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 김유곤 바른손 약국 약국장
서울고 총동창회 뉴스레터 26호(2019. 04. 09)
김유곤(서울고 31회, 58세 / 바른손약국약국장)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 그 자리를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
“어디 가서나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되라”
이 말씀을 평생 기억하는 사람은 ‘서울인’일 것이며, 이를 삶의 좌표로 삼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 역시
‘서울고 동문’일 것이다.
모교의 초대 교장선생님께서 늘 학생들에게 강조한 이 훈화말씀(어록 중 일부)은 학교 역사에 있어서 시대와 세대를 넘어 서울인의‘정신’을 만들고, 명문 서울고의 ‘학풍’과 ‘전통’을 만들어온 원동력이 아닐 수 없다.
이 가르침의 참뜻은 “‘엘리트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라고 선배들은 이구동성으로 강조한다.
그런 만큼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있어야 할 자리,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것이 엘리트 못지 않게 모교동문으로 자랑스럽고, 큰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올해로 28년째 한결같이 부천시에서 약국을 연 이래, 그것도 2010년부터 10년째 365심야약국을 운영하며 지금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바로 그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름다운 동문이 있다. ‘바른손약국’약사 김유곤(31회·약국장)동문이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약국이고, 선한 자리에 서있는 지금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모교인 서울고 동문으로서 많은 훌륭한 선배님들의 말씀을 좇아서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단언하는 김동문.
지난2월26일 2018 제8회 국민추천 포상수여식에서 응급환자를 위해 약국에서 생활하며 365일 심야약국을 운영하는 평범한 김유곤 약사가 국민들의 의약품 구입편의를 제공한 점을 인정받아 국무총리표창을 수상하였다는 소식이 동기들 사이에서 잔잔한 화제가 되었고, 북상하는 봄 꽃 소식처럼 알음알음 동창회보 편집실에까지 닿았다. 정부포상 국민추천제는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각계각층 12명의 국민대표가 우리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헌신·노력해온 숨은 공로자들을 국민들로부터 직접 추천을 받아 약 4개월동안 검증 및 심사한 후, 수상자를 선정하는 제도로 이번 8회차에는 704명의 후보자들이 접수됐으며, 이중 심사를 거쳐 총42명의 수상자가 선정되었고, 김동문은 24명의 국무총리 표창수상자 중 한 명이다.
기자는 2월9일 토요일, 김동문이 1992년 처음 문을 연 역곡역 홈플러스 뒤편 괴안동 주택가 입구에 있던 약국에서 한 달 전, 건물주의 재건축 방침에 따라 약 500여미터 떨어진 현재의 역곡 남부 역 건너편 버스정류장 앞에 임시약국으로 이전한 곳을 찾았다.
이전한 약국 옆에는 ‘김유곤 약사 국무총리상수상’을 축하하는 경축 현수막이 소박하게 걸려있어 약국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동문과 반갑게 수인사를 하고, 인터뷰를 위해 약국 안쪽 상담실 용도의 작은 방을 개조해 만든 쪽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이곳은 심야약국 운영에 따른 숙식해결을 위해 평상 침대와 냉장고, 밥솥 그리고 자신의 부족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한 각종 영양제가 수북이 쌓인 작은 탁자 등이 놓인 간이침실공간이다. 아침10시, 연로한 할머니, 할아버지 등 이전하기 전 약국을 찾던 지역 단골 어르신들부터 새로 이전한 지역주민들까지 손님들이 연신 줄을 잇는다.
“약국은 단순히 약을 사고파는 상행위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으로 이웃의 건강에 도움을 주고 편하게 소통하는 사랑방 같은 장소가 되어야 하고, 약사는 약국에 항상 상주해야 하며, 약을 알고 있는 전문가로서 국민들이 약을 필요로 할 때, 약을 잘 선택해주는 헬퍼(helper) 역할을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바로 약사의 이런 역할 중 하나가 심야약국운영”이라고 하는 김동문. 그의 뚜렷한 약사관은 심야 공공약국 시범운영기간 6개월의 불씨를 살려 24시간 잠을 들 수 없는 생활을 10년째 선한 고집을 이어오게 하고 있다. 이렇게 그는 시범운영기간
6개월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일체의 금전적 지원 없이 오직 시민의 복지사각지대를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외로운 파수꾼이 되어 자발적으로 심야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심야약국을 운영해보니 새벽시간에 약국을 찾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에 놀라고, 그분들을 위해 밤에 약국 문을 닫을 수 없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한다.
김동문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국민복지차원에서 제대로 된 약료서비스를 누리도록 심야공공약국제도가 보다 확대시행 되도록 정부 및 관련기관들이 적극화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하며, “앞으로 심야약국을 자발적으로 계속 운영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심야에 약을 필요로 하는 국민이 있는데, 약을 구입할 약국이 없는 것은 약사의 직무유기”라는 김유곤 동문.
최근 지역 내 고교 인성교육 강사로 출강하여 학생들에게 “자신의 학교교훈을 알고 있냐”라고 물으면, 많은 학생들이 교훈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죠. “나는 고교졸업 후, 40년 동안 ‘깨끗하자, 부지런하자, 책임지키자’라는 모교교훈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제 평생 삶의 든든한 좌우명으로 항상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면 모두 놀랍니다."
"모교교훈은 성경 속의 말씀에도 부합하여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약사로서 삶의 지식을 실천하며 책임을 지키는 삶을 살고자 한다"는 김동문이 심야약국운영으로 쪽 잠을 자는 일이 부지기수인 만큼 그의 건강관리비법이 궁금하였다.
돌아온 대답은 이렇다.“ 저는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내가 일을 할 때,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재미있는 약국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하기 싫지만 논다고 생각하면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할 수 있더라고요. 그러니 제 자신이 밝아질 수 있습니다.”
“내가 있는 곳이 힐링의 장소”라는 구도적 생활태도를 가진 김동문은 “녹슬어서 못쓰는 삶이 아니라 닳아 없어지는 삶을 살고 싶다”라고 하였다. “절대 욕심을 내지 말며, 어려운 사람 돌볼 수 있는 내가 10개 먹을 거 반은 나눠주고, 절반만 갖고 사는 게 행복”이라며 그만의 행복론을 강조한다.
어느덧 약사회에서 후배들에게 롤 모델로서 큰 바위 얼굴이 된 것 같다고 한다. 저 멀리 지방에서 약사연수 후배들이 카톡으로 커피 쿠폰을 보내오며 응원해줄 때, 자신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확인하며 내심 기분이 좋다고 한다.
자신이 24시간 체질임을 자랑하는 김동문이 그래도 심야약국을 거뜬히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배려와 응원의 도움이 크다.
또한 꼭 있어야 할 자리에 함께할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것만큼 커다란 기쁨도 없을 터. 김유곤 동문은 조민연 여사와의 슬하에 지난해 결혼한 장녀 김지효, 차녀 김경하 두 딸을 두고 있는 단란한 가정의 멋진 아빠이기도 하다.
“자신을 통해 누군가 유익함을 얻고 행복해한다면, 비록 내 몸이 피곤하고 다른 여가생활을 누리지 못한다 해도 그것이 기쁨이기에 계속 심야약국을 운영할 계획이며, 이 귀한 역할을 나 같은 평범한 보통사람이 제자리를 지킬 수 있음이 영광이고 보람”이라는 바른손 약국장 김유곤 약사. 올해 말 28년 여 청춘을 함께한 원래의 약국으로 다시 이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행복을 계속 나눠줄 예정이다.
글· 사진_박영진(35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