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조>
객산 문경하고
하위지(河緯地, 1387~1456)
객산문경(客散門扃)하고 풍미월락(風微月落)할 제
주옹(酒甕)을 다시 열고 시구(詩句)를 흩부르니
아마도 산인득의(山人得意)는 이뿐인가 하노라.
♣어구풀이
-객산(客散) : 손이 흩어진다. 즉 찾아 왔던 손님들이 다 돌아감을 의미.
-문경(門扃) : 대문을 닫음. ‘경(扃)’은 빗장 경, 닫을 경.
-풍미월락(風微月落) : 바람은 거두어 물러가고 달은 서산에 기움.
-주옹(酒甕) : 술독, 술항아리
-흩부르니 : 흩어지게 부르니, 마구 함부로 부르니.
-산인(山人) : 산에 사는 사람.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사는 사람.
-득의(得意) : 뜻대로 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 뽐내는 마음.
♣해설
초장 : 술잔을 나누던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고 대문을 닫아 걸고 나니 바람
은 약해져서 솔솔 두 뺨을 스치고 달은 이미 서산에 걸리었을 때에
중장 : 술 항아리를 다시 열어 홀로 앉아 다시금 술잔을 기울이니 취홍이 새
로와져 싯귀 몇 수를 되는 대로 읊어 본다.
종장 : 아마도 속세를 떠나 산 속에 은거하고 있는 나의 가장 즐거운 일은
이렇게 술 마시고 싯구를 읊는 것이 아니겠는가.
♣감상
하위지 역시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처형된 사육신의 한 사람이나
이 작품은 다른 사육신들의 시조와는 달리 단종에 대한 굳은 절개를
노래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자연에 묻혀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는 모
습을 노래한 시조이다. 아무런 사리사욕 없이 술을 마시며 되는 대로
싯구를 읊조리는 유유자적한 생활이 인간사(人間事)에 시달리는 우
리의 마음을 조금은 평화스럽게 해주며, 초장의 ‘풍미월락(風微月落)’
이란 구절은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연상케 해준다.
그러나, 중장에서 말하는 손님이 다 돌아간 뒤, 홀로 다시금 술잔을
기울인다는 의미는 되새겨 봐야 할 일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양대군의
권력으로 되돌릴 수 없는 지나간 일들이지만,
그 아픔에 대해서는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이 오직 한자만이 가져가야
하는 단종에 대한 일편단심의 의미를 취객으로 간주하고 싯구나 읊는 여유로운 자로
보이기 위한 하나의 술책이라고 보여진다.
♣작가소개
하위지(河緯地, 1387~1456) : 자는 중장(仲章), 천장(天章), 호는 단계(丹溪),
적촌(赤村), 본관(本貫)은 진주(晉州)이며, 세종 때에 문과 장원으로 뽑히어
집현전(集賢殿)에 갔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예조참판(禮曹參判)이 되었
으나, 봉록(俸祿)을 창고에 저장해 둔 채 먹지을 않았다고 한다. 성삼문, 박팽년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극형을 받게 된 사육신의 한 사람
이다.
첫댓글 혼술을 하는 적막감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가울정취에 흠뻑
젖으셔서 무한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