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색: 크림옐로에 핑크빛 도는 복륜
특징: 모난 꽃잎, 고심 형, 찻잔 형, 큰 송이, 중향, 사계절성
육성: 1935년, Francis Meilland (1945년, Conard-Pyle 미국 보급), 프랑스
큼직한 크림색 꽃 중심부가 통 모양으로 약간 두드러져 오렌지옐로로 물들고 꽃잎 가장자리를 따라 핑크빛 복륜이 부드럽게 돌아간다. 오렌지와 노랑, 다시 우윳빛 흰색이 어울린 은은한 형체 속에 꽃잎의 윤곽이 분홍으로 떠올라 신기하게 맞물린다. 지름 12〜15cm, 박력 있는 큼직한 꽃에 후광처럼 신비한 파스텔 톤... 바로 위엄차고 당당한 왕자의 품격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장미‘, ’영원의 명화‘, ’기적의 장미‘ 등 찬사가 수도 없는데 과연 그 표현이 아깝지 않은 ’명화중의 명화‘다.
피스의 출현은 장미 개량의 역사에도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가든파티, 더블 딜라이트, 두프트볼케, 컨피던스, 크로넨버그 등 쟁쟁한 품종을 포함해 400종 이상이 자손으로 태어났으며 이들을 통틀어 ’피스 패밀리(Peace family)‘라고 부른다. 기온 일조량 등 조건에 따라 색상이나 명암에 변화가 생기는데 햇빛이 부족하면 분홍색 복륜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달콤한 과일향이 있으나 강하지 않으며 가시의 크기는 보통 정도다. 나무 높이는 1.2~2.0m, 반 직립성으로 수세가 놀랄 만큼 강해 처음 시작하는 사람도 쉽게 기를 수 있다. 이 장미를 개발한 프란시스 메이양(Francis Meilland)은 프랑스의 명문 육종회사, 메이앙(Meilland)을 창설한 앙트와느(Antoine) 메이앙과 그의 부인 클라우디아(Claudia) 사이에서 1912년 태어났다. 프란시스는 붉은 복륜의 노란 색 장미를 육성하기 위해 1935년부터 연간 800이 넘는 품종을 교배했으며 1939년에 분류번호 ’3-35-40‘인 이 꽃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해 8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프랑스는 독일에 항복하고 1939년 메이앙이 사는 리옹(Lyon)도 나치스에 점령된다. 그 직전 프란시스는 이 장미의 묘목을 이탈리아, 독일, 터키,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내 보존을 부탁했으며 1942년에는 고인이 된 모친을 기려 ’마담 앙트와느 메이앙 (Madame A. Meilland)‘이라는 이름을 붙여 꽃을 발표했다. 이것이 프랑스의 공식적인 품종명이다.
전쟁의 격화로 묘목을 받은 각국 원예사들은 연락이 끊겼지만 자기나라 이름으로 장미를 길러냈으며 성공리에 판매를 이어갔다. 독일에서는 ’Gloria Dei, 이탈리아에서는 ’Gioia이라는 이름인데 ‘Peace’를 합쳐 도합 네 개의 명칭이 생겨난 것이다. ‘Peace’라는 이름은 1945년 4월29일 판매권을 갖고 있던 코너드 파일사(Conard Pyle Co)에 의해 꽃이 미국에서 발매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이 회사의 로버트 파일(Robert Pyle)은 이해 5월 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국제연합 창설회의에 참석해 “이 장미는 독일의 수도 베를린(Berlin)이 함락된 4월29일, 미국 패서디나 (Pasadena)에서 열린 태평양장미협회 전국대회에서 ‘Peace’라고 이름이 정해졌다. 이 장미로 인하여 전 세계에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이 정착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경위를 밝혔으며 49개 참가국 대표에게 ‘평화의 꽃’ 한 송이씩을 전했다고 한다. 수상경력도 무척 화려하다. 1942년 프랑스 리옹(Lyon)의 국제장미콩쿠르에서 1st Prize와 Gold Medal, 1944년 미국 포틀랜드(Portland) 국제장미콩쿠르 Gold Medal, 1946년 전미 로즈셀렉숀 AARS(All-America Rose Selections), 1947년 미국 장미협회(ARS)에서 National Gold Medal Certificate, 영국 왕립장미협회콩쿠르 RNRS에서 Gold Medal, 1965년 네덜란드 헤이그(Hague) 국제장미 콩쿠르에서 Gold Medal과 Golden Rose를 받았으며 1976년 영국 Oxford에서 개최된 제3회 세계장미연맹(WFRS)에서 선출돼 명에의 전당(The Rose Hall of Fame)에 오른 최초의 장미가 되었다. 세계장미연맹(WFRS-2022년 현재 37개국)은 3년마다 회의를 열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명화’를 가려내 ‘명예의 전당‘에 올린다. 제1~2회에는 선출된 장미가 없었고 1976년의 제3회 피스부터 시작하여 2018년 제18회 대회까지 17개 품종이 선정되었다. 이 중 두 품종(두프트볼케, 더블 딜라이트)이 피스에서 피를 받은 후손이다. 수많은 장미 품종, 그 정점에서 군림해온 Peace도 태어난 지 80년이 돼온다. 성능의 퇴화가 상당하다는 의견이 요즈음 심심찮게 들려온다. 족히 20cm는 넘어 보이던 크기, 오로라처럼 황홀하던 색조의 느낌, 갓 만든 솜사탕같이 닿으면 터질 듯한 부드러움, 이 품종을 처음 키워봤던 1960년대 후반의 감동에서 보면 작금의 Peace는 확실히 축소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압도하는 명화의 품위는 아직도 굳건하여 흔들림이 없다.<2026.5.17. 올림픽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