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는 김치를 그냥 짠지라고 불렀습니다.
아예 김치라는 말을 쓰지 않았었습니다.
경기북부와 강원도 사투리가 짠지였던 이유일 것입니다.
언젠가부터 짠지라고 하면 왠지 촌스러워 김치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젠 짠지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참기름을 발라 놓은 듯한 햅쌀밥에 먹음직스런 겉절이 배추김치를 생각하면 아마 다른 반찬 없어도 되리라 생각하는 사람 많을 것입니다.
요즘이 딱 그때입니다.
그러나 추수마당에 가도 기름기 흐르는 쌀밥과 겉절이 김치가 없습니다.
쌀은 콤바인으로 베어서 곧바로 건조기로 들어가고 김치는 공장에서 만들어져 수퍼마켓에서 구해 먹습니다.
프랑스의 한 인류학자가 유럽과 동양 그것도 한국의 다른 점은 채소. 즉 식물을 발효한 민족이라는 말을 한 기억이 납니다.
유럽이나 서양의 발효식품은 유제품인 치즈와 포도주 정도입니다. 채소류는 소금에 절인 양배추 정도일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엔 치즈와 포도주의 종류가 우리의 김치 종류만큼이나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유제품보다는 채소류 발효식품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 인류학자는 채소류 발효식품이 한국 음식의 세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일찍이 의미있는 분석을 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김치였습니다.
염장식품의 역사는 곧 동양인의 食생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김치라고 하는 배추김치는 완전히 한국의 식품입니다.
보통 김치라는 말은 沈菜 → 팀채 → 딤채 → 짐채 → 김채 → 김치와 같이 변화되었을 것이고 김장이라는 말은 沈藏에서 유래되지 않았을까 언어학자들은 말합니다.
오늘날의 배추김치는 배추와 고추재배가 시작된 조선 중기 이후라고 합니다.
배추, 무, 갓, 파, 마늘, 생강, 고추, 청각, 당근, 새우젓, 굴, 소금, 깨, 조미료 등등
김장김치를 담글 때 준비해야 할 재료를 적어 보았습니다.
정갈한 재료를 깨끗이 준비하여 정성스럽게 담그던 김장김치는 이제 그 소비량에서 절대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생활이라는 新문화로 인해 김치류는 이제 시장 의존이 절대적으로 되었습니다.
김치공업화의 시초는 1967년 베트남 참전 국군을 위한 김치 통조림이 제조되면서부터였고 지금은 600여개의 제조업체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산 김치는 시중 음식점의 80%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김치류는 채소를 원료로 하기 때문에 가열과정을 거치지 않고 발효를 시키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결과 위생이 생명입니다. 기생충과 각종 오염물질의 제거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번 기회에 중국산은 물론 국내산까지 총체적인 문제제기를 해야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각 가정에서 자가 소비를 위해 정갈하고 맛깔스럽게 담궈 겨우내 식구들의 양식이 되었던 김치가 대량생산을 위한 상품으로 변화되면서 김치의 수난이 시작되었습니다.
모양은 쌀밥인데 기름기가 빠져있고 겉보기에는 울긋불긋 배추김치인데 그저 배추와 무와 양념들의 버무림 이상도 이하도 아닌 밥상을 우리는 지금 일상적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절묘한 양의 소금으로 절이고 각기 분수에 맞는 양으로 어우러져 발효된 김치의 참맛은 느껴볼 기회가 점점 줄어듭니다.
발효식품은 중독성이 있고 각종 유기산은 인체의 세포에 작용하여 유전자에 깊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래서 민족성은 어찌 보면 이 발효식품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지 모르지만 서양인들은 치즈를 먹지 않으면 안되고 중국인들은 돼지 기름이나 땅콩 기름이 없으면 못산답니다.
수대에 걸쳐 일상적으로 먹어온 발효식품 김치는 우리 민족의 DNA에 깊이 각인되어 있어 서양식을 먹으면서도 김치 한조각을 넣어야 넘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치냉장고 광고 중에 ‘발효과학 딤채’라는 카피가 있습니다.
김치는 과학 이전의 靈感입니다. 왜냐하면 손맛이기 때문입니다. 김치는 수천년 염장식품 역사의 완결판입니다.
그런 김치가 우리 민족의 최고 식품이고 세계 최고의 식품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충분한 자격과 가능성이 있는 김치가 요즘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삶의 질의 또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기름기가 흐르는 쌀을 지켜야 합니다.
된장, 간장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김치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삶을 지키는 일입니다.
생명산업인 농업 생산물의 주생산품이 바로 쌀, 콩, 채소입니다. 이 생산기반이 허물어지고 제조 유통이 어지러워진 것은 곧 우리 삶이 어지러워진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법적, 제도적 장치의 정비가 시급하고 국민들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우리 밥상은 1년내내 김치와 밥뿐입니다.
아직도 김치냉장고에는 작년 김장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저도 올해는 제 손으로 직접 김장을 담글 예정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고 생명을 지키는 일일 것입니다.
수확의 풍성함을 간직하며 오색 빛깔로 깊어가는 가을..
2005년 10월 넷째주 월요일 아침에
한탄강가에서 이 철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