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사원 / 김기리
천지간에 버려진 사원은 없다지만 대신 오랜 세월을 돌은 나무의 슬하에 있었다 석상은 나무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나무는 돌의 몸에 뿌리를 내렸다 서로 몸 바꾸는 역사가 덥고 길었다 본적을 교환하는 동안 무풍나무 뱅골보리수가 돌계단으로 옮겨 앉고 계단은 흔들거리는 그늘을 얻었다
무너지는 방법을 아는 것은 돌의 재주다 나무는 그 돌의 재주에 장단을 맞추었을 것이다 저 결박의 부처를 다비장하면 햇살 묻은 나뭇잎 모양의 사리가 몇 줌은 나올 것이다 몇 해 전 몸을 열고 한 줌 돌을 꺼냈을 때 일찍이 내 몸이 불길 식은 화장火葬의 흔적이었다는 것을 여기 폐허의 사원에 와서 알았다 그러므로 늙은 몸은 다 사원이다 그 사원의 군상群像들에게 두 손 모은 기억도 부실하여 곧 허물어질 폐허의 전조를 다만 담담히 바라보는 것이다
석양을 앉혀놓고 설법중인 폐허 그 폐허에 입을 달고 살아가는 누추한 아이들이 면죄부인 양 지폐를 조른다 사원을 잡아먹고 울창한 숲 돌을 주식으로, 석양을 편식으로 견뎌 온 저 식습관이 문득 후덥지근한 허기를 몰고 온다
햇빛 탁발을 나왔는지 보리수나무 잎들이 일제히 일직보행으로 수런거리고 있다
- 김기리 시집 < 나무 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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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보던 것만 보고 사는 마을의 경치는 내 몸의 살결처럼 느껴지지만 어딘지 다 아는 듯 조금만 변해 있어도 손끝이 간다. 그런 곳을 떠나 먼 여행에서 새롭게 보는 풍경은 늘 새로운 긴장감을 가져다 준다.
김기리 시인의 <나무 사원>은 시인 자신이 뱅골보리수 나무를 찾아가 보았던 풍경에 사로잡혀 쓴 시라는 것을 누구나 눈치 챌 것이다. 그곳의 나무가 사원의 일부가 되어 돌위에 군림하고 있고, 그 돌은 오랜 시간 자신을 결박한 나무를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어느 종교나 스스로가 스스로를 결박하지 않으면 믿음을 얻을 수 없다. 믿음은 분명 자기 자신을 결박하여 얻어내는 자유다. 나무 사원은 그런 결박을 풀고 세상을 향해 햇빛 탁발을 나온 보리수 나무의 일대기처럼 보인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도 백년을 더듬어 살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를 결박하지 못하니 나무 사원처럼 내 단단한 삶의 돌을 결박하는 세월이 있다는 것, 새로운 삶의 경전처럼 들린다.
/ 임영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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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