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식 시인
경기도 이천 출생
2000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공갈빵이 먹고 싶다'가 당선
시집 <공갈빵이 먹고 싶다> 2003년 문학아카데미
1980년대에 대중가요 작사가로 활동 KBS 가사대상 수상
현재 의정부세무서 근무
----------------------------------------------------------------
사진 <하늘춤꾼>님의 블로그에서
낮달 / 이영식
거울 속보다 고요한 날 양지바른 블록 담 아래 노인들이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빈 부대자루처럼 접힌 몸 번갈아 의자에 부렸다 세우며 명함판 사진을 박습니다
햇발 참말 좋아 잎새들
초록초록 혀를 내미는데 이승의 끝자리, 마지막 그 밤을 지킬 모습이라니! 얼굴은 오래된 놋쇠 빛이 되고 끊었던 담배에 손이
자꾸 가는데 주름 활짝 펴 웃으라는 빵모자 사진사의 주문에 덩굴장미만 벙긋벙긋 피어나는 날도 억수 좋은
날
影幀처럼 떠 있는 돛배 하나 늙은 복사나무 가지에 걸립니다.
사진 <쇈파님>의 블로그에서
공갈빵이 먹고 싶다
/ 이영식
빵 굽는 여자가 있다 던져 놓은 알, 반죽이 깨어날 때까지 그녀의 눈빛은 산모처럼 따뜻하다 달아진 불판 위에
몸을 데운 빵 배불뚝이로 부풀고 속은 텅- 비었다 들어보셨나요? 공갈빵 몸 안에 장전 된 것이라곤 바람뿐인 바람의
질량만큼 소소하게 보이는 빵, 반죽 같은 삶의 거리 한 모퉁이 노릇노릇 공갈빵이 익는다
속내 비워내는 게
공갈이라니! 나는 저 둥근 빵의 내부가 되고 싶다 뼈 하나 없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 몸 전체로 심호흡하는 폐활량 그
공기의 부피만큼 몸무게 덜어내는 소소한 빵 한 쪽 떼어 먹고 싶다 발효된 하루 해가 천막 위에 눕는다 아무리 속 빈
것이라도 때 놓치면 까맣게 꿈을 태우게 된다고 슬며시 돌아눕는 공갈빵,
차지게 늘어붙는 슬픔 한 덩이가 불뚝
배를 불린다.
후박나무가 있는 저녁 / 이영식
소슬바람 속 후박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낡은 고무신 그림자 끌며 창가를 기웃거린다 어쩌면 내 전생이었을지도 모를,
저 나그네에게 술 한잔 권하고 싶다 해질 녘 빈손으로 겨울마차 기다리는 마음도 따스한 술국에 몸을 데우고 싶을 것이다
그늘 아래 쉬어간 사람의 안부도 궁금할 것이다 천장 한구석 빗물 자국처럼 남아 있는 기억 속으로 나무 그림자가 걸어
들어온다 아이 얼굴보다 큰 잎으로 초록세례 베풀고 허방 짚던 내 손을 맨 먼저 잡아 주었던 후박나무, 그 넉넉한 이름의
상장만으로도 내 삶의 든든한 배후가 돼 주었지 나는 저 후박한 나무의 속을 파먹으며 크고 늙은 어매는 서걱서걱 바람든 뼈를
끌고 있다 채마밭 흙먼지에 마른 풀잎 쓸리는 저녁 후박나무는 몸을 한쪽으로 기울여 생각다가 빈 가지에 슬며시 별 하나를
내건다 세상의 창, 모든 불빛이 잔잔해진다
통돼지 바비큐를 굽다가
/이영식
아이야, 숯을 함부로 다루지 말아라 가볍다고 가벼움뿐이겠느냐 네 손에 들려
있는 그 검디검은 뼈에는 저울 위에 올려지지 않은 무게가 배어 있단다 불을 품은 간절한 기다림이 있단다 너는 바비규를 위해
불씨를 지핀다마는 목울대 타고 오르는 깊은 허기로 져녁 해의 긴 꼬리를 바라본 적이 있느냐 숯덩이도 태어날 때부터 검정은
아니었다 잘리고 터진 生木의 아픔과 숯굴헝을 기어온 시간들이 온몸에 그을려 있는 것이란다
통돼지 살진 몸뚱이가
세상을 돌린다 구수하고 기름진 냄새에 군침이 도느냐 아이야, 감탕빛 숯불을 보아라 뼈마디 툭툭 분질러주는 보시를
보아라 하얀 재가 되는 길을 지레 읽고 순순히 가루가 되는 사랑도 있다 훈제 바비큐 감칠맛이 혀끝에 녹을 때 연기 속
어딘가에 매운 가슴 있음을 아느냐 너의 첫 울음소리가 아침을 깨우던 날 청 대문 위 새끼줄에 달렸던 것은 솔가지와 숯의
신성이었단다 가벼움이 어찌 가벼움뿐이랴
사진 <디시인사이드 www.dcinside.com>
쭈꾸미 낚시 /
이영식
―자화상
낙지와
오징어 사이
쭈꾸미라는
놈이 있는데
모양으로
보나 값으로 따져보나
어느
축에도 끼지 못하고 겉도는
팔푼이,
쭈꾸미 낚시를 하는데
멍청한
놈 노는 품새 좀 봐
입질은커녕
미끼 하나 없이도
줄줄이
끌려오는 거라
입도
코도 아니고
되는대로
세상 덫에 걸려
뱃전에
몸 던지는 꼴이라니!
먹물
한 줌 풀어놓은 채
하얗게
속내 드러내는 眞相,
안주
한 입 거리로 오물락거리는
저
작은 生이
왜
이리 아릿한 것이냐
낚시바늘에
찔린 손끝이 자꾸 얼얼하다
|
첫댓글 소싯적에는 책을 참 좋아했는데 ,, 바쁘다는 핑계로 멀리합니다 ,, 카페에서나마 좋은 글과 좋은 시를 접하게 되서 넘 좋네요 ,, 그런의미에서 "서정이 흐르는 강"이란 카페도 이름부터 맘에 들어왔지여 ,,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