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정호승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을 두려워하며
폭풍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드는
저 한 그루 나무를 보라
스스로 폭풍이 되어
폭풍 속을 나는
저 한 마리 새를 보라
은사시나뭇잎 사이로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이 깊어 갈지라도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이 지나간 들녘에 핀
한 송이 꽃이 되기를
기다리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해설
[개관 정리]
◆ 성격 : 비판적, 의지적, 설득적, 교훈적
◆ 특성
① 의인화를 통해 대상의 이미지를 구체화함.
② 반복을 통한 운율감 획득 및 강조의 효과
③ 삶에 대한 대조적 태도(능동⇔수동)를 제시함.
④ 대비적 시어(나무, 새 ⇔ 꽃)를 통해 주제의식을 부각시킴.
⑤ 1, 2연을 끝부분에서 반복하여 구조적으로 안정감을 획득하고 주제의식도 강조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폭풍 → 화자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시련과 역경을 상징함.
* 폭풍이 지나가기를 /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 주어진 상황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을 일관되게 강조함.
* 나무, 새 → 화자에게 시련에 대한 적극적인 삶의 의지를 갖게 하는 대상임.
*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 → 시련과 역경이 심화된 부정적 현실
* 한 송이 꽃 →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삶의 태도를 지닌 인간의 모습
◆ 제재 : 폭풍
◆ 화자 : 폭풍 속의 나무와 새와 꽃을 바라보는 이
◆ 주제 : 폭풍(삶의 시련과 고통)을 대하는 올바른 삶의 자세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자연 현상의 일부인 폭풍을 통해 인생의 진리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자연현상으로서의 폭풍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존재이다. 인간이 가진 것을 일순간에 앗아가 버릴 수도 있는 그런 존재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폭풍을 두려워하고 피하려 한다. 어딘가에 숨어서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려 한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그러한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정작, 나무와 새로 대표되는 자연은 오히려 스스로 폭풍이 되어 머리를 풀고 하늘을 흔들거나 폭풍 속을 유유히 날고 있기 때문이다. 폭풍이란 그들에게 있어 삶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에서의 폭풍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시련이나 역경을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면, '폭풍 속에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드는 나무'나, '스스로 폭풍이 되어 폭풍 속을 나는 한 마리 새'는 역경을 이겨내는 인간 또는 그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시련과 역경은 두려워하거나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 들어가 견뎌내야 할 삶의 한 부분이라는 삶의 진실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폭풍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존재로 인간이 가진 것을 일순간에 앗아가 버릴 수 있는 존재이기에 인간은 폭풍을 두려워하고 피하려 한다. 하지만, 작가는 폭풍으로부터 인간의 삶의 한 부분으로서의 시련을 읽어 내면서 폭풍으로부터 새로운 문화 가치를 창조하고 있고, 그러한 가치는 민족적 차원에서 필연적으로 극복해야 할 시련이자 고통으로 확대 해석될 수도 있다.
[작가소개]
정호승 Jeong Ho-seung시인
출생 : 1950. 1. 3. 경상남도 하동
학력 :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석사
수상 : 2008년 제23회 상화시인상, 2001년 제11회 편운문학상,
2000년 제12회 정지용문학상, 1989년 제3회 소월시문학상
작품 : 도서, 오디오북, 공연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다.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등이,
시선집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 『흔들리지 않는 갈대』, 『수선화에게』 등이, 동시집 『참새』, 영한시집 『부치지 않은 편지』,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어른을 위한 동화집 『항아리』, 『연인』, 『울지 말고 꽃을 보라』, 『모닥불』, 『기차 이야기』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소년부처』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김우종문학상, 하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언제나 부드러운 언어의 무늬와 심미적인 상상력 속에서 생성되고 펼쳐지는 그의 언어는 슬픔을 노래할 때도 탁하거나 컬컬하지 않다. 오히려 체온으로 그 슬픔을 감싸 안는다.
오랜 시간동안 바래지 않은 온기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그의 따스한 언어에는 사랑, 외로움, 그리움, 슬픔의 감정이 가득 차 있다.
언뜻 감상적인 대중 시집과 차별성이 없어 보이지만, 정호승 시인은 ‘슬픔’을 인간 존재의 실존적 조건으로 승인하고, 그 운명을 ‘사랑’으로 위안하고 견디며 그 안에서 ‘희망’을 일구어내는 시편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구축하였다.
‘슬픔’ 속에서 ‘희망’의 원리를 일구려던 시인의 시학이 마침내 다다른 ‘희생을 통한 사랑의 완성’은, 윤리적인 완성으로서의 ‘사랑’의 시학이다. 이 속에서 꺼지지 않는 ‘순연한 아름다움’이 있는 한 그의 언어들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첫댓글 스스로 폭풍이 되어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무한 건필하시길
소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