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랫클리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25일 러시아를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랫클리프 국장은 이날 오전 미 공군 보잉 C-17A 글로브마스터Ⅲ 수송기를 타고 모스크바 브누코보 공항에 도착했으며, 이날 오후 공항을 떠났다. 비행정보 사이트 flightradar24.com에 따르면 이 수송기는 지난 23일 미 워싱턴 DC 인근의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출발,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 들른 뒤 모스크바로 향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그러나 이 수송기에 대해 아는 정보가 없다고 밝혔으며, CIA와 주러 미대사관은 논평을 거부했다.
존 랫클리프 미 CIA 국장/사진출처:엑스@CIADirector
랫클리프 국장이 탄 미 수송기의 항로/사진출처:flightradar24.com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미국 측이 우크라이나에 24~26일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북부 지역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동의를 받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랫클리프 국장의 모스크바 방문을 앞둔 사전 준비의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랫클리프 국장의 모스크바 방문을 처음 보도한 미 CBS 방송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랫플리프 국장의 모스크바 방문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그의 모스크바 방문 목적에 대해서는 미-러-우크라 언론(전문가)의 의견이 제각각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베스 세너 전 미 국가정보국 부국장을 인용, 랫클리프 국장이 러시아의 9월 총선 후 동원 계획과 유럽 국가들에 대한 공격 가능성 때문에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고 분석했다. 랫클리프 국장이 러시아 고위 인사들과 만나 "우리는 당신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고 있으니, 절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라는 경고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는 진단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현재 동원 준비를 진행하고 있으며, 나토(NATO)의 결의를 시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베스 새너 전 부국장은 또 "랫클리프 국장의 방문이 이란과의 휴전과 휴전 논의에 다른 당사자들을 참여시키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며 "그가 미국의 새로운 대(對)이란 제재 조치 이후 크렘린의 이란 지원 문제를 제기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랫클리프 국장의 놀라운 모스크바 방문 소식을 전한 미 월스트리트저널/웹페이지 캡처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원 빅 유니언' 텔레그램 채널 운영자인 얀 베셀로프는 러시아 RTVI(Russian TeleVision International, 옛 민영 NTV의 위성 채널)에 "랫클리프 국장은 러시아 지도부에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전달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갔다"고 분석했다. 또 "CIA와 랫트클리프 국장이 이전에 직접 담당했던 포로 교환 문제나 이란 문제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랫플리프 국장은 그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을 진행해온 스티븐 위트코프 미 대통령 특사와 대통령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달리,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함께 미국 행정부 내 대(對)러 강경파로 꼽힌다"며 "그의 방문은 세 가지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짚었다.
먼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현재 조건을 조정(완화)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입장이 더욱 강경해질 것이라는 경고를 전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다. 두 번째는 반대로 랫클리프 국장 등 미국의 강경파들이 입장을 바꿔 러시아와 평화 협상을 위한 대화에 나서기로 했다는 것. 우크라이나전 확전과 더불어 고조되는 러-유럽 간 긴장 관계를 관련된(해소, 혹은 경고하기 위한) 방문이라는 게 세 번째 해석이다. 미국 정보기관은 최근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들의 단결력을 시험하기 위해 유럽내 나토 국가들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러시아와 나토 간의 직접 충돌 가능성에 대한 예측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상태다.
미 트럼프 대통령과 랫클리프 CIA 국장/사진출처:미 백악관 페이스북
스트라나.ua는 위트코프 특사와 재러드 쿠슈너의 키예프(키이우)와 모스크바 방문이 계속 지연되는 가운데 미 행정부 내 강경파로 꼽히는 랫클리프 국장의 모스크바 방문은 그 자체가 주목할 만하다"고 썼다. 그는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정유시설 등 후방 인프라 공격에 미국의 정보를 제공하는 문제 등 키예프와의 정보 협력 확대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이번 방문과 비교되는 것은 전쟁 발발 직전인 2021년 말 윌리엄 번스 당시 CIA 국장의 모스크바 행보다. 번스 전 국장은 나중에 모스크바에서 나눈 대화의 주제가 모스크바의 전쟁 준비에 관한 정보 공유와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포기 설득 작업이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크렘린도 당시 번스 전 국장에게 (나토의 동진 포기라는) 긴장 해결 조건을 제시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랫클리프 국장의 이번 모스크바 방문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이란 협상, 북미 관계 등 국제 정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