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틀리다"는 말은 "전혀 틀림이 없'었'던" 말. 역사적으로 제주도는 문명과 교류가 단절된 절해 고도였으니 말도 먹는 것도 최근세사까지 "신석기 시대"의 모습 그대로. 말은 6.25 당시 피란민들의 대량 유입 당시 역사상 처음 표준어가 들어온 것이고; 먹는 것은 겨우 90년대 이후에야 제법 살만 해지자 양념도 가미하며 처음으로 "맛"을 내기 시작. 제주도의 전통적 음식 개념은 "허기를 채우는 것"뿐이었고 "맛이 있고 없고"는 사치!
내가 어렸을 당시 도대체 교사 자신도 표준어를 듣고 배워본 일이 없었으므로, 또 서울보다는 왜와 더 교류가 잦았으므로(왜정당시는 징용등에 의한 강제 이민으로, 해방후는 먹고 살기 위한 밀항으로) 제주 방언은 한국 표준어보다는 왜말이 절반! (진짜 순수한 제주 방언은 현재 제주도가 아니라 오사카의 제주인 밀집촌에 남아 있다고). 피란민 여학생이 쓰는 서울말을 처음 듣고 심장이 다 녹는 듯 황홀했던 경험
현기영의 "순이 삼촌"의 한 구절 - 세숫대야 같은 양푼이에 보리 기울 범벅을 담아 놓고 숟가락으로 금을 그어 식구들의 먹을 몫을 구분했다. 이것이 제주도민들의 피눈물 나는 식생활 모습. "조미하고 간을 맞추고 맛이 있나 없나를 보고. . ." - 이런 건 사치일 수 밖에.
고종에 대한 제주도민의 감정은 최악! 경복궁을 재건하며 국고를 탕진한 후에 제주도에 봉세관을 보내 헐벗고 굶주리는 '신석기인'들의 피땀을 사정없이 짜냈으므로 (신축교난의 한 가지 원인). 제주도민들의 피땀을 마시고도 갈증이 안 풀리자 속셈이 뻔한 왜의 차관을 덥썩 받아 삼키고, 비밀 땅굴로 숨어 다니며, 나라를 왜에 팔까 아라사에 팔까 하고 저울질이나 했으니, 고종은 한국의 정사에서는 말소되어야 할 팔푼이 매국노! 아관파천 당시, 고종은 노랑 머리에 눈 파란 아라사 미녀가 '바쳐 올리는' '가배'차를 처음 맛보고 감격한 나머지 백두산 산림 채벌권을 아라사 공사에게 선뜻 하사한 일도.
첫댓글 지주(제주의 목포 발음) 사람들 말이 전혀 틀려..먹는 것도 아주 다른것 먹는 줄 알았더만...사진 보니..우리나 차이가 없구료...역시 지주 사람도 한국 사람 인가벼...ㅎㅎ
"전혀 틀리다"는 말은 "전혀 틀림이 없'었'던" 말. 역사적으로 제주도는 문명과 교류가 단절된 절해 고도였으니 말도 먹는 것도 최근세사까지 "신석기 시대"의 모습 그대로. 말은 6.25 당시 피란민들의 대량 유입 당시 역사상 처음 표준어가 들어온 것이고; 먹는 것은 겨우 90년대 이후에야 제법 살만 해지자 양념도 가미하며 처음으로 "맛"을 내기 시작. 제주도의 전통적 음식 개념은 "허기를 채우는 것"뿐이었고 "맛이 있고 없고"는 사치!
내가 어렸을 당시 도대체 교사 자신도 표준어를 듣고 배워본 일이 없었으므로, 또 서울보다는 왜와 더 교류가 잦았으므로(왜정당시는 징용등에 의한 강제 이민으로, 해방후는 먹고 살기 위한 밀항으로) 제주 방언은 한국 표준어보다는 왜말이 절반! (진짜 순수한 제주 방언은 현재 제주도가 아니라 오사카의 제주인 밀집촌에 남아 있다고). 피란민 여학생이 쓰는 서울말을 처음 듣고 심장이 다 녹는 듯 황홀했던 경험
현기영의 "순이 삼촌"의 한 구절 - 세숫대야 같은 양푼이에 보리 기울 범벅을 담아 놓고 숟가락으로 금을 그어 식구들의 먹을 몫을 구분했다. 이것이 제주도민들의 피눈물 나는 식생활 모습. "조미하고 간을 맞추고 맛이 있나 없나를 보고. . ." - 이런 건 사치일 수 밖에.
고종에 대한 제주도민의 감정은 최악! 경복궁을 재건하며 국고를 탕진한 후에 제주도에 봉세관을 보내 헐벗고 굶주리는 '신석기인'들의 피땀을 사정없이 짜냈으므로 (신축교난의 한 가지 원인). 제주도민들의 피땀을 마시고도 갈증이 안 풀리자 속셈이 뻔한 왜의 차관을 덥썩 받아 삼키고, 비밀 땅굴로 숨어 다니며, 나라를 왜에 팔까 아라사에 팔까 하고 저울질이나 했으니, 고종은 한국의 정사에서는 말소되어야 할 팔푼이 매국노! 아관파천 당시, 고종은 노랑 머리에 눈 파란 아라사 미녀가 '바쳐 올리는' '가배'차를 처음 맛보고 감격한 나머지 백두산 산림 채벌권을 아라사 공사에게 선뜻 하사한 일도.
"쥑일 ㄴㅁ"은 바로 "이런 ㄴ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