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가장 높은 곳, ‘경북도 문화재’ 고택들 나란히
태조산 아래 자리를 잡은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화재 마을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마을 뒤편, 가장 왼쪽에 자리 잡은 근암고택 담장을 덮고 있던 감나무와 배롱나무도 잎을 떨구고 겨울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임하댁(일명 수재고택ㆍ경북도 문화재자료 제53호)은 성리학을 계승한 수재 류정호(1837∼1907)가 집터를 마련하고 그의 아들 염암 류연구(1861∼1938)가 지은 집이다.
망천동 임당댁은 영조 51년(1775년) 종서 김규진이 지은 집이다.
이후 여러 대에 걸쳐 후손들이 살았지만 1964년과 1986년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화재 마을에도 가을이 영글고 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은 마루 위에 가을의 저녁 햇살이 내려앉으면, 높은 담장 위 대롱대롱 매달린 감이 선홍색 붉은색으로 물들어 간다.
태조산을 향해 시원하게 난 골목에도 가을이 스며들었다.
마을 어귀 넓은 도로에선 추수한 벼들이 눅눅한 몸을 말리고, 수남위종택 담벼락에 기대선 들깨는 더욱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간다.
가을 골목은 떨어진 낙엽으로 어수선할 법도 한데, 이곳 일선리 문화재 마을은 정갈하기만 하다.
마을 사람들의 부지런함이 느껴진다.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화재 마을은 마을 조성 초기부터 마을 가장 높은 곳에 경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고택들을 배치했다.
배혈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일선리 문화재 마을 왼쪽 가장 높은 곳엔 조선시대 학자인 유익휘(1629∼1698)가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 양성을 위해 1680년대에 지은 ‘만령초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골목을 따라 바로 아래에는 ‘단포고택’이라고 불리는 망천동 임당댁이 들어서고, 그 아래에는 근암 유치덕(823∼1881)이 고종 7년에 지은 ‘근암고택’이 자리했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 수재 류정호(1837∼1938)가 집터를 마련하고, 그의 아들 염암 류연구(1861∼1938)가 집을 지어 ‘수재고택’이라고 불리는 임하댁이 있다.
이들 집은 18∼19세기에 지어진 집으로, 임하댐 건설로 1987년 이곳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로 옮겨 세워 현재 모습으로 남아있다.
원래 지은 이들의 후손이 사는 집도 있지만, 그 사이 주인이 바뀐 집들도 있다.
◆근암고택
근암고택(경북도 문화재자료 제55호)은 조선후기 실학자인 류치덕이 직접 감독해 지은 집이다.
원래는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198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류치덕은 류혼문의 아들로 어머니는 영양 남씨 경묵의 딸이다.
그는 정재 류치명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그의 스승인 류치명은 1805년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한 후 홍문관 교리, 우부승지, 공조참의 등을 거쳐 대사간이 된 인물이다.
초산부사로 있을 때, 진정에 힘쓰고 환곡과 전결의 폐단을 바로잡은 공로로 백성들이 생사당을 지었다.
하지만, 병조참판을 지내던 중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추존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대사간 박내만의 탄핵을 받고 유배됐다.
경학과 예학, 성리학 등 여러 학문에 능통했던 그는 이이의 학설을 공격하며 이황, 김성일, 장흥효, 이상정 등으로 이어지는 학통을 계승했다.
스승인 류치명으로부터 학문을 배운 그는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에 힘썼다.
특히, ‘이기사칠지설’과 ‘태극동정지기’에 대한 연구는 독보적이다.
그 외에 백가서를 널리 통독했으며, 중국의 고증학과 신학문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던 듯하다.
예학에도 밝아 역대 예지와 국조전헌을 수집해 ‘전례고증’ 12책을 저술했다.
이 책은 정확하고 정밀한 교감과 상세한 절목, 풍부하고 다양한 예증으로 우리나라 예학연구에 필수자료이기도 하다.
그는 유학 전반에 걸친 문제점을 거시적인 안목으로 비판했으며, 조선 후기의 누적된 모순을 노출하는 제반 현상, 즉 모든 제도상의 문제점과 모순을 총체적인 안목에서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유학의 범주 안에서 제반 가치의 재정립과 창조적인 적용을 시도하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고 노력한 점에 비춰볼 때 실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저서로는 ‘전례고증’ 12책과 ‘근암문집’ 6권이 있다.
그가 직접 감독해 지은 근암고택에도 그의 이런 사상들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집의 내ㆍ외부 공간과 방 사이의 연결 동선이 가족생활에 편리하도록 계획된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오른쪽 담장 사이에 난 사주문을 들어서면 사랑마당이 나타나는데, 마당의 오른쪽에 정자인 근암정이 있고 그 옆에 정침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정침은 정면 6칸, 측면 4칸 반 크기의 ‘ㅁ’자형 건물이다.
중문간의 오른쪽에는 사랑채를 꾸몄다.
통상 사랑채와 안채가 한 몸을 이룬 ‘ㅁ’자형의 주택에선 사랑채의 지붕이 일반적으로 팔작지붕을 형성하는 데 비해, 이 집은 사랑채의 지붕을 맞배지붕으로 구성한 것이 특이하다.
대청 쪽으로 안방을 한 칸 더 냈다.
이는 ‘ㅁ’자형 주택의 단점인 자연 채광과 일조, 자연통풍을 위해서다.
건물 형태는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나, 이건 당시 현대식 자재 손질법이 가미돼 변형된 느낌이 든다는 것이 전문가의 말이다.
한편, 마당 오른쪽에 자리한 근암정은 원래 집과 떨어져 있었으나, 이건하면서 마당 내로 옮겼으며, 근암정의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임하댁
임하댁(일명 수재고택ㆍ경북도 문화재자료 제53호)은 류치검(1807∼1853)이 전주 류씨의 박곡동 종갓집에서 수곡동으로 분가한 후, 성리학을 계승한 수재 류정호(1837∼1907)가 집터를 마련하고 그의 아들 염암 류연구(1861∼1938)가 지은 집이다.
류정호의 호를 따서 ‘수재고택’이라고도 한다.
류정호는 성리학에 밝아 ‘수재유고’를 남겼으며, 그의 아들 염암 류연구 역시 학문에 힘써 ‘완산세적’, ‘상변요해’, ‘염암유고’ 등의 책을 남겼다.
항일운동의 중심지인 안동답게 류정호도 항일운동에도 참여했으며, 그와 아들인 류연구가 같은 해 죽고,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집이 방치된 것을 보고 독립지사인 류동환이 1939년에 고쳐 지었다.
팔작지붕을 한 사랑채와 문간채 사이로 난 중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일(ㅡ)자형의 안채와 아래채가 튼 ‘ㄷ’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사랑채를 안채 쪽으로 조금 물리고, 사랑채와 안채 사이를 쪽마루로 연결해 전체적인 배치는 튼 ‘ㅁ’자형을 닮았다.
임하댁은 겹집에 가까우며, 마루방을 설치해 폐쇄적이다.
이는 추운 기후 조건을 반영한 경북지방 북부형 민가의 폐쇄적 공간형식을 유지하면서, 건물 사이의 일조를 고려한 보기 드문 평면 형태이다.
근대주의식의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근대 한옥의 변화와 발달양상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망천동 임당댁
이건한 지 30년이 지나 낡은 망천동 임당댁(경북도 민속문화재 제59호) 담장 위로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이 집은 영조 51년(1775년) 종서 김규진이 지은 집이다.
이후 여러 대에 걸쳐 후손들이 살았지만, 1964년과 1986년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원래 안동시 임동면 망천동에 있었던 집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대문간채와 안채가 현존하는데, 대문간채는 정면 4칸, 측면 단칸통으로 대문, 방, 부엌, 외양간 순서다.
외양간 바깥벽에 측간이 있다.
이 집의 특색은 대문이다.
보통은 처마 아래로 들어서게 마련인데, 이 집에선 끝 간 합각쪽에서 들어갈 수 있게 돼 대문이 북향이다.
보기 드문 구조다.
안채는 ‘ㅡ’자형 날개집으로 정면 6칸인데, 중문 우측으로 작은 사랑방과 마루, 좌측으로 큰 사랑방 2칸과 마루가 자리를 잡았다.
날개의 좌우 끝에 각각 마루를 시설한 배치법도 눈길을 끈다.
좌측날개는 사랑방에서 시작해 감실과 고방, 이어 부엌이다.
안채 본당으로 이어지며, 2칸이 안방인데 큰 사랑방을 바라다보는 위치에 있다.
이어 대청이다.
2칸 계속되던 대청이 우측날개로 꺾어지면서 1칸 더 계속된다.
다음에 상방이고 드나드는 공간인 쪽문, 이어 작은 사랑방이 된다.
이 집 배치에서의 특성은 대청을 ‘ㄱ’자로 3칸 계속시켰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건넌방이 생략되고 말았다.
권삼문 여헌기념관 학예연구실장은 “그래서인지 작은사랑의 독립을 분명히 했는데, 이런 유형은 보기가 흔한 것이 아니다”라며 “집을 지을 당시 식구 구성에 남자아이들이 많다는 점이 고려됐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사진=한태덕 전문사진작가
도움=권삼문 여헌기념관 학예연구실장
류완성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