추전으로 곡차를 한 병 더 비웠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어둠이 내리기 전 귀가를 서둘렀다. 횡단보도에서 녹색신호를 기다리다 과일 노점을 기웃거렸다. 햇사과가 진열되어 있었지만 철이 지나는 참외를 한 무더기 샀다. 15.09.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