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펜 네팔 세미나 참가기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
김 영월
1.카트만두 약 8시간의 비행 끝에 한국의 초가을 날씨 같은 카트만두 공항에 이길원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을 비롯한 일행 열 명이 도착했다. 초라한 공항의 출국장에서 현지 비자를 받느라고 지루한 시간을 보낸 후 첫 관광지로 파쉬파티나트 힌두교 사원이 있는 시내의 화장터에 이르렀다. 길가의 부겐비리아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 이곳이 열대 지방임을 느끼게 한다. 매캐한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여러 구의 시체가 강가(야그마티 강)에서 장례식을 겸해 화장이 이루어진다. 강물은 시커멓게 오염된듯한데 그러한 물로 고인의 얼굴을 씻어주는 의식을 치른 뒤에 옆에 있는 화장터로 향한다. 화장터라고 해서 무슨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강가에서 장작더미를 올려놓고 태우는 장소만 있다. 인도의 갠지스 강에서 보게 된 똑같은 풍경이 이곳에도 펼쳐져 힌두교권 문화임을 알게 한다. 이 곳 주변은 구경꾼들과 거지들과 장사치들이 어울려 북새통을 이룬다. 원숭이들도 사람들 사이에 끼워 희희낙락하며 깡충거린다. 사두라는 노인 수행자들이 사원 앞에 나란히 앉아 관광객들과 사진도 찍어 주고 시주도 받는다. 사실 그들은 카스트 제도에서 제일 상위 계급인 브라만에 해당되는 승려지만 어쩐지 실감이 안 난다. 어쨌든 그들은 조금도 어두운 구석이 없고 느긋한 표정일 뿐이다. 생과 사가 공존하는 곳에 이르니 산다는 게 오히려 덤덤해진다. 박물관에서나 보던 암모나이트 기념품을 한 개라도 더 팔기 위해 찰거머리처럼 달려드는 젊은이의 눈빛이 너무나 간절하여 뿌리치기도 힘들다. 힌두교의 여러 잡신들은 대부분 동물들이 많지만 살아있는 어린 소녀(꾸마리)를 신으로 모시는 전통이 가장 흥미로웠다. 꾸마리는 3세에서 10세까지의 어린 소녀들중 흠 없는 한 명이 선택을 받게 되면 신전에서 각별히 모셔진다. 일 년에 세 번 만 외출이 허락되며 거의 감금생활인 만큼 가엾게 여겨진다. 신도들이 신전에 와서 뵙기를 요청하면 이층 건물의 창가에 잠깐 모습을 나타냈다가 사라진다. 신비한 느낌을 주는 탓인지 신전 입구에서 꾸마리의 화려한 치장을 한 모습이 담긴 엽서를 판매하고 있다. 지상에선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신앙생활이 이렇듯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퇴근시간에 이르러 도심은 차량들과 오토바이 행렬들이 중앙선도 없는 비좁은 도로에서 인파와 뒤죽박죽으로 흘러간다. 옛 왕궁의 숲으로 웬 까마귀들이 수없이 몰려들어 무슨 일인가하여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그들도 들녘에서 먹이 사냥을 마치고 잠자리를 찾아 퇴근하는 중이란다. 가지마다 꽉 메우고 있는 그들이 마침 떠오른 보름달빛아래 묘한 이국의 분위기에 젖게 한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도심의 가로등도 거의 어둠침침하여 서울의 밤거리와 너무나 대조적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를 오르기 위해 수많은 산악인들이 찾는 설산의 고봉들을 국내선 경비행기를 타고 한 눈에 구경할 수 있는 관광 코스가 있다. 비행기 요금은 155불에 약 한 시간가량 탑승하지만 공항은 관광객들로 새벽부터 엄청난 인파가 몰린다. 가난한 네팔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자연의 선물이 아니랴. 예정시간보다 기체고장으로 한 시간 늦게 출발한 우리는 약간 불안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지만 이곳에 와서 히말라야를 본다는 설레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창가에 앉아 설산의 장관을 바라볼 수도 있지만 조정석에 한 명씩 교대로 들어가게 하여 전망대처럼 한 눈에 볼 수 있는 보너스도 주어진다. 아, 8천 미터 급 설산의 퍼레이드는 숨을 멈추게 한다. 칸찬중가, 마카루, 롯체, 에베레스트, 초유,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히말라야 산맥에서 14좌의 고봉 가운데 8좌만 네팔 쪽에 자리하고 있다. 태고의 침묵 속에 그들은 성전처럼 경건함을 안겨 주고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풍긴다. 셀퍼들이 히말라야의 고된 산행을 할 때마다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날아가고 싶다는 염원을 노래한 요들송이 들려오는 듯하다. 래섬 피-리-리 래섬 피-리-리 우대러 자우끼 단다마 번쟝 래섬 피-리-리 래섬 피-리-리. 히말라야 설산의 비경을 한 눈에 가까이 바라본 것만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나의 네팔 여행이 되리라.
시조를 주제로 한 네팔의 펜 문인들과의 세미나는 의외로 진지한 가운데 열렸다. 유자효 부이사장의 시조 강의와 이길원 이사장의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내용이 유창한 영어로 진행됐다. 시낭송회 순서도 네팔 문인들이 즉석에서 시조 창작에 대한 열기가 대단했고 우리 문인들 중 홍금자 시인의 이벤트성 연출과 뛰어난 노래 솜씨에 모두 환호했다. 우리나라 펜 회원들이 모두 앞으로 나와 손에 손을 잡고 아리랑을 합창하는 것으로 시낭송회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2. 포카라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약200km 떨어진 포카라까지 가는 길은 험난한 고갯길의 연속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아찔한 낭떠러지에 곤두박질 칠듯한 아슬아슬한 여정이 이곳이 과연 산악지대임을 실감나게 한다. 7시간이나 걸리는 산길인 탓에 중간 지점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휴게소 겸 레스토랑에 들렸다. 비탈 밭이 한 눈에 보이는 야외 장소에서 멋진 식사를 하고 있는데 저만치서 짚 낟가리에 숨어 나를 향해 애타게 손짓하는 산골 소녀가 눈에 띤다. 먹을 것을 달라는 눈치인 것 같다. 일 달러를 밭에 떨어뜨려 줬더니 잽싸게 집어서 자신의 마을로 사라져 간다. 소녀가 떠나간 밭둑엔 우리나라의 망초꽃 같은 보랏빛 자루꽃이 지천으로 피어나 바람결에 흔들린다. 이 땅의 가난한 소녀들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보는듯하고 그들이 꿈을 잃지 않고 잘 살아 가기를 기도한다. 이 나라도 건축 및 도로 건설 등이 한창인 탓에 계곡의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는 화물 트럭이 좁은 산길을 꽉 메운다. 도로변의 나무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이파리들이 하얗게 변해 앓는 소리가 난다. 새벽에 일어나 일출을 보기 위해 ‘사랑코트’라는 언덕에 올라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숨을 죽였다. 히말라야 능선에서 천지창조의 그 날처럼 ‘새 빛’이 떠오른다. 약간 흐린 하늘에서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민 붉은 햇덩이가 너무나 선명한 모습에 눈이 부신다. 히말라야에서 잠을 깬 해는 우리나라에서 바라 본 그 해가 아닐 성 싶었다. 구름을 뚫고 신비롭게 살짝 모습을 보이는 안나푸르나 봉과 물고기의 꼬리처럼 파닥거림이 느껴진다 해서 ‘피쉬테일’이란 이름을 얻은 고봉도 잠에서 후다닥 깨어난다. 어둠 속에 빛이 있으라 하신 태초의 음성대로 히말라야의 아침이 감격 속에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히말라야에서 갖고 싶었던 트레킹 코스는 엄두도 못 내고 야산 언덕빼기에 있는 하얀 탑 모양의 사원(world peace pagoda 일본인 불교 사찰)에 오르는 걸로 만족했다. 산악지대인 만큼 서민층의 주택가가 대부분 산골 동네를 이루고 있기에 산책하듯 걷는 길이 정겨움을 더 해 준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밤나무나 감나무도 눈에 띠고 바나나와 파인애플, 나팔꽃이나 박하 꽃, 그리고 가장 흔한 풀꽃인 자루 꽃들이 반긴다. 중턱쯤에서 할머니 한 분이 손자를 등에 업고 아래 마을에 일보러 갔다가 돌아오시는지 우리 일행과 만났다. 손자에게 과자도 나누어주며 할머니와 얘기하며 함께 걷다가 사는 곳이 보고 싶다고 했더니 집에 데려다 주신다. 양지바른 남향 쪽의 시골집엔 젊은 며느리와 귀여운 손녀 한 명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부엌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전기 밭솥과 가스통도 갖추어져 시골살림치고 제법 괜찮게 여겨졌다. 남편은 사우디로 일하러 나갔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다. 네팔의 젊은이들은 국내에선 임금이 형편없고 그나마 일자리도 부족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외로 돈벌이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희망자들이 많고 실제로 많은 취업자들이 있어 자연스레 국내에서 한국어 열풍이 불고 있다. 오죽하면 캄보디아 같은 나라에선 한국에 취업하기 위한 언어 능력 시험에 합격하면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기뻐할까. 아낙네들이 비탈 밭에서 벼 타작을 손으로 하거나 물소를 이끌고 밭을 갈거나 일상의 삶을 열심히 꾸려가는 듯하다. 곧 허물어질 것만 같은 언덕 꼭대기에 산골 학교가 위태롭게 눈에 띠어 혼자 들어가 봤더니 교복을 입은 중학생들이 낯선 방문객에고 친절하게 ‘나마스테’를 외치며 호기심어린 눈망울들이 초롱초롱 빛난다. 약 세 시간 만에 정상에 우뚝 솟은 원형지붕의 전망대 같은 탑 모양의 절에 오른다. 신발을 벗고 높은 계단에 오르니 둥근 벽면에 보리수나무 등 불교 경전 내용과 함께 부처님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다. 캐나다에서 온 이방인들과 함께 반갑게 인사도 하고 계단에 앉아 사진도 찍고 지구촌 한 가족처럼 허물이 없어진다. 하산할 땐 나 혼자 맨발로 끝까지 숲길을 걸어 내려오니 넓은 페와 호수에 이르게 된다.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눈이 녹아내린 호수는 잔잔하고 수량이 풍부한 게 가슴을 시원케 한다. 건너편 둑으로 건너갈 때는 작은 나룻배를 서너 명씩 올라타고 어린 뱃사공들이 노를 젓는다. 수심도 깊으련만 구명보트도 입지 않게 하고 관광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게 도대체 안전 불감증이 아닐까. 길을 보면 걷고 싶다.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는 동안 혼자서 페와 호수 주변을 산책한다. 이곳의 풍광 탓인지 외국인 관광촌이 형성되어 레스토랑이나 숙소가 호숫가를 따라 즐비하다. 둑방길엔 쇠똥이 그대로 쌓여 있거나 쓰레기더미가 방치된 채 까마귀 떼가 먹이를 찾고 개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 이런 깔끔하지 않은 네팔이 그런대로 이방인들에게 묘한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건 왜일까. 그러나 호수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표정 한 번 바꾸지 않는다.
3. 룸비니 포카라에서 불교의 4대 성지중 하나인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 가는 길은 버스로 8시간이나 달려야 하고 인도 국경지대에 있었다. 수많은 불신도들의 방문지라 그런지 차량통행이 끊이질 않아 아름다운 계곡과 가로수들은 제 빛을 찾지 못하고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신음하는 듯했다. 모처럼 장거리 여행에 시달리다가 잘 꾸며진 산뜻한 정원 길을 걷게 되니 다리가 행복해진다. 이곳에도 먼지가 풀썩대는 주차장에서 내려 성지 입구에 들어서는데 얼굴이 기형아처럼 생긴 거지가 맞이한다. 어느 소년 거지 한 명은 한국인들의 염불 소리를 귀동냥해서 읽힌 듯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몇 번이고 되뇌며 계속 일행을 따라 붙는다. 손사래를 치면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염불을 외며 귀찮게 한다. 소년이 얼마나 인내심을 갖고 수양(?)하는가를 알아보고 내가 일 달러를 주고자 하는 시점을 재고 있는데 정문 앞 일보 직전에서 그가 포기하니 오히려 안타까웠다. 2500여 년 전 카피라성의 왕자로 태어나 생로병사의 문제를 고민하며 득도의 길을 떠날 때도 이러한 가난하고 어려웠던 군상들이 길가에 넘쳐났으리라. 석가의 어머니, 마야 부인이 다른 나라의 친정집에 가는 도중에 이곳의 룸비니에서 진통을 겪고 출산한 장소가 하얀 사원 안에 칸막이 된 기념석이 놓여 있다. 그 쪽의 가까운 벽면에 세 명(마야 부인, 이모, 석가 아기)의 조각상이 순례객의 눈길을 끈다. 참새 떼들이 이런 성스런 곳에 어떻게 들어 왔는지 제집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는 듯 짹짹거린다. 사원 앞에는 마야부인이 출산 전에 목욕을 했다는 자연 연못이 물이 마르지 않는 곳이라 하며 자라들이 헤엄치고 있다. 연못 옆에 거대한 보리수나무 고목이 버티고 있는데 그 아래에 앉아 신도들에게 설법을 전하고 있는 스님이 마치 부처님 당시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룸비니 정원 뒤편에 42개 나라의 절이 세워져 있는데 그 중에 한국의 사찰이 가장 크게 돋보인다. 네팔은 70프로가 힌두교이고 20프로가 불교, 나머지 10프로 안에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있는데 룸비니 정문 바로 앞에 ‘코이노니아 church'라는 간판을 건 교회를 오랜만에 발견하니 마치 외로운 등대처럼 여겨진다.
4.치트완 먼지 나고 시끄러운 카트만두 시내를 떠나 치트완 국립공원에 이르러 비로소 시골 정취가 제대로 느껴지고 조용한 분위기에 젖어든다. 치트완(chitwan)이란 지명은 네팔어로 치트가 영어의 하트(heart)를, 완이 숲(forest)을 의미하는 것으로 심장 같은 큰 숲이 있었기에 이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 되었다. 원주민인 타루족이 거주하는 곳으로 나라야니강 기슭을 따라 밀림이 펼쳐지고 코뿔소, 벵골 호랑이, 사슴, 고라니, 공작새 같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사우라하는 이곳의 중심지역으로 기념품 가게가 양쪽으로 상가를 이루고 호텔및 리조트가 많이 들어 와 관광촌이 되었다. 마을 입구에 신작로가 길게 펼쳐져 어린 시절의 우리네 농촌을 연상케 했고 타루족이 사는 거주지도 둘러보니 민속촌 비슷한 그대로의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시골 이발소가 보이고 갈대로 엮은 집에서 닭과 오리, 염소를 기르고 농사를 지어 순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 상품은 코끼리를 타고 정글을 둘러보는 사파리 체험이었다. 거구의 수많은 코끼리들이 등위에 놓여 진 좌석에 네 명씩 관광객을 태우고 머리 부분에 탄 코부(코끼리를 다루는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걷는다. 나는 인도의 자이푸르에서 코끼리를 타고 언덕길을 올라가 본 이후로 두 번째 코끼리의 등에 올라 보게 된다. 그 때의 경험 때문에 자신이 있지만 다른 분들은 약간 두려운 기분인 듯하다. 약 한 시간 동안 밀림 속을 걸어 다니면서 야생동물들을 만나는 코스지만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걸 어찌하랴. 겨우 고라니 한 마리와 풀섶에 숨은 공작새 한 마리 정도를 본 게 고작이었다. 다른 팀들은 강가에서 악어도 보고 코뿔소도 보았노라고 흥분하는데... 우리들이 탄 코끼리는 다른 놈들과는 달리 성격이 특이하여 강물을 건널 때부터 정상코스를 피해 경사진 언덕을 가로지르는가 하면 밀림의 나뭇가지들을 거칠게 뚝뚝 부러뜨리며 걷는 게 불안하다. 그는 무리와 동떨어져 혼자 걷기를 좋아하니 길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듬직한 등 위에서 편안하게 앉아 넷이서 잡담을 나누며 가지만 중노동을 하는 늙은 코끼리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미안할 뿐이다. 힌두교 나라에서 신으로 모시는 코끼리지만 어쩌다가 이런 노역장에 끌려와 한평생을 보내야 하는지 안쓰럽지 않은가. 저녁 시간에 타루족의 전통 댄스 공연장에 갔더니 외국인 관광객들로 꽉 찰 만큼 인기가 있었다. 부족들간의 전쟁에서 남자들의 역할이 절대적인 탓인지 공연 내용은 오로지 전사의 용맹함을 자랑하는 무술 연기가 대부분이었다. 부드러운 여인들의 춤은 아예 기대 밖이고 오로지 공작새 가면 춤에서 코믹한 장면을 조금 느낄 뿐 단조로웠다. 치트완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숙소 주변의 들녘을 산책하며 한 편의 시를 건져 올린다.
타루족 마을의 밭둑에서 아침을 맞네 해는 망고나무 가지 위에 떠오르고 새털구름은 연분홍 꽃으로 피네 아직도 중천에서 머뭇거리는 달은 밤새 피곤한 기색인데 이슬에 젖은 보랏빛 자루 꽃송이 위에 죽음을 맞이한 메뚜기 한 마리 고운 꽃가마 타고 떠나며 한 편의 생애를 완성하네. -졸시 치트완의 들녘에서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