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백자·청자 뿐? 까만 ‘흑자’도 있다
중앙일보 기사 입력 : 2019.06.12. 15:01
글=서정민 기자
6월 15일까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슈페리어 갤러리에서 김시영 작가의 ‘흑유자, 달 항아리에서 추상으로’ 전시가 열린다.
김시영(62) 작가는 조선시대에 명맥이 끊긴 고려 흑자(黑磁)를 빚는 도공이다. 흑유자, 또는 흑자라 불리는 도자는 이름처럼 먹색의 빛을 띤다. 문헌상으로 고려시대에 청자와 함께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지만, 조선시대에 그 명맥이 끊겼다. 지금도 우리는 고려 청자, 조선 백자만 기억할 뿐 고려 흑자는 생경하다.
김 작가는 “아름다운 검은색을 만드는 일은 100개의 자기를 구워 겨우 1~2개를 얻을 만큼 어려운 데다, 조선시대에는 워낙 흰색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흑자는 뒤로 밀리면서 명맥이 끊긴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선 전통 흑자 기술이 지금까지 전수되고 있으며, 그 가치 또한 높게 인식되고 있다. 그는 “고려 때는 말차를 좋아했는데,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는 잎차를 더 선호하게 된 것도 흑자가 퇴보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말차를 쳐서 올라오는 녹색 거품은 흑자 잔에 담았을 때 더 아름답다. 말차를 좋아하는 일본인이 흑자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 작가가 기술을 배우고 익힐 만한 스승도 없이 독학으로 고려 흑자를 빚게 된 건 운명인 듯하다. 1979년 대학 산악부 활동으로 태백산맥을 종주하다 검은 색 자기 파편을 주운 게 그 시작이다. “분명 옛 도자기인데 색이 까만 거예요. 이건 뭐지? 궁금증이 생겨 견딜 수가 없었죠.” 연세대 금속공학과 77학번으로 학부를 졸업한 후 전공을 살려 현대중공업에 입사했지만 ‘까만 도자기’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결국 89년 직장을 때려 치고, 곧장 경기도 가평에 가마터 ‘가평요’를 차렸다. 김 작가가 흙과 불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흑자는 철분이 많이 함유된 유약을 발라 고온에서 구워내는데, 얇게 바르면 엿처럼 투명한 갈색 빛을 띠게 되고 층이 두꺼울수록 검은 빛을 띠게 된다.
“흙보다 불의 온도가 정말 중요하죠. 백자보다 가마 온도가 더 높아야 반짝반짝 아름다운 색을 얻을 수 있는데, 전해진 기록도 스승도 없으니 어떤 온도에서 어느 정도 구워야 내가 원하는 색이 나오는지 스스로 연구할 수밖에 없었죠.”
김 작가는 세상의 모든 색을 다 품고 있는 흑자의 신비한 검은색이 불의 마술에 의해 탄생한다고 했다. “불을 다루지 못했다면 완성하지 못 했을 거예요.”
눈처럼 흰 백자의 반대, 그러니까 칠흑처럼 새까만 빛의 도자기를 기대하고 전시장을 찾은 이들이라면 조금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전시장의 작품들은 티 없이 검기보다 밤하늘을 바라볼 때처럼 붉은색, 푸른색, 금색, 은색 등 다양한 빛이 오묘하게 표면을 떠다닌다.
“흑자의 빛은 검은 유약과 불이 만나 탄생되는 것이라 우연성이 있죠. 그래서 불의 온도가 중요해요. 어떤 온도일 때 어느 빛을 띠는지 수십 만 번의 실험으로 데이터가 쌓여야 비로소 불을 조절해 원하는 검은색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공업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금속을 전공했고, 학교 안에 있는 용광로의 불빛에 홀렸었다는 그는 ‘불의 마술사’가 되기 위해 지금껏 수많은 실험을 반복해가며 데이터를 축적해왔다.
국내에는 흑자의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일본에선 김 작가의 흑자에 열광하는 이들이 많다. 일본미술구락부가 낸 ‘미술가명감’ 2011년판은 그가 만든 찻잔 하나를 100만엔(약 1000만원)으로 감정했다. 그가 빚은 달 항아리는 점당 3000만원을 호가한다.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이자 일본 최고의 도자 명가인 심수관 가문의 14대 심수관은 “김시영의 흑자에서 한국 도자기의 미래를 봤다”고까지 평했다.
김 작가가 흑자에 반한 또 다른 이유는 형태의 자유로움이다. 흑유는 백자보다 유약을 두껍게 발라야 한다. 때문에 가마 안에서 유약이 흘러내리면서 자연스러운 문양을 만들어낸다. 일부러 그림을 그려 넣지 않았음에도 까만 밤하늘에 은하수가 흐르고 별무리가 진 듯, 신비한 문양을 볼 수 있다. 어떤 것에선 하얗게 꽃도 핀다.
2010년부터 흑자 달 항아리를 만들 때도 김 작가는 백자 달 항아리처럼 좌우대칭이 정확한 것보다 유약이 흘러 형태가 자유롭게 일그러진 것을 더 좋아했다. “백자 달 항아리는 단아한 형태가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느낌이라면, 흑자는 고온에서 유약이 흘러내리면서 형태가 기형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자유롭고 더 시원해 보이죠. 산천의 소나무가 곧게만 자라지는 않잖아요.” 완전한 균형미를 못 만드는 게 아니라, 흙과 불이 만나 일어나는 자유로운 형태를 즐긴다는 얘기다.
이번 전시에서 3차원 회화를 연상시키는 추상 조각이 많은 것도 바로 이 흑자의 자연스러움을 살리기 위함이다. “불을 만나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형태가 오묘하게 제 자리를 잡아가는 게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차가운 빙산이 녹아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듯, 김 작가의 손에서 새롭게 성형된 흑자들은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간다. 그 속에서 흑자 특유의 검은 빛 또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뿜어낸다.
김 작가는 이번 작업에 두 딸의 영향이 컸다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물레에 앉혀 하루에 100개씩 도자 성형을 하고, 배낭 메고 같이 흙을 캐오던 두 딸은 미술을 전공한 후 현재 김 작가의 뒤를 잇고 있다.
“미대를 가라고 강요한 적이 없는데 아이들이 자연스레 미대를 가고, 덕분에 세계적인 회화·조각가들의 작품을 저도 알게 됐죠. 전통 자기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새로운 작업을 해보자는 숙제가 생겼어요. 달 항아리를 굽다가 불 속에서 형태가 무너지는 걸 보고 ‘이것 자체가 추상적인 조각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그 재미에 푹 빠졌죠.”
김 작가는 “흑자는 끝이 없을 것 같다”며 “여전히 검은 빛이 가진 한계를 잘 모르겠고, 진짜 검은 색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틀 정도 불을 때고, 하루 반 정도 식히면서 여전히 실수를 많이 하는데 실패할 때 좋은 공부가 되니 결국 많이 해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흑자는 단순한 흙이 불을 잘 만나 이루는 엄청난 신비스러움의 결과죠. 고려시대에 이 맥을 잘 살렸다면 지금 흑자가 청자에 결코 밀리지 않았을 겁니다.”
김시영 작가의 흑자 달항아리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