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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의 심판, 다카이치 60% vs 이재명 20%
AI Policy Designer
2026 7 10
왜 일본 청년은 다카이치를 지지하고, 한국 청년은 민주당을 외면하는가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청년층에서 6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을 선택했던 2030세대마저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
많은 정치인들은 이를 보수화 또는 우경화로 해석하지만 본질은 다르다.
오늘날 2030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미래의 문제로 정치를 바라본다.
일본 청년들은 다카이치에게서 국가가 자신의 일자리와 안전, 미래를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를 본다.
반면 한국 청년들은 민주당에서 과거의 정치투쟁과 기득권화된 권력의 모습을 본다.
다카이치는 청년에게 보호자를 자처했고, 민주당은 청년에게 이해와 동의를 요구했다.
다카이치는 미래를 이야기했고, 민주당은 과거를 이야기했다.
다카이치는 국가의 책임을 강조했고, 민주당은 정치적 정당성을 설명했다.
결국 2030은 진보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성과 없는 진보, 훈계하는 진보, 기득권화된 진보를 거부한 것이다.
이 글은 왜 일본 청년은 다카이치를 지지하고 한국 청년은 민주당을 외면하는지 그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가 다시 청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핵심 결론은 단 하나다.
2030은 민주당을 떠난 것이 아니다. 민주당이 2030의 미래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본문
일본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취임 8개월이 지나도록 60퍼센트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젊은 세대다. 다카이치 내각에 대한 평균 지지율은 30대에서 75퍼센트 18세에서 29세에서 74퍼센트에 달했다. 최근 조사에서도 20대와 30대의 지지율은 다른 연령층보다 높았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을 선택했던 2030세대가 집권 이후 민주당과 정부에서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청년위원회와 청년 최고위원 부활을 논의하고 있지만 청년들이 민주당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민주당을 개혁 정당이 아니라 꼰대 기득권 정당이라고 부르고 진보 정당이 아니라 부자를 위한 극좌 정당이라고 평가하는 청년까지 등장했다.
일본의 다카이치와 한국의 이재명은 모두 집권 지도자다. 두 사람 모두 경제 성장과 국가 경쟁력 안보와 미래 산업을 강조한다.
그런데 왜 일본 청년은 다카이치를 지지하고 한국 청년은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 냉담한 것일까.
그 차이는 단순히 보수와 진보의 차이도 아니고 여성과 남성의 차이도 아니다.
더 근본적인 차이는 정치가 청년의 불안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방식으로 응답하느냐에 있다.
일본 청년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가
일본 청년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 일본의 젊은 세대는 정당 활동이나 정치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투표율도 고령층보다 낮다. 그러나 정치 참여가 낮다고 해서 국가 운영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 청년이 정치와 거리를 두는 이유는 정치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참여로 정치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에 강한 애착을 갖기보다 정부가 경제와 안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를 바란다.
이들에게 이상적인 지도자는 자신에게 정치 참여를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복잡한 문제를 대신 책임지고 일상을 흔들리지 않게 관리하는 사람이다.
다카이치는 바로 그 역할을 보여준다
중국의 군사력 확대와 대만해협 긴장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 공급망 불안과 경제안보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다카이치는 일본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한다.
방위력을 강화하고 첨단기술을 보호하며 경제안보를 강화하고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주장한다.
이 메시지가 모든 면에서 옳은지는 별개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가 다카이치의 말을 들으면 최소한 이 정치인이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무관심이 큰 사회일수록 메시지의 선명성은 강력한 자산이 된다.
다카이치는 일본 청년에게 정치에 참여하라고 훈계하지 않는다. 국가가 위험을 관리하겠다고 말한다.
청년에게 희생과 연대를 먼저 요구하지 않는다. 국가가 당신의 일자리와 안전과 생활을 지키겠다고 약속한다.
다카이치 지지의 핵심은 보수화가 아니다. 보호받고 싶다는 욕구다.
불안한 시대의 청년은 강한 국가를 원한다
지금의 일본 청년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고도성장기를 경험하지 못했다. 장기불황과 저성장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청년 고용 환경은 이전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인구 감소와 인력 부족으로 취업 시장에서 청년의 협상력이 높아졌고 기업들의 임금 인상도 이어지고 있다.
물가 상승으로 실질소득 문제는 남아 있지만 적어도 취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절망은 한국보다 약하다.
일자리가 비교적 안정된 상황에서는 급격한 정치적 변화보다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고 외부 위험을 관리하는 정부가 매력적으로 보인다.
다카이치는 변화와 안정이라는 서로 모순되는 욕망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여성 최초의 총리라는 점에서는 변화다. 자민당 정권을 유지한다는 점에서는 안정이다.
기존 일본 정치인의 모호한 화법을 벗어난다는 점에서는 새롭다. 그러나 국가와 기업 중심의 경제 질서를 유지한다는 점에서는 익숙하다.
다카이치는 일본 청년에게 체제를 뒤엎지 않고도 변화를 선택했다는 감각을 준다. 변화처럼 보이는 안정이다. 이것이 다카이치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여성이라는 요소도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이 지지의 본질은 아니다.
일본 청년이 다카이치를 지지하는 이유는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남성 중심의 일본 정치에서 오랫동안 버티고 경쟁하며 정상까지 올라온 강한 개인의 서사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면서도 기존 권력 구조를 뚫고 올라왔기 때문에 능력과 집념이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다카이치는 젊은 세대에게 국가를 지키겠다고 말한다. 반면 한국 민주당은 청년에게 역사를 이해하라고 말한다.
이 차이가 크다.
이재명을 뽑았지만 민주당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2030세대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해서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 된 것은 아니다.
이들은 민주화운동의 기억으로 민주당을 지지한 세대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문재인 정부 탄생을 집단적 정체성으로 공유한 세대도 아니다.
정당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으며 특정 정당에 대한 충성심도 약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표를 준 청년 중 상당수는 민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당시의 선택지 가운데 이재명이 상대적으로 경제와 행정을 잘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투표했다.
그들의 선택은 정치적 신앙이 아니라 성과를 기대한 조건부 계약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 승리를 민주당의 역사와 가치 개혁 노선 전체에 대한 승인으로 받아들였다.
청년은 이재명에게 문제 해결을 위임했는데 민주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이 인정됐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오해가 시작됐다.
2030의 계약은 이재명이 내 삶을 개선할 가능성이 있으니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민주당의 해석은 국민이 민주당의 개혁 노선과 역사적 정당성을 다시 승인했다는 것이었다.
청년은 미래의 성과를 기대했지만 민주당은 과거의 정당성을 확인받았다고 생각했다.
이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청년에게 민주당은 왜 기득권 정당이 됐는가
민주당은 스스로를 여전히 기득권과 싸우는 개혁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검찰 재벌 보수언론 권위주의 세력과 싸워온 역사를 강조한다.
그러나 2030의 눈에 보이는 민주당은 다르다.
오랫동안 국회의원과 지방권력을 차지한 정치인들이 있다. 집과 자산을 보유한 중장년 지지층이 있다.
안정된 정규직과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와 각종 시민사회 조직이 있다.
운동권 경력과 학연 인맥을 공유하는 정치 엘리트가 있다.
민주당의 언어는 약자를 향하지만 민주당을 실제로 지탱하는 세력은 이미 집과 직장과 조직을 가진 사람들로 보인다.
청년에게 오늘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대립은 진보와 보수가 아니다. 이미 진입한 사람과 아직 진입하지 못한 사람의 대립이다.
집을 가진 사람과 월세를 내는 사람.
정규직으로 보호받는 사람과 취업 문 앞에 서 있는 사람.
노동조합과 조직을 가진 사람과 혼자 경쟁해야 하는 사람.
부모의 자산을 물려받는 사람과 빚으로 출발하는 사람.
정치권에 목소리를 전달할 통로가 있는 사람과 아무런 대표성이 없는 사람의 대립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 구조를 바꾸기보다 자신을 지지하는 기존 세력의 이해를 보호하면서 청년에게 연대와 양보를 요구한다고 인식된다.
민주당이 부자를 위한 극좌 정당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 역설에서 나온다.
말은 급진적이고 구호는 진보적이지만 실제 경제 구조에서는 기존 부동산 소유자와 정규직과 조직된 기득권을 제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청년에게 민주당은 약자를 위한 정당이 아니라 약자를 대변한다는 명분을 독점한 기득권 정당으로 변했다.
다카이치는 불안을 말하고 민주당은 정의를 말한다.
다카이치가 일본 청년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국가가 위험해지고 있다.
중국과 북한의 위협이 커지고 있다.
산업과 기술을 지켜야 한다.
정부가 책임지고 일본을 강하게 만들겠다.
이 메시지는 청년의 불안에서 시작한다.
국제질서의 변화와 일자리 공급망 기술 패권 경쟁이 자신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설명한다.
반면 민주당의 주요 정치 언어는 검찰개혁 내란 청산 역사적 책임 민주주의 수호와 같은 의제에 집중돼 있다.
이 의제들은 중요하다. 민주주의와 법치의 문제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청년이 매일 마주하는 문제의 순서는 다르다.
이번 달 월세를 어떻게 낼 것인가.
취업은 언제 가능한가.
AI가 내 일자리를 대체하지 않을까.
전세사기를 당하면 누가 보호해주는가.
대출이 막힌 상황에서 집을 살 수 있는가.
결혼과 출산을 감당할 수 있는가.
부모의 지원 없이 자산을 만들 수 있는가.
청년은 미래의 손실을 계산하고 있는데 민주당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정치에 집중한다.
검찰개혁이 아무리 옳더라도 청년의 월세를 낮추지는 않는다.
내란 청산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취업 기회를 바로 늘리지는 않는다.
정치인의 수사권 문제는 매일 뉴스에 등장하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를 보호할 법안과 청년 주거 정책은 체감되지 않는다.
이때 청년은 묻는다.
민주당은 국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치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가.
개혁의 내용보다 개혁의 주어가 의심받기 시작한 것이다.
검찰개혁이 시민을 위한 사법개혁으로 보이지 않고 정치권의 자기보호로 보이는 순간 정당성은 무너진다.
다카이치는 청년에게 국가가 당신을 보호하겠다고 말한다.
민주당은 청년에게 우리가 왜 옳은지 이해해달라고 말한다.
한쪽은 책임을 약속하고 다른 쪽은 동의를 요구한다.
한쪽은 불안을 흡수하고 다른 쪽은 판단을 교육하려 한다.
이것이 지지율 차이의 중요한 원인이다.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무능보다 도덕적 우월감이다.
정책은 실패할 수 있다. 경제 상황은 정부 의지만으로 통제되지 않는다.
부동산 문제도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나 청년이 민주당에 더 큰 반감을 느끼는 이유는 실패 자체보다 실패를 설명하는 태도에 있다.
민주당의 정치 언어에는 자신들이 역사적으로 옳은 편이라는 전제가 자주 깔려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켜왔다.
우리는 검찰 권력과 싸웠다.
우리는 개혁 세력이다.
상대는 내란과 권위주의의 책임이 있다.
따라서 우리를 비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상대를 돕는 일이다.
기성 지지층에게는 강력한 결집의 언어다. 그러나 정당 충성도가 낮은 청년에게는 훈계와 강요로 들릴 수 있다.
청년은 자신의 가치 판단과 소비 선택을 정치가 규정하는 것을 싫어한다.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에서 반감이 커진 것도 5·18의 역사적 의미를 부정해서가 아니다.
정부와 집권당이 개인의 소비 선택까지 도덕적으로 판정하고 죄책감을 부과하려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청년은 민주당이 옳은 말을 한다는 사실보다 자신을 가르치려 한다는 태도에 반발한다.
민주당은 무엇이 정의인지 말하지만 청년은 누가 그 정의를 결정할 권리를 가졌는지 묻는다.
민주당은 올바른 선택을 요구하지만 청년은 선택할 자유를 침해받는다고 느낀다.
다카이치의 보수적 메시지가 청년에게 먹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다카이치는 젊은 세대에게 어떤 소비를 해야 하는지 어떤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하는지 직접 훈계하기보다 국가가 맡아야 할 안보와 산업 정책을 말한다.
정치가 개인의 삶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국가의 책임을 수행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공정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완전히 다르다
민주당이 말하는 공정은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청년이 체감하는 공정은 보다 구체적이고 절박하다.
같은 시험을 치르는가.
같은 규칙이 적용되는가.
부모의 재산과 인맥이 결과를 바꾸지 않는가.
잘못한 사람이 같은 책임을 지는가.
노력한 사람이 최소한의 기회를 얻는가.
조국 사태와 부동산 가격 급등 LH 사태와 각종 채용 논란은 청년에게 서로 다른 사건이 아니었다.
규칙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에게 다른 규칙을 적용한다는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됐다.
민주당은 각 사건마다 법적 사실과 정치적 맥락을 설명했다. 그러나 청년은 설명의 세밀함보다 반복되는 패턴을 봤다.
기득권은 늘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언어와 방어할 조직을 가지고 있다.
청년에게는 그런 방패가 없다.
이 신뢰가 무너진 뒤 민주당이 공정을 말할수록 청년은 정책이 아니라 위선을 떠올린다.
일본 청년이 다카이치의 강한 국가를 공정의 대안으로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는 외부 위협과 내부 불안을 관리하고 규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도자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결정해야 한다. 이런 이미지가 불공정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년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반면 한국 청년에게 민주당의 정의는 공정한 규칙보다 특정 진영의 도덕적 명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청년 정치가 실패하는 이유
민주당은 청년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청년 전담기구를 만들고 청년 최고위원 부활을 논의하며 청년 정치인을 영입한다.
그러나 청년의 반응은 냉담하다.
청년이 원하는 것은 청년 얼굴이 아니다. 자신의 이해가 실제 결정에 반영되는 구조다.
청년 정치인이 당 지도부의 결정을 전달하고 특정 계파의 입장을 대변한다면 세대 대표가 아니다. 젊은 나이의 기존 정치인일 뿐이다.
공천권은 중장년 정치인이 가지고 있다. 예산권도 기존 지도부가 행사한다.
당내 주요 의제 역시 강성 지지층과 조직된 당원의 요구가 결정한다. 청년 정치인은 기자회견과 토론회에는 등장하지만 중요한 결정에서는 주변부에 머문다.
청년은 자신이 시민이 아니라 선거 때마다 호출되는 마케팅 집단으로 취급된다고 느낀다.
선거 전에는 미래세대라고 부른다. 선거가 끝나면 정책 결정에서 사라진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간담회를 연다. 비판하면 보수화됐다고 규정한다.
이런 방식으로는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다카이치는 청년을 별도의 보호 대상으로 호명하지 않으면서도 국가안보와 고용 안정 경제안보라는 보편적 의제를 통해 청년의 불안을 흡수한다.
민주당은 청년을 계속 별도로 호명하지만 정작 청년의 삶과 연결된 국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
청년이라는 말을 적게 하는 다카이치가 청년의 지지를 얻고 청년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민주당이 청년에게 외면받는 역설이 발생한다.
2030은 보수화된 것이 아니라 손실 회피형 실용주의자가 됐다
한국 청년의 민주당 이탈을 우경화라고 규정하면 해법을 찾을 수 없다.
2030은 국민의힘에도 강한 충성심이 없다. 민주당에서 이탈한 표가 모두 보수 정당으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다.
무당층이 되거나 선거마다 후보를 바꿔 선택한다.
이들의 정치적 성향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표현은 손실 회피형 실용주의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거대한 약속보다 더 나빠지지 않을 가능성을 선택한다.
정치적 대의보다 주거와 고용과 자산 형성의 위험을 줄여줄 정책을 본다.
과거의 공로보다 현재의 성과를 평가한다.
정당의 역사보다 자신의 미래를 계산한다.
다카이치가 일본 청년에게 높은 지지를 받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다카이치의 모든 정책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일자리와 국가 질서를 지키면서 외부 위험을 통제할 가능성이 높은 지도자로 보기 때문이다.
한국 청년이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 실망하는 이유 역시 이재명 대통령 개인에 대한 감정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재명을 선택했지만 민주당이 자신의 삶을 개선할 것이라는 확신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2030은 진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성과 없는 진보를 싫어한다.
선택을 가르치는 진보를 싫어한다.
기득권을 비판하면서 자기 진영의 기득권은 보호하는 진보를 싫어한다.
미래를 말하면서 과거의 정치투쟁에 몰두하는 진보를 싫어한다.
청년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기존 지지층의 기득권에는 손대지 않는 진보를 거부한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청년정책의 나열을 중단하고 청년의 인생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청년수당 청년대출 청년임대주택 청년창업지원처럼 부처별로 흩어진 정책은 청년에게 하나의 미래로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한 청년이 25세에서 35세가 되는 10년 동안 취업 주거 자산 형성 결혼과 출산 직업 전환과 AI 재교육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보여줘야 한다.
청년이 정부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소득과 직업 지역을 입력하면 앞으로 받을 수 있는 교육 주거 금융 자산형성 지원을 한눈에 확인하고 10년 뒤의 예상 자산과 주거 상태까지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의 개수가 아니라 인생의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청년은 모든 위험을 정부가 없애주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노력했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둘째, 부동산 정책의 목표를 집값 관리에서 세대의 진입비용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
정부는 집값이 오르느냐 내리느냐만 발표한다. 그러나 청년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주거시장에 진입할 수 있느냐다.
소득 대비 월세 비율.
첫 주택 구입까지 걸리는 기간.
청년 가구의 순자산 증가율.
전세사기 피해 회복 기간.
직장과 주거지 사이의 이동시간.
장기 공공임대주택의 접근성.
이런 지표를 국정의 핵심 성과로 관리해야 한다..
청년이 원하는 것은 모든 집값의 폭락이 아니다.
자신에게도 언젠가 들어갈 문이 열려 있다는 확신이다.
셋째, 민주당은 자기편의 기득권과 충돌해야 한다. 민주당이 다시 도전자의 신뢰를 얻으려면 상대 진영의 기득권만 공격해서는 안 된다.
보수 성향 다주택자뿐 아니라 진보 성향 다주택자의 특혜도 바로잡아야 한다.
대기업 경영진뿐 아니라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과도한 진입장벽도 개혁해야 한다.
보수 정부의 낙하산뿐 아니라 민주당 출신 낙하산도 차단해야 한다.
상대편 정치인의 자녀 특혜뿐 아니라 자기편 정치인의 특혜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청년은 개혁의 말보다 개혁으로 누가 실제 손해를 보는지를 본다.
자기 지지층의 이해를 건드리지 않는 개혁은 청년에게 개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넷째, 검찰개혁을 시민 권리 개혁으로 바꿔야 한다.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국민의 사법 정의가 완성되지 않는다.
경찰의 부실 수사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성범죄와 스토킹 가정폭력 피해자를 누가 보호할 것인가
보완수사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수사기관이 잘못했을 때 국민이 어디에 이의를 제기할 것인가
정치인뿐 아니라 평범한 시민의 방어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검찰을 약하게 만들겠다는 표현보다 어느 기관을 만나도 국민이 억울하지 않게 만들겠다고 말해야 한다.
개혁의 주어를 정치인에서 시민으로 바꾸어야 한다.
다섯째, 청년에게 실제 예산권과 거부권을 줘야 한다.
청년위원회만으로는 부족하다.
주거 연금 교육 노동정책이 향후 10년동안 세대별로 어떤 비용과 혜택을 발생시키는지 공개하는 세대영향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국가사업과 법률에 대해 청년 대표기구가 재심을 요구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
국가 예산 일부를 미래세대 예산으로 설정하고 청년이 직접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청년을 회의에 참석시키는 수준이 아니라 결정 구조에 들어오게 해야 한다.
여섯째,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당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래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2030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민주당의 과거를 방어하라고 표를 준 것이 아니다. 한국의 미래를 설계하고 경제와 민생을 해결하라고 권력을 위임했다.
대통령은 AI 산업과 미래 일자리 주거와 교육 국가 경쟁력에 집중해야 한다. 민주당의 당권 경쟁과 계파 갈등 검찰개혁의 세부 전투에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을 소모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의 문제 해결자여야 한다. 민주당은 입법과 실행을 책임지는 국정 파트너여야 한다.
당권 주자들은 누가 더 강경한지를 경쟁할 것이 아니라 누가 10년 뒤 대한민국의 모습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는지를 경쟁해야 한다.
일본 청년이 다카이치를 지지하는 이유는 다카이치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국가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하기 때문이다.
한국 청년이 민주당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이재명 대통령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수많은 정책 발표 속에서도 자신의 삶이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가 청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은 현금 지원이 아니다.
내가 노력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는 사회다.
맺음말
다카이치 사나에와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2030의 상반된 평가는 일본 청년은 보수적이고 한국 청년은 진보적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설명할 수 없다.
두 나라의 청년은 놀랄 만큼 비슷하다.
정당에 충성하지 않는다.
이념보다 자신의 삶을 본다.
위험을 줄여줄 지도자를 원한다.
정치적 수사보다 구체적인 결과를 평가한다.
자신을 훈계하는 정치보다 책임지는 정치를 원한다.
일본 청년은 다카이치에게 국가가 자신들의 안전과 고용과 미래를 지켜줄 가능성을 본다.
한국 청년은 민주당에서 자신들의 문제보다 민주당의 역사와 권력투쟁을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본다.
다카이치는 불안을 국가의 책임으로 바꾸었다.
민주당은 불만을 청년의 오해나 보수화로 해석했다.
다카이치는 무엇을 지킬 것인지 말한다.
민주당은 왜 자신들이 옳은지를 설명한다.
다카이치는 변화처럼 보이는 안정을 제공한다.
민주당은 개혁을 말하면서 기득권처럼 행동한다.
그 결과 일본 청년에게 다카이치는 보호자가 되고 한국 청년에게 민주당은 훈계자가 됐다.
그러나 다카이치의 높은 지지도 영원하지 않다. 물가가 계속 오르고 실질임금이 악화되며 청년의 생활이 어려워지면 강한 국가라는 구호도 힘을 잃을 것이다.
청년 지지는 이념적 충성이 아니라 성과에 대한 조건부 계약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에도 아직 기회는 있다.
2030은 완전히 떠난 고정된 보수층이 아니다.
더 나은 선택지가 나타나면 언제든 움직이는 유동적인 평가자다.
민주당이 청년을 다시 설득하려면 청년을 이해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주거비를 낮춰야 한다.
일자리의 진입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부모 자산이 인생을 결정하는 구조를 줄여야 한다.
자기편의 특권에도 칼을 대야 한다.
AI 시대에 청년이 어떤 일자리와 소득을 가질 것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청년에게 희생과 지지를 요구하기 전에 국가와 정당이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먼저 밝혀야 한다.
2030은 어느 정당의 소유물이 아니다.
매 선거마다 계약을 다시 쓰는 정치 소비자이자 가장 냉정한 국정 성과 평가자다.
일본의 다카이치가 청년의 불안을 읽고 안정과 보호라는 답을 내놓았다면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청년의 절망을 읽고 기회와 이동이라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를 기억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내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민주당이 과거의 정의를 지키는 정당에 머물 것인지 미래의 기회를 만드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지에 따라 2028년 총선과 2030년 대선의 운명은 달라질 것이다.
2030이 민주당을 떠난 것이 아니다.
민주당이 2030의 시간에서 멀어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