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기미나루를 찾아 / 이승숙
실비 같은 것이 가끔 떨어지는 날씨다. 나들이에 혹 차질이 생길까봐 거듭 하늘을 본다. 소풍가는 아이마냥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여행은 혼자여도 좋고 함께 할 벗이 있다면 더 더욱 좋지 않을까.
호포, 물금, 원동을 지나면 삼랑진 뒷기미 나루에 도착하게 된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길이다. 낙동강을 끼고 도는 굽은 길 사이로 초록 커튼이 포근하다.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호사에 눈 먼 장님도 번쩍 뜰 거 같은 착각이 인다.
“농익은 감이 제 무게 이기지 못해 철퍼덕 맨땅에 떨어져 산산히 흩어지는 곳, 초로의 적막이 물푸레나무 회초리로 자신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그곳이 물금이다”고 최서림 시인은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 물이 금이 된다 해서 물금이라는 말도 있다. 그 말이 맞는지 조그만 시골 마을이 신도시가 되었다.
어느덧 차는 최치원이 머물렀다는 임경대와, 가야진사, 용화사를 지나 원동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내포천을 비롯한 지류들이 합류하는 곳이다. 토곡산의 염수봉과 향로봉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 안고 있다. 요산 김정한의 소설 수라도의 배경이 된 화제리는 요산의 처가(妻家)이기도 하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광에 젖다보니 궂은 날씨는 5월의 싱그러운 햇살에 밀리고 있었다. 보이는 곳 지나는 곳마다 푸른 기색이 눈을 적시는 커다란 산수화다. 초록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푸르른 나뭇잎에 물방울이 일렁인다. 화가 김창렬이 숱하게 그렸던 살아있는 그 물방울이다. 어릴 적 보았던 커다란 토란잎도 그랬다. 아침 일찍 눈을 뜨거나 비 오는 날이면 작은 이슬방울을 토란잎이 앙징맞은 입술에 구슬처럼 달고 있었다.
눈 호사를 누리며 이런저런 망상에 빠진 사이 삼랑진 하양마을이다. 낙동강 아래쪽 강폭이 가장 넓다. 바다와 같다 해서 하양이라던가. 봉주사 아래 그림 같은 하얀 집이 보였다. 우리를 초대 해준 박흥일 선생 댁이다. 너무 붙어 다녀서 얄미움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부부가 거처하는 곳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마당에는 봄꽃들이 안주인의 미소를 닮아 벙긋 거린다. 뒤란 매화가지는 찢어질듯이 많은 열매를 품었다. 각종 채소들의 푸른빛에서 바지런한 주인의 향기가 묻어난다.
꽃 잔디가 곱게 깔린 마당에 시와 수필을 그렸다. 오월의 햇살과 감미로운 음악에 취해 현기증이 났다. 얼굴들이 복사꽃처럼 화사하다. 곡차 한 잔 하지 않아도 행복에 취한 모습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오고간다.
낙동강 본류에 밀양강이 합류 한다는 뒷기미 나루로 향했다. 뒷기미란 뒤쪽 개울에 있는 산이란 뜻이다. 오우진 나루터로 불리기도 했다. 좁은 길을 지나가니 나루터 횟집이 나온다. 주위 경관을 보느라 눈이 바쁘다. 예전에는 낙동강 철교아래 강가에 선창이 있었다. 그 안쪽에는 객주 집과 여관. 난전 등이 즐비하여 시장을 이루었던 곳이다. 속칭 지점거리 각거리라 부르기도 했다.
강 건너 보이는 곳이 김해 생림 이다. 삼랑진은 세 갈래의 강물이 부딪쳐서 물결이 크게 일렁인다는 뜻이다. 수운의 요충지로 소금배도 자주 쉬어 갔다는 이곳 나루터는 요산 김정한의 “뒷기미 나루터”란 소설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강물에 반사된 저녁 햇빛이 가끔 차안에까지 비쳐왔다. 강 건너 먼 산 위에서는 이런 것과는 관계없이 해님이 뉘엿뉘엿 졸고만 있었다.” 고 표현했던 그 강물에 물막이 공사가 한창이다. 500km가 넘는 긴 강줄기를 높은 크레인이 괴물처럼 막았다.
자연은 그대로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뒷산 소나무에 목 맨 박 노인은 “커다랗게 열린 채 뒤집어진 눈이 나루터 쪽을 무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소설속의 인물 박 노인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박 노인이 죽은 날도 물만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검푸르기만 했다더니 오늘의 물빛도 변함이 없다.
삼랑진과 부산에 이르는 이 길은 요산의 문학적 공간이 되었다. 모래톱 이야기, 산서동 뒷이야기, 뒷기미 나루, 수라도의 무대가 이곳에서 펼쳐졌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갈 즈음 웅어회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웅어는 바다에서 자라 산란기 때 강으로 거슬러 온다. 그 때가 지금이라 했다. 처음 맛 본 웅어는 부드럽게 감치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혀끝으로 오는 바다와 강이 온 몸을 적신다.
날이 기울자 문우들은 발길이 바쁘다. 차 시동 소리가 걸음을 더욱 재촉한다. 일몰을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자리를 뜰 수 밖에. 언제든 다시 뒷기미나루를 찾아야겠다. 가보고 싶었던 봉주사와 오우정에도 다시 걸음을 해야겠다.
한 자리에 모여 수필을 낭독하고 시를 낭독한 뒷기미나루는 요산선생의 정신과 함께 문학의 마당으로 더욱 아련하게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