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周에서 진시황까지(춘추전국 시대)
周나라가 쇠약해지고, 진시황이 통일할 때까지의 시기를 ‘춘추전국’ 시대라고 한다. 춘추나 사기에 기록한 중요한 역사가 만들어진 시기이다. 全國七雄의 영웅 이야기가 있고, 제자백가들이 설치고 다니면서 중국 문화의 뿌리를 다듬던 시기이다. 우리는 전국칠웅이라는 영웅 이야기보다는 사회가 어떠하였는지를, 문화라는 안경을 끼고 살펴보자.
하상주라는 수 천 년 간 형성된 고대사회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정치, 사회, 경제, 문화가 나타난 진-한 시대로 연결시켜 준다. 고대사회라는 원시사회는 뿌리가 씨족사회이다. 씨족이 부족으로, 다시 부족연맹, 국가로 발전하면서도 씨족사회의 질서는 그대로 유지된다. 종법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국 시대에 이르면 종법에 의한 통치는 도전받는다. 종법 질서는 흔들렸지만 공자가 종법을 손보아서 도덕률로 수용하였다. 도덕률로 수용하면서 ‘德’의 개념으로 가져왔다. 德을 숭상한다는 기록이 많다는 것은, 德이 모자라서 갈망하였다는 뜻도 된다. 전국 시대는 폭력이 난무한 시대이지만, 폭력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도 보여준다. 왜냐면 중간 시기인 戰國시기에는 속임수를 소중히 여기고,(유세객이 설치고 다녔다.) 기능을 높이 산 시대라는(덕은 없이 재주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기록이 많다.(수단과 방법을 따지지 않고 결과를 소중하게 여겼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영웅적 인물이 전국칠웅(전국시대의 일곱 나라)을 이끌고 지탱한 인물이다 (7국의 왕이)7웅들이 최고 권력자가 되려고 칼을 휘두르고 싸우느라 주왕실괴 봉건 제후국 간의 질서(상하 질서)는 깨어져버렸다.
먼저, 종법이 질서의 중심이었고, 봉건제도가 살아 있었던 주나라의 사회를 조금 보자. 주는 최고의 권력을 가진 우두머리로 천자가 있고, 그 아래의 귀족은 경, 대부라고 했다. 경-대부의 아래에는 士가 있다. 서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은 토지 소유권을 없이 경작만 하였다. 성도 없었고,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주왕조 때에, 주에 정복당한 상나라 사람은 장사를 하여 밥먹고 살았다. 그래서 주나라 사람은 장사꾼을 상나라 사람이라는 뜻으로 상인(商人)이라고 불렀다. 정복당한 사람이라는 뜻인 상인을 지배층이 더 많이 경멸하였다고 한다.(일제 강점기 때의 조센징도 그런 뜻이 있다.)
제사 때 순장하는 관습은 상나라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순장 풍습이 있었다.
주나라의 통치 기법은 봉건제도였다. 신석기 시대의 씨족사회 유습이 강하게 남은 것이다. 주나라가 그대로 가져왔다. 주나라 제도를 모델로 한 유가들은 고집스럽도록 씨족 질서에 매달렸다. 춘추전국시대는 각 제후국들이 종묘사직을 유지하려고 발버둥 친 것도 씨족을 보존하려는 욕망 때문이라고 하였다.(씨족은 귀족 가문을 유지시켜주고, 내가 귀족 가문 안에 남아 있으면 특권을 유지할 수 있다. 요즘에 국회의원 되려고 기를 써듯이) 유가들은 주나라 제도를 모델로 하여 확대시키려 하였다.
춘추좌전에
“천자는 건덕(建德)할 때 그의 출생지명을 쫓아 姓을 하사하고, 봉토에 따라 씨(氏)를 내린다. 제후는 신하에게 그의 자(字)로서 시호를 정하는데, 후손들은 그 시호로서 씨족의 이름으로 삼는다. 또 대대로 벼슬하여 공이 있으면 그 벼슬로 족명을 삼거나, 봉읍(封邑)의 이름으로 족명을 삼는다.”
建德은 본래 ‘덕 있는 사람으로 제후로 삼는다.’는 뜻이다. 이 말은 ‘조상신의 덕을 계승한 씨족집단의 장을 제후로 삼는다.’와 같은 뜻이다. 씨족집단이라면 조상신에게 제사를 올릴 수 있는 家門이다. 우리의 의식으로 이해하자면 ‘양반 가문’에서 발탁한다는 뜻이다.
굳이 씨족집단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의 성씨와는 다르다. 적어도 조상신에게 제사를 올릴 정도의 가문이라면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노동력 동원이 가능하고(노비가 있다는 뜻이다.)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무력도 지녔다는 뜻이다.
춘추전국 시대가 되면 씨족의 생명력인 농사와 무력을 가져야 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德이란 씨족의 유지-보존에 필연적인 조건인 농사와 무력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건덕은 바로 제사를 통하여 씨족의 번식과 무력을 갖춘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천명(天命)을 알아보자. 말 그대로 하면 하늘의 명이다.
周 왕실은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제사권과 군사권을 가져야 한다. 왜냐면 기본적으로 뿌리가 씨족의 질서가 뿌리이기 때문이다. 하나라의 건국 시조 우에게 성씨를 내리는 배경을 國語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하늘이 우의 공적을 높이 싸서 그로 하여금 천하를 얻도록 도와 주고, 요는 그에게 사(姒)라는 성과 유하(有夏)라는 씨를 내렸다. 이는 그가 치수라는 위대한 공적을 이용하여 천하의 만물이 풍성하게 자라도록 했기 때문이다.”
우는 치수사업의 공을 세워 하늘로부터 천자의 지위와 함께 사라는 성씨를 부여받았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 바로 천명(天命)이다. 치수라는 세속의 일로, 하늘이 천명을 내렸다는 거다. 세속에서 이룬 일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주왕조가 상왕조의 왕위를 찬탈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천명의 개념을 세속화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천의 개념을 새롭게 세우므로 상의 帝 사상에 변화를 가져왔다.
주나라 사람들은 더 이상 上帝나 帝의 권위를 벗어버렸다. 상제나 제의 신앙에는 주술적인 요소들이 많다. 그러나 천의 개념에는 주술적인 요소를 버리고(주술은 고대 종교의 방식이고, 주술은 금기를 풀어주는 형식이다. 금기 사상을 버리고) 도덕적인, 德이라는 개념을 가져왔다. 이제는 조상신을 잘 모신(제사를 잘 지낸)다고, 말하지만, 그 씨족의 후예라는 이유로만 음덕을 바랄 수는 없다. 이제부터는 천명을 바라기 위해서는 덕을 쌓아야 했다. 이것을 國語에서는 이렇게 정리하였다. ‘天道는 특별히 친한 사람이 없다. 오직 德行이 있는 사람을 골라서 복을 내린다.’
天道無親과 唯德是授라는 말로 요약하였다.
그러나 역사학자는 주는 은(상)에 반역하여 왕권을 뻬앗았다고 말한다. 주는 지신이 찬탈자가 아니고 천명에 의하였다고 줄기차게 홍보하였다. 유가 사상이 중국의 중심 사상이 되므로, 주의 홍보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