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주(일명 양조주)란 효모를 비롯한 각종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시켜 빚어낸 알코올성 음료로서,
곡물에 함유되어 있는 전분을 당화시키거나 과일에 함유되어 있는 과당을 발효시켜서 만든다. 증류
주에 비해 알코올 함량이 낮기 때문에 청주‧약주‧막걸리‧맥주‧과일주처럼 4~10% 대의 도수를 나타낸
다. 알코올 함량 20% 이상인 소주‧위스키‧바이주‧브랜디 등 증류주는 발효주를 증류하여 도수를 높인
것이다. 모든 술은 이 두 가지 방법을 기본으로 생산된다.
지구상에 가장 먼저 등장한 알코올성 음료는 꿀술로 추정된다. 꿀은 효모균의 먹이가 되는 당분을 함
유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공기 중에 부유하는 효모균이 내려앉아 온도와 습도 등 적당한 조건을
만나면 저절로 술이 되는 것이다. 무르익은 각종 과일에도 효모균이 내려앉아 자연스럽게 술로 발효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쪽 귀퉁이가 쪼매 무른 과일을 먹다가 약한 술맛을 느끼게 되는 것은, 과즙
이 효모균과 야합하여 술로 발효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분 함량이 낮은 곡류는 자연발생적으로 술이 되기가 어렵다. 곡물이 술이 되려면 먼저 당화(糖化)
과정을 거쳐야 한다. 효모균은 당분을 분해하여 알코올을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곡주를 만들기 위
해서는 당화와 발효라고 하는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 곡류의 당화를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누룩이다. 누룩은 된장‧김치‧젓갈 등과 함께 4대 발효식품으로, 중국 상나라(기원전 1600년경~기원
전 1046년) 때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곡류를 발효시켜서 만든 곡주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바로 청주와 탁주다. 청주는 두 번 이상
담금 과정을 거쳐 맑게 여과한 술을 말한다. 따라서 탁주에 비해 순도와 도수가 높고 향이 짙으며, 맛
이 헐썩 고급스럽다. 일찍이 당나라에서 벼슬을 지내던 최치원(857~미상)은 그의 저서 『계원필경』
에서 동짓날 고향 신라에서 보내 온 청주를 마시고 그 맛을 예찬하며 고마움을 표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막걸리를 담근 독에서 가장 위에 뜬 맑은 액체를 조심스럽게 퍼낸 술을 청주라고 부르기도 하
는데, 그것은 청주가 아니라 그냥 ‘웃술’이다.
막걸리로 불리는 탁주는 단연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다. 발효되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집안에 잔치나
큰 농사일이 있을 때 자주 담가 마셨다. 탁주는 각 지역은 물론 한 마을에서도 집집마다 담그는 방법
이 달랐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양주(家釀酒)였다는 뜻이다. 재료도 쌀‧보리쌀‧밀‧옥수수‧
고구마‧호박‧밤 등 매우 다양하다. 술이 독하지 않기 때문에 잔치 때나 농사일을 할 때는 아이들에게
도 한잔씩 권했다. 덕분에 나도 어릴 때부터 막걸리께나 마시며 자랐다.
내 고향동네에도 우리가 술도가 또는 도가라고 부르던 막걸리 양조장이 하나 있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들어섰는데, 주인 부부는 상주 사람으로 두 분 다 성균관대학교를 나온 엘리트였다. 도가에
서는 오가는 동네 사람들이 마음대로 퍼 마실 수 있도록 항상 모래미를 한 동이 가득 준비해두고 있
었다. 모래미 또는 전다지라고 부르던 술은 물을 섞기 전의 원액이어서 한 잔만 마셔도 조금 지나면
다리가 후들거려 더 마실 수 없을 정도로 독했다. 술동이 옆에는 소금과 들깨를 한데 넣어 볶은 안주
도 준비되어 있었다. 방학 때면 책을 빌리러 자주 드나들면서, 배달꾼이나 경리의 눈치를 살펴 요령
껏 한 바가지씩 퍼 마시던 기억이 얼큰하다.
조선왕조실록 중 『연산군일기』에는 막걸리와 관련된 비장한 시가 등장한다.
참새는 가지를 다투다 떨어지고
벌과 나비는 궁정 뜰 가득히 노닐고 있네.
막걸리야, 너를 만든 것이 누구이더냐?
한잔 술에 천 가지 근심 잊힌다네.
재위 12년 1월, 연산군은 이 시를 지어 승정원에 내리면서 화답시를 지어 바치라고 명했다. 폐위되기
8개월 전의 일이다. 연산군은 조선왕 가운데 시‧서‧화에 가장 조예가 깊었는데,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
고 막걸리를 마신 뒤 아련한 주흥을 시로 남긴 게 아닌가 싶다.
동양에서도 오늘날 서양 술의 대표주자가 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누룩을 발명한 중국
상나라에서 포도와 누룩을 혼합하여 발효시켜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당나라에서는 포도
주를 증류시켜 도수를 높인 술 얘기가 나오는데, 오늘날 서양에서 만드는 고급 브랜디에 해당한다.
원나라 황제가 사위인 고려왕에게 포도주를 하사했다는 기록도 여러 차례 나온다. 조선에 들어와서
는 『태조실록』 재위 7년(1398) 9월 3일 조에, 임금이 경력(종4품) 김정준이 바친 포도주를 마시고
병이 회복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포도는 신사임당의 그림이나 허난설헌의 시에도 등장할 만큼 조
선에서 상당한 기호식품이었던 듯싶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막걸리의 맛과 가공이 뛰어나 산행 쉼터에서의 한잔술로 인기가 치솟고 있어 많이 애주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각각 이지만 저는 이동,지평 막걸리는 선호 하고 있습니다. 술이란 정도가 있고 절제가 있어야 그 멋을 풍기는 것 인데 과음후 의 추태로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니 이것 또한 면 할수 없는 세상사 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