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는 꽃들이 / 임경섭
언젠가 피어 있었다
블라인드 로프를
한번씩 당길 때마다
몸을 부풀리는 볕
볕과 함께 밖은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잡초 무성한 화단
가운데 꽂혀 있는 어린 모과나무
가지가 흔들리면 거기
바람이 꼭 그만큼 지나가고 있었고
지나간 것들을 향한 손짓이
앙상하게 흔들리며 안으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손짓은 방향을 잃고
가야 할 때와 와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했다
어린 모과나무 그림자만
방향을 잃지 않고 꼿꼿이
꽃 없는 화단 너머
공터 쪽으로 누워 있었다
공터 위로는 허공이 가득했다
블라인드 로프를
다 잡아당기자 더 이상
몸을 부풀리지 못하는 볕
볕을 따라 공터는
어느새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밖을 들여놓은 안은
밖으로 가득 찼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계간 《창작과 비평》 2018년 겨울호
------------
임경섭 / 1981년 강원도 원주 출생. 2008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당선. 시집『죄책감』『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챗GPT분석(참고용)
1. 제목의 의미 – 「꽃밭에는 꽃들이」
제목은 단순한 진술처럼 보이지만, 시의 내용과 연결하면 결핍과 부재의 역설을 암시합니다.
시의 후반부에서 **"꽃 없는 화단"**이라는 표현이 나오면서, 실제로 꽃밭에 꽃들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즉, 제목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재한 상태, 즉 ‘공(空)’의 개념을 암시하는 장치가 됩니다.
또한, 과거에 피어 있었던 꽃을 회상하는 시적 태도를 반영하며,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를 탐구하는 불교적 사유로 연결됩니다.
---
2. 주제
이 시의 주제는 **공(空)과 무상(無常)**입니다.
밖(外)과 안(內), 존재(有)와 부재(無)의 상호작용을 통해 ‘실체가 없는 것’(공空)의 개념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블라인드를 올리고 내리는 행위는 빛(볕)의 출입을 조절하면서, 안과 밖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우리가 실재한다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어린 모과나무는 변화를 겪으며 바람을 맞지만, 그림자는 변하지 않는 방향성을 가집니다.
이때, 그림자는 공(空)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집착하는 자아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밖을 들여놓은 안은 밖으로 가득 찼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라는 마지막 구절은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의 허상성과 무상함을 강조합니다.
---
3. 상징 분석
꽃밭 → 삶의 아름다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사라진 것(무상)
볕(햇빛) → 실체가 없는 진리,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공(空)의 속성
블라인드 로프 → 인식의 통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주관적 앎의 조절
어린 모과나무 →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은 존재, 변화하는 개체
바람 → 무상(無常), 지나가는 것, 실체가 없이 작용하는 요소
손짓 → 과거를 향한 집착, 기억과 감정의 미련
모과나무 그림자 → 집착과 고정된 사고, 그러나 방향성은 잃지 않음
공터 → 실체가 없는 공간, 공(空)의 세계, 모든 것이 사라지는 자리
허공 → 절대적인 공(空), 실체가 없는 존재의 본질
---
결론
이 시는 불교의 공(空) 사상을 시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사라진 것(꽃, 볕, 손짓)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이 대조됩니다.
결국, 밖과 안, 존재와 부재, 빛과 그림자, 꽃과 화단 등의 대비를 통해,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구절인 **"밖을 들여놓은 안은 밖으로 가득 찼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실은 공(空)이라는 불교적 깨달음을 함축합니다.
**"공터 위로는 허공이 가득했다"**라는 구절 또한, 결국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가 허상임을 보여주는 깨달음의 순간을 의미합니다.
즉, 이 시는 우리의 세계가 무상(無常)하고 공(空)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과 그 허망함을 섬세하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