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된 것 같은데, 후추에 올라왔던 글입니다. 후추에 올렸던 분도 다른 데서 읽은 글인데, 넘 잼있어서 저장해 뒀다고 하시더군여. 저도 이 글 정말 잼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한 때 어린이 청룡회원으로 이종도를 추앙한 적이 있었습니다.
후추에 올린 분은 세 갠가로 나눠서 올렸는데, 전 걍 하나로 모아서 올립니다. 스크롤의 압박이 좀 심합니다.^^
그나저나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야구팀은 80년대 초반의 선린상고였습니다. 박노준과 김건우라는 초고교급 선수 둘이 버티고 있던...그러나 최고의 전력을 갖췄던 해에는 단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던...비운의 팀. 봉황대기였던가요? 결승전에서 홈으로 돌진하다 부상으로 실려 나가던 박노준 선수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그 해, 전력은 선린보다 아래라고 평가받았지만 전국대회를 석권한 학교가 경북고였습니다. 지금은 은퇴한 삼성의 성준이 에이스였고, 고교 최고의 유격수였던 유중일이 1번 타자였지요...성준...그 때 정말 미웠는데...
거꾸로 보는 프로야구사
케이블 TV와 위성TV 덕분에 일본야구를 보게되는 기회가 많아졌다.
일본의 국민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종범에게 원형탈모증을 안겨준... 주니치 드래곤즈는 우리에게 참으로 익숙한 구단이다.
그중에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는 아는 바 전혀 없는 낯선 구단이지만, 그 이름은, 유니폼에 그려 있는 ★, 그 스타들은 나를 유년의 기억 속으로 데려가곤 한다.
★ 스타즈......
아련한 추억 속의 그 이름을 부르며, 감회에 젖을 수 있었다.
★ 슈퍼스타즈........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프로야구역사에 머물다 사라져갔지만, 그 후 30년이 걸려도 넘어설 수 없는 수많은 기록들을 남겼다.
『몇 가지 대기록들』
삼미슈퍼스타즈는 몇 가지 기록들을 경신하고 선구적인 항로를 개척해 나갔다.
그들 앞에는 새로이 쓰여질 역사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세운 신기록 퍼레이드를 잠시, 조금만 살펴보기로 하자.
82년
삼미 투수진, 국내 프로야구 최초의 싸이클링 히트를 작성.
동시에 '1게임 1팀 최다득점 기록' 물론 삼미 투수진이.
(삼미 타자들에게 싸이클링 히트를 기대하는 것은, 감나무 밑에서 사과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격이었다)
82년
대 삼성전에서 최다점수차(20:1)를 기록
한번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두 번이었다...... 라이온스가 밉다.
(그래... 최다점수차가 중요하지 승패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82년
대 MBC전에서 삼미의 투수진, 4연속타자 2루타 기록,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우린 밀어줄 땐 확실히 밀어준다. 어설픈 건 싫다.)
84년
16연패의 기록 작성
(백점맞기보다 빵점맞기가 어려운 것처럼 16연패가 16연승보다 어려운 법이다.)
84년
삼미의 불방망이, 국내 프로야구 최초의 *노히트 노런을 수립
84년
삼미 투수진 '1이닝 최다루타(18루타)'의 화끈한 기록작성
85년
OB와의 인천경기에서 최다점수차 완봉경기 기록을 수립
(완봉이면 완봉이지, 이겼는지 졌는지는 묻지말 것. T.T)
85년
작년 16연패에서 멈추었던 신기록행진을 18연패로 연장시킴
(그들은 기록이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았다.)
슈퍼스타즈........
인천의 소년야구팬들은 그들을 통해 절망의 나락을 경험했으며 비록 순간이었지만 환희에 젖었던 순간들을 그들과 함께 했다. 어린 마음에 퍼부었던 원망과 저주의 말들은 그들과 함께 역사의 저편으로 아련히 멀어져 갔다.
★ 프로야구시대의 개막
82년은 프로야구가 우리나라에 생겨난 해였다. 프로야구가 생겨나기 이전엔 고교야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이야, 펜스 위를 바바박(세걸음 걸었음) 뛰어올라 홈런볼을 건져내어....공을 주우려는 팬스 뒤의 야구팬들을 어처구니없이 만들어 버리는 메이저리그의 수비와, 빗맞은 공이, 도저히 외야플라이일 수밖에 없는, 그 이상이어서는 절대 안 되는 그 공이 어이없이 펜스를 넘어가는, 어처구니없는 피아자의 홈런, 2m에 육박하는 떡대들과 시속 160km의 불뿜는 광속구를 일상처럼 보며, 프로야구에 길들여진 우리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이없는 실책과 힘없는 스윙과 투구를 보면서(그래도 나름대로 귀엽고 재밌음) 80년대초까지도 고교야구대회가 국민적인 열광 속에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참 순진한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고의 뉴스메이커 '빨간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과 당대최고의 홈런타자 *김봉연 선수의 홈런소식 등이 지면을 장식하곤 했다.
*아직도 기억나던 기사의 제목: '김봉연 선수, 또 3연타석 홈런!'
날이면 날마다..... 시즌이면 시즌마다 있는 개막전이 아닌 한국 프로야구의 진짜 개막전은 MBC청룡과 삼성라이온즈의 대전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3만여관중의 열화와 같은 함성 속에 시구를 했으며 손을 흔들어 여유 있게 답례를 했다...... 멋지다! 전두환! 타석에 섰던 천보성 청년은 무릎을 파고드는 빠른 직구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이거 치면........ 국보법에 걸린대메.......'
*그날저녁 9시뉴스 : '오늘 전두환 대통령은 멋지게 프로야구 시구를 했으며 한편 이순자 여사는........'
프로야구의 개막전은 지금까지도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명승부였다고 생각한다. 영광의 선발투수들은 각팀의 에이스들이었다. 하기룡 VS. 황규봉(일명 방구뽕) 몸 속에 파란피가 흐른다던 이만수는 영광의 프로야구 첫홈런의 주인공이 되었다. 양준혁도 한때는 파란피가 흐른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사람 피는 다 빨갛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어지는 백인천의 홈런......유승안의 홈런으로 동점을 이룬 뒤 이종도의 끝내기 그랜드 슬램!!!!!! 와우!!! 개막전 끝내기 만루홈런의 주인공 엠비씨 청룡 이종도.
당시의 최고의 인기 팀은 역시 원년 우승팀 오비와 80년대의 팀 삼성(국가대표들이 즐비~), 그리고 막강 킴스클럽, 해태로 기억한다. 엠비씨 청룡, 롯데 자이언츠도 지역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하지만......... 하지만.... 6개구단 가운데는........일반적인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평범한 그들과는 조금 다른, 아니 상당히 다른 .........컬트 야구단이 존재했으니,
평범함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프로야구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불꽃처럼 산화해 버린 원조 *도깨비팀..... 삼미 슈퍼스타즈이다.
*도깨비팀이라는 이름은 그들 위해 존재하는 이름인 것 같았다.
★ 도깨비팀 삼미 슈퍼스타즈와 위대한 탄생
50년대 후반부터 한때는 구도(야구의 도시)였다는 인천....... 50년대래요..... 50년대...... 들어는 봤나? 구도인천.....인천을 연고로 해서 현대가 원래 프로야구에 참여하기로 했었으나, 왕회장의 딱 한마디에 이유불문 그냥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다.
'하지마'
이때 홀연히 등장한 흑기사가 있었으니, 바로 삼미였다. 프로야구가 좌초할 위기에서 몸을 던져 구원한 삼미......그렇다...... 삼미는 프로야구의 구세주였다. 모두들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삼미가 머 하는 회사야?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삼미에 대해 잠시 설명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이제는 찾기 쉽지 않지만, 집 앞 슈퍼로 가서 펭귄 복숭아 넥타를 찾는다. 편의점에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흔한 물건이 아니다. 찾았다면 사 가지고 집으로 와서 맛있게 넥타를 따서 마시도록 하자. 그리고 빈깡통을 집어 들고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그것이다.
당시 모든 황도, 백도, 복숭아 넥타 등의 깡통을 생산하던 곳이 바로 삼미였던 것이다. 드러나기보단 음지에서 희생하는 삼미의 기업문화가 바로 프로야구에도 이어졌던 것이다. 하여간에 이렇게 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갑자기 없던 팀을 6개나 만드니까, 젤로 문제는 선수 수급이었다. 서울은 오비 곰돌이하고 엠비씨 청룡이 나눠가져도 두 개의 강팀이 나올 정도로 선수자원이 넉넉했다. 70년대 국가대표 양성소 역할을 했던 대구는 실실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히히히... 히히히... 국가대표급으로 주전을 구축한 로떼도 마찬가지.
다만 부족한 선수에 그나마도 국가대표 경력을 가진 이가 전무한 한 팀이 있었다. 스타 하나 없는 그 팀의 이름은 바로 슈퍼스타즈!!! 유일한 스타였던 한국의 베이비루스, 아시아의 홈런왕 박현승 감독만이 자신있는 목소리로 당당히 이야기했다.
'정신자세가 중요한 게 아닙니까. 지켜봐 주십시오.'
맹장 아래 약졸 없다는 심정으로 인천야구팬들은 그래도 행복했다. 그러나....... 시즌을 치르고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후에 알게 되었다. '맹장은 맹장이고..... 약졸은 약졸이지........' 박감독은 또한 불명예스러운 퇴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바둑도 아니고..... 정신만 갖고는 안 되나바......'
어린시절 너무나 짜증났고 챙피했던 그들을, 기억 속에서 그토록 지워 버리고 싶었던 그들을 쉽게 잊을 수만은 없는 건, 군산상고, 신일고, 경북고, 천안북일고 등 쟁쟁한 지방명문고의 잔치였던 최고의 인기 스포쓰, 고교야구에선 언제나 타인, 방관자, 구경꾼이었던 인천의 소년 야구팬들에게, 이제 막 출범한 프로야구에서 당당히 우리팀을 가졌다는 가슴 두근거리던 기억을 선물해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동네 아이들하고 거금 5,000원을 들고, 어린이 회원에 가입하기 위해 줄을 서며 설레였던 순간과, 어린이 회원들에게 나누어주었던 가방 속에서 방수돗자리, 썬캡, 회원카드, *야구잠바, 야구모자 등을 꺼내며 행복해 하던 기억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성적에 침튀기며 *독설을 퍼부으면서도 그들을 미워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 난 그렇게 씨니컬보이가 되었다.
* 참고
슈퍼스타즈 야구잠바 - 몸통부분은 곤색, 소매부분은 하얀색으로 80년대의 컬트 야구단 삼미에게 어울리지 않게 평범하다. 하지만 그들은 평범함을 온몸으로 거부했다. 하얀색 소매엔, 곤색의 이따시만한 별이 바바박 박혀 있었다. 즉 삼미 어린이회원들은 원더우먼의 팬티를 연상시키는 야구잠바를 입고 다녀야했던 것이다. 인천지역에선 삼미에 대한 애정으로 요 야구잠바를 입고, 학교에 등교하는 대담한 소년들이 한 반에 몇 명씩 관측되었다.
제2편 - 화려한 프로야구의 뒷골목, 암울한 인천
박철순의 역투로 우승의 감격을 맛본 곰돌이 소년팬들이 알록달록 예쁜 야구모자, 앙증맞은 빨간 야구잠바를 입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던 82년......
방망이를 거꾸로 잡고도 3할은 쳐낼 듯이 투수들을 우롱하던 백인천에 열광하며 ''게브랄티!!''를 외치던 청룡 소년 팬들이 야구라는 스포츠의 묘미를 한껏 느끼던 그때...
('청룡'...유일하게 영어를 사용하지 않은 야구팀이었다. 어릴 땐 라이언즈, 타이거즈 이름이 더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청룡''이 너무 이쁜 이름인 것 같다.)
원년 최초의 바부 ''이선희''를 탄생시켰지만, 역시 80년대의 팀으로 손색이 없는 ''라이언즈'' 소년팬들이 ''우리에겐 우승뿐!!''을 외치던 바로 그때...
(*참고* 이선희-아마 최고의 좌완 투수에서 원년 최초의 바부로 전락한 비운의 명투수. 프로야구사상 최고의 드라마틱 ''홈런'' 이었던 김유동의 그랜드슬램을 헌납한 비운의 주인공. 김유동은 그후 갈비집인가 물텀벙이집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이선희는 어떻게 되었는지...)
이길 때보다 질 때가 많다고 부산의 자갈치 소년 야구팬들이 배부른 투정을 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아따 거시기 머시냐 무등산 소년들이 김봉연-김성한-김준환의 홈런쇼에 열광하던 바로 같은 시각에 운명의 장난으로 6번에 1번을 간신히 이기던 컬트야구단, (후기리그에는 8번에 1번 이겼다....... 5승35패 -_-;)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 회원이 되었던 인천 소년들은 원더우먼 빤쓰를 연상시키는 야구 점퍼를 장롱 속에 처박아 버린 채 억센 팔자를 탓하며, 염세적인 소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82년, 삼미는 그후 17년이 걸려도 넘어서지 못한 아니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를 1할대 승률을 올리며 인천소년팬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 삼미슈퍼스타즈 >
원년멤버
투 수 : 인호봉, 김재현, 감사용, 오문현
포 수 : 최영환, (금광옥)
1 루수 : 조흥운, 김구길
2 루수 : 장정기, 이철성
3 루수 : 김무관, (장정기)
유격수 : 허운, 송경섭
좌익수 : 김호인, 박준영
중견수 : 양승관
우익수 : 김경남
지 명 : 금광옥
(선수 이름들도 하나같이 특이하다.)
전두환 대통령의 존나 멋진 강속구(?) 시구와 이종도의 드라마틱한 개막전 역전 만루홈런에 힘입어 대한민국 소년들은 프로야구에 완존히 매료되어버리고 만다. 이로 인해 82년도에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대두되었다.
1. 어린이 취침시간의 급격한 변화
착한 어린이들은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들어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열기 속에 프로야구 야간경기가 실시됨에 따라 정확한 오리엔트 시계가 9시를 가리킴에도 아랑곳없이 초등학생들이 귀가는커녕, 야구장에서 그날의 스트레스를 그날에 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어린이들의 정상적인 바이오리듬이 깨지고 학교생활 부적응이 심각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2. 어린이들의 사행심리 조장
야구경기 있는 날이면 국민학생들은 승부결과에 대해 돈내기가 성행하여 심각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그래봐야 틀려도 안 갚으면 고만이지만...
3. 전국적 왕따현상
전국적으로 슈퍼스타즈 어린이회원들은 여타 어린이 회원들에게 개무시를 당하여 성장과정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소년시절부터 동요보다는 조용필의 한오백년과 같은 성인가요를 즐겨 부르는 등 심각한 조로현상을 보여주었다. "아무렴~~그뤄취~~ 그러쿠우말구"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내려 주던 김유동의 한국시리즈 만루홈런, 물론 대구소년들의 염장을 질러버렸겠지. 이들과 함께 82년의 불후의 걸작 홈런으로 기억되는 이종도의 개막전 만루홈런 축포와 함께 프로야구는 진정 화려하게 개막했다.
슈퍼스타들의 첫출발도 순조로웠다. 첫경기에서 맞붙은 초호화 진용의 삼성을 격파하고야 만 것이다. 끼야호~~ 다만 그것이 82년에 슈퍼스타들이 라이온스에게 거둔 전체 승수의 딱 절반이었다. -_-++
슈퍼스타들한테 불의의.... 이런 제기랄~ 불의의 일격을 맞은 라이언즈는 곧 정신을 차리고 OB곰돌이와 선두다툼을 벌인다.
한국 프로야구의 꼭두새벽 82년 시즌의 라이벌은 곰돌이와 사자였다. 당시는 6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리안시리즈라는 선물을 선사하기 위해 팀당 총80게임 가운데 40게임을 치르는 전기리그와 김용희를 위해 만들어 놓은 올스타전 이후에 40게임을 치르는 후기리그로 구분했다. 그리고 양리그의 우승팀이 코리안시리즈를 벌였다.
프로야구 첫 챔피언을 위한 코리안시리즈에는 전기우승팀인 곰돌이들과 후기 우승팀인 라이언즈가 진출했다. 전후기 통산승률에서는 OB가 1위였다. 삼성이 2위를 한 이유는 단 한가지....
슈퍼스타들에게 2패나 당했기 때문이었다....14승 2패 -_-; 이에 반해 OB는 대슈퍼스타즈전 16전 전승을 기록했다..... 이놈에 곰탱이들.
롯데의 간판타자 김용철이 쌕쌕 오렌지 주스 광고모델로 나올 때 명성으로 보나 뭘로 보나 자신이 해태봉봉의 모델이 될 걸로 언감생심 기대했던 김봉연의 홈런쇼에도 불구하고 해태는 얇은 선수층, 특히 투수진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우승권과는 멀어진다.
다만 강호 롯데는 정신을 못 차리고 알 수 없는 부진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시즌 전엔 삼....성하고 친하게 지낼 줄 알았는데 시즌내내 삼....미하고 친하게 지낼 줄은 아무도 생각을 못했다. 다만 김용희와 김용철. 용용 부라더스의 방망이 쇼만이 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오비 곰탱이를 이끌고 당시 최고의 마운드를 자랑하던 삼성 마운드와 홀로 맞짱 뜨던 박철순이 전기리그에만 경악의 18승을 기록하는 동안 슈퍼스타들은 팀전체 10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프로야구의 밑거름...... 거름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 시켜준 후기리그였다. 아무도 부인하진 못하리라!! 그들로 인해 프로야구는 화려하게 꽃피었다는 사실을.... 삼미는 후기리그에서 방어율 6.61을 기록하며, 그들의 경기를 찾은 야구팬들에게 방망이 쇼를 선사했다. 물론 방망이는 그들 것이 아니었지만
각팀의 스타들이 홈런, 타점, 타격, 다승 부문의 상위를 차지했지만 평범한 스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우리의 슈퍼스타들은 그까짓 개인기록은 우습게 알았는지 관심도 없었다. 다만 도루부문에서 80년대 최고의 발발이 김일권을 제치고 삼미의 조흥운이 도루1위를 기록했다. .......그럼 머하나..... 잔루인걸...
인천야구팬들은 좁은 지역주의를 넘어서...야구 자체를 즐기며 아무나 이기는 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_-; 어쨌거나 본인도 삼미를 제외한 다른 팀중에선 OB곰돌이가 라이언즈나 청룡보다 좋았다. 사실 삼미는 좋아했다기보다는 애증이 점철된 그냥 정 때문에 같이 사는 부부 같은 거였지만....
학다리 신경식의 포구하는 멋진 폼이나 유지훤(유지현이 아님)의 화려한 수비, 김광수의 귀여운??수비-_-; 김우열의 홈런쇼. 원년 최고의 해결사 양세종,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박철순. 그리고 체형과는 어울리지 않던 교타자 윤동균. 그는 베어즈 선수란 당연히 곰돌이처럼 보여한다는 전통을 심었으며 이후 심정수-김동주로 이어지는 곰돌이 강타자 체형의 본이 되었다. 심지어는 용병도 곰으로 뽑았다. 우즈~
가을의 화려한 축제에 초대된 곰돌이와 사자의 소년팬들. 초대되진 않았지만, 따라온 슈퍼스타즈 팬들의 환호 속에 코리안 시리즈는 개막되었으며 시리즈 내내 버버버벅거리던 김유동의 밤하늘을 가르던 만루홈런이 모든 소년들의 가슴 속에 아로새겨지며 그렇게 82년 시즌이 끝났다.
슈퍼스타즈 소년들도 즐거웠다. 코리안 시리즈 내내... 비록 구경꾼이었지만 말이다.
전기리그 40게임중에 24게임 출장 18승을 올렸던 박철순은 후기리그의 혹사와 코리안시리즈의 무리한 등판으로 인해 우승의 영광은 누렸지만, 이와 함께 오랜 시간 악몽처럼 그를 괴롭히고 야구팬들을 애타게 했던 부상 또한 얻게 된다.
임당수에 다이빙한 심청이처럼 우리들이 야구라는 멋진 세상에 눈뜨도록 혼신의 역투를 했던 소년시절의 영웅 박철순을 잊을 수 없다. 초창기 한국 프로야구사를 바꾸었을지도 모를 명투수는 그렇게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와 자신과의 싸움을 십수년간 해야 했다. 어린마음에 김영덕 감독을 디게 좋아했던 내 자신이 미워진다.
그땐 너무 어렸으니까......
작년 보스톤 감독이 김영덕이었다면 보스톤은 젤로 미운 양키즈를 누르고 월드시리즈에 올랐겠지...... 다만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선수생명과 맞바꾸고서... 말이야. 하지만 불사조는 이겨냈다....... 그리고 멋지게.... 다시 날아올랐다.
그는 불사조니까.
제3편 미완의 혁명....... 아아 83년, 꼴찌가 프로야구 역사를 정복하......알뻔하다.
어린나이에 인생의 쓴맛을 알아야만 했던 인천소년야구팬들은 82년 이후, 인생에 대해 씨니컬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야구를 사랑하되 절대로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어른스러움을 강요받았던 소년들이었지만 모든 희망을 다 버린 것은 아니었다. 인천소년들은 소박한 행복이라는 말을 전신으로 느끼고 있었다.
''탈꼴찌''...... 더 이상은 바라지 않았다. 더 이상 바란다는 것은 프로야구에 대한 모독이었다.
''지더라도 멋진 경기를 펼쳐라??''
이런 호강에 받친 소리는 라이온즈팬에게나 어울렸다. 우리는 도깨비팀, 컬트야구단, 슈퍼스타즈의 팬이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꿈을 꾸어야만 했다.
''상대방 귀를 물어뜯더라도 이겨만 다오.'' ''기왕 깨지는거........ 귀라도 물어뜯어죠.''
하지만 승부에는 독야청청 초연했던 슈퍼스타즈의 플레이는 팬들의 발걸음을 가정으로, 직장으로, 학교로 돌리게 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82년이 지나갔다....... 아픔만 있었던 건 아니다. 패배자, 꼴찌의 아픔을 상쇄할만한 것들은 물론 있었다. 세상에 가장 두꺼운 책이었던 표준전과(물론 두번째는 동아전과다)보다 두꺼운 만!화!책! 보물섬이 탄생한 것이다. 문방구에서부터 보물섬을 품에 안고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걸음으로 집으로 뛰어갔다.......이히히... 이히히... 뜨근뜨근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보물섬을 보다가 보물섬을 베고 잠이 들었던 행복했던 겨울방학도 끝나고..... 개학날 탐구생활하고 일기 밀린 날짜대로 궁뎅이를 맞고...
앗! 하는 순간 새학기와 함께, 원치 않아도 어김없이 새로운 시즌, 83년 시즌이 시작되었다. 라이온즈, 자이언츠, 청룡, 타이거즈 등은 일본에서 선진야구를 체험하며 남쪽에서 따뜻한 동계훈련을 마치고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의 영웅 슈퍼스타즈는 홀로 국내에 남아 비닐하우스에서 동계훈련을 준비했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김진영 감독의 불호령에 맞추어 강훈에 돌입했다.
''달려라! 달려! 어때... 뛰니까... 안 춥지?''
''네에... 감독님..... 꼭 하와이 같아요......-_-;''
슈퍼스타들이 동계훈련비에 들어갈 외화를 아끼는 동안, 인천소년들은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준비된 꼴찌, 예정된 바닥 삼미의 처절한 성적을 담담히 기다렸다.
원년 최고의 마운드+타선의 삼성은 최고타자 장효조와 최고투수 김시진이 가세했다. 삼미팬들은 오열했다.
''걔넨 우리한테 줘야 되는 거 아냐?.... 하나라두 조라!!''
투수진때메 버벅이다가 우승기회를 숱하게 놓친 라이온즈의 투수왕국 시절 82년, 원년 15승 이상의 투수는 4명이었음.
- 베어즈 박철순(24승),
- 라이온즈 권영호(15승), 이선희(15승), 황규봉(15승)
- 삼미팀 시즌승수(15승) -_-;
장효조, 김시진뿐 아니라 82년의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영웅들이 팀에 속속 복귀하여, 83년 시즌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 덕에 삼미도 임호균과 김진우 배터리를 보강하게 되었다. 이제 삼미도 타팀과 겨룰 정도로 강해진 것인가.......
제길..... 그 정도 보강 안된 팀이 없었다. 벌써 현실을 현실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소년들이었다.
''어쨔거나 작년보다 못하겠는가.......''
그래도 걱정이 앞섰다..... 그럴지도 모를 슈퍼스타즈!였기 때문이었다. 버뜨 그러나.......
기적은 원래 세상의 버려진 곳에서 발생하는 법....... 가장 아름다운 꽃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핀다고들 하지 않던가.....
83년, MBC와의 시범경기에서 정구선-김진우-이영구가 한국최초의 3연속 타자 홈런을 기록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아픔과 슬픔을 가져야 했던 나의 몫이다. 이런 비슷한 기록을 작년에 많이 기록했지만 그건 삼미 투수진이 기록했던 것이었다.
이런 기록은 삼성팀에 의해 인천구장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인데, 믿을 수 없게도 이날의 주인공은 삼미였던 것이다. 청룡팬들은 경악했지만, 가장 경악한 것은 역시 인천팬들이었다.
''쟤들 드디어 돌았나봐..........''
그리고..........
일반적인 물리법칙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초인이 홀연히 등장했다.
그 이름.... 철완너구리. 장.명.부.
1983년........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가끔 생기곤 한다.
⊙ 철완너구리 장.명.부.
1983년 벽두에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국내 최초로 재일동포선수 수입이 삼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동계훈련비 아껴서 어디다 썼는가 했더니......
일본프로야구와의 격차는 방망이 거꾸로 잡고도 3할을 친 백인천에 의해 여실히 드러났으며,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삼미는 여기서 돌파구를 찾으려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초인'' 장명부는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컬트야구단, 슈퍼스타즈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는 장명부의 볼배합까지 파악할 수 있는 눈은 없었지만, 어쨌든 그때는 디게 성의없이 던진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당시 한국타자들 머리 위에서 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있는 타자들에게는 전력을 다하지 않는 피칭을 하다가 위기의 순간이나 강타자들에게는 성의를 쫌 보여줬다. 야구역사상 타자들이 최고로 무시당하는 순간이었다. 여느 투수들과는 상당히 구별되는 투구스타일이었다고 기억한다. 힘으로 압도하기보다는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투구패턴에 가끔씩 섞어 던지는 빈볼...
명부가 생각하는 대로 모든 타자들은 놀아나고 있었다. 일본프로야구의 15승 투수로 팀을 우승까지 이끌었던 장명부에게 갓 태어난 한국프로야구가 완존 한 수 배우는 순간이었다. 아직 빈볼의 역할이나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던 국내팬들에게 타자의 몸쪽, 머리쪽을 겨냥하는 빈볼과 넘어진 타자를 향해 비웃듯 던지던 특유의 실실쪼개는 입가의 미소...
하여간...... 그는 진정 ''마인''이었다.
장명부는 위협투구의 진수를 보여줌으로써, 한국프로야구에 써스펜스를 가미하였으며 또한 메이저리그급 몸싸움을 유도하여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에 앞서 한국적 액션스페타클을 보여주게 된다.
''괴인'' 장명부는 3주라는 짧은 기간에 8연속게임 완투승이라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기록을 달성한다. 등판간격 조정이나 선발 마무리 가릴 것 없이 마구잡이로 나서 슈퍼스타즈 경기의 60% 이상 등판을 했던 ''초인'' 장명부. 최근의 조웅천이나 이혜천에 비하면 머 특별할 것도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무엄하다.
인조인간 마징가도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36번의 완투가 있었다. 160게임도 아니고 100게임을 치르는 동안에 말이다. 야구 탄생이래 가장 야구를 우습게 본 사나이의 등장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처럼 선발, 중간, 마무리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았고 투수진 부족으로 인해, 에이스는 열댓번의 완투를 하기 마련이었으며 이닝 수를 200이닝을 넘기는 경우는 흔했다.
최동원, 김시진, 박철순 등 초창기의 명투수들은 모두 시대적 요구(?)에 의해 상당히 혹사를 당했다. 다만 장명부는 묵묵히 국어사전을 고쳐 쓰고 있었다.
혹사?? 무리한 등판??
83년 장명부는 427과 1/3이닝을 던졌다. 당대의 철완 김시진(229 1/3이닝)과 최동원(208 2/3이닝)을 합쳐야 비슷한 이닝수가 나올 따름이었다.
하이콜드 냉장고 같은 초절전 절약형 투수도 아니었던 그가 이 정도 이닝을 던졌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중노동이었다. 전날 완투 후 다음날 마무리로 나서는 그의 엽기적 투구행각에 대해
''정신력의 위대한 승리다''
''참을 수 없는 무지의 강인함이다''
''정신조차 초월한 히로뽕 기운이다'' 라는 다양한 설이 있으나,
.........아직까지 정설은 없다.
20승 투수는 몇 년 안에 다시 등장할 수 있겠지만, 장담컨데, 국내 프로야구에서 30승 투수는 육백만불의 사나이나 바야바가 야구선수로 데뷔하기 전엔 불가능할 것이다.
''바.야.바....우워어어...우워어어... <---- 바야바
''바야바가....자신없다는데여? <---- 바야바 말 해석중
그러고 보니..... 좀 있으면 박찬호도 육백만불의 사나이가 되는구나..... 쩝......
.........하여간 장명부는, 그는 진정한 ''마인''이었다.
(*참고 : 30승투수
80년대 일상적인 용어였던 20승이 넘기 힘든 벽이 되어버린 지금 30승? 그건 말이쥐 올해1년 마운드에서 불살르고, 야구인생 불꽃처럼 막내릴 각오하고 정민태 정도의 투수가 어제 완투하고 오늘은 마무리로 무대뽀 등판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물론 박진만이 30-30을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다가 영영 밥숟가락 놓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한국프로야구를 밥말아먹었던 장명부라는 초인이 가져다준 상승효과로 슈퍼스타즈의 팀전력은 수직 급상승했으며, 잠시 그들은 자신들이 도깨비야구단임을 망각하고 도깨비방망이라도 되는 듯이 기염을 토하며 맹타를 휘둘렀다.
1년을 암행어사 이도령 기다리는 춘향이 심정으로 학수고대 기다린 임호균, 김진우와 엉겁결에 얻은 정구선의 가세는 큰힘이 되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히로시마 카프에서 명부 따라온 영구의 방망이도 믿거나말거나에 나올 법한 삼미의 83년 시즌을 연출하는 데 한몫을 했다.
참고) 삼미 팀내 다승순위
장명부(30승) - 임호균(12승) - 정성만(3승 -_-;)
괴물투수 장명부의 활약으로 삼미는 전기리그 선두를 질주한다... 와우! 작년의 15승 트로이카에 당삼 15승 투수인 김시진이 쁘러스된 라이온즈는 15승 트로이카가 5승 트로이카로 변신하며, 전년우승팀 베어즈와 다시 한번 바닥에서 라이벌전을 펼친다.
부채꼴 타법을 휘두르던 타격의 달인 장효조가 바람난 백인천 선수에게서 타격왕타이틀을 접수받고, 무너진 마운드를 홀로 감당해냈던 김시진(17승)이 위안이 될 뿐.
아니구나....
시즌전 국가대표의 대거보강으로 강호로 지목되었지만 함께 바닥에서 헤매는 로떼와, 작년 커다란 아픔을 안겨주었던 곰돌이도 함께 버벅거린다는 사실이 상당한 위안을 주었다.
원년 14명의 선수로 당당히 출범했던 타이거즈는 다크호스로 지명되기는 했지만, 우승은 아무도 점치지 않았다. 삼미는 최선을 다해서 프로야구를 쫌 재밌게 해조라....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었다. 그러나 이 두 팀이 전기리그의 우승을 다투고야 말았던 것이다. 사실 해태의 선수 부족은 심각한 상태였다.
프로야구사상 깨지지 않을 마의 기록 가운데 하나인 김성한 선수의 10-10클럽....... ''10홈런-10승'' 기록이 82년에 세워졌을 정도이니....
20세기에 깨지지 않은 82년의 놀라운 기록.
1위 : 박철순의 22연승
2위 : 김성한의 10승 투수, 타점왕 동시 등극
3위 : 삼미의 1할대 승률 (21세기에도 힘들 듯 )
슈퍼스타의 어처구니없는 선두질주를 막을 자는 다크호스 타이거즈뿐이었다. 타이거즈와 박빙의 선두를 유지하던 전기리그 막판, 청룡과의 3연전에서 어처구니없는 이선웅의 주루사가 발생한다. 8회 0:1로 뒤지고 있던 2사 만루의 기회. 3루 이영구, 2루 이선웅, 1루 거북이 김진우...타이거즈에 쫒기며 똥줄 타던 김진영 감독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타석에서 들어선 최홍석이 회심의 적시타를 날리고 말았다.
3루주자 영구가 홈인, 2루주자 이선웅 거의 홈인 1루주자 거북이 김진우......3루까지 욕심..... 태그 아웃. 8회종료. 2:1 인가? 1:1 심판선언! 이선웅, 아직 거의 홈인한 상황에서 홈플레이트 앞에서 김진우 구경하다가 김진우 먼저 아웃. 법대로 하자면 당연 1:1...... 하지만 우리가 어디 법대로 한 적 있나? 열받은 김진영 감독 박차고 뛰어나와 대갈일성.
''사실 거의 다 홈인 아니냐..... 쫌 바줘라... 어?''
상황적으로 보면 안타까운 점도 있었으나..... 심판은 법대로 한다. 안 그래도 4회 때 판정불만족으로 열받은 김진영 감독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을 몸으로 보여준다.
발차기~ 이얍~!!!@#$%^&*
그라운드는 이들을 말리는 선수들로 뒤엉켰으며, 평소 맘에 안 드는 놈 몰래 한대씩 쥐어박는 통에 금새 아수라장이 되었다.
결국 1:1 상황에서 끝내기의 왕자 이종도의 안타로 게임끝. 당시는 명랑사회건설을 국시로 삼았던 전두환 대통령 각하로 인해 변웅전도 명랑운동회를 매주 일요일 진행하던 시절이었다. 일벌백계 차원에서 한놈만 팬다는 무대뽀 정신을 앞세워 젤로 만만한 삼미 감독을 구속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로써 명랑프로야구의 초석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청룡에 3연전을 내준 슈퍼스타즈는 이후 해태에 내준 선두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결국 전기리그에서 1게임차로 해태에 뒤져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결국 운은 거기서 다했던 것일까.......... 또한 후기리그에서도 전기에 그들의 발목을 잡았던 청룡에 이어 연속 2위를 기록하고 만다. 그리하여 한국시리즈는 그후 10년간 ''그들만의 리그''였던 것이다.
꿈결 같았던 83년 이후, 제정신을 차린 삼미는 이후 청보와 태평양으로 삼단 변신을 하며 ''패''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싹 갈아엎어 버린다. 그 후 89년까지 인천연고팀은 야구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성적의 마지노선을 든든히 지키는 최후의 파수꾼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게 되는데............
붙임) 프로야구도 벌써 19년째입니다. 지금 피카츄나 핑클빵처럼 예전에 어릴 때 과자 먹으면 그 속에 들어있던 이만수 사진(지금 이런 게 나오면 아마 먹다가 토할거다) 요런 야구선수 사진 모으던데 있던 인물들은 다 갈비집 같은 거 하거나 한대화처럼 모모대학 야구부 감독을 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문방구에서 뽑기 같은 거 하면, 야구선수들 스티커 사진이 나왔지요. 그걸 선수들 이름이 적혀있는 종이에 스티커를 모아서 한팀을 만들면 야구빠따를 줬습니다....야구빠따..... 디게 갖고 싶었습니다.
전 라이온스를 모았습니다. 친구들이 두 개 있다고 버리는 거 모으다보니 라이온스가 젤 많아서, 그걸로 모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뽑고 또 뽑아도.... 이놈에 허규옥이 안 나오더군요....전 아직도 허규옥이 별롭니다.
그러고보니 올림픽 스티커도 열심히 모았지요. 1회 아테네 올림픽부터 24회 서울올림픽까지 순서대로 스티커를 붙여서 갖다주면 상품을 줬었는데........ 그놈의 헬싱키.... 안 나오데여......
원조 옵빠 박노준은 TV해설자로 변신하여 버버버벅거리고 있지요. 어린이 여러분들...... 박노준 귀엽게 바주세요...... 저도 깝깝해여. 그래도 열심이잖아요? 매번 볼 때마다 늘어요....
박노준 옵빠 화이팅!!
전인미답의 1할대 승률과 16연패라는 아찔한 기록을 한 시즌에 달성해 인천팬들을 끝없는 패배감의 나락으로 빠뜨렸던 슈퍼스타즈. 성적의 마지노선을 든든히 지키는 최후의 파수꾼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5위 자이언츠 팬들의 열렬한 성원을 얻지만......
83년, 자이언츠 팬의 믿음에 여지없이 배신을 때리며, 도깨비팀 삼미는 ''철완너구리'' 장명부의 눈물겨운 활약과 함께 *금광옥 정구선의 쌍포(이 말은 아무래도 이상하다)도 덩달아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며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넘보게 된다.
* 금광옥 - 무슨 광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놀랍게도 사람이름이다.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무리 컬트 야구단이라지만 삼미에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선수만 모아놓은 것만 같았다. 지금이야 염경엽 정도면 아주 이상한 이름축에 들어가지만 금광옥, 감사용, 정구선, 정구왕, 장명부, 인호봉, 김무관... 뭐 말할 수도 없이 많은 선수들의 이름이 이상했다. (물론 압권은 김바위였다!)
불미스러운 심판폭행사건으로 전열이 흐트러지면서 전후기에 내리 2위에 그쳐 Good bye~ 한국시리즈~ 하게 되며 이로써 험난한 인천야구팬들의 고난사가 전개되기 시작하는데........
제4편. 프로야구....... 벌거벗은 승부욕의 두 얼굴
한 여름밤의 꿈처럼 83년의 씨즌은 그렇게 아쉽게도 지나가 버렸다. 삼미 사장은 무심코 장명부에게 ''30승=1억'' 보너스를 약속했다가 장명부가 진짜 달성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든가 뭐라든가.
하여간, 장명부는 프로야구 사상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을 기염을 토하며 인천야구의 구세주로 떠올랐다. 인천야구는 이렇게 새로 태어나는 것인가. 장명부라는 초인의 위력을 실감한 슈퍼스타즈의 프론트는 장명부와의 재계약 이외에는 다른 대안은 마련하지 않았을 정도로 상황파악이 하나도 되고 있었으니.
국가대표출신이 즐비한 화려한 선수진을 거느리고도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던 라이온스는 장명부 하나만으로도 80년대의 팀인 자신들보다 나은 성적을 올린 삼미에 자극받아, 재일동포 배터리, 김일륭과 송일수를 수입하게 된다.
1983년엔 아마추어 국가대표로 묶여 있다 돌아온 장효조와 김시진이 이미 입단하고, ''헐크'' 이만수의 괴력은 이미 입증되었던 바, 일본에 김일륭이 떠들석하게 날아오면서 84년, 라이온스는 전성기를 구가할 진용을 완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파악이 전혀 안 되는 슈퍼스타즈 선수들은 작년 자신들이 발휘할 수 있는 체력과 기량을 200%를 발휘해버린 이후 마라톤 레이스를 완주해버린 단거리 선수처럼 심신이 지쳐있었으며, 트레이드를 통한 선수보강은, 어느 누구도 그들의 활약상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전성기를 이미 가볍게 넘겨버린 ''썩어도 준치'' 콤비 백인천, 김유동뿐이었다.
게다가 신인보강에선 초호화 멤버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어급 신인들...........과 안면이 있는 선수들을 스카웃하여 작년에 이어 강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은 것은 마음뿐이었음을 철없는 인천 소년팬들은 상황파악은 전혀 하지 못한 채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시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주제넘은 기대''는 얼마나 커다란 실망을 가져오는지 슈퍼스타즈는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단단히 벼르고 있었으니. 시즌이 시작되자, ''초인'' 장명부는 ''범인''으로 전락하고 장명부의 추락과 함께, 잠시 ''우리 슈퍼스타즈 맞아?'' 하며, 자신들이 미사일 방망이인줄로 착각했던 슈퍼스타즈의 타자들은 지난해의 도깨비 방망이로서의 위용은 간데 없었다(원래 없던거니까).
............세상은 모두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고 있었다.
멋모르고 덩달아 뛸 때는 부담없이 잘하다가 갑자기 상황파악이 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 탓에 방망이는 허공만을 가르고, 그들은 칼춤을 추었다. 애써 잊으려 했지만 머리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은 떠나질 않았다.
''우리는 슈퍼스타즈였어.......... 라이온스가 아니라......''
''마자, 난 공갈포였었지.... 으으''
장명부와 함께, 일본에서 건너와 한껏 방망이를 뽐내며 83년을 슈퍼스타즈의 해로 수놓았던 재일동포 이영구는 84년에 최다 병살기록을 세우며 진짜 ''영구''가 돼버리고 만다. 원래 바부하고 같이 지내다보면 바부가 되게 마련이란 진리를 새삼스럽게 증명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또한 작년 미사일타선(역시 아무래도 어색하다)의 핵심멤버였던, 우락부락한 용모로, 외모로만 보면 홈런이 마구 뿜어져 나올 듯했던 금광옥은 그라운드에선 순한 양으로 변해버리고, 방망이에 물을 가득 채우고 나온 클린업트리오에 한술 더 떠서 하위타선들은 ''하위타선전멸''이라는 인천야구의 전통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제 막 오른 듯 보였던 너구리 신화는 바로 막내려 버렸다. 그렇게 장명부는 80년대 인천프로야구의 전설의 고향이 되어버렸다.
모든 팀의 영양간식으로 전락해버린 슈퍼스타즈. 특히 타이거즈는 우릴 완존 밥으로 알고 있었다. 타이거즈에게 슈퍼스타즈와의 경기는 차려놓은 밥상이나 다름없었다. 어린 마음에 타이거즈가 디게 미웠으며, 괜시리 부라보콘과 바밤바마저 꼴보기 싫었다.
군계일학 정구선의 활약만이 눈물겨운 84년의 시즌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터널처럼 인천소년팬들의 앞에 펼쳐졌다.
84년, 준비된 우승후보 라이온스는 원년우승을 박철순의 선수생명과 맞바꾸었던 김영덕 감독을 맞이하며 차근차근 우승을 위한 행보를 시작하는데, 전기리그 우승은 그들의 준비된 시나리오의 제 1막이었다.
전기리그 우승으로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삼성은 후기리그에는 느슨한 경기운영으로, 파트너를 고르기 시작하는데, 원년에 라이온스를 상처입은 사자로 전락시킨 장본인... 자다가도 한국시리즈만 생각하면 가위에 눌리게 만들어버린 곰팅이, 바로 그 베어스는 후기리그 우승을 위해 순항을 계속하고 있었다.
베어스는 절대로, 네버, 노웨이, 용납할 수 없었으며, 하기룡, 유종겸, 오영일의 삼각편대와 바람의 아들 ''이해창(회창..이 아니다)'' HIT BY PITCHED BALL의 달인 *김인식이 포진한 청룡이나
* 김인식
''데드볼'' 또는 순수우리말로 ''몸에 맞는 공''의 달인 데드볼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잘못 맞으면 밥숟가락 놓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김인식은 이런 몸쪽 공을 피하지 않는 투지를 보여주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연속경기 출장기록이다. 최근의 그의 계보를 공필성이 잇고 있다. (그는 선동렬의 직구도 피하지 않는 무모함을 보여주었다)
작년에 청룡과의 한국시리즈에서 승리한 타이거즈보다는 원년 삼미 덕에 꼴찌를 면했던 자이언츠가 맘에 꼭 들었을 것이다.
물론 슈퍼스타즈가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더욱 맘에 들었겠지만, 그건 삼성의 혼자만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모든 팀이 져주기를 각오해도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자이언츠를 선택하게 하기로 맘을 먹은 삼성은 롯데가 후기리그에서 우승하기까지 지대한 공을 세운다. 말이 좋아 지대한 공이지, 자이언츠와의 연속경기에서 라이온스 팬들에게조차 낯설은 투수들을 선발로 내세웠으며 모든 플레이에서는 허점이 드러나는 등,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
더욱 떠올리기도조차 싫은 사실은 지난해 타격왕을 제외한 타점, 홈런킹 이만수를 전무후무한 타격 3관왕으로 만들기 위해 타격왕 레이스를 펼치던 자이언츠의 홍문종에게 10연속 고의사구를 지시한 김영덕 감독의 추태였다.
홍문종이 이 10타석가운데 안타만 하나 쳤어도, 타이틀은 그의 것이 될 수 있었다. 김영덕 감독의 선수의 대한 사랑으로 애써 좋게 받아들이고 싶지만, 프로야구판을 말아먹기에 부족함 없는 선례를 기록한 것이었다.
그래저래 말 많은 시즌 끝에 로떼 자이언츠는 후기리그 우승의 감격을 맞이하게 되며 라이온스는 전기리그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성적인 5위를 기록한다. 물론 6위는 프로야구의 기초공사, 영원한 바닥판 슈퍼스타즈였다. 라이온스는 승부를 조작하면서도 그 밑으론 내려갈 수 없었다.
드디어 라이온스 제작, 각본, 감독으로 한국시리즈가 펼쳐졌으나 이건 왠걸, 주연은 김일륭으로 하려던 애초의 시나리오와는 상관없이 난데없는 최동원이 주연을 맡아버렸다. 그것까진 참겠는데 역대 한국시리즈 중 최고의 조연 역할마저 유두열이 가져가 버렸다. 자신이 차려놓은 밥상을 자이언츠에게 갖다 받친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철완'' 타이틀을 놓고 장명부와 일합을 견줄만했던 최동원은 씨리즈 4승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록을 세우며 롯데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되며, 유두열은 7차전 끝내기 쓰리런이라는 대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돼버린다. 아마야구의 기린아에서 원년바부로 전락했던 ''이선희''에 이어 재팬특급, 황금박쥐 김일륭이 ''바부''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해 씨리즈 MVP가 4승을 거둔 최동원이 아니라, 1할대의 빈타에 허덕이다 역전 쓰리런 한방을 날린 유두열이었으니, 한국인은 역시 기분파라는 생각이 든다.
파트너 고르기로 야구판을 혼탁하게 만들었던 김영덕 감독은 치명타를 맞게 되며, 한국시리즈 최고의 명승부였던 82년과 84년에 연속으로 바부 역할만을 맞아야 했던 라이온스는 그 후유증일까, 한국시리즈와는 그후 십수년 동안 친하게 지내지 못한다.
얼마전 이승엽의 고의사구, 씨리즈 파트너 고르기 김재박 감독의 모습에서 김영덕의 모습이 자꾸 겹쳐 떠오른다. 더 나은 그의 모습을, 더욱 성숙한 우리 프로야구의 모습을 바란다. 김재박, 그마저 바부가 되는 건 싫다.
우리가 그렇게 사랑했던 스타들, 환희와 절망 속에 찾았던 운동장이 메이져리그 중계만이 관심이 되는 요즈음 자꾸 그리워진다.
후기) 한국시리즈 6차전, 그 역사적 순간에 아무개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감격의 물결이 인천앞바다 ''수문식 도크''를 뛰어넘는 순간이었습니다. 소년이로 우승난성............소년이 늙기는 쉬워도, 우승한번 드럽게 어렵구나.....
17년, 한 개도 안 더하고, 조금도 보태지 않은, 기나긴 기다림의 세월, 속병이라는 게 다 생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린 마음에 슈퍼스타즈 선수들에게 퍼부었던 원망과 저주의 말들을 무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제 세상을 삐뚜루 보지 않고 아름답게만 바라보자고 혼자서 아무개는 다짐했습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던 선수들보다, 부상과 어려움, 슬럼프, 모든 것을 극복하고 정상에 우뚝선 정민태, 정명원 선수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기 위해 1루측 그물망을 타고 기어올라 그물을 흔들며 아무개는 소리쳤습니다.
''우워워워웍~~~~~''
컬트야구단 삼미의 마지막 카드로 현해탄을 날아와 슈퍼스타즈와 꼴찌다툼을 벌이던 로떼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며 로떼팬들의 염장을 질러버린 사나이가 있었다.
막가파식 등판으로 프로야구에 신선한(신선했나요...?) 충격을 던지며 불붙은 프로야구 열기에 신나통을 던져버린 사나이가 있었으니, 83년의 진정한 히어로, 30승 투수, 그 이름 장.명.부.였다. 평범한 투수들이 족히 3년은 걸쳐 던질 공을, 한 시즌에 뿌려댔던 600만엔의 사나이, 그 이름 철완너구리 장.명.부.
하지만 3년걸릴 노쇠현상을 한시즌만에 이룬탓인지 이듬해인 84년 시즌엔 평범한 투수로 전락해버리고.....이제 막오른 너구리의 전성시대는 바로 막내리며 辛라면의 독주가 펼쳐진다.(행라면이 아녜요~~)
82년과 83년 한국시리즈에서 바부역할과 구경꾼 역을 맡아야했던 라이온스는 이러다 ''물먹는 사자''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84년을 라이온스의 해로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드디어 84년 가을, 프로야구사상 가장 극적인 한국시리즈가 펼쳐진다. ''황금의 팔'' 최동원은 7경기 가운데 5경기를 등판하여 4승을 따내며 80년대의 팀, 라이온스를 생까버리며, 80년대의 바부팀으로 만들고,
한동안 프로야구계를 말아먹을 것으로 예상되던 절대강자 라이온스는 휭~한 가슴을 부여잡고 ''내년부터 밥말아먹자''고 굳게굳게 다짐을 한다.
83년에 잠시 외도를 했던 슈퍼스타즈는 이듬해부터 제정신을 차리고 이후 5년간 기복없이 꾸준한 성적을 거둔다.(꾸준히 꼴찌를........)
제5편 배신의 계절에 찾아온 행복
작년 13승을 거두며 평범한 투수로 전락했던 장명부는 세번째 시즌을 맞아, 다시 비범한 투수(시즌최다패전)로 변신을 하며, 인천야구의 희망에서, 슈퍼스타즈의 미운털로 전락하고 있었다.
30승을 달성하고도 프론트로부터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못한 너구리는 성의없는 투구로 일관하면서, 원래부터도 그랬지만 자꾸만 타자들을 향해서 공을 던지고 싶어지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슈퍼스타즈의 미운털에서 프로야구의 미운털이 되가고 있었다.
80년대의 강자, 라이온스는 이만수와 장효조를 앞세워 84년에 이어 타격타이틀을 완전히 밥말아먹고 있었다. 조금 다른 것은 타이거즈의 김성한이 타격부문에 자꾸 오리궁둥이를 들이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썩어도 준치''콤비 중 백인천은 삼미의 유니폼을 벗어던지게 된다. 슈퍼스타즈를 맡아서 탈꼴찌할 자신이 없었나보다. 세상엔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당시 슈퍼스타즈는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리우고 있었으니, 백인천씨는 상황판단을 빠르게 한 셈이었다.
최악이라는 단어는 사전에만 존재할 뿐, 더이상 나빠질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슈퍼스타들에게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원년에 세웠던 16연패라는 기록을 깰 수 있는 건, 역시 자신들뿐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증명해 보이며, 조만간 깨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연패기록을 18연패로 가볍게 늘여놓았다.
그리고 OB곰팅이들에게 16:0의 최다점수차 완봉패를 기록하며 1게임 최다피안타 기록 등, 원년에 세웠던 기록을 하나씩 갈아엎어가고 있었다.
슈퍼스타즈 이후 인천 야구팬들은 웬만한 연패나 대패에는 초연한 자세를 보여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일부 팬들은 자학적 성향마저 나타나게 되어, ''자알한다~'', ''이겨라 삼성~'', ''힘내라 해태~''라는 자조적인 구호만이 인천구장에 메아리쳤다.
슈퍼스타즈가 꼴찌를 면하는 길은 한가지뿐인 듯 했다. 그건 포항 아톰즈축구단을 프로야구에 끌어들이는 방법이었다.
충격적인 18연패를 당하면서 슈퍼스타들은 점점 아래로 추락했다. 가난한 집에 효자 난다고, 삼미의 유일한 슈퍼스타 정구선만이 3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이었다.
18연패의 위업을 달성한지 얼마되지 않아, 라면과 청바지를 주종목으로 하는 청보라는 내 평생 듣도보도 못한 기업에서 슈퍼스타즈를 인수하게 된다.
슈퍼스타즈와의 3년이 좀 넘는 기간동안 인천야구팬들에게는 ''탈꼴찌''라는 졸라 소박한 꿈만이 허락되었다. 전생에 무슨 업보가 그리 많았길래, 이 좋은 개명천지에 꼴찌로 살아야하는지.
핀토스의 창단은 인천야구에 일대변혁을 가져올 것인가? 인천야구의 비상을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지켜보려던 소년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비웃기라도 하듯 삼성은 신생팀 청보의 앞길을 축하하는 축포를 쏘아주었다.
청보전에서 허규옥, 장효조, 박승호의 1이닝 3홈런이 나왔던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인천소년팬들을 학교로 돌려보낸 사건이었다. 다혈질 소년들은 눈에 흙을 뿌리기도 하였다.
꿈만 가득하고 세상의 아름다운 것만 보아야 할 나이에,
''이번 생은 틀렸어....
다음 세상엔 라이온스팬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라며 자포자기 인생관을 형성하고 말았던 것이다.
프로야구의 바닥판 슈퍼스타즈에 이어, 핀토스는 하위팀의 등불, 상위팀들의 우황청심환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러한 슈퍼핀토스의 팬으로 남아있는 일은 소년으로선 가당하기 힘든 인내심과 자제력을 요구했다.
꼴찌라는 멍에를 지고 세상을 살기엔 소년들에겐 아직 9만리 같은 세월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주저앉아 포기할 순 없었다. 희망은 인내하는 가슴 속에서 꽃핀다고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을 참고 기다리는 것은 인내가 아니라 미련곰팅이 같은 짓이라는 걸 시니컬보이의 직관으로 서서히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인천야구팬과 원년 슈퍼스타즈의 어린이회원으로서의 의리와 더이상 슈퍼핀토스의 팬으로 남아 있다가는 염장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이성적 판단의 기로에 서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85년의 여름, 해태에 다니시던 이모부께서, 타이거즈 어린이회원에 가입을 시켜주신 것이다. HAITAI TIGERS, 하이타이 타이거즈라........불뿜는 광속구, 닥터K 이상윤과 김일권, 김성한, 김봉연, 김준환, 김종모의 다이너마이트 킴스클럽 타이거즈! 82년을 우리들 가슴에 영원히 수놓았던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히어로 선동렬마저 하이타이 타이거즈에 입단계약을 맺은 때였다.
어차피 난 슈퍼스타즈의 팬이었지, 핀토스의 팬은 아니지 않은가?
''슈퍼핀토스는 버림받아 마땅했던거야....
그래 다음 생까지 기다릴 것 없이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거야.''
숨쉬는 공기가 이렇게 신선할 수가 없었으며 어제와는 다른 태양이 뜬 것 같았다. 덩달아 공부도 잘되는 것 같았다.
....하늘은 저토록 파랗고, 세상은 참 아름다웠었던거야.
........그렇게 배신의 계절은 찾아왔으며,
인천구장에서는 라이온스와 타이거즈의 화끈한 방망이 소리만이 무심히 전해지고 있었다.
후기) 사실 개인적으로는 유두열의 3점 홈런보다 김유동 선수의 만루홈런이 더욱 잊혀지지 않습니다.한 4년전에, 93년도인가 94년도에 테레비에서 김유동씨가 인간시대 같은 프로에 나온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시리즈 원년MVP였던 김유동씨가 조그만 *갈비집을 하면서 아들과 함께 야구연습을 하던 모습은 무척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옛날에 날리던 야구선수였단다.''
라는 말을 하던 김유동 선수의 얼굴에서 평범한 한 아버지의 소박한 웃음을 보며 나도 저런 아들을 하나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전 신문에서 김유동씨가 인천에서 리틀야구팀을 창단하고 야구 꿈나무 육성에 나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유동씨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거꾸로 보는 프로야구사라고 제목도 거창하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엔 짧게 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주저리주저리 길어지네요.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성준..오래간만에 들어본다 갸가 선발로나오는날은 경기시간이 1시간 반쯤 길어졌는데 ㅋ
음 멋진 글입니다 그려!! 본인 곰돌이 열혈 팬이었는데... 고딩때 맥주캔 사다가 잠실에서 캔던지기놀이(?)도 하고 요즘엔 누가 야구선수인지도 몰겄네
졸라 길지만 졸라 잼나는군. 당시 중학생은 안받아줘서 어린이 회원 못한 게 아직도 무쟈게 속상... 근데 봐길도 선린팬? ㅎㅎ 나둔데... 당시 박노준이 울 동네 병원에 입원했어서 가서 싸인도 받아왔었다는... ㅋㅋㅋ
난 이승엽을 코앞에서 놓쳤는데 천추의 한이다..ㅡㅜ
흠~ 선린상고 박노준은 울 언니의 우상이었는데. 유중일도... 고딩때 고교야구 보러가려고 학교 담뛰어넘는 아이들도 수두룩했음(보충수업 빼먹고). 나도 고교아구는 좀 좋아했는데, 프로야구는 흥미를 거의 못가졌음. 초창기에 곰돌이 응원하다 시들해졌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