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윗의과 세 용사들의 믿음
사무엘하 23: 8~12
1. 새 봄이 찾아왔습니다.
요즘의 날씨는 참으로 좋은 계절이 되었습니다. 전형적인 봄 날씨가 되었습니다. 봄의 계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도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 50년대 60년대에는 봄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봄에는 먹을 양식이 없어서 모두가 고통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칡뿌리를 캐 먹고, 산에서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고, 쑥과 나물을 뜯어먹으면서 겨우 겨우 연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빨리 보리가 익어서 보리밥이라도 실컷 먹기를 기다리다가 많은 사람들이 굶주려 질병에 시달리다가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개 중에 보리고개가 제일 넘기가 힘들다는 속담도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너무나 살기가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나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GNP가 50$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4만 불에 육박하게 되었다고 하니까 얼마나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까? 그렇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거의 50년대 60년대의 고통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그때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봄은 1년 4계절 중에 첫 번째 오는 계절입니다. 봄은 3,4,5월을 봄이라고 하고 천문학상으로는 1년 24절후 중에서 입춘(立春)으로부터 입하(立夏) 까지를 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계절마다 모두 좋은 점이 있지만 특히 봄은 4계절 중에 가장 좋은 계절입니다. 그래서 봄을 가르쳐 계절의 왕, 또는 시작의 계절, 화초의 계절, 희망의 계절, 사랑의 계절이라고도 말들을 합니다.
창8:22절 말씀에 하나님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후에 노아에게 약속하시기를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상 지금까지 추운 겨울만 계속되거나 또 봄이 오지 않고 겨울에서 여름으로 건너뛴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아름다운 4계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슥10:1절 말씀에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봄의 계절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들 인간에게 주시는 그 은혜를 다시 한 번 감사하면서 또 우리 신앙에도 봄을 맞이하는 계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고의 전성기는 다윗과 솔로몬 왕이 통치하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이 통일왕국을 이루고 열왕기하에 들어 오면서 이제 다윗이 사명을 다하고 나이 많아 세상을 떠나고, 솔로몬이 왕으로 세움받습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이 통치하던 때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고 가장 부유했으며 가장 강한 국력을 가졌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이 누렸던 부국강병은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이 기틀을 잡아두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강국으로 도약할 토대를 세운 다윗은 자신만의 능력으로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며 다스렸고 실력 있는 인물들을 등용해 함께 나라를 세워갔습니다. 왕이 아무리 똑똑해도 신하가 똑똑치 못해 왕이 정치를 잘하도록 돕지 못하면 나라가 평안해 질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잘하려 해도 함께 일하는 정치인들이 잘해야 나라가 평안해 집니다. 우리나라가 평안해 지기 위해서 비난만 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뿐 아니라 후손들이 평안한 나라에서 살기 원한다면 기도하셔야 합니다. 본문에는 다윗의 실력 있는 부하들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다윗의 용사들에 대하여 설교하겠습니다. 오늘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이 쭉 나열됩니다. 본문 8절에 요셉밧세벳, 엘르아살, 삼마, 세 용사들이 나옵니다. 마지막 39절에 가보면 다윗의 용사들 이름 총 37명이 기록됩니다. 다윗왕국은 사실상 전무후무한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다 믿음의 용사들입니다. 이들은 어디서 왔을까요? 여러분 강력한 믿음을 가진 용사는 어떻게 나옵니까? 갑자기 믿음이 좋아진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 오랜 시간 조금씩 키워진다? 세번째입니다. 믿음은 단시간에 엄청 좋아지거나, 하늘에서 툭 하고 내려오는 법이 없습니다. 오늘 다윗의 용사들은 다윗과 함께 오랫동안 믿음을 키워갑니다. 이들은 모두 다윗이 도망다닐 때 아둘람굴에 모인 사람들입니다. 환난당한 자, 억울한 자, 빚진 자, 아둘람굴에 모인 인생실패자들 4백명, 상태가 안좋았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앞길이 막힌 사람들, 마음에 상처뿐인 사람들, 빚진 사람들! 그런데 이 인생의 실패자들이 15년이 지나고 믿음의 용사들이 됩니다. 어떻게요? 우선 믿음의 사람 다윗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믿음을 보고 오랫동안 배웠습니다. 그래서 다윗왕국의 용사들이 됩니다. 아둘람굴, 컴컴하고 길이 없고 답도 없는 그 굴에서 뭘 했나요? 다윗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 찬송하는 법, 환난중에 주님께 부르짖어 이기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들이 다윗의 15년 망명생활동안 다윗의 믿음을 보고 믿음을 키웁니다. 다윗은 이 용사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너무 뿌듯한 동지들입니다. 오늘 다윗의 용사들 보면 블레셋 거인족을 거침없이 때려눕히고 넉넉히 이겨요. 여러분 이것이 믿음의 용사입니다. 이 블레셋 거인족을 신약성경에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우리 인생을 위협하는 일곱가지 대적을 설명합니다. 다윗의 용사들이 싸워 이긴 블레셋 거인족들은, 오늘날 우리의 삶으로 말하자면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 일곱가지 대적입니다. 바울사도는 우리가 믿음으로 이 일곱 대적들을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래요. 그러면 나도 가능한가? 나도 믿음의 용사가 될 수 있는가? 될 수 있습니다. 블레셋 거인족같은 일곱가지 대적을 넉넉히 이기는 용사가 되는 법이 있습니다. 오늘 다윗의 용사들을 보고 그들의 믿음을 배우면 됩니다. 두가지, 믿음의 용기, 믿음의 헌신입니다. 다윗의 용사들은 믿음의 용기로 승리를 가져옵니다. 다윗의 용사들은 믿음의 헌신으로 감동을 가져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두가지를 오랜 시간동안 연습하면 됩니다. 그러면 큰 승리를 가져오는 믿음의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3. 다윗과 세 용사의 믿음과 용기
이들은 용감하게 일어나 공동체에 용기를 줍니다. 8-12절을 보면 세 용사가 나옵니다. 요셉밧세벳, 엘르아살, 삼마 세 용사입니다. 이들은 공통특징이 있습니다. 이들을 믿음의 용사라 말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우다가 힘이 빠지고 도망갈 때, 세용사는 용기를 냅니다. 이들로 인하여 결국 이스라엘이 승리합니다. 그래서 10절을 보시면 큰 승리가 옵니다. 12절에도 큰 승리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이 용사들과 함께합니다. 이들은 어떻게 힘이 빠져 패배하는 공동체에게 큰 승리가 오도록 하였을까요? 이 용사들이 다윗에게 믿음의 싸움에서 용기를 내는 법을 배웠다고 봅니다. 다윗이 골리앗앞에서 외친 말이 뭡니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에게 가노라. 누가 더 힘이 센가요? 골리앗에게 다윗은 한줌도 안돼요. 이걸 다윗이 알아요. 그래서 다윗은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아요. 만군의 여호와의 힘을 의지합니다. 주님께서 능력으로 싸워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렇게 믿음의 용기로 이겨냅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나는 힘이 없지만 주님은 힘이 완전 세시다! 나는 연약하지만 주님은 전능하시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겨요. 다윗이 골리앗을 쳐서 쓰러뜨리자, 그때까지 벌벌 떨고 두려워하던 이스라엘이 힘이 나서 그날 싸움에 승리가 옵니다. 이것이 큰 승리를 가져오는 비결입니다. 이제 세 용사가 어떻게 용기를 냈고 어떻게 싸웠는지 살펴봅시다. 8절입니다. 요셉밧세벳, 세 용사중 우두머리입니다. 이 사람은 혼자 블레셋 8백명을 이겨요. 9절 두번째 용사는 엘르아살입니다. 9절에 다윗왕과 함께 이스라엘이 싸우는데 이스라엘이 어때요? 힘이 빠져 뒤로 후퇴합니다. 공동체에 사기가 떨어집니다. 그때 10절 엘르아살이 어떻게 했나요? 자기 혼자 블레셋 군대 앞으로 나갑니다. 무슨 생각을 합니까? 나도 다윗처럼 한번 해보자. 그래 우리 다윗왕이 청소년때 블레셋 거인 골리앗을 향하여 외쳤지. 내 힘으로는 안되나 주를 의지하면 된다. 그러면 난 이길 수 있다. 아멘 하고 나갑니다. 이 믿음으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용기입니다. 엘르아살이 다윗의 믿음을 자신의 상황에 적용하고 덤벼드니까 그때 하나님이 엄청난 힘을 부으십니다. 얼마나 블레셋을 때려잡았는지 나중에 손이 굳어져서 피곤할 정도였어요. 주님께서 엘르아살의 믿음을 보고 어떻게 해주셔요? 큰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엘르아살이 이기는 것을 이스라엘이 보고 엘르아살의 뒤를 따라가면서 블레셋을 쳐죽이고 약탈을 하고 이깁니다.
4. 삼마는 용사중 세 번째입니다.
삼마도 엘르아살과 마찬가지 특징입니다. 이번에도 이스라엘에 문제가 생겨요.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보고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이때 삼마가 어떻게 하나요? 용기를 냅니다. 다같이 12절을 읽겠습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삼마가 밭의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블레셋 군사를 쳐죽입니다. 주님께서 삼마에게 큰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삼마가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요? 블레셋 군사는 거인들이 많습니다. 블레셋 거인족을 보고 다 도망가는데 어떻게 삼마는 혼자서 밭에서 버티고 설 수 있었죠? 삼마도 다윗의 믿음을 생각합니다. 그래 우리 다윗왕이 어렸을 때 골리앗과 싸울 때 어떻게 했지? 이걸 생각해요. 다윗이 여호와를 의지하여 골리앗을 때려눕혔지. 이 믿음을 그 마음에 새깁니다. 이 믿음으로 우뚝 일어선 사람들이 있으면 그가 믿음의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용사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제 이 믿음의 용사를 오늘 이 시대 우리 상황에 적용해봅니다. 우리가 마주한 블레셋 거인족은 누구인가? 우리는 어떤 대적과 싸우는가? 로마서 8장 사도바울은 우리 인생의 대적을 나열합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우리 인생에 마구 달려드는 것입니다. 환난과 곤고는 박탈과 상실입니다. 특히 곤고는 피곤하고 답답한데 일이 안풀리는 얽매임입니다. 기근과 적신은 재정난입니다. 통장잔고 바닥, 고금리 고물가시대를 겪는 겁니다. 특히 적신은 몸뚱아리만 남아요. 인생이 바닥난 상황입니다. 위험과 칼,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리고 핍박은 비난입니다. 여기저기 네가 잘못했어, 비난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이게 코로나 3년 우리 삶을 위협하는 대적, 블레셋 거인족앞에 선 상황입니다. 내 주변이 마치 힘빠져 도망치는 이스라엘처럼 뒤로 물러가 다운된 상황입니다. 이때 다윗의 세 용사들처럼, 오늘 우리 안에서 믿음의 용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우선 내게 몰려오는 블레셋 대적이 뭔가 봐야 합니다. 나의 상실감, 박탈감, 답답하여 안풀리는 일, 재정악화, 잔고바닥, 생존의 두려움, 비난받는 일, 이제 끝이라 여겨지는 절망, 포기하고 끝내고 싶은 냉소주의! 이것과 마주하는 것입니다. 이 대적들앞에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윗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믿음으로 용기를 내어 내 환난과 곤고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용기는 커리지! 용기를 주면 인커리지! 내가 믿음의 용기로, 나의 환난과 싸워 이기면, 내 곤고와 싸워 이기면, 내 주변사람이 그것을 봅니다. 내 VIP가 그것을 봅니다. 내가 용기로 이겨내면, 그 승리가 내 이웃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이것이 승리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이기면 그것이 전체 승리에 영향을 줍니다. 요셉 밧세벳과 엘르아살은 둘 다 다윗에게 충성했습니다. 단번에 많은 적들을 물리치든지, 오랫동안 최선을 다해 싸우든지 …사람의 능력과 상황에 따라 충성의 모습은 다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끝까지 맡은 바를 해 내는 가’입니다. 자신의 형편과 일이 처한 상황에 따라 시간과 노력은 다를 수 있지만 주어진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이 중요하지요. 가끔은 어떤 일을 하게 될 때 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쩔쩔매는데 어떤 사람은 쉽게 처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셉밧세벳처럼 별로 공들이지 않아도 단번에 팔백 명을 쳐 죽이는 게 가능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주어진 일이 벅차기도 합니다. 열심히 해도 엘르아살처럼 쉽게 매듭짓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몸이 피곤하고, 마음도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손이 피곤해도 … 손이 칼에 붙기까지 적과 싸웠던 엘르아살처럼 능력이 되는 한,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여러분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직장에서 맡겨진 일이 있습니까? 교회에서 여러분이 섬기는 일은 무엇입니까? 주어진 일이, 해야되는 일이 내게 잘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렇지 않습니다. 힘이 듭니다. 어렵습니다. 대체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 고민도 합니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손이 피곤해도 해야 합니다. 손이 칼에 붙더라도 해야 합니다. 엘르아살도 그랬습니다.(삼하 23:10)
5.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주께 하듯 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순종하는 게 아닙니다. 끝까지 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여러분의 일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때 최선을 다해 얻는 유익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특별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무슨 그런 일에 목숨을 걸어’라는 말을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섬기는 일이 그렇습니다. 힘듭니다. 땀 흘리고 애쓰고, 그렇게 한다 해서 누가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감사함을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5년, 10년, 20년 교사로 봉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참 힘듭니다. 고생 많습니다. 봉사하다 마음에 상처받는 이들 많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습니다. 얻는 것도 없습니다. 엘르아살 처럼 고작 녹두밭 지키는 것 밖에는 한 일이 없어 보입니다. 사람들이 ‘뭘 그런 일을 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면 그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고 그들의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을 믿습니다. 다윗은 일찍이 사무엘을 통해 사울의 뒤를 이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하지만 그런 다윗에게 맡겨진 첫 임무는 왕 곁에서 수금을 타고, 무기 드는 일이었습니다. (삼상 16:21~23) 왕이 될 다윗이, 왕의 종이 되어 왕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런 일은 다윗이 아니라 다른 신하가 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삼상 16:23) 병수발 하는 것 왕이 될 사람에게 걸맞지 않은 일이었지만 …다윗은 맡겨진 일에 성실했습니다. 그렇게 하자 악령을 쫓아내며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냈습니다. 여러분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면 최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매’를 보고 신앙생활을 평가합니다. 응답받은 게 많으면 믿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삶에서 달라진 게 없으면 열매가 없다고 평가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6~7) “뿌리를 박으며 믿음에 굳게”서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열매보다 중요한 것이 ‘뿌리’입니다. 뿌리가 깊게 박혀야,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때로 사람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열매가 적게 맺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뿌리를 깊이 내린 만큼 그 열매가 변함 없이 맺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뿌리가 건강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건강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열매는 풍성히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늘 반복되는 일상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주께 하듯’하는 삶은 크고 중요한 일에만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소한 일, 늘 하던 일, 누가 알아주지 않는 일이라도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되 언제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까요? 끝까지 해야 합니다. 결혼하면 끝까지 서로 귀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자녀를 낳았으면 끝까지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도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주님 다시 올 때까지, 끝까지 잘하시기 바랍니다. 뿌리를 깊게 박는 일에 힘을 써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 수 있고 세상에서도, 교회에서도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착하고 충성된 종의 반열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일에 우리 모두 승리하는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다윗의 용사들과 같은 믿음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합니다. 코로나 3년은 우리 삶을 위협하는 대적, 블레셋 거인족앞에 선 상황입니다. 내 주변이 마치 힘빠져 도망치는 이스라엘처럼 뒤로 물러가 다운된 상황입니다. 이때 다윗의 세 용사들처럼, 오늘 우리 안에서 믿음의 용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우선 내게 몰려오는 블레셋 대적이 뭔가 봐야 합니다. 나의 상실감, 박탈감, 답답하여 안풀리는 일, 재정악화, 잔고바닥, 생존의 두려움, 비난받는 일, 이제 끝이라 여겨지는 절망, 포기하고 끝내고 싶은 냉소주의! 이것과 마주하는 것입니다. 이 대적들앞에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윗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믿음으로 용기를 내어 내 환난과 곤고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내가 믿음의 용기로, 나의 환난과 싸워 이기면, 내 곤고와 싸워 이기면, 내 주변사람이 그것을 봅니다. 내가 용기로 이겨내면, 그 승리가 내 이웃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이것이 승리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이기면 그것이 전체 승리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믿음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다윗의 용사들은 계산없이 자기 것을 던집니다. 13-17절을 보면 또다른 세용사. 이들은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지만 대단히 헌신적입니다. 이때도 블레셋과 전투중입니다. 이 상황이 에피소드 성격이 좀 강한데 다윗왕이 전투중에 목이 말라요. 15절은 혼잣말로 보입니다. 아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이 생각나는데, 누가 그 우물물좀 길어다가 마실 수 없을까! 그때 베들레헴 성문은 블레셋진영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적진을 뚫어야 합니다.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다윗이 정말 다녀오라고 명령을 내린 게 아닙니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혼잣말로 그런 거예요. 그런데 16절. 세 용사가 뛰어가버립니다. 눈짓을 주고받더니 우리가 물을 길어오자! 이걸 깊이 따지고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냥 눈짓으로 하나 둘 셋! 하더니 동시에 휙 뛰어가버립니다. 계산이 없어요. 다윗왕에게 보고하고 허락받고 간 게 아닙니다. 다윗은 이들이 간것도 몰랐어요. 세 용사가 블레셋진영 한가운데를 돌파합니다. 베들레헴 성문곁 우물에 도달해서 우물물을 길어옵니다.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뭘 볼 수 있을까요? 헌신입니다. 희생입니다. 다윗왕을 위하여 이걸 하면 나는 어떻게 되나? 이익인가 손해인가?이런 계산이 그 마음에 전혀 없어요. 이러다 내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그러면 나만 손해 아닌가? 이런 것을 따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으로 인한 헌신이고 희생입니다. 여기에 아무도 억지로나 눈치보는 차원이 없습니다. 다윗의 용사들의 특징은 이런 모습이 한결같습니다. 왕의 안전과 안위가 너무나 소중하고 내 안위, 내 체면, 내 지위, 내 유불리 이런 것들을 계산하지 않았어요. 다윗왕이 적의 공격을 받아 위태로우면 그냥 거침없이 뛰어들어 왕을 보호하고 왕이 피곤하여 목마르다 혼잣말을 하면, 아무런 계산없이 적진으로 가버립니다. 다윗왕의 안위가 나의 목숨보다 소중하다 이러한 생각이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이 다윗의 용사들의 명단을 보다가, 앗 하고 놀란 것이 뭔지 아세요? 여기에 요압의 이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요압의 이름이 용사들 명단에 빠졌을까? 하나님이 요압의 중심을 보시고 평가하십니다. 요압은 다윗의 군대장관입니다. 그런데 오늘 다윗의 용사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두가지, 믿음의 싸움에서 믿음이 없어요. 그는 암몬과의 전투에서 공이 큽니다. 요압은 대단히 공로가 많아요. 그런데 다윗의 용사들의 명단에 빠집니다. 믿음의 용기, 믿음의 희생이 없어요. 요압의 동생들, 아사헬과 아비새는 있습니다. 요압은 없습니다. 여러분 사울왕의 시대 40년 통치때는 이런 믿음의 용사 기록이 한명도 나오지 않은 것을 아세요? 블레셋 거인 골리앗이 쳐들어왔을 때 사울왕은 그 싸움에 유불리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울이 가장 두려움에 빠졌어요. 그때 아무도 골리앗 앞에 못나갑니다. 그래서 소년 다윗이 나간 것 아닙니까? 무슨 뜻이죠? 블레셋 거인 골리앗앞에서 사울과 신하들과 군사 중에서 믿음으로 나갈 용사가 한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시간 청소년 다윗의 믿음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소년 다윗에게 믿음의 용사 두가지 특징이 나옵니다. 내 힘으로는 못이긴다. 하지만 여호와를 의지하면 난 이긴다. 이것이 믿음의 용기입니다. 내가 여기서 골리앗앞에 나갔다가 죽으면, 나만 손해 아니야? 이런 계산이 없었어요. 머리를 굴리지 않습니다. 믿음의 헌신은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으로 인해 큰 승리가 왔어요. 이러면 공동체에 감동이 흐릅니다. 16절 다윗이 세 용사가 목숨걸고 길어온 물을 보고 몸을 떨 정도로 놀랍니다. 진짜 물을 떠오라고 그런 거 아닌데, 너희 목숨을 담보해서 내 갈증을 없애려고 한 것 아닌데, 너무나 감동되고 너무나 미안하여, 그 우물물을 마시지 못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희생적으로 헌신하면 공동체에 흐르는 것이 바로 감동입니다. 다윗이 주님 앞에 그 물을 부어드립니다. 그리고 주님앞에 뭐라고 말을 했나요? 주님 이 물, 제가 어찌 감히 마시겠습니까? 이것은 물이 아니고 세 용사의 피가 아닙니까? 그런데 17절 보세요. 쓱 지나가듯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이 세용사가 이런 일을 하였더라. 무슨 뉘앙스인가요? 이 정도는 다윗왕국에 자주 있었더라 이런 뜻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이 정도의 희생의 스토리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6. 신약시대의 믿음의 용사들
성령이 오신 오순절에 예루살렘 초대교회를 보세요. 열한사도들, 그리고 스데반, 바울사도,바나바, 디모데, 실라, 누가, 에바브라디도, 그리고 우리의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이 새벽기도운동, 금요철야기도회, 특별금식기도회, 산상기도회로 헌신하여 한국교회를 일으켜세우셨습니다. 우리 앞서간 믿음의 용사들입니다. 그들의 헌신을 통하여 한국교회가 세계열방을 향하여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힘이 빠지고 뒷걸음치는 상황, 코로나 3년 이후 그런 때가 온 것입니다. 다들 믿음이 식어져가는 이때, 믿음의 용사가 필요합니다. 다윗의 믿음을 장착한 용사! 믿음의 용사는 환난과 싸워 이깁니다. 곤고와 싸워 이깁니다. 내가 용기를 내어 환난과 싸워 이기면 공동체 모두가 그걸 봅니다. 믿음의 용기가 솟아나요. 내 안위를 돌보지 않는 헌신으로 목숨걸고 나서면 우리 주님이 감동을 하십니다. 나로 인해 누가 용기를 얻고 격려를 받았을까요? 나의 희생으로 공동체에 감동이 흘렀을까요? 믿음으로 용기를 내고 희생을 하면 큰 승리를 거둘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