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다른 조화와 거친 남성의 향을 만나는곳, 신개념 칵테일 바 '모르나'
일상생활에서 '퓨전(fusion)'이란 단어를 매우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떤 한 분야의 전통적인 접근방식에서 탈피하여
다른 분야와의 결합으로 색다른 아이디어를 얻기 시작하는 현상입니다.
미국,유럽 등에서는 이미 70년대부터 음악,패션 등 여러 분야에서 퓨전현상이
일어났고 국내에서는 90년대 이후부터 퓨전 스타일이 본격적으로 소개 되기
시작하였고 이후 음식,문화,영화,디자인,패션 등 문화 각 분야들을 파고들어
사회, 문화의 중요한 트렌드로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마케팅에서도 인터넷 이용 인구가 급증하고
10~20대의 젊은 네티즌이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르면서
인터넷의 장점과 현실공간인 오프라인의 장점을 적절히 혼합하여
마케팅을 수행하는퓨전 마케팅이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다르게는 ‘컨버전스(융합) 마케팅’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죠.
용어는 많이 쓰였지만, 이를 실제로 잘 활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는데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2010년 많이 활용되었고,
최근에는 식품, 화장품 등 소비재 분야에서도
컨버전스(융합)’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습니다.
가령 아이스크림에 피자 제조 방식과 모양을 도입한 ‘아이스크림 피자’라든지,
아이스크림을 이용해 음료를 만든 ‘아이스크림 라떼’ 같은 것들이 먹는 재미까지
고려한 ‘컨버전스’의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로수길에도 ‘컨버전스(융합)’ 개념을 시도한 바가 있습니다.
바로 ‘모르나’라는 곳인데요.보통 ‘CLUB’과 'BAR'라는 유사한 요소를 결합한
가게들은 많이 보았지만이곳은 특이하게도 ‘ART’와 ‘BAR'라는
전혀 다른 요소를 결합한 가게입니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쌓여있는 수많은 유화들과 진한 페인트로 칠해진 빨간색 대문은
‘모르나’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불러 일으켰습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유럽 중세 시대의 가게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요.
기둥을 비롯하여 가게의 모든 벽면들에 직접 유화를 그려 넣어
마치 갤러리를 방문한 착각이 들 정도였고,
고풍스러운 소품들과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유럽의 클래식한 도시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역시 아트갤러리 바답게 메뉴판도 일반 바와는 틀려 눈길을 끌었습니다.
각종 술부터 안주 종류를 전부 직접 그림으로 그려 놓아
신기한 마음에 이것저것 살펴보게 되더군요.


같은 메뉴 그림이라도 동양화 전공자와 서양화 전공자가 다르게 그려
비치를 해 두었는데요.동양화 전공자가 그린 메뉴는 선이 가늘고 전체적인
면을 강조한 반면에,서양화 전공자가 그린 메뉴는 선이 굵고 부분적인
면을 강조하여같은 그림이라도 느낌이 많이 달랐습니다.
메뉴판마저도 ‘컨버전스’인 셈이죠.


메뉴 보다는 메뉴판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일반 물 대신 오렌지를 직접 갈은 주스가 서비스로 나왔습니다.
먹는 이의 건강을 생각한 서비스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직원 분의 그런 친절함에 반해 가게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아예 사장님이 직접 답변을 해주시기 시작했는데요.
‘모르나’는 오픈한지 한 달밖에 안 된 곳이라고 합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10여명의 예술 작가들이 일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한데요.
예술가들의 작업장이기도 하면서 전시장이자 사업장인 셈이죠.
사장님도 현직 작가셨는데요, 서양화 전공으로 메뉴판도 직접 그리신 것이었습니다.

식후에는 코냑을 주로 먹었는데, 사장님께서 위스키와 진을 추천해 주시더군요.
위스키는 Glenfiddich 12년산과 Macallan 15년산을,
드라이진은 사파이어 Bombay를 추천해주셔서 주문해 봤습니다.
위스키는 발렌타인, 윈저, 딤플 같은 블랜디드 위스키 종류를 주로 먹었는데
싱글몰트 위스키 종류는 처음이라 그 맛이 궁금하더군요.
위스키는 12세기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카톨릭 수사들이 중동의 연금술사로부터
증류주의 비법을 전수 받고 돌아와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위스키의 원형은 그 맛이 단지 톡 쏘는 향과 거친 맛을 지닌
평범한 일반 증류주 종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18세기 초 높은 주세를 피해 산속에서 몰래 술을 만들게 되면서 단속을 피해
낡은 오크통 속에 위스키를 담아 위장하기 시작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오크통에서 우러난 여러 성분들이 반응하여 부드럽게 숙성되어진 황금
호박색의 술이 만들어졌는데 이렇게 우연히 만들어진 술이 오늘날의 위스키입니다.

몰트 위스키는 맥아만을 원료로 사용해서 만든 위스키로
맥아를 건조시킬 때 피트라는 석탄을 태워 그 연기와 열풍으로 건조시켰기 때문에
피트향이 배어 있고 반드시 단식 증류장치를 사용하므로 맛이 중후하고 짙습니다.
단식 증류기의 사용으로 인해 생산성이 그리 좋지 않아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향이 풍부한 장점을 지니고 있죠. 또한 강한 남성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사장님에게 추천 받은 글랜피딕, 맥캘란 등이 이에 해당되죠.
글랜피딕은 어딘가 터프하면서도 살짝 짙은 향속에서 감칠맛이 나더군요.
뒷맛은 약간 달콤하면서도 상쾌함이 느껴졌습니다.
남성 향수이니 아쿠아 디 지오를 연상케 했는데요.
발매 후 1주일 만에 완매가 되어 유명한 아쿠아 디 지오는
지중해의 상쾌한 향기를 담아 한가로움이 배어 나오는 향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달콤함 때문에 메트로섹슈얼할 것 같지만 상쾌함이 묘하게 더해지면서
남성적인 느낌이 강한 향수죠.

맥캘란은 글랜피딕보다 색은 더 연한 골드 빛이지만 맛은 조금 더 독합니다.
말린 과일향이 나면서 목 넘김이 굉장히 부드러운데요.
특유의 과일 향이 강해서 프래쉬 무알코올로 향수가 생각나더군요.
사랑스럽고 달콤한 꽃과 잔잔한 과일의 향을 부드럽게 느낄 수 있고,
봄의 냄새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느낌이 비슷했습니다.
전 깊은 맛이 나는 술을 마실 때면 다비도프 클래식을 피우는데요.
코끝까지 진하게 올라오는 술의 향과 다비도프 향이 어우러져
또 다른 술을 마시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지만 술 역시 후각으로 마신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위스키가 독하다고 느껴 잘 먹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제조법을 알려드리자면,
글랜피딕은 온더록 잔에 각진 얼음을 넣고 스트레이트 한 잔과
녹차 두 스푼, 민트 잎 5개를 넣어 타 드시면 훨씬 넘기기가 부드러워 집니다.
좀 더 달콤한 맛을 원한다면 온더록 잔에 스트레이트 반 잔과
허니 시럽, 사과주스, 레몬주스를 취향에 따라 넣고 잘게 간 얼음을 넣어 마시면
여성분들이 아주 좋아할 겁니다.
맥캘란은 얼음 몇 조각을 담은 키 높은 잔에
맥켈란 3분의 2와 소다수 3분의 1을 넣고 라임 또는 레몬 한 조각을 곁들이면
간편하게 싱글몰트 위스키 칵테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소다수와 레몬만 첨가해도 단순히 ‘온더록스’로 마실 때보다 강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죠.

봄베이 사파이어는 자그마한 병에 연한 바다색깔을 띠고 담겨 있는 것이
향수병에 담겨있는 향수 같은 모습이어서 먹기가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맛은 정반대이죠.
예전에 모양새만 보고 한 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가 혼쭐이 난 적이 있습니다.
마치 화장품 원액을 먹는 것처럼 무척 쓰고 강해서 입에 대자마자 인상을 쓰면서 내려놓아 했죠.
이를 본 친구가 웃으면서 드라이 진은 반드시 블랜딩을 해서 먹어야 한다고 일러주던 기억이 나더군요.
블랜딩 된 봄베이는 확연히 다른 맛인데요.
향이 상당히 독특해서 굳이 표현하자면 향긋한 꽃내음과 풀내음이 났죠.
뒷맛은 상큼한 레몬향이 느껴지더군요.

한 참 칵테일에 빠져 있을 때, 사장님께서 ‘모르나’만의 칵테일이라며 술 한 잔을
서비스로 주셨습니다.
마치 아이스커피와 같은 색깔이었고 뒷맛에서 느껴지는 술을 제외하곤
맛도 커피 비슷해서 깔루아 같은 느낌이었는데요.
레미마틴 코냑에 더치커피를 섞은 술이라는데 무척 맛있었습니다.
깔루아 보다는 커피 향과 코냑의 향이 좀 더 깊고 진했달까요.
‘모르나’에 종종 들르시는 국내 유명 소설가가 괴테의 글을 읽고 만들었는데
맛이 좋아서 가게의 칵테일로 내놓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모르나’는 기존 바와는 달리 독특하고 새로운 것들이 많았고, 사장님이 무척 친절하셔서
주변 지인들에게 소개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친근감이야 말로 발길을 끌어들이는 가장 큰 무기일 테니까요.

‘모르나’를 나와 친구와 헤어지면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일본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저서 ‘위스키 성지여행’의 글귀가 생각나더군요.
‘스코틀랜드 아일레이 섬의 레스토랑에서 생굴 한 접시와 싱글몰트를 더블로 주문해
껍질 속에 든 생굴에 싱글몰트를 끼얹어서는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갯벌 내음이 물씬 풍기는 굴 맛과 바다 안개처럼
아련한 위스키의 톡톡한 맛이 입 안에서 녹아날 듯 어우러진다.
두 가지 맛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본래의 제 맛을 지키면서도 절묘하게 화합한다.
인생도 이토록 단순한 것이며, 이다지도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다.
가로수길 레스토랑 ‘알로’ 페이퍼가든에서 유럽을 느끼다!
관련 포스팅 보기 사진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