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는 남녀공학 중학교 3년간 내가 줄반장을 할 때 내리 부반장을 했다, 한학년 두반에 B반 50명쯤에
남 30명 여 20명 가량이었는데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해서 모의고사 결과에는 항상 나를 따라 2등은 순자
몫이었다, 그러니 내가 시골서 경고를 가고 순자는 경여고를 갈 정도였다.
집안도 머슴을 둘이나 부리는 고향서 알아 주는 솟을 대문 기왓집에 부잣집이고 막내 고명딸이라 깔끔을
떨어도 누구도 인냉을 걸 생각도 못했고 체구도 있어 안하무인 격이라 머스메들이고 가시내들이고 눈밖에
안날려고 절절 매는게 눈에 선히 보였다, 남녀 학생끼리 어쨌다 하면 얼레리 꼴레리 하던 시절이었는데
이 순자가 나를 따르고 좋아한다는 것을 모두 알아도 입방아 찟는 애도 없었고 심지어 내가 다른 여학생에게
눈길을 주거나 좀 친절하게 대했다가는 그 애는 대놓고 왕따를 당해서 나와 눈 맞추는 것도 피해야 했다.
순자 아버지는 왜정 때엔 거제 동학 접주였다하고 해방후에 좌우익이 서로 나뉘어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이 되어 분란이 일어 났을 때에는 거제 빨치산격인 야산대의 골수 좌익 선전부장으로 위세를
부렸고 호형호제하던 울 아버지는 일본에서 독립했는데 왜 미국이 신탁통치를 히느냐고 반탁운동에 가세
하였다가 좌익에 휩쓸려 당시 주먹답게 야산대 투쟁부장을 하신 이력의 동지였다.
남한의 치안이 확보되어 좌익이 소탕되어 아버지는 체포되어 통영형무소로 이감되고 후한이 두렵던 동네
사람들을 꼬드겨 진정서를 내게 만들어 방면되었고 악질로 소문났던 순자 아버지는 피해 본 우익들에 의해
바다로 끌려 갈 상황에 발가벗고 산이야 동네를 돌아 댕기고 완전히 미쳐버렸다고 소문이 나 생명은 건졌는데
그게 먹힌게 그 집안 대대로 미친 사람이 나온 내력 때문이란다. 상황이 종료되고 난 뒤에 내가 알던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출입을 하고 다녔으니 대단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던 순자 집안과 우리 집안이 원수지간이 된 사건이 생겼다.
6.25로 우리 동네가 포로수용소로 수용되어 소개 당하여 피난갔다 약 4년만에 돌아 왔더니 국민학교 아래
있던 우리 집터는 학교를 사령부로 사용하던 미군이 연병장을 넓히는 바람에 학교운동장이 되어버려
동네에서 떨어진 논이 있던 냇가에 집을 새로 지어 살게 되었는데 얼마되지 않아 홍수로 그만 집이 떠내려
가고 말았다, 내가 대여섯살때인가 쏟이지는 폭우에 가족들이 모여 천막을 뒤집어 쓰고 밤에 떠내려 가는
집을 지켜 보던게 기억이 남아있다.
그러니 냇가에는 못살고 동네에 갈려니 학교 탓밭이 있는 걸 알고 우리 땅이 학교 운동장이 되었으니 탓밭을
달라고 했는데 당시 학교 기성회장으로 있던 순자 아버지가 대로변의 텃밭과 아래 집터가 같을 수 없다며
반대를 했던 모양이다. 그 소리를 들은 아버지는
"집 떠내려 가고 식구들이 움막에 살고 있는데 네가 나한테 그럴 수 있냐?' 하고
밤에 불러내 아마 좀 패 버렸던 모양이다. 그 소문이 나고 반대하는 사람없이 텃밭을 차지하고 그 당시로는
흔치 않던 양철 지붕집을 짓게 되고 나는 내력도 모른체 내 어린 시절을 그 집에서 보낼 수 있었다.
그러다 대학 2학년 때인가 방학이 되어 내려 갔었는데 어머니께서,
"니 혹시 순자 집안 사람이 뭐 마시는거 주더라캐도 해꾸지 할지 모르니 절대 먹으모 안된다이."
"와요, 무신 일이라도 있능교?"
사연인 즉슨,
순자 아버지가 가슴이 아파 부산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더랬는데 의사가 옛날에 가슴을 심하게 다친 적이
없냐고 하던란다, 가만히 생각하니 예전에 울 아버지한테 좀 맞았던게 생각나서 그 얘기를 했더니 그
돌파리 같은 의사가 그게 병인이 되어 그렇다고 한 모양인데 어쨋든 그러고 한달만에 죽었는데
"에전에 아무개 아부지 한테 맞은게 화근이 되어 죽는갑다."
그랬다는 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사 무슨 상관이고 하는 생각에 길에서 그 집안 어른들 만나도 깍듯이 인사를 했는데
건성으로 받거니 확실히 적대시 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특히 21회 선배인 순자 작은 오빠는 진짜 냉랭하게
나를 대하는게 눈에 보였다. 그러던가 말던가 하는 마음이었는데 문제는 순자였다.
길에서 만난 이화여대를 다니던 순자는 아무렇지 않게 반갑게 아는체를 하는게 아닌가,
"방학인가베, 해대 생활은 어떻노?"
"그렇지 뭐, 순자 니는 서울 가더만 인자 서울 물이 든 티가 나네."
"인자 더이상 순자 아이다, 이름 바깠다."
"뭐라고 바깠는데?"
"수희다, 미팅가서 창피스럽거로 우찌 순자라카노 아부지 살아서 바까 주더라."
그래도 속으로는 약간 갸우뚱 했다,
'야는 저거 집에서 뭐라카는 소리 안들었시까.'
예전에 순자가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아는 엄마는 중종 경고 같은 얘기를 하곤 하셨더랬지,.
"니는 순자한테 넘어가모 안된데이, 그 집안 대대로 미친 사람이 나온다카더라, 순자 고모도 시집가서
미쳐뿌서 쫒겨 났다카고."
그러다 나는 졸업후 해군 ROTC로 소집되어 복무 중에 일찌감치 결혼을 했고 그 후로 해상생활을 하는
바람에 많은 소식과 동 떨어진 세월을 보내게 되어 순자 소식도 모르고 살다가 얼마전에사 서울 산다는
소식과 연락처를 알게되어 연락하며 옛날 생각에 젖으며 단답형 문자를 보내며 지내고 있다.
"새해에도 가족모두 건강하기요!"
"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