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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나들길
 
 
 
카페 게시글
심도기행 걷기 공지 스크랩 초파일 새벽의 송광사 풍경.
야생의춤 추천 0 조회 206 17.05.06 16:19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2017년 5월 2일 (화) 촬영

석가탄신일을 맞아 송광사로 가던 길,

전남 곡성의 국도 중엔  메타쇄콰이어 나무를 가로수로 심은 곳도 있었다.

메타쇄콰이어의 멋진 모습에 가던 길을 멈추고 차에서 내려

쭉쭉 뻗은 나무의 자태를 감상하며  감탄도 했다.

정말 시원하고 근사한 풍경이였다.

위험한 찻길이 아니였다면 누워 보고 싶을만큼

(모든 사진들은 크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오후 7시가 다 되어서야 송광사 앞 민박촌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었다. 

꼬막 정식과 산채비빕밥으로....

식사후 송광사에 도착 했을땐 이미 해는 지고 주위는 어두워졌다.  다송원 옆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낙화담 물위에 탑과 석등이 떠 있다.                                                                                     

전통등으로 조성한 다층탑은 담양의 개선사지 석등을 형상화하여 더욱 정감이 간다 (월간 송광사에서)

근래엔 유등이 여러 모양으로 진화 했다. 이처럼 아름다운 유등이 이 곳에 온 연유는 지난해 진주남강  

축제에 참여했던 송광사 대중스님들과 진주시의 인연에 의해서다. 진주유등축제와 불교 연등회는 국태

민안을 기원하는 한민족 고유의 정신은 같다며 사월초파일 부처님 진주 유등 전시를 계기로 송광사와 

              유등축제가 더욱 더 발전하기를 기대하며 진주시에서 유등을 보내왔다. (월간 송광사 5월호에서)                      

일주문 입구에 늘어선 12지신 모양의 유등이다 . 자,축,인,묘 순에 의해, 서생원을 시작으로 

잔나비와

도야지까지

일주문.

일주문에는 "조계산대종선종송광사"란 현판과 '승보종찰조계총림"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일주문 양쪽 기둥에는 두 눈을 부릅 뜬 용이 지키고 있었고


일주문을 지나 절마당으로 들려면 궁궐의 금천교처럼 다리를 건너야 한다.(사진은 임경당 )

홍예교(무지개다리)로 만든 다리 위에 우화각이 있다.

우화각은 홍예교 위에 지은 누각이다.

이곳에도 송광사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우화각을 지나 천왕문을 거쳐 계단을 따라 종고루를 지나야  연등이 있는 대웅전 앞 마당에 도달한다.

대웅전 마당에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예약해 놓은 방을 찾아 갔다.

대웅전 오른편에 있는 지장전의 창살 문양이 아름다웠다.


초파일 전날이라 방이 부족했다. 이 방에서 보살님 두 분과 함께 잘 수 밖에 없었다. ㅎㅎ

새벽 3시. 목탁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예불은 4시라고 했는데.... 일찍부터 잠을 깨운다.

3시 30분경 부터 종고루에서 법고를 울리기 시작 했다.

깊은 곳에서 부터 뿜어 나오는 마음 같은 소리, 물이 흐르는 듯한 리드미칼한 소리.

때론 격정적으로  눈물이 날것 같은 소리였지만.

법고의 소리는 격정과 함께 평안도 주었다.

종고루에는 불전사물(佛殿四物)인 범종,법고,목어,운판이 있다.

법고를 치는 스님의 손놀림이 예사롭지가 않다. 달인의 경지까지 오른 듯, 막힘이 없다.

새벽 종소리는 긴 밤을 물리치며 잠을 쫓아내고 저녁 종소리는 진리를 깨닫고 어리석음을 몰아내는데

의미가 있다지만 종은 각종 불교 의식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소리로  일반적으로 아침에는 28번 저녁

   에는 33번을 친다.(인터넷에서)                                                                                                

긴 여운을 남기는 새벽 종소리를 들으며 합장한다. 어리석은 마음을 깨우쳐 주시기를 소원하며.....

  법고는 들짐승을, 목어는 물짐승을, 운판은 날짐승을, 그리고 범종은 지옥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친다. 

   하지만 결론은 모든 생명은 사물의 울림을 들으며 투쟁심과 분노심을 가라 앉히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돌아가 해탈, 즉 번뇌에서 벗어나라는데에 있다.                                                                        

운판을 치는 스님.

날이 차다. 겨울 점버를 입었음에도 추웠다. 밤새 떨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이 시작 됐다. 대웅전 창살을 건너 진리의 불빛이 새어 나왔다.

새벽 예불이 끝나고 법당의 불이 꺼졌을 때 대웅전을 들여다 봤다.

예불에 방해되지 않게 예불이 끝난 한 참 후에  법당에 들어 갔건만 그래도 기도 드리는 분이 있었다.

대웅전엔 일곱분의 부처님이 계신다. 암만 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부처님들이....

형상은 여럿일지라도 부처님은 하나다" 라는 믿음으로 바라 보며 대웅전을 나왔다.

동이 트기 시작했다. 승보전이 어둠으로 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승보전 내에 모셔진 부처


승보전은 승보사찰 송광사를 상징하는 법당으로 부처님 당시 영축산에서 설법하시던 장엄한 모습을

 재연하여 부처님과 10대제자. 16나한을 비롯한 1250명의 스님을 모신 전각이다.                          

1250명의 스님?

조계산 줄기에서도 어둠은 물러나고 있었다. 하늘과 산의 구분이 또렸하다.

대웅전도 드러나고 있고,

홍예교 위의 우화각도 잠을 깼다.

일주문도 새벽을 맞을 준비를 했을테고

샤워를 해야할 시간. 방에서 나와 보니 이젠 꽃이 다 보인다.

기둥 뒤에 있는 건물이 잠깐 눈을 붙였던 방이 있는 곳이다. 아침에 보니 2층이더라.


방 앞에 있는 냇가를 둘러 보고 해우소로 갔었다.

해우소에서 본 숙소와 공양간 (오른편  지붕만 보이는 곳)

샤워장 가는 길 옆의 계곡.

샤워실(목욕탕)에서 본 목우헌 마당의 장독대.

정말로 구수한 장 냄새가 나던 장독들이 있는 마당은 주지 스님의 거처인 목우헌의 옆 마당이다.

 장독을 사이에 두고 왼편의 건물은 길상헌이고 오른편의 건물은 목우헌이다.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 건물의 격에 따라 붙이는 호칭이다. 주지스님이 기거하는 전각엔

                        제일 아래 단계인 헌"이 붙어있다. 부처님이 계신 곳은 물론 제일 높은 殿자가 붙은 대웅전이다.                                   

공양하러 간 공양간이다.

뷔페식으로 차려 있어 접시나 식판을 기대 했었는데 발우"라고 하는 밥그릇 하나가 전부였다.

발우에 밥 조금 덜어 넣고, 떡국도 조금 떠 넣고, 여기에 김치,유부,김,등을 함께 담으니... 흑흑흑         

   이게 뭐야, 비빕밥도 아니고  국밥도 아니고.....어쨌거나 뱃속에 들어가면 어차피 섞일것이니 그냥 먹으면

되는겨, 물김치 그릇이 따로 있어 그나마 다행이였다. 후루룩 쩝쩝쩝'' 맛이 있었다고 말하긴 쫌 그랬다.

이른 새벽부터 음식을 장만 하느라 수고하신 모든분께 감사드린다. 맛이 있고 없고는 마음의 문제다.

주지스님의 거소 목우헌 전경.


   오전 7시경에 숙소에서 나와 법정스님이 계셨던 불일암에 가기로 했다. 야생의 다친 발이 좀 무리가

 아닐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 일이 욕구를 꺽진 못했다.                                                        

왼쪽 건물이 정수원이고 오른쪽 건물이 우리의 숙소였던 공루이다. 맞은편 건물이 공양간인 선열당이고.

공루의 기둥.

공루는 2층 건물이다. 사용하지 않는 2층 모습.


공루 2층에서 본 안채의 모습. ㅁ자 건물 건너편이 해청당이다. 지붕에 독특하게 만든 환기구가 있는데

지붕위에 저런 환기구는 보물로 지정된 하사당 건물에도 있다.                                                      

공루와 건너편에 있는 목우헌

샤워장에 갔다 오는 중. 앞에 보이는 발로 가려 놓은 방에 우리의 베낭이 있다.

제멋대로라서, 생긴대로라서, 더 아름다운 기둥과 교감하는 야생.

숙소를 나섰다. 우측이 지장전 좌측이 약사전이다.

        약사전은 송광사 경내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법당으로 중생들의 모든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님인 약사       

    여래를 모시고 있다. 팔작지붕의 형태로 조선 인조 9년(1631)에 중건 되었으나 병자호란때 소실된 것을 

 영조27년(1751)에 중창 했다. 사방 한 칸의 불전은 대들보가 없이 공포만으로 짜여진 천장이 독특한  

 건물이다 (보물 제302호)                                                                                                      


약사전의 약사여래불.

 약사전과 함께 있는 영산전엔 영취산에 거주하며 <법화경>을 설하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며 보물1368호로 지정된 후불탱인 영산화상의 설법하는 장면을 모사한 영산대화탱과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8단계로 나누어 그린 팔상탱이 있다. 현재의 건물은 인조 17년(1639)에 창건 되었다

  영산전은 보물 제303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산정 건물과 함께 보물로 지정된 <영산전 후불탱,팔상탱은 안 보인다>

승보전 좌측에 있는 "비사리 구시"

비사리 구시"는 절에서 국재를 모실때 대중들을 위해 밥을 저장했던 목조용기이다.

석조(돌로 만든 물통).


석조를 지나 효봉영각이 있는 무무문으로 들어 갔다.

      정자 형태의 무무문(無無門)은 문이 없는 곳은 없다.란 뜻일까? 평생 무를 화두 삼아 정진 했던 효봉스님       

      노년에는 무(無)라 무(無)라 하며 화두를 놓지 않았는데, 효봉스님의 가르침을 일깨워 주는 문이라서            

  無無門인가.                                                                                                                             

효봉스님의 사리탑.

뒤의 전각은 효봉 스님의 진영을 모신 효봉영각이다.

  효봉스님(1888~1966)은 38세의 늦은 나이에 출가하여 우리나라 불교의 대표 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 

 초대 종정까지 지낸 분으로 구산스님과 법정스님의 은사이다.                                                       

 1888년 평남 양덕군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나와 조선인으로 최초의 판사가 되어 평양

  복심법원에서 근무중 사형선고를 내린 것에 회의를 품고 부귀영화를 미련없이 버리고 홀연히 가출하여 

     엿장수로 변신, 3년간을 떠 돌다가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에서 석두화상을 은사로 삭발 출가 했다.           

효봉대선사사리탑.

효봉스님에게는 별명도 많았다. 엿장수 중, 판사 중, 절구통 수좌, 너나잘해라 스님,등인데 별명에는      

다 그만한 사연이 있다. 스님은 출가 당시 당신의 학력과 과거 행적을 완전히 숨기고 "못배운 엿장수"   

라고 자신을 소개해 모두 스님을 엿장수 중,으로 불렀다.                                                               

그후 같은 법원에 근무했던 일본인 판사가 관광차 절에 들렀다 우연히 스님과 만나는 바람에 숨겨왔던  

   판사 전력이 알려지게 됐고 이때부터 판사 중으로 불리게 됐다. 또 절구통 수좌라는 별명은  수행을 했다  

하면 엉덩이가 짓물러 방석이 엉덩이에 달라 붙을 정도로  절구통처럼 꼼짝하지 않고 철저하게 수행을  

했다하여 얻은 별명이며 "너나 잘해라 스님"은  도솔암에서 머무를 때 어느 제자가  효봉스님께 다른    

      스님의 잘못을 고자질 했는데 "그자는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여색까지 하니 중요한 일을 맡기면 안된다      

 고 하자 "그러니까 수행자가 술을 마시면 안된다는 말이지? "그렇습죠. "담배를 피워도 안된다는 말이지 

"그렇습지요" "여색을 가까이 해도 안된다는 말이지"  "그렇습지요" 그걸 잘 알고 있으면...... 예 스님..  

"너나 잘해라" 효봉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쁜 짓인줄 알면  너나 잘하면 될것이지 어쩌자고 남의      

허물만 고자질 하느냐, 너나 잘해라" 이래서 효봉 스님의 별명이 또 생겼습니다. "너나 잘해라 스님"     

(출처 : 인터넷)                                                                                                                     

효봉대종사비.

우리가 시인으로 잘 알고 있는 노산 이은상도 효봉스님의 제자였다. 효봉스님이 입적한 후 노산은

 스승에게 시 한수를 바쳤다. "효봉스님 가신 날" 이라는 시다.                                                 

                                            

 오늘 아침 한 조각 구름                                                    

 서쪽으로 날으더니                                                          

 굴리던 염주 소리 문득 끊어지고                                        

 티끌 속 팔십년 인연                                                        

 그 인연 다해 가시는구려                                                  

마지막 다만 한마디                                                        

무(無)라는 말씀 남겨놓고 가부좌하신 채로 어디로 가시는고?

천지에 바람소리만 불어오고 불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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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7.05.06 16:29

    첫댓글 업어 왔지요. 바위솔샘 시선에 담긴 정유년 4월 초파일
    불기 2561년 큰 성인 오신날을 축하하며 달려간 송광사

    24년전 어느 날 누군가 제 손에 들려준 작은 책자 하나
    ' 밖에서 찾지 말라' 누가 쓴것인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받아
    몇 장 후루륵 넘기다가 맞닥뜨린 질문하나 " 너는 누구인가? "
    두번째 질문 " 어디서 왔는가? " 세번째 질문 " 어디로 가는가? "
    순간 눈에 불이 번쩍 ㅡ 뒷통수를 한대 후려쳐 맞은듯 당혹자체였는데

    눈 앞의 불보다 더한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죠. 기가 막혔어요 그 순간
    그리고 나중에서야 책속에서 그 말을 한 분이 지금의 송광사를 개창하신 보조 지눌
    국사님이시란걸 알게 되고 그 책

  • 작성자 17.05.06 16:37

    그 쬐그만 책이 수심결중 한대목이었다는것도 나중에사 알게 되고
    그 때까지 불교는 초파일은 그저 빨간 공휴일이라는것만 알았는데,,

    그 때의 그 한대 호되게 얻어맞은 순간이 세월 흐른후 삶이란 이 찬란한 축복을
    감사와 기쁨으로 걷게 한 획이 되었고 2008년 시민연대에서 심도기행을 하게 한
    밑거름이 되었으며 나들길을 오늘까지 걷게 한 동력이 되어준 ,, 사랑이 있는 기다림은
    지치지 않는다는 진리를 가슴으로 이해하게 했던 ㅡ 그 송광사의 보조 스승님을 1월 인도를
    다녀와 뵈러 가야지하던차에 국보를 전시한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어 이래저래 나선 걸음길

    나들벗님 토순님께서 보조 국사가 늘 지니고 다니시던 불감 ㅡ 국보를

  • 작성자 17.05.06 17:02

    5월 3일까지만 전시한다해 보러 가기로 하고 바위솔샘께 이러저러타 하니 당신도
    가 보시고 싶다셔서 합세 송광사 원주스님께서 편안히 내려오라시며 대중방에서
    머물러야한다고 ㅡ 그러마고 했는데 방사가 없다며 선원접견실을 내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 새벽 2시 50분 단잠은 깨어 부시럭대는 중에 저만치 들려오는 새벽 도량석
    목탁소리 들으며 마음으로 올리는 기도 "보조 스승님! 저 왔어요. 1월 인도가서 부처님
    다비터에서 부처님 친견하고 송광사 왔어요. 내년 봄 다시 인도 가려구해요 잘왔죠? ㅎㅎ"
    강화나들길에서 심도기행이란 이름으로 늘 강화도를 담아주시던 바위솔샘과 마음깊이 존경
    하는 길벗님 토순님캉 같이 왔어요

  • 작성자 17.05.06 16:55

    두 분 길벗님도 당신의 시공너머 항상한 진리로 축복해 주세요. 초파일 송광사에서 "
    그렇게 다녀 온 송광사 모습이라 심도기행의 연장선상으로 여기 ,, 보조 지눌 스승님
    아니셨더면 심도기행을 이렇듯 10년을 이어오긴커녕 몇 해 하다 지쳐 나가떨어졌을텐데,,

    바위솔님~! 함께여서 많이 기쁜 초파일이었읍니다. 아버지처럼 아픈 발목 걱정스레
    바라보며 마음써 주셔서 많이 감사올려요. 저는 불일암 가던 길의 거북탑 잊을수가 없어요.

    맑고 향기롭게의 법정스님 불일암도 아주 각별했어요. 2부는 언제 ? 기다려야지룽 ㅎ

  • 17.05.06 17:25

    저도 4월24일에 송광사 성보박물관 전시 보러 갔었지요.
    월욜 휴무라 생각없이 갔다가, 그 박물관도 휴무라는걸 깜빡해서 놓쳤어요.
    어찌나 아쉽던지요??!!
    그 대신 불일암 무소유길 걸으며, 언제 그랬냐는듯
    밝아지는 마음에 편안하게 다녀 왔지요.

    송광사 구석구석 솜씨 좋게 담아 주시는 분이
    바위솔님이셨군요?!
    2부도 기대합니다.

  • 작성자 17.05.10 05:04

    시간차 일주일여로 같은 곳을?

    반갑 ,, 초파일이라 국사전도 문이 열리고
    바위솔샘께서 많이 좋아하셨댔어요 담주엔
    통도사로 날아 가실거라시며 ㅡ 박물관 국보
    기대가 크다요 저고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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