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내면의 영혼까지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강렬한,
첫 음절에 이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너무나 고요한,
그 다음 음절이 뒤를 잇는,
이 짧은 두 음절의
탱,고.
라쿰파르시타의, 탁탁 끊어지며
높낮이가 뚜렷한 기복있는 전주곡과 함께
고개를 좌우로 절도있게 움직이며 강렬한 눈빛으로 어둠을 응시하는
무용수들의 인상적 동작으로 기억되는 탱고가
나를 찾은 것은 15년전.
나른한 봄날, 나는 비디오 샾에 있었다.
익숙한 제목의 영화들은 이미 본 것들이었고
낯선 테이프의 겉표지에 실려 있는 설명서를 읽으며
봄날의 부드러운 햇볕과 4월의 나뭇잎들이 주는 유혹을 견딜
비디오를 고르고 있었다.
그때 죠지 코시아 감독의 [탱고전쟁]이 눈에 띈 것은
당시 [더티 댄싱]이나 [플래시 댄스]에서 본 강렬한 춤사위들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탱고
때문이 아니었다.
포틀랜드 전쟁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미학적으로 우수한 영화는 아니지만
나에게 오랫동안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포틀랜드를 점령한 영국군은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 아리랑처럼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민족적 정서가 배어 있는
탱고를 금지시킨다.
그 도시의 갱단은 미국식 락 음악을 즐기는 갱단과
탱고를 추는 갱단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탱고 갱단은 영국군 몰래
포터블 축음기에 탱고판을 올려 놓고
거리에서 탱고를 춘다.
탱고 음악이 울리면
영국 군인들은 춤추는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 출동하고
군인들이 도착할 무렵 갱단은 자취를 감춘다.
이 사건을 취재중인 프랑스 여기자와 탱고 갱단의 리더가 사랑에 빠지고
리더의 애인은 그들 사이를 질투한다.
왜 그랬을까?
비디오를 반납하고 난 뒤에도
거리에서 불법으로 춤을 추던 갱단 남녀들의 춤이
머리 속에 인화되어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8년이 흘렀고
버지니아 울프의 페미니즘 소설 대표작 [올란도]를 만든
셀리 포터 감독의 [탱고 레슨]을 대한극장에서 보았다.
4백년동안 전반기 2백년은 남자로, 그 다음은 여자로 사는
올란도를 통해 성의 차이에 따른 역할
그 본질을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의 대표작을 뛰어나게 영상화 한
셀리 포터 감독에 대한 기대로 영화를 보았지만
[탱고 레슨]이 나에게 남겨준 것은
탱고,
그 자체였다.
그 담백한 흑백 화면,
그러나 칼러의 불타는 열광보다 더 뜨거운 열기가 숨어 있는 화면에
나는 넋을 잃었다. 일주일만에 막을 내린
그 영화를 보기 위해 다시 극장을 찾았고
비디오 출시 뒤에는 다시 빌려서
반납기간을 지나 보고 또 보았다.
셀리 포터 감독 자신의 탱고 입문기를 영화화 한 이 작품에는
알다시피 누에보 탱고의 거두들인 파블로 베른, 구스타프 니베이라 등이 나온다.
밤의 강가에서 추는 춤이나
비 속의 탱고
그리고 2인1각의 3인 댄스.
그때는 탱고를 어떻게 추는 것인지 몰랐지만
그 유혹은 매우 강렬한 것이었다.
그리고 [탱고레슨]의 O.S.T를 통해 피아졸라와 만났다.
요요마의 피아졸라의 연주 시디도 들었고
그가 남긴 수많은 시디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집에 몇 장의 피아졸라가 있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지난 6월초 동경에 갔을 때도
나는 오직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탱고 시디만을 사모았다.
특히 일레트릭 탱고,
피아졸라를 일렉트릭으로 연주한 시디도 구했다.
스페인의 거목,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탱고]를
서울교육문화회관 시사회에서 보았을 때는
영화적 관점에서 보는 데 더 치중했지만
탱고를 배우면서 구입한 비디오를 통해 다시 본 그 영화는
최고의 탱고 교재였다.
물론 탱고를 추고 싶었다. 5년 전쯤,
탱고가 막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두 사람이 함께 추는 탱고를
늘 혼자서 클럽이나 락 바를 돌아다니며 춤추기 좋아하던 내가
배우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것은 커플이 함께 배워야만 하는 춤이라 생각했고
방송 취재차 만난 누군가에게
어떻게 탱고를 추느냐고 묻자,
(밀롱가에서) 춤 신청을 해서 추면 된다는 대답을 들었지만
당시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긴 짝사랑이 끝난 것은
올 1월, 방콕국제영화제에 참가차 방콕에 갔을 때였다.
작년 여름 태국에 갔을 때 친분을 맺은
사두디는 한국 매니아였는데
(그녀는 여러 번 한국에 왔고 특히 사계절에 따라 변하는
한국의 자연 풍광을 너무나 신기해했다. 가수 비를 좋아하고
나보다 더 많은 드라마의 주인공과 신인 가수들을 알고 있다)
그녀가 데리고 간 곳은
방콕의 특급호텔 아테네 2층 탱고 레스토랑이었다.
7시 30분에 도착해서 10시가 지나 나올 때까지
(왜냐하면 코스 음식이 너무나 느리게 나온다.
아무리 빨리 식사해도 2시간 이상이 걸린다)
홀 중앙에서는 호텔 측에서 고용한 전문 댄서
아르헨티나 남녀 두 명이 탱고를 추었다.
15분 정도 춤을 추고 15분 휴식한 뒤 다시 춤을 추는
그들의 춤은
내 피 속에 검은 탱고의 리듬을 만들었다.
모두 5차례 이상 그들의 공연을 보았는데
휴식시간이 끝나고 다시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조금씩 옷을 갈아 입고 다른 춤사위들을 보여주었다.
[트루 라이즈] 도입부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추는 탱고도 아니었고
[여인의 향기]의 알 파치노
혹은 [박봉곤 가출사건]의 안성기가 추던 탱고도 아니었지만
그들의 탱고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무대가 별도로 있는 게 아니라
레스토랑 중앙에 사각형의 빈 공간이 있고
그곳만 2층 높이로 천정이 시원하게 뚫려 있었으며
그 주위의 식사 테이블은 천정이 낮았다.
그래서 손님들은 아늑한 공간에서 무대를 지켜볼 수 있었는데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매혹적으로 춤을 추는
그들의 춤은
몇년전 예술의 전당에서 [포에버 탱고]를 볼 때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직접,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에 가면
탱고를 출거야.
나는 그렇게 결심했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인터넷 검색으로 탱고 배우는 곳을 찾았다.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강남역 근처에서
초급반부터 중급반까지 6개월동안 탱고를 배우면서
지난 달부터는
여기저기 강습에 참여하고 있다.
배우고 나면 다음 날 까마득하게 잊어버리지만
탱고를 추면서 나는,
사유한다.
알파인 보드를 타고 하얀 슬로프를 내려올 때의 무아지경도 좋지만
순백의 깨끗한 공간에 삶의 긴장감과 변화를 설계하는 상상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탱고,
스텝을 밟을 때의 그 찰라가 너무나 좋다.
그것은 사유의 순간이다.
가시거리가 전혀 없는 안개 속의 생을
끝까지 응시하는 통찰력을
나는 탱고로부터 배운다.
선방에서 막막한 벽을 바라보며 화두를 붙잡고 있는 것보다
훨씬 역동적 창조의 순간을
그것은 준다.
첫댓글 ㅠ.ㅜ ......피가....끓는 것 같아요....
하재봉씨의~다다일기중~~^^*
탱고의 매력이 그토록 강렬한 것인가????????
그런매력...참..오랜만에 느껴본거 같아요.. 비록가진 못하지만.. ^^:;
그토록 강렬한거...맙습니다.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 싶으니까요...^^
희야!!!!!!!!!!!!!!!(감탄사).....희야..글솜씨 대단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