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수영장·레스토랑…엘름그린&드라그셋
뉴시스 기사 등록 : 2024.08.29. 14:33:58
듀오 작가 30년 협업 기념, 아시아 최대 규모 전시
수영장, 집, 아틀리에 등 실제 크기 설치 작품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미술관이야? 수영장이야?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Spaces’를 펼친 아모레퍼시픽미술관(관장 전승창)이 독특한 예술 경험을 선사한다.
덴마크 출신 엘름그린과 노르웨이 출신 드라그셋(Elmgreen & Dragset)은 북유럽 출신의 아티스트 듀오 작가다.
초기 화이트 큐브 공간을 거침없이 해체하는 초기 퍼포먼스와 조각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건축적 요소를 작업에 도입하며 점차 영역을 확장한 두 사람은 사막 한복판에 프라다 매장을 세운 설치 작업 '프라다 마파(Prada Marfa, 2005)'와 전시장을 공항, 기차역, 병동 등으로 전환한 작업들을 통해 공간에 대한 독창적 시각을 제시해 왔다.
두 사람의 30년 협업을 기념해 아시아 최대 규모로 선보이는 이번 전시도 실제 크기에 버금가는 설치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영장, 집, 레스토랑, 주방, 아틀리에 등 총 5곳이 전시장에 들어섰다.
첫 번째 전시실에서 거실, 주방, 침실, 화장실 등을 갖춘 140제곱미터 규모의 집이다. 두 번째 전시실은 대형 수영장이 나타난다. 물이 빠진 수영장은 작가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모티프로 오늘날 공공장소의 쇠퇴와 공동체의 상실을 암시한다.
레스토랑 같은 설치작품 '더 클라우드(The Cloud)'는 진짜 같은 착시를 보여준다. 홀에 앉아 영상 통화 중인 사람은 조각 작품으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마주하게 된다. 다른 전시실에서는 실험실 같은 주방, 작품 제작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아틀리에 공간이 이어진다.
전시 개막일인 9월3일 아티스트 토크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2층 대강당에서 열린다. 엘름그린 & 드라그셋 작가들이 직접 나와 이번 전시와 그들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전시는 225년 2월23일까지. 관람료 성인 1만8000원.
엘름그린 & 드라그셋, 해석의 공간
베를린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듀오 아티스트 엘름그린 & 드라그셋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에 내는 아름다운 균열, 그로 인한 해석의 공간.
By 손안나
2024.08.27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9월 3일 개막하는 개인전의 타이틀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Elmgreen & Dragset: Spaces». 제목처럼 당신들은 미술관 내부를 획기적으로 탈바꿈하며 지난 20년간 이어온 공간 작업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전문성을 유감없이 펼쳐 보인다고. 이번 전시에서 직접적으로 ‘공간’을 제목으로 내건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는 실제 크기의 집과 수영장, 레스토랑, 주방, 미술가의 작업실을 완벽하게 구현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전시 공간을 몰입적인 환경으로 바꾸었다. 우리는 디지털 영역과 현실 세계에 있는 ‘공간’을 이동하는 다양한 경험을 실험해보았고, 그걸 작품에 녹여냈다. 다시 말해 이 전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혼재되는’ 것을 탐구한다. 레스토랑을 구현한 설치작품에선 극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한 여성의 형상이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기다리며 페이스타임을 한다. <The Conversation>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에 오늘날 우리가 디지털과 현실, 두 세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담아냈다. 20년 넘게 전시 공간을 몰입적인 환경으로 만들어왔는데 이와 같은 작업은 특히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을 온라인에서 보내지만, 역설적으로 실제로 만지고 경험하는 걸 더 바라는 것 같다. 사실 이런 시나리오는 특별히 비현실적이거나 초현실적인 것도 아니다.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보거나 영상통화하는 건 흔한 일이니까. 하지만 이 장면을 미술관이라는 맥락에 놓으면 성찰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부조리함을 자아낼 수도 있다. 우리가 만든 설치작품에서는 관람객이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집을 방문한 손님(혹은 불청객)이 되기도 하고, 병문안 온 방문객이 되기도 하며, 작업실을 찾은 큐레이터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Spaces»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이 디지털을 통한 조각난 상호작용과는 다른, 특별한 감각적 경험을 했으면 한다. 전시에 찾아와서 예술을 접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동의 순간을 나누는 것은 그 자체로 마음에 평안을 주고 의미 있는 행위니까.
«Spaces»를 관람하면서 마치 탐정과 같은 심정이 될 것 같다. ‘이 집의 주인은 누구일까?’ 혹은 ‘회화작품을 하는 작가인가?’라는 물음을 떠올리게 될 듯한데, 그곳에 설치한 50여 점의 작품들로 일종의 ‘별자리’를 그리며 의도한 바가 있다면?
아티스트로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는 전통적인 화이트 큐브 전시 공간이 작품이 지닌 사회문화적 의미를 없애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상의 공간과 비슷한 공간에 작품을 놓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예술작품과 평범한 사물의 위계가 없어진다. 모든 사물이 어떤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전시를 할 때 직접 창작한 작품과 ‘발견된 오브제’ 모두에 디자인적인 요소를 넣으면서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관람객들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었는데, 관람객이 빠져들거나 파고들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몰입적인 경험은 관람객 각자가 작품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끈다. 자기 경험을 돌아보기도 하고, (우리가 살짝 뒤틀거나 변형시켜둔) 익숙한 오브제와 상황을 새롭게 보기도 한다. 작품에 머무르는 사람을 ‘누구’로 상상하는지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것을 말하는 대신 열어두고 싶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세련되고 멋진 가구로 꾸며져 있음에도 화목한 가족이 사는 집은 아니라는 것이다.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그림자에 숨어 있는’ 무언가가 있다.
이번 전시에도 수영장이 등장한다.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예술세계에서 반복되는 수영장 모티프는 공통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이번에 특별히 더해지는 의미가 있다면 말해달라.(2009년 베니스비엔날레의 북유럽 파빌리온에서는 관객을 수영장에서 일어난 의문사 사건의 현장으로 안내한 <Death of a Collector>를, 2016년 뉴욕에서는 록펠러센터 앞에 수직으로 선 수영장 형태의 공공작품 <Van Gogh’s Ear>를 선보였다.)
수영장이 지닌 미학적인 측면 외에도 복합적인 사회적 의미에 주목한다. 혼자서 쓰는 개인 수영장은 ‘아메리칸 드림’이나 중산층이라는 지위, 성공과 연관될 수 있다. 반면 공공 수영장은 커뮤니티의 개념, 즉 계층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신체적 경험을 나누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공 공간이라는 개념을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버려진 수영장 작품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문제를, 시민 공간의 상실과 우리 삶에서 그런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루는 쪽이다. 인간이 수영장을 만드는 이유 자체에도 약간의 멜랑콜리가 들어가 있다. 자연을 모방하고, 도시에 어울리는 연못이나 호수의 대체물을 만들어내려는 거니까 말이다. «Spaces»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한다. 수영장은 잠재적으로 연결과 활동이 일어나는 곳이지만, 비어 있기 때문에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수영장에 있는 흰색 래커를 칠한 남성 조각작품들은 혼자만의 활동을 하고 있거나 테크 기기에 몰두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일상에서 모두가 겪고 있는 단절과 고립을 암시한다.
남성 조각 하니까 지난 2022년 밀라노 프라다 재단미술관에서 열린 «Useless Bodies?»가 떠오른다. 미술관 유튜브를 통해 전시를 감상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포디움 1층에서 개관전 «Serial Classic»에서 영감받아 역사적 조각과 작품을 병치해놓은 부분이었다.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남성성에 관해서 프라다 재단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변주한 부분 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남성성이라는 개념을 다뤄왔고, 그 과정에서 고전적인 조각의 미학을 차용해서 남성이라는 정체성에서 더 미묘한 부분을 표현했다. «Useless Bodies?»에서는 미술사 전반에서 등장한 남성 조각상들을 선보였는데, 기원전 300년부터 베르텔 토르발센의 신고전주의 조각까지 다양했다.(토르발센은 덴마크의 조각가로 19세기 전반 신고전주의를 대표한다. 엘름그린 & 드라그셋은 두 사람 모두 덴마크 코펜하겐 출신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만든 구상적인 작품들도 전시하면서 역사를 뛰어넘은 신체적 재현이 만나는 일종의 장을 마련했다. 이런 작품들을 모아 보여주면서, 수세기에 걸쳐 이뤄진 다양한 남성성의 개념을 둘러싼 대화를 끌어내려 했던 거다. «Spaces»에서는 이런 주제를 계속해서 다루면서도 더 동시대적인 맥락을 가져오고 싶었다. 공공 수영장을 연상케 하는 공간에서는 앞서 말한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인생의 다양한 단계에 있는 남성의 모습에 흰색 래커를 칠한 청동 조각작품을 선보인다. 인물들은 창문을 내다보거나 VR 고글을 쓴 모습, 쌍안경을 들여다보는 모습 등 다양한 활동으로 묘사된다. 여가와 소통의 장소로 여겨지는 수영장이라는 공간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이 인물들은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현대의 남성성이라는 틀 안에 존재하는 단절감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Spaces»와 «Useless Bodies?»는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공통으로 맥락에 대한 일종의 연구로 볼 수 있다. 즉, 사물의 배경을 바꾸는 것이 어떻게 그 의미를 바꾸는지에 대한 연구인 것이다. 고전적이고 영웅적인 모습을 묘사한 조각작품은 연약하고 노쇠한 남성을 그린 작품 옆에 놓이면 완전히 다른 작품처럼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영장이라는 배경은 그 안에 전시된 인물 조각상에 대한 기대를 바꿔놓는다. 현실과 비슷한 이 환경은 장면에 내재한 내러티브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조각작품들을 캐릭터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간 전시와 공공작품을 통해 기존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하는 작품을 선보여왔는데, 당연하게도 그 전시가 열릴 도시나 장소에서 받은 영감이 주요하게 작용했을 것 같다. 이번 전시나 2015년 삼성 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린 «천 개의 플라토 공항»에서 그런 부분이 있다면 듣고 싶다.
«천 개의 플라토 공항»에서는 플라토의 유리 파빌리온 건축물이 다른 공간으로 변하길 바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리로 만들어진 벽과 천장을 보자마자 공항 라운지처럼 보였다. 서울이 국제적인 도시라는 점도 한몫했다. 우리는 그런 점에 착안해서 전시를 프랑스 인류학자 마크 오제가 설명한 공항의 과도기적 성격을 탐구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했다. 전시가 열리는 도시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아 전시를 만들기도 하고, «천 개의 플라토 공항»의 경우처럼 전시 공간의 건축을 출발점으로 삼기도 한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지하에 있어서 ‘외부 세계’와 직접적으로 소통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점 덕분에 예술적인 자유를 느낄 수 있었고, 오늘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삶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사유하면서 단절된 듯 보이는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많은 부분이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에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개인적으로 관찰한 것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서울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고, 공간에 대한 한국적인 접근 방식도 어느 정도 익숙하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영감을 받았다. 영화에서 집이 직접적으로 사건의 촉매 역할을 한다는 데서 착안했다.
이번 전시에도 <City in the Sky>가 등장하는 걸로 알고 있다. 건축물이 밀집된 도시의 형상이 천장에 종유석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는 <City in the Sky>와 <The Hive>에서 보여준, 오늘날 세계적인 대도시에 대한 성찰과 비전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특히 <City in the Sky>는 중국, 한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전역의 대도시를 여러 차례 여행한 데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고 2019년 아트 바젤 홍콩의 인카운터 섹션에서 선보였다. 이 작품을 서울에서 선보이게 되는 감회를 듣고 싶다. 거꾸로 매달린 건물들 가운데 혹시 서울의 건축물도 있나?
<City in the Sky>는 이른바 ‘스타 건축가’들이 설계한 여러 건물과 우리가 자체적으로 만든 건축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도시 풍경으로 이뤄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 세계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점점 더 비슷해지고, 같은 건축가가 설계한 랜드마크 건물이 많아지는 현상을 고찰한다. 이미 알고 있거나 실제로 본 건물과 비슷한 부분을 찾아보는 건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우리는 <City in the Sky>가 ‘공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라고 본다. «Spaces» 전시의 공간을 가득 채운 설치작품들은 도시생활에 대한 인류학적인 연구를 보여주는 극도의 클로즈업이지만 <City in the Sky>는 거대한 도시를 인형의 집처럼 축소해서 표현한 작품이다. 이처럼 상반된 규모가 전시에서 각기 다른 연상을 자아내고, 관람객에게는 다양한 관점에서 도시를 생각해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한다.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작품세계에서 유머와 위트는 매우 특징적인 요소다. 이번 전시에서 실제 서비스가 이뤄질 레스토랑 공간이 가장 유머러스한데,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하게 됐나?
유머는 진지한 주제를 풀어내는 데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작업 안에서 유머와 부조리로 특정한 관습이나 시스템을 뒤집고, 뿌리 깊은 구조나 규범을 새로운 맥락에 놓는다. 큰 규모로 공간을 활용하는 여러 설치작품은 공공장소나 그와 가까운 곳에 숨겨진 통제의 메커니즘을 다룬다. 건축물과 기반 시설에 숨겨진 규칙들은 우리가 공간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규정하니까. 사람들이 ‘미술관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실제로 제공되는 저녁 식사 서비스를 어떻게 이용할지 궁금하다. 미술관 안에 있다는 걸 망각하고 진짜 레스토랑에서처럼 행동할까? 미술관에서 사람들이 보이곤 하는 경계심과 조심스러운 태도를 여기서도 보여줄까? 아니면 둘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행동을 할까? 이런 점에서 작품 안에서 경험하게 되는 식사 서비스는 의례화된 행동 패턴에 대한 실험과 같은 역할을 할 거다.
궁극적으로 엘름그린&드라그셋이 여러 소주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지금 당신이 굳게 맞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가 아닐까 싶다. 예술가로서의 사명을, 전시를 찾은 관람객, 길거리를 지나가며 당신들의 공공작품을 보게 될 시민의 인식에 균열을 내는 것으로 삼은 본질적인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이성애적 규범을 따르는 스칸디나비아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그래서 우리가 주변의 많은 사람과 다르다는 걸, 아니 더 정확히는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본다는 걸 꽤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를 대변해주는 것이 부족하다는 느낌 때문에 사회적 규범을 전반적으로 의심하게 된 것 같다. 예술계에 발을 디뎠을 때는 이곳에 많은 관행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미술작품을 보여줄 때면 항상 동원되는 화이트 큐브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표준화된 형식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왜 어떤 위계나 루틴이 존재하는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실제로 그 과정에서 영감을 얻었다. 우리가 처음 만든 연작 <Powerless Structures>는 철학자 미셸 푸코의 아이디어를 출발점 삼았다. 푸코는 구조 자체는 어떤 힘도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구조는 바뀌거나 교체될 수 있고, 그 의미는 본질적인 게 아니라고 봤다. 대신 구조는 사회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의미를 갖게 된다고 여겼다. 우리는 공간과 사물의 미감과 기능을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권력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도전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익숙한 대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또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새로운 해석의 공간을 열고 싶다.
오는 가을 오르세에서 개인전 «L’Addition»이 예정되어 있다. 오르세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감탄하며 오랜 시간을 보내는 조각 본당에서 남성성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를 선보일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전시실에 변화를 가하는 건 미술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공간 안에서 작업을 할 때는 공간의 위치, 그 공간이 촉진하는 행동 패턴, 공간이 유발하는 관련성을 비롯해 모든 측면을 고려한다. 오르세 미술관 프로젝트는 건물의 디자인을 존중하면서도 적극적인 건축적 개입으로 이뤄진다. 10월에 있을 전시 개막을 앞두고 너무 많은 걸 공개할 수는 없지만, 오르세 미술관이 이런 프로젝트를 하기에 이상적인 장소라는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르세 미술관의 내부 공간은 강한 상징성을 띠고 정말 복합적인 연상을 자아낸다. 그렇기 때문에 (재)해석의 여지가 풍부하다.
※ «Elmgreen & Dragset: Spaces»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9월 3일부터 2025년 2월 23일까지 열린다.
안동선은 <바자 아트>의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관람객을 공동 퍼포머이자 작가라고 말하는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아시아 최대 규모 개인전 «Elmgreen & Dragset: Spaces»에서 능동적으로 전시에 참여할 생각에 설렘 가득 안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Credit
글/ 안동선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엘름그린&드라그셋 스튜디오,페이스갤러리
디자인/ 진문주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Spaces’ 전시
주요 작품 소개
1. Shadow House
Shadow House, 2024, mixed media, Courtesy of the artists
엘름그린 & 드라그셋은 과거에도 ‘집’, ‘가정’이라는 주제를 다뤄왔다. 대표적으로는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을 집으로 전환한 전시 ‘수집가들(The Collectors, 2009)’,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뮤지엄 내부를 건축가의 집으로 재구성한 ‘내일(Tomorrow, 2012)’ 이 있다. 관람객은 거실, 주방, 침실, 서재, 화장실까지 갖춘 완전한 규모의 집 안에서 다양한 요소를 살펴보며 가상의 거주자에 대한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2. The Amorepacific Pool
The Amorepacific Pool, 2024, lights, stainless steel, tiles, paint, Courtesy of the artists
물이 빠진 수영장은 듀오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모티프로 오늘날 공공장소의 쇠퇴와 공동체의 상실을 암시한다. 수영장을 무대로 고대 작품을 연상시키는 백색의 조각들이 등장하여 현대의 남성성과 고립 및 성장이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 조각들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각자가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해 있으며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3. The Cloud
The Cloud, 2024, mixed media, Courtesy of the artists
‘더 클라우드(The Cloud)’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으로, 실제 운영 중인 모습과 다름없는 공간 설치 작품이다. 관람객은 테이블 사이를 거닐며, 영상 통화 중인 사람 형상의 작품을 비롯해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위치한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4. Untitled (the kitchen)
Untitled (the kitchen), 2024, mixed media, Courtesy of the artists
‘산업용 주방’과 ‘실험실’이라는 동떨어져 보이는 두 장소의 대조는 화학 기반 요리법인 ‘분자 요리학’과 현대 식품 시스템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기후 변화, 인구 증가, 자연 자원의 감소 속에서 실험실 과학에 더욱 의존하고 있는 현세태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이다.
5. Untitled (the studio)
Untitled (the studio), 2024, mixed media, Courtesy of the artists
작가들은 전시 끝에 이르러, 일상 속 공간이 아니라 흰 벽으로 둘러싸인 작업실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거울로 이루어진 캔버스는 인물 조각을 비롯해 방문자 모두와 주변 공간을 반사함으로써 조각, 회화, 작품, 공간, 관람객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6. Separated (헤어지다)
Separated, 2021, mirrors, porcelain sinks, taps, stainlesss steal tubin, 178 X 150 X 150cm, Courtesy of the artists
두 개의 동일한 세면대와 거울,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길고 구불구불한 강철 배수관으로 구성된 조각이다. 2004년 시작된 ‘결혼’ 연작의 일환이다. ‘헤어지다’에서는 감정적 연결이 해소되기 전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통찰력 있게 조명한다. 배수관은 파트너 간의 친밀함과 감정적인 결합을 나타내는 동시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을 표현한다.
7. Watching (감시)
Watching, 2024, bronze, lacquer, 290 X 105 X 85cm, Courtesy of Pace Gallery
망원경을 통해 무언가를 응시하는 젊은 남성을 묘사한 작품이다. 결코 남성의 위치를 차지할 수 없는 관람객은 그가 보고 있을 잠재적인 장면들을 상상하게 된다. 이 안전요원은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고립된 남성 인물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작가들은 현실적인 인물 이미지를 일상적인 물건과 융합하여, 사람과 사물 간의 위계를 지운다. 여기서 망원경과 안전요원은 관찰 대상 자체가 되며,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역할을 뒤바꾼다.
8. The Screen (화면)
The Screen, 2021, bronze lacquer, light-box display, 225 X 145 X 40cm, Collection of Amorepacific Museum of Art
소년은 창 너머의 하늘을 들여다보며 바깥 세상의 모든 가능성과 신비를 향한 갈망을 담은 눈빛을 보내고 있다. 이 작품은 대부분의 사람이 유년 시절 경험했을 만한 순간을 묘사한다. 즉, 관계의 고립과 단절로부터 느끼는 외로움, 슬픔, 또는 지루함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어린 시절의 보편적인 감정을 소환하며 우리가 어릴 적 경험했던 외로움과 갈망을 떠올리게 한다.
9. The Conversation (대화)
The Conversation, 2024, silicone figure, clothing, iPhone, 130 X 100 X 60cm, Courtesy of the artists
레스토랑 테이블에 홀로 앉은 여성이 영상 통화에 깊이 몰두하고 있다. 그녀가 대화하는 가상의 친구는 최근 실패한 연애에 대해 독백을 이어간다. 이 장면은 기술이 우리의 물리적인 환경과 상호 연결된 디지털 세계 간의 경계를 어떻게 흐리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는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우리가 경험하는 존재-부재의 동시성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 위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