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의 우주, 나의 법칙 우리가 만족할 정도의 자유의지를 갖기 위해서는 결정론과 무작위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야 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하면서 동시에 결정론적(즉, 무작위적이지 않은) 효과를 낳아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아이가 들어갈 학교를 마음대로 선택하길 원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면 물리법칙(그리고 생물학, 사회학의 법칙)에 따라 아이가 더 좋은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 믿고 싶어 한다. 즉, 어느 정도의 결정론이 밑바탕이 되어주지 않으면 자유의지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물리학 연구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자연의 어떤 측면을 연구할지 결정할 선택권이 내게 있다고 믿고 싶다. 예를 들면 한 입자에서 위치와 속도 중 어느 쪽을 측정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내가 결정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자연이 어느 정도는 결정론적인 행동을 보이기를 원하는 마음도 있다. 그래야 내가 선택해서 측정한 것으로부터 물리학의 법칙들을 추론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사실 우리가 양자역학의 기본 방정식을 추론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유일하다는 것 자체가 그 방정식들이 뉴턴 물리학의 방정식처럼 완전히 결정론적임을 의미한다.
5. 생물학의 카지노 생물학적 행운은 그저 우리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것은 자연계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친다. 생존할 적자가 노구인지는 무작위성을 발생시키는 능력에 의해서도 결정될 수 있다. 이런 무작위성이 포식자를 피하거나, 병원체의 진화방식을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작위 돌연변이가 제공해주는 유연성이 없다면 생명은 미래에 지구가 던져줄 도전에서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
진화는 돌연변이의 형태로 우연한 사건에서 시작된다. 그렇다고 아무 돌연변이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와는 거리가 멀다. 어떤 돌연변이가 살아남아 퍼질 것인지는 자연선택에 달려 있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우연은 기발한 것이든 말도 안 되는 것이든 온갖 아이디어들을 떠올리는 창조적인 파트너인 반면, 자연선택은 효과가 있는 것만 가차 없이 골라내는 대단히 실용적인 파트너다. 희망을 싣고 온 운석 약 1억 년 정도마다 거대한 것이 지구를 강타한다. 만약 그 일이 지금 일어난다면 우리를 모두 싹 쓸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마지막으로 일어났던 충돌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약6,550만 년 전에 직경 10km 정도 되는 운석 하나가 오늘날의 멕시코 지역에 있는 유카탄 반도를 강타했다. 탄소와 황 성분이 풍부한 기체가 폭발한 바위층에서 분출하면서 범지구적 재앙을 촉발했다. 여기저기 불꽃이 솟아오르고, 하늘은 암흑으로 변하고, 지구가 냉각되고, 산성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불과 몇 달 만에 공룡들은 죽고 말았다. 암모나이트, 대부분의 조류, 육상식물을 비롯해서 바다를 헤엄치고 하늘을 날던 다른 거의 모든 파충류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반면 포유류는 이야기가 다르게 전개됐다. 포유류 역시 종의 절반 정도가 멸종했지만 여기서 살아남은 포유류는 체구가 작고, 번식이 빠르고, 재주가 많은 동물이었고, 이 충격으로 풍부하게 생겨난 동물 사체 등을 먹고 살 수 있었다. 이들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거나 숨어서 불길과 산성비를 피할 수 있었다. 이들은 민물 생태계 안이나 그 주변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민물 생태계는 죽은 생물체의 유기물질이 꾸준히 유입되었기 때문에 바다나 육지보다 재앙에 직면했을 때 회복탄력성이 더 뛰어났다. 이 생존자들이 결국 지구를 물려받게 된다. 생물권이 점차 회복됨에 따라 포유류는 공룡이 차지하고 있다가 비어버린 생태적 지위를 점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해양파충류의 생태적 지위까지도 차지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