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9일 연중 제26주일 복음 묵상 (마르 9,38-43.45.47-48) (이근상 신부)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마르코9,38-40)
그때 구마사들은 마귀를 쫓는 의식을 수행할 때, 어떤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아브라함이나 솔로몬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낸 것이다. 그런 이들 중에 어떤 이가 예수님의 이름을 구마 의식에 사용했나보다.
이에 대한 제자가 그 일을 막은 이유가 재미있다. 구마사가 '예수' 따르는 자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저희(복수)를 따르는 자가 아니어서 그를 막고 있다.
예수는 그 이름, 곧 그 뜻에 따른 삶이라면 비록 예수의 무리 바깥이어도 기꺼이 계속해서 살아있으라 축복한다. 주님의 너그러운 축복은 오늘 우리 교회가 따라야할 모범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너그러움만을 말하지 않는다.
마태복음의 뒷부분에는 예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였으며 예수를 주님이라 부른 이들이 내쳐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이 굶주리고 갇힌 이들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의 무리에 있느냐 아니냐보다, 예수의 이름, 그 뜻을 따르는 삶이 더 중요하다. 그 뜻은 가장 가난한 이들과의 관계에 달려있다.
어떤 급진적인 이념 이야기가 아니다. 복음이 전하는 명료한 선포다. 그래도 뭔가 '우리 교회'가 더 거룩하고 소중한 것이라 한마디 덧붙이며 신자들을 격려해야 할 것같은 마음. 이 마음은 믿는 이들을 깔보는 유혹이리라 믿는다. 귀하고 거룩한 초대로 기뻐하는 이는 차고 넘치는 은총의 너그러움에 당혹할 이유가 없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2titWt9PHrNLkh2krbvzJWH2rSyGdQwsbeiCWkP6K5NqqXGs6cz756pK2LFxsVGyb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