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기만 하던 햇살이 많이 누그러졌다. 오후 4시 반쯤.
서울대 입구는 부산하기만 하였다. 좁은 도로 위에 이런저런 상인들이 모두 나와 살고 있었다. 오늘도 내 좋아해 마지않는 호떡 하나를 입에 물었다. 하나에 오백냥이나 내 입속으로 해서 뱃 속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오만냥이 더 되고도 남을 것이었다.
아무리 발걸음을 늦춰잡아도 아직 서울대입구. 사람들이 빙둘러 모여있었다. 무엇인가 들여보았더니, 내가 좋아하는 놀이패, 고스톱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점에 이백원짜리. 심심풀이 시간 죽이기였겠지만 눈에들 잔뜩 빛이 들어가 있었다.
그들이 사는 단순하고 편안한 세상이었다.
터벅터벅.
정말로 서울대 입구. 멋대가리 하나도 없는 마크 'ㄱ ㅅ ㄷ'. 옛날 옛날에 처음 들어갔을 때 '공산당'의 약자라고 꼬아서 비아냥거리며 ‘말 많으면’ 그러하니 조심하라 했었고, 고약하게는 '계집 술 담배'의 약어라 이를 탐닉하여 또 극복하라 했었는데, 지금 다시 아무리 봐도 볼 품 하나도 없는 표상, 더군다나 그것을 교문으로 만들어 놓으니 더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도 이곳저곳에 ‘2006학번 000’ ‘2007학번 아무개’'2008학번 누구누구' '2010학번 아무개'들의 격문과 소원이 성황당의 돌 하나 하나처럼 되어서 더미되어 쌓이고 있었다. 가까운 서울의 중학생에서 깡시골의 중학생까지, 온가족의 이름으로 또는 친구들끼리. 꿈을 꾸는 것이야 무슨 잘못이 있을까, 올바른 꿈을 꾸는 것이라면.
누구는 말했다. 우리나라 좋은나라 될려면 ‘에스’대학교와 ‘이’여자대학교를 없애야 한다고.
나는 짝짝짝이닷. 온갖 되지 못한 짓들은 그들이 패거리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랑하며 해대지 않던가.
잠깐 들어가 벤치의자에 걸터 앉아 거대한 켐퍼스를 보았더니 남의 집보다 더 낯설어 보였다. 30여년이 흐른 시간때문일까 나의 수택이 묻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나 개인적 시공간의 부조화때문일까.
갑자기 족발이 먹고 싶어졌다.
말복이기도 하고 집에 가봤자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기도 하고 해서 삼계탕을 먹고 들어갈까 했는데, 족발이 땡기니.........내가 상상임신을 한 것도 아니고, 이를 어쩌나, 쩝쩝.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오늘은 느릿느릿 이것저것 하나하나 들여다보지 않고,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어서 족발을 주문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족발을 주문하기 전, 일에도 순서가 있지, 그래, 밥, 국, 족발 주문 그리고 가득 쌓여있는 그릇들을 설거지해야지 하였다.
먼저 밥부터 하자.
마눌님께서 강의하신대로 기억을 되찾아 하나하나. 우선 3인분의 쌀, 쌀통에서 '3'을 누른다. ‘1’을 누르자니 너무 적기도 하고 ‘3’을 눌러서 세끼 혹은 3일을 버티면 더 좋을 것이니. 그리고 보리쌀을 한 주먹 섞어 넣는다.
쌀을 두 번 씻고, 그 물은 된장국물로 쓰기 위해 따로 받아 둔다.
조리를 찾으니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옛날 실력을 발휘하여 손으로 살랑살랑 조리질을 해본다. 그런데 돌이 하나도 없다. 요즈음 쌀은 돌이 없는데 괜히 조리질을 하였구나. 그래서 부엌에 조리가 없는 것인가? 내가 찾지 못 하였는가?
쌀을 압력전기밥솥에 앉히는데, 물을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 마눌님께서는 손가락으로 어쩌고저쩌고 하였는데 기억도 없고, 또 할 수 없이 옛날 자취하던 기억을 살려 손등에 물이 차올라오는 정도로 하였다.
밥솥뚜껑을 닫고 밥 취사 '시작'. 아무리 기다려도 밥이 되는 것같지가 않았다. 이리보고 저리봐도 밥이 되고 있지 않음에 틀림없었다.
돋보기 안경을 가져와 다시 보니 '취사'버튼을 누르지 않고 뚜껑만 닫고 만 것이었다. 오, 하느님, 오 위대하신 우리 마눌님 밥아줌마시여. 이 말짱하나 어벙하기만 이몸을 굽어살펴주시옵소서.
된장국 만들기.
처갓집 영광에서 올라온 시골된장 두 숟가락 퍼서, 작은 그릇에 풀기 그리고 쌀뜨물에 퍼넣기.
양파와 호박 썰어 넣기. 풋고추 썰어넣기.
어디 감자나 두부 그리고 멸치 없나? 아무리 찾아도 어디에 있는지 아예 없는지 알 수가 없구나. 이런 답답 또 답답한 일이 있다니.
준비된 선수들만 집어넣고 가스불 확 당겼으니, 시간이 지나면 시골 된장국 완성 끝.
이제는 족발 주문.
어떻게 어디로 주문을 하는 거지? 어디 주문하는 곳이 있을 터인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다. 114? 114는 무엇이든 알려준다. 알아들 두시라. 마눌님께서 계시지 않은 때 이용하시라 114.
'왕족발이죠? 가장 적은 것으로, 얼마죠?'' 혼자 먹어야 되는데 너무 많지 않커써여? 돈이 문제가 아니라요, 반만 배달.........?'//'그래도 반만은 배달 못합니다.'
할 수 없이 거금 만팔천원짜리로다가, 혼자 먹다가 못다 먹으면, 내일 또 먹고 또 먹고 하지 뭐, 하였다.
소주 한 병에, 메밀국수까지, 20분안에 배달 가능.
잘 되었다 싶었다. 그동안 밀려있는 설거지를 하고, 밥이 되고, 때맞추어 족발이 오면, 건사하고 대단한 저녁식사가 되겠지 싶었다.
설거지를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깨끗이 하여 물에 담궈 놓자, 족발이 들이닥치고, 밥솥에서는 밥이 다 됐다는 '뛰뛰'소리가 나고, 밥을 펐는데, 야 밥물 하나 끝내주게 보았지 싶었다. 고슬고슬하게 쫄깃쫄깃하게 되었는데 옛날 왕년의 자취실력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된장국이 댑다 너무 짰다. 한 숟가락만 넣어야 하는데 두 숟가락을 넣고 말았다니, 어찌할 것인가, 이미 내가 낳은 자식인 걸, 못생겼다고 짜다고 버릴 수야 없잖은가. 못생긴 것이 짭잘한 것이 또다른 감칠 맛이 있었다.
족발과 상추 마늘 풋고추 그리고 싱큼한 열무김치까지.
밥과 된장국.
그리고 쏘주.
처성자옥을 벗어난 해방공간에서,
만년 비주류가 반주 삼아 소주까지 만나게 되었으니 그 맛이 어떠했을까.
아는 사람만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