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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老子)
노자(老子)는 춘추시대 초나라의 철학자로 전해지고 있다.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시호는 담(聃)이다.
허난 성 루이 현 사람으로 주왕을 섬겼으나, 뒤에 관직을 버렸다.
그는 중국에서 우주의 만물에 대하여 생각한 최초의 사람으로, 그가 발견한 우주의 진리를 '도'(道)라고 이름지었다. 그 도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을 '도교'라고 하며, 그는 우주 만물이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이치가 곧 '도'라고 설명하였다.
노자의 실체
사마천(司馬遷)은 《사기》에서 노자로 상정되는 인물이 3인이 있다고 하였다. (老子 韓非列傳). 첫째로 이이(李耳, 자는 담(聃=老聃)를 들었다. 그는 초나라 사람으로 공자가 예(禮)를 배운 사람이며, 도덕의 말 5천여 언(言)을 저작한 사람인데 그의 최후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 다음에 든 사람은 역시 공자와 동시대의 노래자(老萊子)로서 저서는 15편 있었다 한다. 세 번째 든 것은 주(周)의 태사담이라는 사람으로 공자의 사후 100년 이상 경과한 때에 진(秦)의 헌공과 회담하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노자는 은군자(隱君子)'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노자라고 하는 이는 은자로서 그 사람됨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후세에 노자라고 하면 공자에게 예를 가르쳤다고 하는 이이(李耳)를 생각하는 것이 상례이나, 이이라고 하는 인물은 도가의 사상이 왕성하던 시기에 그 사상의 시조로서 공자보다도 위인(偉人)이었다고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전설일지도 모르겠다.
펑유란(馮友蘭)은 노자가 전국시대의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이에 근거하여 노자가 실존인물이라고 가정한다면 최소한 도덕경 죽간본(BC 300년경) 이전일 수밖에 없으며 한비자(BC 280~BC 233)가 도덕경을 인용하였으므로 한비자보다 앞선다. 또 도덕경에는 유가사상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은데 이는 백서본(갑본은 전국시대 말기, 을본은 한나라 초기) 이후가 반유가적인 것이며 죽간본은 덜하다.
사상
도는 성질이나 모양을 가지지 않으며,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으며, 항상 어디에나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우주 만물은 다만 도가 밖으로 나타나는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우주 만물의 형태는 그 근본을 따지면 결국은 17가지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사상이다.
그의 사상은 그의 저서 <노자 도덕경> 속에 있는 '무위 자연'이라는 말로 나타낼 수 있다. 사람이 우주의 근본이며, 진리인 도의 길에 도달하려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무위 자연' 사상이다. 즉, 법률·도덕·풍속·문화 등 인위적인 것에 얽매이지 말고 사람의 가장 순수한 양심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며 살아갈 때 비로소 도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후세에 '도교의 시조'로 불리고, 그 사상은 '노장 사상' 또는 '도가 사상'으로 발전하여 유교와 함께 중국 정신 사상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되었다.
노자 도덕경
노자의 말이라고 하여 오늘날 《노자》(老子道德經이라고도 한다) 상·하 2권 81장이 남겨져 있다. 거기서 기술되고 있는 사상은 확실히 도(道)의 본질, 현상계의 생활하는 철학이다. 예컨대 도를 논하여 이렇게 말한다.
'도(道)'는 만물을 생장시키지만 만물을 자신의 소유로는 하지 않는다. 도는 만물을 형성시키지만 그 공(功)을 내세우지 않는다. 도는 만물을 성장시키지만 만물을 주재하지 않는다'(10장). 이런 사고는 만물의 형성·변화는 원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며 또한 거기에는 예정된 목적조차 없다는 생각에서 유래되었다.
노자의 말에 나타난 사상은 유심론으로 생각되고 있으나 펑유란은 도에 대해서는 사고방식은 일종의 유물론으로서 무신론에 연결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이해는 뛰어난 것이다. 또 '도(道)는 자연(自然)의 순리를 따른다(法)'(55장)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이 자기 의지를 가지고 자연계를 지배하는 일은 불가능함을 설명한 것이다. 이 이론은 유가(儒家)의 천인감응(天人感應)적 생각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자가 보인 인생관은 "유약한 자는 생(生)의 도(徒)이다" (76장). "유약은 강강(剛強)에 승한다."(36장) "상선(上善)은 물과 같다. 물은 흘러서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그러면서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때문에 도에 가깝다"(8장), "천하의 유약하기는 물보다 더한 것이 없다"(78장) 등의 구절에서 보듯이 어디까지나 나를 내세우지 않고 세상의 흐름을 따라 세상과 함께 사는 일을 권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상을 겸하부쟁(謙下不爭) 이라고 하는 말로써 환언(換言)하고 있다.
노자는 또 "도(道)는 일(一)을 생하고 일은 이(二)를 생하고 이는 삼(三)을 생하고 삼은 만물을 생한다."(42장)고 하는 식의 일원론적인 우주생성론을 생각하고 있었다.
워낙 실체가 불분명한 인물이라 여러 전설이 있는데 어머니 뱃속에서 70년을 지내다가 태어났다는 얘기가 유명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외모였고, 태어나자마자 집 앞에 있던 오얏나무를 가리켜 자신의 성씨로 삼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 도교가 발전하고 노자가 태상노군으로 격상되면서 사람들에 의해 윤색된 설화로 여겨진다.
또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후, 노자가 서쪽으로 떠나(혹은 노자가 석가로 환생하여) 사람들에게 내려준 가르침이 불교라는 이른바 노자화호설(老子化胡說)이 떠돌기도 했다. 이를 놓고 도교계에서는 자기들이 불교보다 우월하다는 근거로 삼았고, 불교에서는 조작되었다고 응수하는 한편 삼성화현설(三聖化現說)과 이 설이 담긴 '청정법행경'이라는 위경을 지어 공자는 유동 보살(광정 보살)의 환생이고 가섭 보살은 노자의 환생이라고 역공을 가했다. 이 설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말이 많은데, 도교계에서 불교가 크게 번성하여 도교의 자리가 위험해지자 도교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과, 현존하는 노자화호설 등장 문헌 중 가장 오래된 게 불교 쪽 문헌이라 처음 중국에 불교가 전해질 때 중국 내에서 반발이 많자 불교 쪽에서 포교를 위해 지어냈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노자화호설은 처음 불교전래 당시만 해도 오랑캐의 종교라며 받아들이는 것을 꺼렸던 중국에서 불교가 퍼지는데 상당 부분 기여하였다. 사실 도가의 철학적 의미를 찾는거라면 굳이 따질 필요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노자의 사상적 계승자로는 장자나 열자가 거론되지만, 사상의 지향점이 서로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리 다르지 않다고 보는게 일반적이다. 장자의 경우는 노자의 주요사상 중 하나인 현실주의를 극대화시킨 유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나라때 같은 이씨라고 도교를 숭상했던 역대 당나라 황제들이 조상이라고 윤색하기도 했다. 당현종 같은 경우 아예 황제로 추숭하기도.
도교가 성립된 이후 경전시되면서 《도덕경》으로 불리기도 한다. 참고로 《도덕경(道德經)》이란 이름은 상편의 "道可道, 非常道"의 "道"와 하편의 "上德不德"의 "德"을 합해 부른 이름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도덕의 의미가 얼마나 수준이 높은가 생각해 보라!)
전래되어 온 주요 판본
현전하는 《노자》에는 3개의 주요 판본이 있다. 하나는 한대에 성립된 하상공본(河上公本), 또 하나는 삼국 시대의 왕필이 주석한 왕필본(王弼本), 그리고 당대의 학자 부혁이 전한 부혁본(傅奕本)이 그것이다. 이 중 왕필본의 권위가 가장 인정되어 후대에 나온 대부분의 《노자》텍스트들은 대부분 왕필본에 의거하고 있다. 이 외에도 당대에 새겨진 여러 《노자》비들 또한 참고가 된다.
근대에 출토된 판본
20세기의 문헌 출토는 그야말로 《노자》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였다. 일단 20세기 초반에 발견된 대량의 돈황 문헌들 가운데에는 《노자》의 판본 또한 존재하였는데, 이러한 발견은 《노자》의 연구자들에게 유리한 국면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진정으로 《노자》연구자들에게 경천동지적인 소식을 전한 것은 1974년에 한대 이전에 조성된 무덤인 마왕퇴에서 발견된 《노자》갑, 을본이다. 이 《노자》사본은 비단에 쓰여졌기 때문에 백서 노자라고 불리며, 서한의 황제 고조(劉邦)와 문제(劉恒)의 이름이 피휘되지 않아, 서사된 시기가 한대 이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때문에, 《노자》의 한대 이후 위작론 및 노자라는 인물의 가공성을 논하던 학자들의 기세는 한 풀 꺾였으나, 확증은 없었기에 백중세가 되었다. 또한 특기할만 사항은 노자의 편집 순서인데, 백서 《노자》 왕필본 《노자》와는 달리 상편과 하편의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어 본래는 덕도로 순서로 되어 있었음을 알려주어 《덕도경(德道經)》으로 불리기도 하며, 왕필본과는 다르게 몇몇 내용의 순서와 글자가 바뀌어 있어 본래 도덕경의 모습을 유추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1993년에는 후베이성 징먼시 궈뎬촌의 한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 무덤(기원전 3세기 초 이전)에서 죽간에 쓰여진 《노자》의 사본이 발견되어, 《노자》의 '한대 이후 위작론'은 완전히 일소되었다. 다만 이 《노자》에는 오늘날 전하는 《노자》의 모든 편이 실려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이 실려있기 때문에 죽간본 노자는 《노자》에서 발췌된 내용인지, 혹은 《노자》의 본래 형태가 그러하였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현재도 논쟁 중이다. 때문에 백서 노자는 초판본 노자의 주석서라는 견해를 몇 학자들이 밝혔다.
《노자》의 판본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노자》와 성격이 다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천하 만물은 有에서 나오고 有는 無에서 나온다'라는 익히 알려진 왕필본과 백서의 구절이 죽간본에는 '천하 만물은 有에서 나오고, 또 無에서도 나온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큰 도가 사라지니 인의가 나오고, 지혜가 생겨 큰 거짓말이 생기고-'라는 구절이 원래는 '大道가 폐하니 安有仁義리오?인데 이는 "큰 도가 사라지니 어찌 인의가 있으리오?"로 읽을 수 있다. 이는 《노자》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반 유가적 성격'이 후대에 와서야 생긴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근거이다. 다시말해 지금까지 기본적으로 《노자》를 바라보았던 시선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면에서 연구할 것이 많은 텍스트라 할 수 있다. 또한 최근 발굴된 《노자》죽간본의 내용과 기존 판본들의 내용/사상의 큰 차이는 기존 주장 중 《노자》가 후대에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가필되었다는 주장을 더욱 강화시켜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노자》의 사상적 성격
왕필본으로 대표되는 《노자》는 일반적으로 반 유가적이면서 역설적인 격언을 담은 문헌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는 특히 《장자》가 갖는 성격과 연동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출토 문헌은 그러한 이해에 대하여 의구심을 던져주고 있다. 가령 왕필본의 "絶聖棄智, 民利百倍(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로움을 버리면, 백성의 이로움이 백배)"란 문장이 "絶智棄辯, 民利百倍(지식을 끊고 변론함을 버리면 백성의 이로움이 백배)"라는 내용으로 바뀌어 있으며, 왕필본의 "國家昏亂, 有忠臣(국가가 혼란해져야 충신이 생긴다)"란 문장도 "邦家昏亂,安有貞臣(나라가 혼란해지면 어디에 바른 신하가 있겠는가)"으로 바뀌어 있어 반유교적인 모습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늘날 이러한 문제는 학자들 중에서 치열하게 토론되고 있는 중이나, 지금까지 이해했던 노자의 모습은 최초의 노자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를지도 모른다.
현재까지 연구된 바에 기초하여 《노자》의 사상에 대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언어, 개념, 인식의 상대성을 강조하고, 서로 대립되는 것들의 관계에 주목한다. 특히 강함, 단단함, 높음, 그리고 채움에 대비하여 약함, 부드러움, 낮음, 비움, 그리고 겸손함을 강조한다. 억지로 그리고 작위적으로 무엇인가를 함을 반대하고 명예와 이익에 대한 추구 그리고 지나친 욕망 등을 비판하고, 마음을 깨끗하고 고요하게 하여 일이 자발적 또는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게끔 함을 주장한다. 통치자의 욕심으로 인하여 국가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결국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피해가 되니, 통치자는 헛된 마음을 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치자는 여러 가지 복잡한 명령과 법률을 시행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문장이 있다. 또한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맞춰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오래 사는 것이라는 문장도 있다. 이렇게 통치자와 관련된 구절이나 유, 무에 대한 구절들에 주목하여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은 왕필 등이고, 뒤의 '오래 사는 것'(장생불사)에 주목하여 양생론적, 종교적으로 보는 쪽이 하상공 그리고 도교의 노자에 대한 해석 그리고 입장이다. 이밖에 노자의 정치 철학은 소국과민이다. 이는 나라는 작게 하고 백성은 적게 하라는 말로써, 노자는 원시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여긴다.
여기에서 간과되기 쉬운 사실은, 노자의 사상은 유가나 법가와는 확연히 다른 수단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통치자가 지향해야 할 바를 논한다는 점이다. 노자 사상의 이른바 도교적, 양생론적 측면을 주목하는 입장에서는 노자 사상의 이러한 통치 규범적 측면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경향이 강했으며, 그래서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도가"적이라고 묶이게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도덕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장자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 등을 종합하여 노자의 상대성, 자연, 부드러움 등에 대한 태도가 결국 "부드러운" 형태의 통치술을 논하기 위한 하나의 비유라고 보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특히, 한비자의 "해로" 부분이나, 황로학파 등은 아예 노자가 유가, 법가, 묵가 등보다도 더 섬세한 고도의 통치술을 이야기한다고 보았으며, 이 때문에 후대의 왕필본에서는 이게 권모술수에 대한 서술인지, 자연적 원리에 대한 서술인지 애매하게 읽히는 부분들이 나온다. 실제로 이렇게 애매한 몇몇 부분들은 죽간본에는 없다. 대표적으로 36장. 다만, 죽간본에 있는 부분들만 놓고 봐도 유가와는 대비되는 통치 기술서로 읽을 여지가 없는 게 아니다.
이런 면을 보면, 왜 한비자가 노자에 주석을 달았고, 병법가, 무술가들이 은근히 노자에서 영감을 얻거나 비유를 들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놓고, 억지로 의도를 내비치면 상대가 반발할 것까지 미리 예상하고,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몇 수 앞을 읽어 행동하는 교활한 통치자나 전략가야말로 도에 맞추어 사는 사람일 수 있으니까. 병법서에서도 거국적인 외교술을 다루고, 격투기나 무기술에서도 음양수라고 해서, 실로 허를 치고, 허로 실을 치고, 허를 드러내는 것과 같이 기묘한 원리들을 다루는데, 노자를 이러한 맥락으로 읽을 가능성도 열려있다는 점이 노자의 묘미이다. 당연하지만 노자식 사회를 이상사회로 긍정적으로 평하는 학자들은 노자를 "권모술수를 담은 책"이라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둘 다 노자를 정치,사회적인 맥락에서 읽은 관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