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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어깨봉(441m)-망덕산(望德山, 365m)-부릉산(346m)
산 행 일 : ‘21. 12. 30(목)
소 재 지 : 충청북도 옥천군 동이면
산행코스 : 금강휴게소→지우대마을(조령1리)→참옻다리→망덕산→지우대전망대→송골쉼터↔호랑이굴(왕복)→어깨봉↔하늘전망대(왕복)→어깨정→차돌바위골(알바)→마티고개 갈림길→부릉산→(舊)금강2교(소요시간 : 8.39km/ 4시간)
함께한 사람들 : 강송산악회
특징 :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의 배경이 되어주는 산들이다. 400m 내외의 산들이니 산이랄 것도 없지만 막상 부딪히고 보면 상황을 달라진다. 엄청나게 가파른데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골까지 깊기 때문이다. 육산이라서 특별한 눈요깃거리도 없다. 하지만 조망만은 끝내준다. 산태극수태극을 그리는 금강의 물줄기는 물론이고 충북지역의 높고 낮은 산들이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다만 이런 특징들은 어깨봉과 망덕산에 한한다. 부릉산은 산길이 희미할뿐더러 조망 또한 일절 트이지 않는다. 오르는 봉우리의 숫자를 헤아리려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일부러 찾을 필요가 없는 산이다.
▼ 산행들머리는 ‘금강휴게소’(옥천군 동이면 조령리 576)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부산방향으로 내려오다 옥천군(충북) 소재 금강 TG를 빠져나오면 된다. TG 앞에 있는 고속도로휴게소가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참고로 금강휴게소는 상하선이 함께 쓰는 몇 개 안되는 휴게소이자, TG의 밖에 있는 전국 유일의 휴게소이다. TG를 빠져나와 휴게소에 들른 다음 다시 고속도로로 올라가는 형식을 취했다.
▼ 옥천군에서 ‘옻 산업특구’를 조성해놓은 덕분에 꽤 여러 곳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금강휴게소나 금강3교 근처의 옻생태체험장 주차장을 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여타 코스들은 벼랑에 가까울 정도로 길이 험한데다 흔적까지 희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릉산으로 연결되는 등산로는 산행에 이골이 난 산꾼들조차 버거워 할 정도로 길이 거칠다.
▼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얼핏 고속도로를 사이에 둔 다른 쪽 방향의 금강휴게소로 가겠거니 할 수도 있겠지만, 이 길은 오롯이 ‘지우대’라는 자연부락으로 연결된다. 외부와의 접속을 끊는 고속도로의 특징에 크게 어긋나는 특이한 상황으로 보면 되겠다.
▼ 참!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 굴다리 앞에 세워놓은 마을안내판 정도는 읽고 나서 산행을 시작해보자. 그 옆의 빗돌은 우수리 삼아서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함양박씨와 옥천전씨, 영양천씨가 터를 잡은 ‘지우대’ 마을은 도리뱅뱅이라는 음식으로 유명한 마을이란다. 또한 특산물인 ‘옻’은 옛날 임금님의 수랏상을 만들던 장인이 직접 찾아와 옻진을 사갔을 정도라고 한다.
▼ 굴다리를 통과하자 주변이 온통 음식점 간판들뿐이다. 대표 메뉴는 ‘도리뱅뱅이’. 1980년대에 이 마을로 들어온 배창윤씨로부터 시작된 음식인데 처음에는 피라미로 만든 생선튀김에 불과했단다. 그러다가 이게 별미로 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늘어났고, 또한 프라이팬에 빙 둘러 구우는 조형미까지 갖추면서 ‘도리뱅뱅이’라는 구수한 이름까지 얻게 되었단다.
▼ 식당가가 끝난 다음 만나게 되는 윗마을은 오롯이 농부들 차지다. 32가구가 모여 사는 이 마을은 절반 이상이 관광음식업소를 운영하고 있단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농업이나 임산물 채취 등 다른 직업에 종사하면서 윗마을에 모여 산다.
▼ 탐방로는 마을안길을 통과한 다음 언덕을 넘는다. 경사가 제법 가파르지만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있어 힘들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거기다 잘 단장된 묘역을 지난 다음에는 그 경사까지도 사라져 버린다.
▼ 산행을 시작한지 15분. 푹 파인 고갯마루에 ‘참옻다리’가 놓여있다. 인간이 끊어놓은 능선을 인간의 손으로 다시 연결해놓은 셈이다. 고갯마루에는 ‘레저스포츠 3길’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있었다. ‘옻 산업특구’를 조성하면서 내놓은 길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일 것이다.
▼ 다리를 건너면 ‘새재’로 연결되는데, 옥천군에서 ‘옻 산업특구’를 조성하면서 내놓은 길들 가운데 하나다. 2014년 등산로 9km와 탐방로 5km, 레저스포츠길 9km를 개설했다. 옻배움터와 체험시설 등의 부대시설도 갖췄다. 참고로 2005년 옻산업특구로 지정된 이 지역은 현재 180여 농가가 146㏊에 31만여 그루의 참옻나무를 재배하고 있단다.
▼ 능선을 타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길은 시작부터 가파르다. 아니 무지막지하게 가파르다. 능선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는 모양새인 것이다.
▼ 간간히 나타나는 바위도 나그네에게는 버거운 짐이다. 경사가 하도 가파르다보니 네 발로 기어서야 겨우 오를 수 있다.
▼ 그렇게 올라서길 10분.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늑대굴’ 안내판이 눈에 띈다. 하지만 막상 어디서 찾아야 할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호랑이 없는 골에 늑대가 왕 노릇 한다’고, 온 산을 늑대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일까? 그렇다면 ‘늑대굴’은 ‘늑대소굴’의 오기(誤記)가 된다.
▼ 가파른 오르막길과의 버거운 힘겨룸을 한 번 더 치른 후에야 망덕산 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다. 산행을 시작한지 33분 만이다. 이곳은 동이면 주민들의 새해맞이 장소라고 한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새해의 평안을 기원하는 다양한 새해맞이 행사가 열린단다. 하지만 썩 좋은 장소라고 할 수는 없겠다. 너른데다 조망까지 뛰어나다지만 올라오는 길이 저렇게 가파른 데야...
▼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망덕산은 이곳이 정상이라는 그 어떤 표식도 없다. 정상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리본(정상의 표식이 적힌)조차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외로운 이정표(어깨산 정상 1,585m/ 지우대 갈림길 340m) 하나가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 ‘이 뭐꼬?’ 선방 수좌들에게는 가장 근원이 되는 화두(話頭)다. 하지만 참선과는 거리가 먼 나로서는 저 정도의 조형물마저도 하나의 화두가 된다.
▼ 망덕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먼저 산불감시초소 쪽부터 살펴보자. 경부고속도로와 금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가 하면, 그 뒤로 철봉산과 큰날산 능선이 기다랗게 펼쳐진다.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일행 몇은 저 능선에 있는 철봉산과 해맞이산을 답사한다고 했다.
▼ 발아래에는 금강휴게소가 놓여있다. 그동안 많은 운전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곳이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경부고속도로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게소로도 꼽힌다. 하지만 고속도로 곳곳에 휴게소가 생겨나면서 지금은 많이 한산해졌다. 공기의 압력으로 물을 가두어 만든 금강유원지가 그나마 명맥을 이어간다고나 할까?
▼ 반대편에는 높고 낮은 충청지역의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 진행방향인 북쪽에는 ‘어깨봉’이 있다. 어깨봉은 이름 그대로 멀리서 보았을 때 정상의 생김새가 어깨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특히 우산리 방향의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어깨가 기울지도 않고 똑 같단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어깨봉은 왼쪽 어깨가 약간 쳐져 있었다.
▼ ‘지우대 갈림길’로 내려가는 길은 무척 가파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버겁다 싶은 곳에는 통나무계단을 놓아 부담 없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했다.
▼ 망덕산 정상에서 7분. 고갯마루에 내려서니 ‘지우대’라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전망대라는 단어가 낯간지러울 정도로 조망은 일절 허락되지 않는다. 벤치 한두 개 놓아두고 ‘쉼터’로 이름을 바꾸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 전망대 앞에는 ‘옥천 옻 산업특구’의 안내판을 세웠다. 지도에 생태체험장과 탐방로, 편의시설 등을 표시해 탐방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정표(어깨산 정상↑ 2,220m/ 조령1리 입구← 1,020m/ 망덕산 정상↓ 330m)도 세웠다. 그런데 어깨봉까지의 거리가 조금 묘해졌다. 망덕산에서 330m를 더 걸었는데도, 거리는 오히려 635m나 늘어나 버렸다.
▼ 참! 이정표의 방향표시도 문제였다. 임도를 내면서 생긴 가파른 절개지에서 길을 찾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제대로 된 들머리는 조령1리 방향으로 50m쯤 내려가야 만날 수 있다.
▼ 산길은 무척 가파르다. 아까 망덕산에서 내려올 때보다 더 가팔라졌다. 산은 굴곡진 인생과 같아 오르내림이 반복된다고 했다. 그러니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나면 이에 상응하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날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일 것이다. 그래 쉬운 산이 어디 있으랴. 조금 편한 산은 있을지라도 쉬운 산은 결코 없다는 얘기도 있지 않겠는가.
▼ 그런 버거운 힘겨룸을 10분 정도 치른 후에야 첫 번째 봉우리(앱은 332m를 찍고 있었다)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후부터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이어진다.
▼ 이때 진행방향의 나뭇가지 사이로 ‘어깨봉’이 얼굴을 내민다. 그런데 산이 가팔라도 너무 가파르다. 아예 허리를 곧추세워 버렸다. 맞다. 어깨봉의 특징은 엄청나게 뾰쪽하게 생겼다는데 있다. 옥천읍 등 멀리서 볼 때 너무 뾰쪽하니 삽이나 괭이로 좀 낮추는 게 어떠냐는 농담이 있을 정도란다.
▼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망덕산에서는 27분). 안부에 자리를 튼 ‘송골쉼터’를 만났다. 이곳은 어깨봉의 볼거리 중 하나인 ‘호랑이굴’로 가는 길이 나뉘는 지점이다. 탐방로에서 약간 비켜난 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이정표(어깨산↑ 615m/ 호랑이굴← 140m/ 청마갈림길→ 630m/ 지우대갈림길↓ 630m)를 꼭 살펴보도록 하자.
▼ 명색이 쉼터인데도 앉아서 쉴만한 시설은 갖추고 있지 못했다. 대신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조망은 뛰어나다. 충청북도의 전형적인 풍경. 즉 차곡차곡 쌓인 나지막한 산들, 그리고 그 사이에 들어앉은 작은 들녘들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 청마갈림길 방향은 나처럼 옻을 타는 사람에게는 금단의 지역이다. 경고판까지 세워놓았다. 망덕산과 어깨봉 일대에 10만여 그루의 옻나무를 심었다고 하더니 그게 사실이었나 보다.
▼ 산자락을 따라 5분 조금 못되게 내려가자 ‘호랑이굴’이 나온다.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은 굴은 크지도 그렇다고 깊지도 않았다. 산중의 왕. 즉 외적의 침입을 두려워하지 않는 호랑이 정도는 되어야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 쉼터로 되돌아와 또 다시 길을 나선다. 이번에도 역시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그러나 아까에 비해 그 기세가 많이 꺾였다.
▼ 이 구간에서는 바윗길도 만날 수 있었다. 거대하지도 그렇다고 날카롭지도 않은 바윗길이지만 전형적인 육산에서 만난 이질적인 풍경이어선지 반갑기까지 하다.
▼ 바윗길의 특징은 조망이 좋다는 점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이곳에도 멋진 조망처가 있었다. ‘매 조망대’. 허공을 나는 매의 높이에서 주변 경관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바위 끝으로 다가가자 시야가 툭 트이면서 망덕산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 왼편은 금강.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 했던가. 망덕산을 넘지 못한 금강 물줄기가 산자락 끝을 휘돌아 흘러나온다.
▼ 조망대를 지나자 주변 풍광이 확 변해버린다. 뼈대만 남은 고사목(枯死木)들이 사방에 널려있는 것이다. 그것도 불에 그을린 흔적이 역력하다. 맞다. 이곳 어깨산은 지난 2016년 산불이 발생해서 많은 나무들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 산불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 화마의 흔적은 가슴 벅차게 받아들여야 할 풍광까지도 안타깝게 만들어버린다. 휘돌아가는 금강의 물줄기가 아름답기 짝이 없는데도 그게 고사목과 겹치면서 흉측스럽게 변해버린 것이다. 우리 같은 등산객들부터 산불방지와 자연보호에 앞장서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래야 후손들도 우리들처럼 등산을 즐기며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눈에 담을 수 있지 않겠는가.
▼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30분 만에 어깨봉 정상에 올라섰다.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정상은 텅 비어있는 모양새이다. 정상석이나 삼각점 등 이곳이 정상임을 알리는 표식이 일절 눈에 띄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나마 하나 세워놓은 이정표도 ‘하늘전망대’만 가리키고 있다.
▼ 정상은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진다. 먼저 왼편(북서쪽)부터 살펴보자. 아까 송골쉼터에서 바라보던 풍경. 즉 충청도의 차곡차곡 쌓인 나지막한 산들, 그리고 그 사이에 들어앉은 작은 들녘들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하지만 고도가 높아진 탓인지 옥천읍의 빌딩들까지 눈에 들어오는 등 아까보다 한참이나 더 넓어졌다.
▼ 서쪽에서는 철봉산과 함께 금강이 나타난다. 장수군의 신무산(뜬샘봉)에서 발원한 금강 물줄기는 이곳 어깨산을 접하며 180도 굽이쳐 흐른다. 이어 금강유원지 앞을 흐른 강은 또 다시 굽이쳐 옥천1경인 ‘둔주봉(屯駐峰)’으로 향한다. 이처럼 어깨봉에 오르면 금강 줄기의 경이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 남동쪽으로 눈을 돌리자 이번에는 망덕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 왼편은 망덕산의 끝자락을 휘돌아 온 금강이다. 눈에 들어오는 풍광은 자못 빼어나다. 하긴 동이구경 가운데 하나가 ‘어깨산에서 바라보는 금강줄기’라니 어련하겠는가.
▼ 하늘전망대가 있는 북동쪽도 역시 금강이다. 어느 기사에선가 어깨봉은 금강의 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라고 적고 있었다. 맞다. 어깨봉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더라도 유유히 흐르는 금강의 물줄기를 볼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강 건너 남서쪽으로 장령산과 서대산이 조망되는가 하면, 북동쪽으로는 멀리 속리산까지 바라볼 수 있다.
▼ 동쪽으로 뻗어나간 능선의 끄트머리에는 ‘하늘전망대’가 둥지를 틀었다. 서슬 시퍼런 벼랑에 걸터앉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 싶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산하를 내려다보라는 의미로 말이다. 그러니 어찌 가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금강의 자태는 자못 빼어났다. 휘돌아가는 물굽이가 만들어놓은 모래사장과 고요하게 흐르는 금강의 물줄기가 한 폭의 풍경화로 그려진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이다.
▼ 조망을 실컷 즐겼다면 이제 산상의 정자, 즉 ‘어깨정’으로 갈 차례이다. 어깨봉 정상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지어놓은 쉼터인데, 조망이 좋아 산불감시초소까지 겸한다니 가히 다목적이라 하겠다.
▼ 어깨정에서의 조망도 빼어나다. 금강과 그 너머의 철봉산 및 해맞이산은 물론이고 옥천읍의 시가지까지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옥천읍 너머의 산들은 충남 제1봉이라는 서대산과 식장산, 천·성·장·마(天聖壯馬) 등일 것이다.
▼ 이곳에서는 꼭 살펴봐야 할 시설물이 있다. 지도가 그려진 안내판인데 나처럼 부릉산으로 가려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부릉산으로 연결되는 길이 그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길이 나있지 않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니 오르는 산의 숫자를 헤아리려는 산꾼들이 아니라면 일부러 찾아갈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지 못했던 나는 이를 두고두고 후회하며 산행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 이젠 ‘부릉산’으로 향할 차례이다. 하지만 이정표(옻배움터↑ 2,510m/ 금강3교 입구← 1,545m/ 송골갈림길↓ 615m)에는 부릉산이 나타나 있지 않다. 대신 선두대장의 방향표시지가 길을 인도한다. 북서쪽 능선, 그러니까 폐 벙커가 있는 ‘옻배움터(옻을 이용한 다양한 체험 제공)’ 방향으로 따라 오란다.
▼ 벙커를 지나자마자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얼마나 가파른지 왔다갔다 ‘갈 지(之)’자를 쓰고 나서야 겨우겨우 고도를 낮추어 간다. 길의 흔적이 또렷한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렇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길의 흔적만 쫓다가는 부릉산이 아니라 이정표가 가리키던 ‘옻배움터(청마리)’로 내려서버리니 말이다. 이곳에서는 북서쪽 방향의 능선을 이어간다는 목표를 세우고 길을 내가며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 갑자기 희미해져버린 길 때문에 헷갈려하고 있는데, 오른편 산비탈에 매달리다시피 내려가고 있는 ‘초이스’님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는 5천 개도 넘는 전국의 산을 오른 전문가다. 그러니 진행방향을 놓고 망설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내려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길의 흔적은 보이지만 벼랑에 가까운 산비탈인데다 참나무 낙엽까지 수북이 쌓여 미끄럽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네 발에 스틱으로도 모자라 엉덩이의 힘까지 빈 다음에야 겨우겨우 내려설 수 있었던 이유이다.
▼ 목숨을 걸다시피 한 악전고투를 20분 이상이나 치렀는데도,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져 버렸다. 능선이 아니라 민가 두어 채가 들어선 골짜기로 내려서버린 것이다. ‘옻 배움터’로 유명해진 청마리의 자연부락인 ‘차돌바위골’인 모양인데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단 말인가. 하긴 아까 같은 상황에서는 전문 산꾼인 ‘초이스’님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초이스님을 뒤따라가며 잠깐이지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길도 나있지 않는 저런 산비탈을 기어오르는 것보다 요 아래 청마리에 있는 ‘제신탑(祭神塔, 충북 민속자료 제1호)’을 찾아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이다. 제신탑이란 ‘탑신제당(塔身祭堂)’이라고도 불리는 민속신앙 유적으로 그 기원이 마한(BC2-AD4)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탑신당(塔神堂)·솟대·장승·산신당 등으로 구성된 유적이 청마리에 있다는데, 그런 문화유적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 10분 쯤 골짜기를 헤매다가 산비탈을 치고 오르기로 했다. 물론 길은 없다. 거기다 벼랑에 가까울 정도로 가파르기까지 하다.
▼ 네 발로 기어오르는 것만 해도 버거운데 가시넝쿨은 왜 이리 많은지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40분간이나.
▼ 끝없는 악전고투에 체력이 바닥 날 즈음에야 능선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희미하나마 제대로 된 산길을 만났다. 거기다 사람까지. 우리처럼 길을 잃고 헤맸다는 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동병상린(同病相燐)이랄까?
▼ 나뭇가지에 꽂혀있는 강송산악회의 ‘방향표시지’가 하도 반가워 카메라에 담아봤다. 논어의 첫 구절에 나오는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나 할까? 아무튼 멀리서 찾아온 친구만큼이나 반가웠다.
▼ 이후의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이어진다. 봉(峰)과 봉 사이의 골이 깊지 않은데다 경사까지도 완만해서 힘들지는 않다. 하지만 체력이 이미 바닥나버렸으니 어찌할까나. 초이스님과 나이 지긋한 또 다른 일행이 저만큼에서 달아나고 있는데도 쫓아가지 못하는 이유다.
▼ 묘비에 적힌 문구가 눈길을 끌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가선대부(嘉善大夫)라면 종2품에 해당하는 조선시대의 품계. 썩 낮지 않은 벼슬살이를 한 나조차도 오르지 못했던 자리다. 그런 이의 묘를 이런 오지에다 쓴 것으로도 모자라 방치까지 하고 있으니 어찌 눈길을 끌지 않았겠는가.
▼ 길은 썩 편치가 않았다. 일 년에 한두 사람이나 다닌 듯 산길이 온통 잡목과 넝쿨식물로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찔리거나 할퀴는 것은 기본. 재수 없으면 따귀까지 맞아가며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 반가워야 할 명감나무도 오늘은 별로다. 저 열매를 이용해 잡은 들·날짐승이 꽤 되기에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아니다. 이곳까지 오면서 생긴 할퀴고 찔린 자국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어찌 좋은 기억이 떠오를 수 있겠는가.
▼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20분. 능선으로 올라선지 25분 만에 ‘마티 갈림길(선답자의 글에서 찾아낸 지명이다)’을 만났다. 높이 402m(앱에 나타난 수치다)의 이 봉우리에서 동명(同名)의 이봉(異峰)인 ‘부릉산’으로 가는 길이 나뉜다.
▼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겠다는 ‘허총무’님. 그녀도 이젠 내로라하는 산악인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광주지역 산악인들의 대부로 알려지는 고 ‘백계남’선생의 것과 함께 걸려있는 그녀의 표지기가 그 증거라 하겠다.
▼ 또 다시 이어지는 오르내림은 버거워진 듯한 느낌이다. 기껏 저 정도의 산봉우리를 버거워한다는 것은 그만큼 지쳐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힘들게 10분 정도를 더 진행하자 드디어 ‘부릉산’ 정상이다. 하지만 고생고생해가며 찾아온 산치고는 무척 초라한 모습이었다. 정상석이나 삼각점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조차도 눈에 띄지 않는다. 기껏 이 정도를 보려고 그 고생을 했다는 게 후회될 정도이다.
▼ ‘서래야 박건석’ 선생의 정상표시 코팅지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끔은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지명을 접하기도 하지만, 나처럼 이력이 덜 붙은 산꾼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는 표식이다. 고인이 되신 ‘한현우’ 선생님께서 매달아놓은 정상표시지도 눈에 띄었다. 두 분과 함께 산행을 하던 게 꼭 엊그제 같건만 벌써 옛날 일이 되어 버렸다.
▼ 솔가리가 수북이 쌓인 산길은 폭신폭신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걷기에 편했다. 하지만 이미 지쳐버린 내 걸음은 그마저도 더디기만 하다.
▼ 무뎌진 발걸음으로 7분쯤 더 진행하면 이번에는 ‘헬기장’이다. 하지만 헬기장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조망이 트이지 않는다. 그냥 지나쳐버리는 이유이다.
▼ 헬기장을 끝으로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오르막 구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내리막길이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내리막길이라고 해서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가파른데다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헤집어놓은 구덩이가 갈 길 바쁜 나그네의 발길을 자꾸만 붙잡았기 때문이다.
▼ 내려오는 도중 ‘압촌마을’의 메타세쿼이아 길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를 시공할 때 심어놓은 조경수라는데, 50년을 자라 이제는 담양의 것 못지않게 됐단다. 다만 길이가 좀 짧다는 게 흠이라고나 할까?
▼ 정성들여 구축한 벙커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시멘트 구축물이 아니라 작은 돌멩이를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그것도 쌍으로 둥그렇게 쌓은 다음 지하 터널로 연결시키는 등 예술성까지 더했다. 보기는 좋지만은 우리네 자식들은 저걸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을꼬.
▼ 부릉산에서 하산을 시작한지 25분. 진행방향 저만큼에 옛 경부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인다. 험난했던 산행이 끝나가는 것이다.
▼ 산행날머리는 ‘금강2교’(옥천군 동이면 금암리)
옛 고속도로에 내려선 다음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잠시 후 금강2교에 이르면서 산행이 끝난다. 오늘 산행은 4시간이 걸렸다. 앱에 찍힌 거리는 8.39km. 길을 잘못 들어선 덕분에 남들보다 1.5km 정도를 더 걸었다. 시간도 물론 1시간 정도가 더 걸렸다. 험난했던 산행이라 하겠다. 하지만 고진감래랄까 강송산악회에서 제공한 닭백숙은 이 모든 것을 보상하고도 남았다. 거기다 함께 고생한 두 분과 반주까지 나누었으니 이 아니 즐거울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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