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동문
‘착하고 유쾌한 영화’로 1,600만 관객 모은 제작자
서울고 총동창회 뉴스레터 26호(2019. 04. 09)
김성환(44회, 45세)
1,620만명. 천만 관객을 넘긴 한국영화가 종종 나오지만, 이번 경우는 전형적인 ‘어닝 서프라이즈’다. 영화 ‘극한직업’얘기다. 영화계가‘ 극한직업’에 놀라는 것은 당초 천만 관객을 목표로 만든 초대형 블록버스터 급 영화가 아니었다는 점 때문이다. 그야말로 어깨에 힘 쫙 빼고 코미디 하나에만 집중한 결과가 의외의 대박을 낳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계에선 흥행비결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서울고 동문 사이에선 제작자가 화제로 오르내리는 중이다. 제작자로서 내놓은 세 번째 작품으로 상반기 영화계를 평정한 김성환(44회) 어바웃 필름 대표가 자랑스러운 서울고 동문이기 때문이다.
보통 천만 영화제작자라고 하면, 중고등학교 때부터 ‘스크린’이나 ‘로드쇼’, 그 이후 세대라면‘시네21’ 같은
영화잡지를 끼고 사는 시네필(Cinephile)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김대표는 학창시절 영화와는 거리가 멀었고, 흔히 말하는 ‘날라리’ 티 한번 내본 적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대학에서는 일본어를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광고대행사에 입사했다. 고교동기들도 그가 영화 판에 발을 디딜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는 “영화를 즐겨보긴 하지만, 내적 의미까지 분석하면서 보는 정도까진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그를 영화 판으로 이끈 계기는 시대흐름을 가져다가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는 금융자본, 산업자본이 유입되면서 수직계열화로 재도약하던 시기다. ‘친구’(2001년), ‘공공의적’(2002년) ‘살인의 추억’(2003년), ‘올드 보이’(2003년) 등이 그 무렵 제작됐다. “그 당시 영화 쪽에 일하는 친구들이 잘됐고, 싸이더스나 명필름 같은 제작명가들도 나오기 시작했던 시기입니다. 광고는 15초, 30초로 끝나니 아쉬움이 남아 좀더 긴 이야기를 담는 영화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고요.” 그러다 2001년 무렵 우연히 눈에 들어온 게 ‘시네21’ 한 귀퉁이에 실린 구인광고였다. 그렇게 그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영화 판에 용감하게 뛰어들었다.
김대표가 시작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아니다. 초반에는 기획사에 소속돼 투자업무를 주로 했다. 그가 주도해 투자한 영화는 ‘장화홍련’ ‘결혼은 미친 짓이다’ ‘과속 스캔들’ ‘7급공무원’ ‘최종병기활’ 등이 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에 실리는 수많은 이름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다 2014년 어바웃필름을 설립하고 제작자로 나섰다. ‘극한직업’이 나오기 전까지 만든 작품으로는 ‘도리화가’(공동제작)와 ‘올레’가있다.
‘착한 영화’만 만드는 제작자. 영화 판 동료들이 김대표를 두고 하는 말이다. “호러나 하드코어, 작가주의 영화처럼 보면서 힘든 영화는 제 취향이 아니에요.” ‘극한직업’도 이것저것 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코미디 하나에만 충실하자는 생각으로만 들었다고 한다.
영화제작자는 대부분 화려한 모습이다. 영화 한 편의 제작비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당대의 톱스타 배우들을 직접 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대표도 류승룡, 이하늬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배우들과 적지 않은 인연을 쌓아왔다. 게다가 이번에 영화마저 대박을 터트렸으니 뭔가 달라지진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지금도 학창시절 모습 그대로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고, 인터뷰 날도 지하철을 타고 수수한 옷차림으로 약속장소에 왔다. “원래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술 먹고 잘 노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대학친구들도 제가 영화를 한다고 하니까 놀라더라고요. 광고를 한다고 할 때도 의외라고 했는데 영화로 간다니 더 놀랄 수밖에요.”
그는 차승재나 장진류의 스타 또는 작가주의제작자들과는 다르다. 지금은 대규모자본이 들어오면서 주먹구구식의 영화 판이 많이 바뀌었고, 배우와 감독, 현장과 투자자 사이를 잘 잇는 관리와 경영이 더 중요해졌다. 제작자로서 김대표의 리더십이나 스타일은 후자에 속한다.
‘극한직업’의 목표관객수는 300만명이었다. 목표치의 다섯 배 이상이라는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니 요새 어느 자리에 가나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얼마나 벌었는 가다. 하지만 그는 시종일관 겸손모드다. “열심히 는 했지만 실력 때문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고, 결국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알려진 것만큼 수익이 많지는 않아요.”
김대표에 따르면 대략의 수익배분시스템은 다음과 같다. 보통극장과 배급사가 5대5로나누고, 배급사는 배급수수료를 약 10% 떼고 투자사에 주면 투자사는 그 돈의 30~40%가량을 제작사에 성공수당 금으로 주는데 제작사는 그 금액에서 들어간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금액으로 공동 제작사ㆍ감독ㆍ배우 등 등과 나누게 된다. 제작사가 가져가는 게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그는 인생에 몇 번 오지 않는 기회를 움켜쥔 게 분명하다. ‘극한직업’의 VOD수입은 아직 집계도 되기 전이고, 미국진출 초반성적도 나쁘지 않다. 마지막으로 향후계획을 물었다.“ ‘극한직업’이 흥행했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요. 저희 회사가 큰 회사도 아니고, 아직은 회사를 키울 생각도 없고요. 사실 영화는 잘될 때도 있지만 안될 때가 더 많아요. 원하는 게 있다면 앞으로 꾸준히 작품을 만드는 겁니다. ”역시 착한 제작자다. 글· 사진_ 김영화(44회) 객원편집위원, 한국일보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