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5-
아파트 출입구 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부리나케 달려온 남자는 철가방 문을 열고 수북한 면과 돼지 튀김과 걸쭉한 소스가 담긴 그릇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놓았다. 그릇마다 비닐 랩이 씌어 있고,움푹 꺼진 램 안쪽에는 수증기 방울이 몽글몽글 맺혀 있었다.
우리는 랩을 벅겨낸 다음 고기와 야채 덩어리가 든 검정 소스를 면 위에 골고루 얹고, 반들반들하고 끈적끈적한 반투명 오랜지빛 소스는 돼지고기 튀김 위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시원한 대리석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퍼질러 앉아 신나게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젓가락 쥔 손들이 요리 그릇 위를 쉴새없이 오갔다. 이모들과 엄마와 할머니는 한국말로 재잘거렸고, 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나는 어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해진 나머지 시시때때로 불쑥불쑥 끼어들어 무슨 이야기인지 통역해 달라며 엄마를 귀찮게 했다.
문들 궁금해진다. 지금 H마트에서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쟁반에 음식을 올려 가져오면서 가족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이 사람들이 여기서 무언가를 먹는 것은 음식을 통해 다른 사람과 교감하고 축복을 나누고 싶어서서일까? 이중에 누가 올해 또는 지난 10년 동안 고향에 못 갔을까? 누가 나처럼 죽을 때까지 영영 못 볼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한 테이블에는 혼자서 유학 온 어린 중국 학생들이 함께 앉아 있다. 그들은 고작 만둣국 한 그릇을 먹겠다고 장장 45분 동안 버스를 타고 타국의 교외까지 와서 이렇게 옹기종기 앉아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테이블에는 딸, 엄마 할머니 이렇게 한국 여자 3대가 같이 앉아서 제각기 다른 찌개를 먹고 있다.
세 여자는 자기가 사용하던 숟가락으로 다른 사람 음식을 떠먹고, 젓가락 쥔 손으로 서로 얼굴에 닿을 정도로 길게 뻗어 서로의 쟁반에 올려진 반찬을 집어먹는다. 세 사람 중 누구도 사적 공간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백인 가족도 보인다. 그들은 메뉴판을 더듬더듬 소리 내어 읽으면서 같이 키득거린다. 청년 부모님에게 자기들이 주문한 요리가 무언지 설명하는 중이다. 아마 청년을 서울에 파견된 적이 있는 군인이거나 외국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사람일 것이다. 청년의 가족 중 유일하게 여권을 발급받은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다 같이 해외여행을 가서 이런 음식을 먹어보자고 의기투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