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교역자와 동역교역자
교역자는 목회자의 자격을 갖추고 교회나 선교단체나 교회 부설 기관에서 전임으로 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교역자를 그 역할과 기능에 따라 여러 기준으로 나눌 수 있지만, 교역자의 처우와 관련된 문제를 기준으로 해서 나눈다면 ‘대표교역자’와 ‘동역교역자’로 나눌 수 있다. ‘대표교역자’는 말 그대로 교회나 단체나 기관의 ‘대표자’인 교역자를 의미하고, ‘동역교역자’는 ‘대표자’가 아닌 교역자, 곧 ‘대표자’를 돕는 교역자를 의미한다.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표교역자’와 ‘동역교역자’ 모두 사역과 대우에 있어서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지만, 독립성과 자율성이 제한되는 ‘동역교역자’가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역교역자’들은 주로 교회 내에서 부목사나 전도사로 재임 중인데, 이들의 지위를 보장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문제는 한국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동역교역자 활동의 양면성
교역자는 생계를 위해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을 삶의 주된 목표로 삼지 않는다.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 나라 건설의 사명감으로 일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는다. 그래서 교역자는 ‘성직자’로 불리고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교역자의 활동에 생계를 위한 경제 활동의 측면이 있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교역자에게도 적절한 휴식과 안정된 활동 여건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점들은 교역자들의 사역과 사명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동역교역자들에게는 더욱더 그렇다. 물론 신앙을 지키거나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어 비상한 상황이 전개될 때 강한 희생과 헌신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 교인들도 그렇게 해야 할 수 있는데, 교역자들은 더욱더 그렇다. 동역교역자도 이런 점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일상 상황에서도 그런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사역과 사명에도 배치되는 것이다. 사역과 사명을 감당할 여건과 토대를 허물어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역자의 활동 여건을 개선하고 보장하는 것은 호의로 선택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감으로 필수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이다.
동역교역자의 법률상 지위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동역교역자에게 어떤 활동 여건을 보장해야 하는가? 이것을 일률적으로 정하기는 어렵다. 시대와 지역과 상황에 따라 그 기준이 다르게 제시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내용과 수준을 함부로 제시해서도 안 되고 그것이 무조건 옳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다만, 현시대 우리 지역에서 널리 통용되는 문명적 규범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그런 규범을 ‘근로기준법’에 규정해 놓고 있다. ‘근로기준법’에는 일하는 사람에게 보장해야 하는 기본적인 조건들이 규정되어 있다. 하루와 주의 근무 시간의 한도(일 8시간, 주 40시간), 연장 근로를 시킬 수 있는 한도(주 12시간), 하루에 보장해야 하는 휴식 시간(4시간에 30분 이상), 급여의 지급 방법(현금), 1년에 보장해야 하는 휴가 일수(15일 이상), 해고의 요건(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 문서로), 일하다가 다친 경우의 대처 방안(요양 보장 등) 등이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 이런 기준들은 근대에 접어들면서 여러 논란을 거친 뒤 최소한의 기준으로 인류 문명사회가 합의한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는 교역자들에게 위와 같은 정도의 기준을 보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물론 활동 내용상 그대로 지킬 수 없는 부분은 수정하면 된다.
동역교역자에게 ‘근로기준법’의 내용을 보장하자고 하는 것이 동역교역자가 ‘근로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동역교역자는 ‘근로자’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점은 교회와 동역교역자의 의사, 동역교역자의 활동 방식과 내용, 동역교역자에 대한 처우 등에 따라 사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현재 법원의 대체적인 판단 추이는 나와 있지만[전임전도사는 근로자로, 교육전도사와 부목사는 근로자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대법원 2023. 9. 22. 선고 2022도17087 판결, 서울행정법원 2018. 12. 13. 선고 2018구합63280 판결 등 참조)], 그 판단은 개별적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양 당사자의 의사가 일치한다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 있지 않아도, 그런 점을 미리 정하거나 논란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단지, 동역교역자에게 어떤 활동 여건을 보장할지 정하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동역교역자의 활동 여건을 보장하고, 그에 따라 동역교역자가 자율성과 책임성을 가지고 사역할 수 있게 되면 동역교역자가 ‘근로자’인지에 대한 논란은 오히려 사라질 수 있다.
▲「한국교회 교역자 표준 동역합의서」 표지,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역자 ‘표준동역합의서’의 제안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위와 같은 입장을 배경으로 지난 2016년 ‘부교역자 사역계약서 모범안’을 제시하였다. 모범안에는 ‘부교역자’가 근로자인지 수임인인지 사전에 전제하지 않은 채 ‘부교역자’가 권위와 존엄을 잃지 않고 본분의 사역에 종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 담겨 있었다. 모범안의 주요 내용은 동역 기간, 사역 시간, 사례비, 휴일 및 휴가, 전별금, 서약 해지 등이었다. 위 내용이 충분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준수 사항을 서면으로 약정할 것을 권고한 것은 당시로서는 큰 의미가 있었다.
기윤실은 얼마 전 기존 ‘사역 계약서’의 부족한 부분을 수정하고 보충하여 ‘표준동역합의서’를 제시하였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상향된 ‘최소의 기준’을 수정안에 담았다. 이것도 충분하다고 할 수 없고, 이것에 이견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내용만이라도 잘 준수한다면, 동역교역자가 자율성과 책임성을 가지고 사역할 수 있는 기초적인 여건이 조성되리라 믿는다.
한국 교회의 미래는 현재 부목사와 전도사가 장래 어떤 목회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들이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는 가운데 안정적으로 목회할 수 있어야 목회의 수준과 질이 고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와 동역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합의서를 체결하는 것은 교회 내 민주주의와 인권을 증진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목회자들의 지위를 동등하게 체결한 문서의 형식으로 보장한다는 것은 일방적인 희생과 순종에서 상호 평등적인 협력과 동역으로 변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번에 다시 한 발 더 떼는 데 이번 발걸음을 통해 ‘합의서’가 교회 내에 정착될 수 있기를 바란다.
강문대 법무법인 서교 변호사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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