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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9일(월)
* 시작 기도
(대하 34:33)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들을 다 제거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주님...
하나님의 사람 곧 예수를 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요시야와 같이 사람들을 의로운 곳으로 인도하여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곧 선민이라도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을 잘 압니다.
오늘 이 종 또한 요시야와 같이 하여야 하지만 나는 너무나 연약하여 잘 넘어지는 자입니다.
하여 나 자신을 내가 잘 압니다.
이런 나를 불쌍히 여기사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나의 의로 나를 드러내려 하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오늘도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25년도의 마지막 주간입니다.
주만 바라보오니 긍휼의 옷으로 덮으소서.
지권사님이 이석증으로 어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 증세가 상당히 심한 것 같은데 성령님의 치료의 광선을 허락하시어 회복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수 24:1-13
제목 :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4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고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5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들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내었노라.
6 내가 너희의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바다에 이르게 한즉 애굽 사람들이 병거와 마병을 거느리고 너희의 조상들을 홍해까지 쫓아오므로
7 너희의 조상들이 나 여호와께 부르짖기로 내가 너희와 애굽 사람들 사이에 흑암을 두고 바다를 이끌어 그들을 덮었나니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을 너희의 눈이 보았으며 또 너희가 많은 날을 광야에서 거주하였느니라.
8 내가 또 너희를 인도하여 요단 저쪽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매 그들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매 너희가 그 땅을 점령하였고 나는 그들을 너희 앞에서 멸절시켰으며
9 또한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일어나 이스라엘과 싸우더니 사람을 보내어 브올의 아들 발람을 불러다가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10 내가 발람을 위해 듣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오히려 너희를 축복하였고 나는 너희를 그의 손에서 건져내었으며
11 너희가 요단을 건너 여리고에 이른즉 여리고 주민들 곧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의 손에 넘겨주었으며
12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13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
* 나의 묵상
여호수아를 필두로 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소유로 받은 기업에서 살고 있었다.
물론 아직 그 땅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지파들도 있었지만 이제 그 미정복지는 각 지파별로 각자가 그 남은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정복하여야 했다.
그런 사이 여호수아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날이 머지않았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세겜에 모으고 그들에게 하나님 여호와께서 어떻게 지금까지 인도해 오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에 살면서 우상을 섬겼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그곳에서 이끌어 내어 그에게 자손과 가나안 땅을 주기로 약속하셨고 그 자손을 번성케 하기 위하여 이삭을 주셨다.
이삭에게는 에서와 야곱을 주셨는데 에서는 세일산을 소유로 받았고 야곱은 그의 자손들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그들에게 보내셨고 또한 그 땅 애굽에 재앙을 내려서 그들을 출애굽 시키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그들을 쫓는 애굽 사람들은 병거와 마병과 함께 바다에 수장시키셨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요단 동편 아모리 족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싸워 이기게 하셨고 그들은 멸절시키셨다.
그곳에서 모압 왕 발락이 거짓 선지자 발람을 고용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저주를 듣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이스라엘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셨다.
요단을 건너 가나안 7족속을 이스라엘 손에 넘겨주셨다.
또한 아모리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쫓아내었는데 이런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칼이나 활로 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이 수고하지 않은 땅과 성읍을 주셔서 거기서 거주하게 하시고 더욱이 그들이 심지 않은 포도와 감람 열매를 먹게 하셨다.
여호수아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슨 말을 할까 고민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가장 중요한 시간과 자리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신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에 대한 그분의 이야기를 한다.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사람이 한 것 같은 일이지만,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셨음을 고백하며 모든 功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사람이 한 일은 눈에 보이는 사실이나, 하나님의 역사는 진리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의 모든 삶의 여정 역시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진리 앞에서 우리는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여호수아는 오늘 짧은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언급하고 있다.
곧 이스라엘의 역사는 다름 아니라 그분의 역사요 또한 그분의 이야기이다.
history = His story로써 역사는 그분 곧 하나님의 이야기인 것이다.
여호수아는 자기가 7년여에 걸쳐 가나안 정복 전쟁을 진두지휘하며 사명을 완수했던 자기의 무용담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를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과연 나는 나를 이야기하는가 아니면 나를 사용하신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예전 한국에서 목회할 때 나는 자의든 타의든 일주일에 최소 열 번 이상 설교를 하였다.
이 설교 시간에 무엇을 말하여야 할지에 대하여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다.
어떻게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칠 것인가?
성도들에게 무슨 설교를 해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것인가?
그들을 어떻게 위로해 줄 것인가?
이런 고민들로 보낸 시간들이 허다하였다.
나는 매 설교 때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설교가 아니라 성도들이 듣기 원하는 설교, 성도들의 입장에서 은혜 받을 만한 설교, 성도가 중심이 된 위로와 격려의 설교를 하였다.
나는 그것이 설교라고 생각하였다.
물론 설교는 은혜도 있어야 하고, 감동도 있어야 하며, 위로와 격려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설교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기를 원하시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지, 사람들 중심의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기 원하시는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어 설교하였다.
그러니까 성도들이 은혜는 받고 눈물도 흘리고 위로도 받는다.
하지만 그 안에 생명은 없었다.
그런 그들은 영생을 누리며 살지 못했다.
그저 주일에 예배하는 목적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특히 자신에게 있었다.
일주일동안 힘들고 고난 속에서 살았던 자신들이 위로받고 격려받고 은혜받으면 그만이었다.
성도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이 좋아하는 말을 해야하는 목사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전하기 원하시는 복음을 전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복음은 단순히 위로와 격려, 마음에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복음을 몰랐기 때문에 오직 사람들 위주의 설교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목자가 아니라 죽기에만 합당한 삯군이었던 것이다.
이런 나는 지금부터 10여 년 전에 복음을 듣고 깨달았다.
진짜 목사가 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 후로 나는 바뀌었다.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설교,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설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복음을 전한다.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면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런 짜릿함은 없을지 모르나 복음은 생명으로 이끄는 능력이 있다.
겉으로 볼 때는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기에 사람들이 변화되고 매일 말씀묵상을 통하여 주님과 교제를 하며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예수님을 예표한다.
예수님 역시 공생애 기간 동안 어떠한 경우도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벗어나 자기 뜻대로 하신 일이 없다.
오직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셨으며, 아버지의 명령을 좇아 행하셨다(요 6:38-40 ; 15:10 ; 12:49-50).
주님께서도 그리 하셨는데 하물며 나야 두 말 해 무엇하겠는가?
내가 내 말을 한다한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의 이야기를 한다 한들 그 역시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신 그분의 이야기임을 믿는다.
그런데 나는 진리 앞에 선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상적 사실 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자였음을 고백한다.
이제는 진리 앞에서 나를 인도하신 그분의 이야기를 한다.
오직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하여 이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어 날마다 말씀 앞에서 영생을 누리길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저는 목사가 되면 설교를 만들어서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감동을 주고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말하여 위로와 격려를 하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은혜로운 설교를 베끼기도 하고 짜깁기를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설교가 아니라 개밥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먹으면 입에는 달콤한 것 같으나 결국 배에서는 쓰디쓴 독약이었습니다.
주님, 나에게 맡겨주신 양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이 아니라 이런 쓰레기를 먹였던 나는 그저 죽기에만 합당한 그런 자입니다.
결국 목회하던 교회는 풍비박산이 되고, 지금은 쫓겨오듯 이곳 베트남에서 작은 그것도 아주 작은 한인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목회의 규모가 아니라 몇 명이 모이든지 그들에게 생명으로 인도하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참 목사임을 압니다.
따라서 이제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증거하여 그들에게 살아 있는 아들의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눈치를 보며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만 증거하는 자로 살기 원합니다.
나를 자랑하지 말게 하소서.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말하지 말게 하소서.
육신의 위로와 격려라는 유혹에 넘어가지 말게 하소서.
오직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복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영생의 비밀만 말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