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
힘에는 종류가 있다. 일단 누구나 아는 물리적인 힘이 있고, 위치적, 지위적, 물질적 등 여러 가지의 힘이 있다. 그중 나이에도 힘이 있다. 우리나라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이를 물어본다. 내가 그 상대를 어떻게 대할지 판단하기 위해서다. 나보다 나이가 낮다면 좀 더 편하게 대해도 되겠다고 생각을 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나이에도 힘이 존재한다. 이 힘을 이용해 자신보다 젊은 사람을 부려 먹기도 하고, 막 대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나이라는 그 힘을 자신의 이익, 자신의 기분을 위해 힘을 안 좋게 사용하는 것이다. 그럼 나이라는 이 힘을 좋게 사용하는 방법도 있을까?
예를 들어 자신이 인생을 더 살았다면 살면서 얻은 지혜를 알려줄 수 도 있고, 어른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럼 힘이 없다면 당하기만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다. 힘은 ‘상대적’이다. 내가 11살인 내가 10살보다는 나이라는 그 힘이 더 크지만 12살보다는 작다. (10<11<12) 그럼 만약 직장 상사가 인턴에게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개인적인 일을 시키고, 부려 먹어도 되는 걸까? 그것도 아니다. 직장 상사와 인턴은 서로 도우는 관계가 되어야지 직장 상사 > 인턴 이런 관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내가 힘을 키워 복수하겠다는 생각, 나도 당했으니 나도 똑같이 인턴에게 그러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 나는 똑같이 가해자가 되는 것이고, 이것이 계속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그럼 힘은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우리에게는 누구나 힘이 있다. 신체적 힘이 아니더라도 나이, 외모, 성적, 특기 등등 이런 힘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근데 그 힘의 크기를 가지고 누구는 힘이 있고, 누구는 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힘을 자기 이익을 위해 쓰게 된다면 분명히 피해를 받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힘을 남을 피해주는 행동을 위해 사용하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보다는 남을 도우는데 그 힘을 사용하면 어떨까 싶다.
이 주제는 [선생님, 더불어 살려면 어떻게 해요?]라는 정주진 작가님의 책을 읽고 다양한 주제 중 이 주제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쓰게 되었다. 우리는 나이를 물어보며 내가 더 나이가 많다면 더 우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예의와 존중을 표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강요되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도 안된다.
가끔 그런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리나라는 유교의 단점과 자본주의의 단점만을 가졌다고.
“유교에서 충효를 강조하는 것이 지나쳐 이것이 불합리한 명령이나 악폐습을 합리화하며 무조건적으로 따를 것을 강요한다”라는 단점과 자본주의 때문에 유교만 따지면 어려울 때마다 서로를 돕고 단단해지는 민족이였다면 지금은 남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더 많다.
유교의 장점을 자본주의의 단점으로 인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가 더불어 살아갈려면 서로의 힘을 과시하지 않고 남을 위해 자신의 힘을 쓰며, 자신만 생각하기보다는 남도 함께 생각하는 삶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