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6-
한 아시아 남자가 자기 애인을 새로운 맛과 식감의 세계로 열심히 안내하는 모습도 보인다. 남자는 마냥 신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에게 물냉면을 먹는 법을 가르쳐 준다. 이 차가운 국수는 육수에 식초와 매운 겨자를 넣어 먹으면 훨씬 맛있다고 자기 부모님 이 나라에 오게된 사연과, 자기 엄마가 냉면을 만드는 법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자기 엄마는 오이 대신 무를 넣는다고 말이다. 한 노인은 옆 테이블 사람에게 삼계탕을 시키라며 참견한다. 아마 자신이 여기서 노상 먹는 음식일 것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음을 알리는 벨 소리가 간간히 들려오고, 계산대 뒤에선 위생모를 쓴 여자들이 쉴새없이 일하고 있다. 이 식당가는 아름답고 신성한 곳이다. 세계 각지에서 지내다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어쩌다가 외국으로 와서 살게 된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다.
다들 어디서 왔을까? 얼마나 멀리서 왔을까?무었 때문에 여기 온 걸까? 아버지가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카레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지만 미국 슈퍼마켓에는 없는 갈랑갈[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사용하는, 생강과 비슷하게 생긴 향신료] 을 구하려고? 제삿날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기일을 챙기는 데 필요한 떡을 사려고? 어느 비 오는 날, 명동의 한 포장마차에서 술 취해 야식을 먹던 기억이 떠올라 간절히 먹고 싶던 떡볶이로 회포를 풀어보려고?
우리는 서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얼굴에 다 쓰여 있다. 저마다 조용히 앉아서 점심을 먹지만 이곳에 온 이유는 다 같다 모두가 고향의 한 조각을, 우리 자신의 한 조각을 찾고 있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과 우리가 구입하는 재료에서 그걸 맛보고 싶어한다 허기를 채우고 나면 우리는 각자 제 기숙사 방으로, 교외의 부엌으로 흩어져서, 열심히 장 본것을 부려놓는다
그리고 이 긴 여정 없이는 만들지 못했을 음식을 살뜰히 재현한다. 우리가 찾는 것은 트레이더 조 매장에는 없다. H마트는, 아무데서 구할 수 없는 것을 여기서는 반드시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옹기중기 모인 향기로은 공간이다. 나는 오늘도 H마트 식당가에서, 엄마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의 첫 장을 찾아 헤맨다.
어느 한국 어머니와 아들이 앉은 테이블 옆에 앉아서.두 사람은 무심코 급수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들은 충실히 계산대 앞으로 가서 수저를 가져다가 제 어머니와 제 앞에 깔아놓은 종이 냅킨 위에 올려놓는다. 아들은 볶음밥을, 어머니는 설렁탕이라고 부르는 사골 수프를 먹는다.
어머니는 20대 초반은 되어 보이는 아들에게 먹는 법을 가르친다. 꼭 우리 엄마처럼. "양파를 여기에 찍어 먹어봐." "고추장은 그렇게 많이 넣지 마, 너무 짜." 숙주는 왜 안 먹어?" 그 끝없는 잔소리가 지겨울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제발 편하게 먹자고 곧잘 짜증을 부렸다. 하지만 대개는 그 잔소리가 한국 엄마들이 하는 최고의 애정 표현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고, 그 사랑을 소중히 여겼다. 그걸 되찾을 수만 있다면 당장 무슨 일이라도 하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