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 시대의 주인공은 춘추 오패와 전국칠웅이다.
춘추오패(春秋五覇)는 중국의 고대 춘추시대 제후 간 회맹의 맹주를 가리킨다. 춘추시대의 5대 강국을 일컫기도 한다. 이들 패자는 모두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내세웠다.
(*尊王攘夷--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배척한다는 뜻이다. 춘추시대의 슬로건으로, 주의 천자는 천자로 모시고, 침입해오는 이민족(대표적인 침입국은 초나라이다.)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이것은 춘추시대의 패자(오패)들의 구호였다. 19세기 말에는 일본과 조선이 서양을 물리친다는 용어로 가져왔다.)
춘추오패는 제나라의 환공, 진나라의 문공, 초나라의 장왕, 오나라의 왕 합려, 월나라의 왕 구천을 가리키며, 기록에 따라서 진나라의 목공, 송나라의 양공 또는 오나라 왕 부차 등을 꼽는 경우가 있다. 이때까지는 주나라의 천자 지위를 인정하였다. 자신이 천하의 패자가 되었어도 천자의 지위를 넘보지는 않았다.
다섯 패자를 간략하게나마 보자.
1. 제의 환공(기원전685-기원전643)
제는 전설로는 주를 도와 은을 멸망시키는 데 공을 세운 태공망 여상(呂尙)이 문왕(文王)으로부터 산동성 임치(臨淄)에 영지를 받아 세운 나라로, 기원전 7세기에 환공이 왕이 되자 부강하게 되었다.
또 한 사람의 유명 인물은 재상 관중(管仲)이다. 관중과 포숙으로 말해진다. 관중의 도움을 받은 환공은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가 되었다. 관중 사후에 3총(三寵)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환공이 죽은 후에 내란이 일어나서 두 달 동안이나 시체를 매장하지 못했다고 한다.
2. 진의 문공(기원전636 – 기원전 628)
아버지 헌공(獻公)에게 추방당하여 19년 동안 열국을 유랑하다가 의형(義兄)인 진(秦) 나라 목공(穆公)에 의하여 62세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제(齊) 나라의 환공(桓公)과 아울러 제후의 패자(覇者)가 되었으나 패자에 오른 지 3년 만에 죽었다.
3. 초의 장왕(기원전 614-기원전5910
초(楚)나라 목왕의 아들로서 진(晋)나라 군을 격파하고 대승을 거두었다. 역대 초나라 왕 중에 명분을 중시했던 첫 군주였으며 한때 진(陳)나라를 멸망시켰으나 명신 신숙시의 간언을 듣고 독립시켜주었다.
4. 오왕 부차(기원전495 – 기원전473)
아버지 합려(闔廬)는 초의 망명 신하 오자서(伍子胥)를 기용하여 기원전 506년 초의 서울 영(?)을 함락시켰는데, 월의 윤상(允常)의 침입에 의해 이후 오·월의 다툼이 시작됐다. 합려는 윤상의 사후 월을 공격했지만, 월왕 구천(句踐)에 의해 참패당하고 그 아들 부차에게 복수를 서약시켰다. 부차는 구천을 기원전 494년 회계(會稽)에서 격파하고 남방을 정복했다. 계속해서 북상하여 기원전 482년 진나라(晉)을 맹주로 하는 중원 여러 나라를 무력으로 누르고 패자(覇者)가 되었다. 강남 세력의 중원 진출이라는 의의를 갖고 있지만, 그 사이 월왕 구천은 오의 수도 쑤저우(蘇州)를 공격하여, 기원전 473년에 부차는 구천에게 대패하여 자살하고 오나라는 월에 병합되었다.
5. 월왕 구천(기원전 496 – 기원전 465)
춘추시대 최후의 패자. 오왕 합려는 월에 침입했지만 구천은 그를 격파했다. 오왕 부차는 와신(臥薪)하여 2년 후 회계에서 그를 항복시켰다. 구천은 명신 범려와 상담(嘗膽)의 도움을 받아서 기원전 477년 부차를 고소(姑蘇)에서 포위하여 자살하게 하였다. 구천은 북상하여 산둥의 서주에 제후를 모이게 하여 패자가 되었다. 오·월의 싸움은 이 고사를 말한다.
(오월동주)
(와신상담-오왕 부차가 월왕 구천에게 복수하는 이야기)
(오자서 장군)--복수의 화신이라고 한다.
전국칠웅
춘추 시대가 끝나고 전국시대로 진입하면서 제일 막강한 세력을 떨쳤던 일곱 나라를 말한다. 진(秦), 조, 초, 제, 연, 위, 한 이다. 한이 제일 약한 나라이고, 진이 제일 강했다. 결국 진이 통합하여 중국은 통일을 이루었다.
하상주로 말하는 고대 중국 사회의 정치적 특징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신권정치이다. 제사를 올리면서 신의 눈치를 살피는 정치였다. 힘은 무력에서 나오지만 신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무력만으로는 권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고대 중국인의 생각이었다.
주나라 때가 되면 신권을 벗어나려 머리를 짜냈다. 핏줄로 묶는 종법정치를 하였다. 종법정치도 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였다.그러나 가족 사이에 서열을 따지고, 질서를 주므로 일방적인 신권정치와는 많이 달라졌다. 德行이란 것을 가져와서 신권에 대항했다.
전국시대에 이르면 다시 인간관계를 무시하고, 거짓말 하기, 속이기, 폭력 등이 난무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러한 기본 질서를 무시한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 삼가분진(三家分晉)과 전진찬제(田陣纂齊)이다. 진나라에서는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3나라(조, 위, 한)로 쪼개졌고, 제나라에서는 전진이 제나라를 뻬앗아 전씨왕조로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통적인 법도에 의하면 신하가 왕을 몰아내고 자기가 왕이 되다니,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그러나 일어났다. 이때부터 전국시대라고 말한다.
진시황이 7국을 통일함으로 전국시대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