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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9 (수) 하태경, 종로 출마선언… 같은당 현역도 있는데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내년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종로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수도권 승리의 견인차가 되겠다는 포부다. 하지만 하태경 의원의 종로 출마 선언은 수도권 험지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당초 취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같은 당 현역인 최재형 의원이 지역구에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대권도전 루트의 상징성이 큰 지역인 만큼 오히려 종로 출마 선언으로 대권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하태경 의원은 11월 2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종로는 우리 당이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곳이고, 종로를 빼앗긴 채로는 수도권 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며 "수도권 총선 승리의 제1조건이 바로 종로 사수다. 종로에서 힘차게 깃발을 들고 우리 당 수도권 승리의 견인차가 되겠다"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은 수도권 가운데서도 종로를 나름의 험지로 평가한 모양새다.
하태경 의원은 "종로는 보선을 빼고 세번에 걸쳐 민주당이 차지한 지역이라 험지이자 격전지"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19대에서 21대 총선까지 종로에서는 정세균 전 국회의장,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당선됐다. 다만, 이낙연 전 총리가 지난 대선 후보 당내 경선 중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이후 재보궐선거에서는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당선됐다.
하지만 당 혁신위원회가 당초 제시한 수도권 험지출마의 취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것으로 평가된다. 험지출마의 배경은 기본적으로 '자기 희생'을 토대로 하는데 아무리 지역구(부산)을 떠나더라도 과연 종로가 혁신위가 제시한 험지에 포함되느냐 의아해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 당 관계자는 "체급을 봐도 그렇고, 험지출마는 자기 희생이 기본인데 잠룡 루트인 종로를 가겠다는 게 과연 혁신위의 험지 출마 취지와 부합되는 지 솔직히 생뚱맞은 느낌"이라며 "출마는 자유지만, 일각에선 '셀프 험지', '욕심 험지'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라고 귀뜸했다.
게다가 종로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분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16대부터 18대까지 박진 현 외교부 장관이 한나라당으로 출마해 내리 3선을 했으며, 역대 선거 결과를 살펴봐도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당선자를 배출했다. 종로 지역구 분위기도 지역 현안보다는 전국적인 이슈나 인물론에 더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이에 하태경 의원의 종로 출마는 대권 주자로 나서겠다는 의지만 확인시켜준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예로부터 종로는 굵직한 정치 거물들이 주로 출마했던 곳으로, 지역구 출신으로만 윤보선·이명박·노무현 등 전 대통령 3명이 배출되기도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하태경 의원의 종로 출마 선언과 관련해 "종로는 아직도 대한민국 상징적인 곳인데 주사파 출신이 갈곳은 아니다"며 "출마는 자유지만 착각이 도를 넘는다"고 썼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11월 27일 서울 종로구 출마 의사를 밝힌 데 대해 당 지도부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종로구는 같은 당 최재형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데다 '정치 1번지'라는 상징성이 있는데 사전 상의가 없어 당혹스럽단 것이다. 반면 하 의원 측은 당 지도부와 두루 상의를 거쳤단 입장을 밝혔다. 하태경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로 출마로 우리 당 수도권 승리의 견인차가 되겠다"며 "청춘의 꿈을 키웠던 종로 품으로 돌아와 4선 국회의원에 도전한다"고 말했다. 부산 해운대갑 3선인 하 의원은 지난달 10월 7일 정치적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서울 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하태경 의원은 당 지도부와 합의가 됐냐는 질문에 "당하고도 상의를 해서 종로 출마 확정된 사람이 아무도 없어 (출마를) 양해를 해줬다"며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게는 오래 전에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또 "종로는 (같은 당인) 최재형 의원이 있는 곳이다. 존경하는 분이기 때문에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있었다"며 "직접 찾아뵙고 식사하면서 고민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재형 의원은 '당신이 어떻게 막으시겠나'며 양해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했다.
당 관계자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에 "중요한 사안인데 지도부와 사전에 상의하지 않았다.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반면 하태경 의원은 통화에서 "김기현 대표와는 직접 얘기하지 않았지만 지도부와 얘기했다. 지난번 서울 출마 선언할 때도 김 대표와는 상의하지 않았고 인사 핵심라인을 통해 전달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당 지도부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종로구 출마를 하태경 의원이 선제적으로 밝히면서 전체적인 당내 총선 전략이 꼬일 가능성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종로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출마가 유력시 되는 곳 중 하나다. 최재형 의원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서 "한동훈 장관 종로구 출마설에 이어 3선 중진인 하태경 의원이 종로구 출마를 선언했다"며 "역시 종로구는 '정치 1번지'가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종로구를 지켜내는 것이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중요하다. 누구나 꿈꾸지만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것이 종로구이고 종로 구민의 마음"이라며 "정치 1번지 종로구를 지켜내기 위해 열심히 준비해온 만큼 내년 총선에 임하는 각오를 더욱 굳건히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보선에서 탈환한 종로를 험지로 볼 수 있느냐는 의견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하태경 의원 측은 "종로 출마를 거론하는 분들은 많지만 명확히 깃발을 꽂은 사람은 없다"며 "현재 당 지지율로 볼 때 지난 2020년 총선 상황으로 돌아갔다고 봐야 한다. 당시 황교안 전 대표가 이낙연 전 대표에게 20%p(포인트) 차이로 진 험지"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최근 김기현 대표를 향한 하태경 의원의 발언에 대한 김기현 대표의 불편한 감정이 표출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하태경 의원은 최근 김기현 대표를 향해 수도권 출마를 압박하는 한편 "울산 출마 선언이 있다면 굉장히 역풍이 불 것", "슈퍼 빅텐트 구상에 구멍이 많다" 등 쓴소리를 해왔다.
아파트 한채값 ‘13억’ 가방… 루이비통 ‘밀리어네어’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최근 출시한 ‘밀리어네어 스피디’(Millionair Speedy)는 이름 그대로 떡하니 100만달러짜리 가격표가 붙어 있는 가방이다. 우리 돈 13억원으로 웬만한 부자 아니면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돈이 많다고 ‘밀리어네어 스피디’를 가질 순 없다. 루이비통이 극소수 VVIP에게만 주문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11월 27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밀리어네어 스피디’는 가수이자 루이비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퍼렐 윌리엄스가 디자인 한 것으로 지난 10월 초 ‘파리 패선위크’에서 첫선을 보인 뒤 숱한 화제를 낳았다. 윌리엄스는 2013년 전세계를 강타한 로빈 시크의 ‘블러드 라인(Blurred Lines)을 작곡했을 뿐 아니라 피처링, 뮤직비디오에서의 맛깔스러운 춤솜씨를 보여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악어가죽으로 만든 밀리어네어 스피디는 다이아몬드 로고, 금으로 된 체인과 지퍼로 장식돼 있으며 색상은 빨강, 노랑, 갈색, 녹색 등 주문자가 택할 수 있다.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 미국 지부는 가방을 디자인한 퍼렐 윌리엄스에게 ’악어 농장 견학 초대장‘을 보내 동물학대 행위를 비판한 바 있다.
2023 KBO MVP는 3관왕 페디, 신인왕은 160km 문동주
2023 KBO리그 MVP는 투수 3관왕 에릭 페디(NC), 신인왕은 160km의 남자 문동주(한화)였다. ‘트리플 크라운 투수’ 페디와 ‘아기 독수리’ 문동주가 2023 KBO리그에서 가장 빛난 별이 됐다. 투수 3관왕에 오른 페디는 만장일치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91.9%의 높은 득표율로 MVP에 올랐고, 문동주 또한 76.6%라는 매우 높은 득표율로 생애 한 번 뿐인 신인왕을 수상했다.
2023 KBO 정규시즌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들을 선정하고 조명하는 ‘2023 신한은행 SOL KBO 시상식’이 11월 27일 오후 2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2023 KBO리그 최우수선수(MVP)의 영광은 NC 다이노스의 외국인 투수 페디의 몫이었다. 올 시즌 페디는 다승(20승)-평균자책(2.00)-탈삼진(209개) 3개 부문 1위에 올라 트리플크라운에 성공하며 올 시즌 NC의 돌풍을 이끌었다. 2011년 윤석민(KIA) 이후 12년만인 동시에 역대 7번째 트리플크라운에 성공하며 만장일치 수상까지도 점쳐졌다.
실제 페디는 유효 투표 111표 가운데 91.9%에 해당하는 102표를 획득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올 시즌 페디는 30경기(180.1이닝)에 출전해 20승(1위) 6패 209탈삼진(1위) 평균자책 2.00(1위)의 기록을 작성, 앞서 선동열(해태 타이거즈·1986, 1989~1991)을 비롯해 류현진(한화 이글스·2006년), 윤석민(KIA 타이거즈·2011년)만 써냈던 트리플크라운의 위업을 세웠다. 아울러 페디는 1986년 선동열(해태·24승 214탈삼진) 이후 37년 만이자 통산 5번째(1983년 장명부·삼미 슈퍼스타즈·30승 220탈삼진, 1984년 최동원·롯데 자이언츠·27승 223탈삼진, 1985년 김시진·삼성 라이온즈·25승 201탈삼진, 1986년 선동열) 한 시즌 20승-200탈삼진을 달성한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올 시즌 타자 부문 2관왕에 오른 노시환은 2위에 해당하는 6표를 얻었지만 아쉬움을 삼키게 됐다. 프로 5년차 노시환은 아시안게임 차출에도 불구하고 홈런왕(31홈런)-타점왕(101타점)에 오르며 20대 타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썼지만 투수 트리플 크라운에 오른 페디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 외 영광의 MVP 후보에는 각 타이틀 1위에 오른 선수를 비롯해 한국야구기자협회 추천으로 SSG 서진용, 최정, 키움 후라도, 김혜성, LG 오스틴, 홍창기, KT 고영표, 박영현, 쿠에바스, 손아섭, 삼성 뷰캐넌, 구자욱, 두산 알칸타라, 정수빈이 올랐다.
그 가운데 출루율과 득점 부문 2관왕에 오른 홍창기가 2표를 얻어 MVP 투표 3위에 올랐고, 장타율 1위 최정이 1표를 획득해 4위를 기록했다. 이날 투수 3관왕 타이틀과 수비상에 이어 MVP까지 총 5개의 트로피를 손에 든 페디는 MVP로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한 것에 대한 영광을 전했다. 또한 여러 차례 팀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플레이오프 등판 불발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MVP 수상 직후 페디는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행복하다. KBO리그에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이 리그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 상을 받을 수 없었다”면서 “NC라는 팀에 왔기 때문에 수상할 수 있었다. 팀에서 많은 도움을 줘서 좋은 시즌을 보낼 수 있었다”고 재차 감사함을 표했다. 그러면서 페디는 “가족들이 먼 나라인 한국까지 와서 많은 도움을 줬다. 부모님, 동생, 여자친구까지 와서 도와줬다. 특히 아버지는 여기까지 같이 와 주셨다”고 고개를 숙였다.
올 시즌 종료 후 미국으로 돌아갔던 페디는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 26일 한국에 들어왔다. 시상식 참가 후, 개인 일정을 소화한 뒤 오는 28일 돌아가는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마지막을 함게 하기 위해 시상식에 참여하게 됐다. 특피 페디의 부친인 스콧 페디 씨는 한국까지 함께 건너와 시상식에 참석, 아들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함께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스콧 페디 씨는 시상식 종료 후 취재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페디의 눈물을 본 아버지 스콧 페디는 “페디는 등판을 할 수 있었다면, 던졌을 거라 믿고 있다. 페디 선수는 경쟁력이 있고, 경쟁심이 강한 선수다. 못 던졌기에 화가 많이 났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스콧 페디는 “페디 인생에 있어 어쩌면 한 번뿐인 해외에서 살 수 있는 기회, 다른 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기회이기에 잘 선택하라고 아들에게 조언했다”라며 “아들이 자랑스럽다.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다”라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아들 페디 역시 동료들에게 수상의 기쁨의 돌렸다. 페디는 “같은 팀에서 뛰는 많은 선수들이 아니었다면 수상할 수 없었다. 우리는 형제라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다. 강인권 감독님과 김수경 투수코치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데이터 팀, 트레이닝 파트에서도 큰 도움을 줬다”며 “창원, 마산이라는 도시에도 영광을 돌리고 싶다. 창원에 있는 많은 시민들이 큰 도움을 줬다. 창원, 마산이라는 도시는 어디에 가든 제 2의 고향이다.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다.
정규리그 막바지 타구에 오른 팔뚝을 맞은 페디는 그 여파로 PS 단 한 경기에 등판했다. 일각에서는 플레이오프 최종전에서 나서지 않은 페디에 대해 ‘태업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그는 NC가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자 눈물을 흘리며 진심을 보였다. 해당 사건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페디는 또 한 번 눈가가 붉어졌다. 페디는 “그때 감정적으로 많이 변했다. 팀에 도움을 많이 못 줘서 눈물을 흘렸다”면서 “아까 이야기했다시피 팀에 있는 모든 선수가 내겐 형제다. 그래서 감정이 더 북받쳤던 것 같다. 사실 전지훈련 때 낯선 환경이라 두려웠다. 그런데 첫 날부터 너무 잘 챙겨줬다”며 거듭 눈시울을 붉혔다.
페디는 올 시즌을 끝으로 다시 메이저리그로 복귀할 가능성인 높다. 미국 현지에서 페디가 다년 계약을 체결할 것이란 보도가 쏟아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순간이 될 가능성이 높은 순간, KBO리그와 NC에 대한 진심을 고스란히 전하며 더 빛난 페디였다. KBO리그 신인 및 신예 선수 가운데 가장 돋보였던 신인왕의 영광은 한화의 2년차 우완투수 문동주가 차지했다. 문동주는 유효표 111표 가운데 85표(76.6%)를 획득, 강력한 경쟁 후보로 꼽혔던 KIA 타이거즈의 1년차 좌완투수 윤영철(15표)을 제치고 영광을 가져갔다.
문동주는 올 시즌 23경기에 등판해 8승 8패 평균자책 3.72의 성적을 올리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2023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준우승에 기여했다 . 또한 문동주는 4월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KBO리그 공인 최고구속(160.1km)을 경신하며 야구팬들에게 큰 기쁨과 화제를 남기기도 했다. 한화 구단 역대로는 2006년 류현진(MVP, 신인왕 동시 수상)이후로는 무려 17년만에 배출한 신인왕이다.
그래선지 신인왕 수상 직후 문동주는 떨리는 표정으로 시상대에 섰다. 이후 문동주는 “이 자리에 서니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지금 생각나는 건 트로피가 많이 무거운 것 같다”고 한 이후 잠시 숨을 고르고는 “이 트로피 무게를 견뎌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신인왕 수상의 영광을 깊이 체감하는 모습이었다. 이어 그간 함께 호흡했던 지도자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문동주는 “한화 이글스 최원호 감독님, 이동걸 코치님. 카를로스 수베로 전 감독과 코칭스태프 분들께도 감사드린다”면서 “전력분석팀과 트레이닝파트에서 올 시즌 신경 많이 써주셔서 이 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라며 고마움을 돌렸다.
또한 문동주는 “부모님, 가족들 항상 너무 감사드린다”라며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한 이후 “마지막으로 이 상은 류현진 선배님 이후로 (한화에서) 17년 만에 받는 상으로 알고 있다. 이 영광을 팬분들께 돌리도록 하겠다”며 끝으로 한화 팬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내년 목표는 한화의 더 높은 곳으로의 비상이다. 문동주는 “내년에는 우리 팀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가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도록 열심히 던지겠다”고 다짐했다.
2022년 한화 1차 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한 문동주는 지난 시즌 13경기에 등판했지만 소화이닝이 28.2이닝으로 신인왕 자격 요건(30이닝 미만)에 미치지 않아 신인왕 자격을 유지했고 프로무대에서 차지할 수 있는 단 한 번뿐인 영광을 차지하게 됐다. 신인왕 후보로는 KBO 표창규정 제7조에 의거해 기준을 충족하는 선수들 중 총 10명이 선정됐다.
문동주 외 신인상 후보자는 키움 김동헌, 이주형, LG 유영찬, KIA 윤영철, 최지민, 롯데 김민석, 윤동희, 두산 김동주, 한화 문동주, 문현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올 시즌 KBO리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이들 가운데 신인왕을 받은 이는 문동주 1명이었지만 모두가 박수받아 마땅한 신인들이었다. KIA 소속으로 올 시즌 25경기서 8승 7패 평균자책 4.04를 기록한 윤영철은 15표를 얻어 신인왕 투표 2위에 올랐다. 이어 최지민(4표, KIA)-윤동희(3표, 롯데)-김동헌(2표, 키움)-김민석(1표, 롯데)-유영찬(1표, LG)순으로 득표했다.
111표 중 6표를 받은 노시환(한화)
대한민국 역사를 뒤흔든… 12․12사태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
2023년 11월 22일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은 황정민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등 소름 돋는 연기파 배우들이 다수 등장하는 1979년 12․12사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개봉일 : 2023. 11. 22
장르 : 드라마
감독 : 김성수 감독
출연진 :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최민
상영시간 : 141분
상영등급 : 12세 이상
실화 개봉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1980년 대한민국 역사를 뒤흔들었던 사건으로 서울에서 신군부 세력들의 반란을 막는 9시간의 실화 이야기를 바탕을 제작된 영화다. 대한민국 영화감독 김성수는 이병헌 배우와 함께 <런어웨이>라는 영화로 데뷔하였다. 1997년 흥행 인기 영화 <비트>, 1998년 흥행 영화 <태양은 없다> 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 감독이다.
정우성 배우는 김성수 감독 작품에 대부분 등장하는데 영화 <비트>를 시작으로 <태양은 없다>, <아수라>에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서울의 봄>에 주역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 운명을 바꾼 군사반란의 날에 군인으로서의 신념을 지키는 인물과 권력을 향하는 가득한 욕망의 인물이 강렬하고 긴박한 이야기를 선보인다.
캐스팅 배우들의 등장인물 공개만으로도 벌써부터 대박 흥행의 예감이 드는데, 영화 <서울의 봄> 등장인물, 출연진을 알아보면 실존 인물 전두환 역으로 신군부 핵심 전두광은 황정민이 맡았다. 황정민 배우는 등장인물의 외모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대머리 특수 분장으로 출연하며 엄청난 싱크로율 이미지로 개봉 전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보여주었다.
실존 인물 장태완을 모티브로 만든 <서울의 봄> 등장인물 이태신 역은 정우성 배우가 연기한다. 정승화 실존 인물인 정상호 역은 이성민, 노태우 역의 노태건역은 박해준, 김진기 인물 김준엽역 김성균 배우가 열연한다. 그 외 <서울의 봄> 출연진(등장인물) 배우는 오구민역에 최민, 차규헌을 모티브로 한 현치성역에 전진기, 안세호, 박훈, 박정표, 안성봉 배우 등이 등장한다.
1979년 12월 12일 군사 반란 실화를 바탕으로 한국 영화 <서울의 봄>은 군부 독재가 끝나고 희망이 불어올 것이라는 의미를 상징하는 그날 밤 운명의 9시간 일촉즉발 대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 은 포스터에 나타난 배우들의 표정부터 강렬한 인상이 느껴지는데 신뢰감 가는 배우들 캐스팅으로 한 번쯤 볼만한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12·12사태… 12·12군사반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정승화 육군 참모 총장 등을 불법적으로 강제 연행하고 군권을 장악하면서 시작된 군사 반란 사건이다. 신군부는 12월 13일 군본부와 국방부, 중앙청, 경복궁 등 핵심 거점을 점령하고 방송국과 신문사를 통제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최규하를 협박해 사후 승인을 받은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를 계기로 정권을 장악하는 한편, 이에 항거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강경 진압했다. 전두환은 1980년 9월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이 됐으며, 1981년 개헌으로 제5공화국이 시작됐다. 12·12 군사반란의 진상은 권력에 의해 오랫동안 은폐돼 있었으며, 김영삼 정부에서야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 배경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됐다. 이를 계기로 계엄사령관에 취임한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은 군 내부개혁을 진행했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수도권 지역의 주요 군 지휘관을 교체했으며 이에 따라 정치군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군 내부에서 부각됐다.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신군부)는 이에 불만을 품고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를 감행해 불법적으로 군권을 장악했다.
12월 12일 저녁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이 합수부 소속의 허삼수, 우경윤 대령에게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의 강제연행을 지시했다. 한국정치사에서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또 한 번의 군사쿠데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국군보안사령부 인사처장 겸 계엄사령부 소속 합동수사본부 조정통제국장이던 허삼수 대령은 합동수사본부 수사 제2국장 우경윤 등과 함께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저녁 6시 50분 경 무장한 제33헌병대 병력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공관 주변에 배치했다.
약 20분이 지난 7시 10분경 참모총장 공관으로 들어가 총으로 위협하며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체포했다. 이후 저녁 7시 30분경 정승화 총장을 강제로 끌고 나와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연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참모총장 부관이 전화로 외부와의 연락을 시도하자 합수부측 보안사 수사관들이 권총을 발사해 양측간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신군부는 큰 저항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해 군사쿠데타에 성공했다. 같은 시간,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총리공관에 머물고 있던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참모총장 체포에 대한 재가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저녁 9시 30분경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백운택, 박희도 등과 함께 집단적으로 대통령을 찾아가 재차 정승화 참모총장의 체포 및 연행에 대한 재가를 강압적으로 요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편, 이 부분에 대해 추후 대법원은 12월 13일 새벽 5시 10분경 신군부세력의 주장대로 재가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승화 참모총장이 이미 체포되었고 또 신군부 세력이 군권을 장악한 이후 이루어진 것으로서 '사후승낙'에 불과하기 때문에 반란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12·12 군사반란 다음날 아침 노재현 국방부장관은 정승화 참모총장 연행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 관여했던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라는 짤막한 배경설명을 발표했으나, 그 역시 신군부에 의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12·12 군사반란을 통해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은 12월 13일 0시부터 새벽 6시 20분 사이 육군본부와 국방부, 중앙청, 경복궁 등 핵심 거점을 차례로 점령하고 방송국과 신문사를 통제 하에 두었다. 또한,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체포했으며 수도경비사령부에 모여있던 윤성민 참모차장과 하소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문홍구 합동참모본부장 등 육군본부측 장성들의 무장을 해제하였다.
12·12 군사반란 이후 이듬해인 1980년 1월 20일자 신군부 세력은 정승화 참모총장의 추종세력인 이건영 3군사령관과 정병주, 장태완 등을 모두 예편시키고 정승화 참모총장에게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이와 달리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신군부 세력은 대부분 승승장구하며 권력의 요직을 차지했다.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이희성 중장이 임명되었고 수도경비사령관에 노태우 소장, 특전사령관에 정호용 소장이 임명되었다. 그 외에도 황영시, 김복동, 유학성, 유병현, 박준병 등 신군부 세력은 군 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계기로 국가권력을 탈취하며 긴 쿠데타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고 등장한 제5공화국의 뿌리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12·12 군사반란의 진상은 그후 십여년간 밝혀지지 못한 채 권력에 의해 은폐되어 있다가 김영삼 정부 아래서 쿠데타의 주역인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이 구속되어 사법적 심판을 받는 과정에서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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