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에 소녀가 산다
가을 숲에 들면 마음이 먼저 붉어진다. 누가 불을 놓은 것도 아닌데 나뭇잎은 저마다 가장 뜨거운 색으로 타오르고, 그 아래 선 사람의 마음까지 조용히 물들여 놓는다. 나는 가끔 그 숲길에 쪼그리고 앉아 젖은 단풍잎 하나를 손끝으로 만져 본다. 비를 머금은 잎은 차갑고도 부드럽다. 그 작은 떨림 속에서 문득 오래전 나를 만난다. 세월은 어깨 위에 내려앉아 머리칼을 희게 만들고 걸음도 조금은 느리게 바꾸어 놓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어린 소녀 하나가 살고 있다.
그 소녀는 사소한 것에도 금세 눈을 반짝인다. 길섶에 떨어진 단풍잎 한 장에도 “예쁘다” 하고 감탄할 줄 알고, 바람이 스치면 마치 누군가 제 이름을 다정히 불러 준 것처럼 돌아본다. 남들은 다 지나치는 풍경 앞에서도 오래 머물며, 나뭇잎의 결을 만지고 빛의 방향을 바라보고 냄새를 맡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알아 가는 일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아직도 마음 설레는 일을 잃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안의 소녀는 바로 그런 일을 맡아 살아간다.
젊은 날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세상을 다 알 것 같았고,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고, 슬픔쯤은 가볍게 다스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나이를 먹고 보니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울 때가 있었고, 누구보다 담담한 척하면서도 혼자 있을 때면 작아지는 날이 많았다. 삶은 생각보다 복잡했고, 마음은 생각보다 여렸다. 그럴 때마다 내 안의 소녀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괜찮아, 오늘은 그냥 하늘만 봐도 돼.” “잠깐 쉬어 가도 괜찮아.” 그렇게 말해 주는 목소리는 언제나 어린 날의 나로부터 왔다.
붉게 젖은 단풍잎을 손에 들고 있노라면 나는 그 아이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초등학교 운동장 끝 은행나무 아래에서 친구와 주워 모으던 낙엽, 소풍 가던 날 도시락보다 먼저 챙기던 기대감, 새 공책 첫 장을 넘기며 느끼던 설렘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 시절 우리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았지만 하루하루가 반짝였다. 작은 일에도 마음이 들뜨고, 누군가의 칭찬 한마디에 온종일 하늘을 나는 기분이 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나는 세상을 소유해서 행복했던 것이 아니라 세상을 믿어서 행복했던 것 같다.
살다 보면 사람은 조금씩 계산적이 된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먼저 마음의 문을 닫고, 실망하지 않으려고 큰 기대를 접어 둔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천천히 걷는 법을 배우지만, 그 대신 뛰어가며 느끼던 바람의 속도도 잊는다. 그렇게 어른이 된 마음은 자주 무거워진다. 해야 할 일과 책임, 관계의 무게와 지나온 날의 후회가 켜켜이 쌓여 어느새 환하게 웃는 법조차 서툴러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안의 소녀는 그런 내게 자꾸만 말을 건다. “그렇게 심각해지지 않아도 돼.” “한 번쯤은 예쁜 것만 보면서 살아도 돼.” “오늘은 단풍잎 한 장이 주는 기쁨이면 충분해.” 그 말 앞에서 나는 자주 무장 해제된다.
그래서일까. 가을은 내게 유난히 다정한 계절이다. 봄이 시작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돌아봄의 계절이다. 화려하게 피어나는 대신 조용히 익어 가고, 떠나보내면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계절. 내 나이 또한 어느새 가을 어귀에 와 있다. 예전 같으면 서러웠을지도 모를 이 계절이 이제는 싫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다. 잘 익은 과일처럼, 오래 묵은 차처럼, 시간이 주는 향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향기 속에 아직도 소녀의 맑은 숨결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나는 이제 안다. 마음속에 소녀가 산다는 것은 철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삶을 끝까지 사랑할 힘이 남아 있다는 뜻이라는 것을. 여전히 꽃 앞에서 멈출 줄 알고, 노을 앞에서 잠시 말을 잃을 줄 알며, 좋은 사람의 따뜻한 손길에 눈시울이 붉어질 줄 안다는 뜻이다. 상처를 받아도 다시 믿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울고 나서도 웃을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내 안의 소녀가 가진 재능이다. 세월은 몸을 늙게 할 수는 있어도 마음속의 그 아이까지 데려가지는 못했다.
숲속의 빛은 한낮에서 저녁으로 기울고, 젖은 단풍잎은 더욱 깊은 빛을 낸다. 나는 무릎을 굽힌 채 한참을 앉아 그 빛을 바라본다. 손끝에 닿은 잎맥의 결이 꼭 지나온 시간의 지도 같다. 그 위에는 기쁨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으며, 견뎌 낸 날과 웃어 낸 날이 함께 새겨져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길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어린 날의 나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환하게 웃는 얼굴. 그 얼굴을 마주할 때면 나는 비로소 나 자신과 화해하게 된다.
어쩌면 사람은 평생 자기 안의 아이를 잘 데리고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 아이를 너무 일찍 잃어버리고, 누군가는 끝까지 품고 간다. 나는 후자이고 싶다. 비록 걸음은 예전 같지 않아도, 세상을 보는 눈빛만은 오래도록 맑았으면 좋겠다. 낙엽이 지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한 송이 꽃에도 고마워하며, 사람의 온기를 믿는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마음속의 소녀가 늙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와 함께 늙어 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오늘도 가을 숲은 붉고, 내 손에는 작은 단풍잎 하나가 들려 있다. 나는 그 잎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는다. 삶이 아무리 나를 어른으로 밀어 올려도,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도 금방 웃고 금방 감동하는 소녀가 산다. 때로는 울고, 때로는 토라지고, 또 금세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소 짓는 아이. 그 아이가 있어 나는 아직도 아름다운 것 앞에서 멈출 수 있고, 아직도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다행이다. 내 마음속에 소녀가 살아 있어서, 오늘의 나도 여전히 봄을 꿈꾸고 가을을 사랑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