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일어나."
"뭐야..음...쩝쩝..."
"좋게 말할때 일어나라."
"......"
개뼈다구로 빨래판 긁는소리보다 더 시끄럽네.
도대체 누가 나의 달콤한 잠을 방해하는거야?
"야,쥐꼬리!!!안 일어나냐!!"
큰소리에 눈을 번쩍 떠보니 녹차아저씨가 한심한 눈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창문을 보니 날이 밝은게 아침인것같다.
....분명 난 어제 저녁에 거실에 있었는데 언제 아침이 된거고 왜 침대에서 자고 있는거지?
....어제......어제.......목말라서 와인을 병째로 들이킨다음......
그 다음 어떻게 된거지?
혹시 술 취해서 기억이 안 나는건가?
하긴 와인한병을 몽땅 마셔버렸으니 기억이 안날수밖에...
으으으!!!!
어제 실수는 안했는지...걱정도 되고 괴로운 마음에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도리질을 해보나
나의 이 도리질을 녹차아저씨는 더 자고 싶어서 하는 행동으로 오해했다.
"쇼한다. 쥐꼬리-"
"우씨! 일어나요 일어나!"
몸을 일으키는데 아직도 술에서 못 깨어난건지 머리가 띵한게 속이 쓰리다.
으으-.. 이게 웬 고생이야.
내가 다신 와인이든 뭐든 알코올이 조금이라도 들어간거 마시나봐라!
"잠 확 깨게해줘?
"확은 아니고 그냥 깨게 해주세요."
녹차아저씨는 내 어깨를 잡고 발끝서부터 머리까지 비춰주는 옷장옆의 전신거울앞에 데려갔다.
"어때?"
"뭐가요?"
"거울을 봐봐. 정신이 번쩍 들지 않니?"
거울을 봤다.
거울에는 지금 내 모습이 비춰진다.
어제 묶은 상태로 풀으지 않고 자서 그런지 머리끈이 떨어질랑말랑 간신히 머리 몇가닥을 묶고 있었고
얼굴은 푸석푸석한게 정말 많이 상해보였다.
특히....입가에 강줄기 흐르는듯한 모양으로 침이 하얗게 굳어있었다.
이런......정녕 이게 나란 말인가?
근데 녹차아저씨는 왜 날 거울앞에 데려다 놓은거지?
잠 확 깨게 해준다고 했으면서...
...혹시......거울로 나의 모습을 보면 잠이 확 깬다...그런 뜻인거야?
뒤에서 아주 얄미운 웃음소리와 함께 비아냥 거리는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풉, 어때? 니 얼굴 보니까 잠이 확 깨지?"
눈을 가늘게 떠서 녹차아저씨를 째려보니
아저씨는 나의 부들부들 화를 참는 모습에 웃음을 멈추지 않고
내 머리를 부비적 거리며 흐트려 놓고는 전학 첫날부터 지각하기 싫으면 빨리 내려오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맞다! 오늘 전학첫날이었지!"
부리나케 세수를 한 다음 어제 맞춘 교복을 입고 주방으로 내려갔다.
오늘 아침은 뭘 한담? 시간이 없으니 토스트라도 할까?
빠른 시간안에 만들수 있는 음식들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주방에는 누가 차려놓은건지 벌써 식탁에는 아침 준비가 되어있었다.
누가 한거지?
식탁에 거만한 자세로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녹차아저씨.....는 아닐테고-
종이 쪼가리에 이상한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홍차아저씨가 차렸나?
"뭐해? 안먹고?"
신문을 접고 내게 말을 건네며 국을 떠서 한입 먹더니 녹차아저씨는 감탄의 표정을 짓는다.
"누가 만드건지 시원하다~"
저 태도로 보아....아마 녹차아저씨가 아침을 차린듯.
"잘 먹겠습니다."
"당연히 잘 먹어야지. 누가 만든건데."
자신이 해야 일을 하지못한 죄스런 마음에 죄인이 된듯한 기분으로 국을 한입먹는데....
맛은 둘째치고.... 뭔가 닝닝하고 이상한게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어떠냐? 이름도 거창한 북어 한마리 날뛰네 국이다."
......북어국?
어제 내가 술 먹은거 해장하라고 끓여주신거야?
조금 아주 조금 감동받았다.
녹차아저씨..내가 생각하는것처럼 인정머리 없고 차가운 사람은 아닐수도...
다시 한번 국을 떠먹어보려고 숟가락을 국 그릇으로 가져갔다.
근데.....역시나 또 부족한 느낌이 든다.
왜 북어국에 건디기가 하나도 없는것일까?
녹차아저씨.... 일부로 내꺼에만 건디기 하나도 안준거 아니야!!
옆의 홍차오빠 국을 보니- 홍차오빠꺼도 건디기를 눈씻고 찾아볼수 없었다.
궁금한건 참지 못하는 성격에 가스레인지 앞으로 다가가
커다란 냄비 뚜껑을 열어본 난 바로 경악했다.
뜨악!!
냄비 속에는 녹차아저씨가 지은 국 이름처럼 정말 북어 한마리, 딱 한마리가 통째로 들어있었다.
두드려지거나 찢겨진 상처하나 없이 머리까지 달린 북어한마리.
어떻게 북어국을 이렇게 끊일수 있냐고 한마디 하고 싶지만 빨리 학교를 가야했기 때문에 그냥 참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절대 녹차아저씨에게 간단한 요리라도 맡기지 않기로...
다시 녹차아저씨의 앞에 마주앉아 속으론 싱거운 북어국에 소금이라도 놓고 싶은 생각을 간절하게 했지만
겉으로는 CF의 한장면처럼 음~ 소리까지 내며 맛있게 먹었다.
완전 고역이네.
맛없는걸 맛있게 먹으려니...우욱!
전학첫날부터 뱃탈나서 망가진 이미지를 보이면 안되는데.....
"아직 십분 남았군. 야- 거실로 녹차한잔 가져와."
녹차아저씨는 신문을 가지고 거실로 나갔다.
난 대충 식탁을 치우고 고아원에서 손님들 왔을때마다 대접해드렸던 그 솜씨를 발휘해
녹차를 만들어 거실 쇼파에 앉아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 녹차아저씨한테 갖다줬다.
그리고 녹차를 마시고 있는 아저씨의 표정을 살폈다.
내가 만든 녹차맛이 일품이란건 고아원 원장님을 비롯해 학교 선생님들도 인정했다고-
아마 아저씨도 놀라셨겠지...
근데 왜 표정에 변화가 없을까..? 일부로 내색을 안 하시는건가?
뭐야뭐야. 난 숭늉인지 북어국인지 분간도 안되는거 맛있다고 해줬는데.
실망스런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중얼중얼 그린티놈이라고 욕하면서
책가방을 가지러 계단을 올라가려고 하는데 녹차아저씨가 내게 종이쪽지 한장을 건넸다.
"이게뭐에요?"
"펴보면 알꺼 아냐?"
녹차아저씨도 참...
그냥 맛잇다고 한마디하는게 뭐가 그렇게 쑥쓰럽다고 이렇게 쪽지에다 써서 주시는지~~
조심조심 종이 쪽지를 펴본 난 어리둥절했다
뭐야? 이주소는.....
"너 우리집 못 찾아 올수 있으니까 써서 주는거야."
그런거였어....
공단비.
설마 종이 쪽지에 저 아저씨가 녹차 맛있다 라고 써서 주는줄 알았니?
"그리고 너 편지도 써야할거아냐? 고아원에.
물론 전화도 할수 있지만 편지만큼 솔직하게 털어놓을수 있는건 없으니까."
"맞아요. ...
지금은 소식이 없지만 한달전에 어떤 아저씨랑 오랫동안 편지 주고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편지 쓰는게 좋았어요.
아저씨 말대로 전화보다는 편지 쓰는게 더 좋아요. 주소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랫동안....이라...
중3때부터 한달전까지 주고받았으니까..거의 2년동안이겠군."
중학교 3학년때부터 지금까지 2년동안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랑 편지 주고 받았던거.......
녹차아저씨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그걸 아저씨가 어떻게 알아요?"
녹차아저씨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쯔읍....민망스럽다.
못난 내얼굴 볼게 어디있다고 이리도 오래 보시는건지....
조금 볼데라곤....눈.. 눈이 조금 볼만하지(퍽!)
"데려다줄까? 너한테 항상 하늘색 편지지에다 써서 보내줬던 그 아저씨한테.."
하늘색 편지지까지...
녹차 아저씨 모두 알고있다.
둘이 어떤 관계였던거지?
"친해요? 둘이? 그리고 나 정말로 오늘 그 아저씨 만날수 있어요?"
"그래....오늘 가자.
학교끝나고 학교 앞으로 데릴러갈게."
녹차아저씨의 눈에 물기가 도는거......그래서 반짝반짝 빛나는거 나의 착각인걸까?
궁금한게 많았지만 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더 물어보면 녹차아저씨의 눈을 보고있는 내 눈에도 눈물이 맺힐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녹차아저씨랑 나랑 편지를 주고받았던 그 아저씨랑은 무슨 관계인걸까?
"띵동동 댕동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리자 녹차아저씨는 금새 평소의 얼굴로 돌아와 장난스런 어투로 말했다.
"쥐꼬리 너 빨리 준비하고 밖으로 나와라.
2분내로 안오면 떼놓고 갈꺼야. 그 짧은다리로 2분이 가능할런지 모르겠다만...."
설마 떼놓고 가겠어? 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내 방으로 올라갔으나...
녹차아저씨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거라는 생각에 후다닥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어제 녹차아저씨와 타고왔던 검은색의 기다란 차와 고아원에서 서울까지 타고온 실장님의 차가 있었고.
홍차오빠와 녹차아저씨 김실장님이 서계셨다.
김실장님....
이렇게 반가울수가!!! 김실장님~~
홍차오빠와 말을 주고받고 있는 김실장님을 향해 달려가는데
녹차아저씨가 내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더니
날 들어올려 김실장님의 차안에 짐짝 넣듯 밀어넣었다.
우씨! 내가 물건이야! 왜 이렇게 아리따운 숙녀를 막 다루는거야!
아리따운 까지는 아니더라도 난 여자인데.
살며시 차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내 앞을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녹차아저씨에 의해
난 씩씩거리며 차문을 닫고 창문을 열어 고개만 내밀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굴에 여기저기 잉크 자국이 있는 홍차오빠의 잘 다녀오라는 말을 아주 귀에 박히도록 듣고
녹차아저씨의 띨하게 굴지 말라는 말은 한귀로 흘려보내며 김실장님과 함께 명성고로 향했다.
교무실에서 김실장님은 담임선생님으로 보이는 여자와 간단한 말을 주고받고는 나를 소개했다.
"이름은 공단비입니다. 각별히 신경 좀 써주십시요."
"네~그럼요!
도원그룹 회장님이 부탁하신건데 제가 할수있는 선에서 최대한으로 신경쓰겠습니다 .
물론 저만 알고있도록 하겠구요."
도원?
텔레비젼에서 많이 들어본 단어인데.....
녹차아저씨가 그 그룹 회장이란말야?
쳇, 내가 알게뭐야! 난 파출부일만 잘하면 되는건데.
"단비야. 이제 수업시작하겠다.
자, 어서 사랑스런 우리반에 가야지~"
"네.."
초록색 양말과 한세트인지 초록색 7부의 딱 달라붙는 스판바지를 입고 계신 담임선생님이 부담스러웠으나
그래도 첫날이기에 잘보여야한다는 생각으로 싱글싱글 웃는얼굴로 담임선생님과 교무실을 나왔다.
담임선생님한테 그럼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하고 교무실을 나가는 김실장님..
내게 눈인사를 한뒤 계단을 내려가신다.
....난 담임선생님한테 한쪽팔을 잡혀 거의 끌려가다시피해서 사랑스런 우리반이라고 칭하는 2학년 5반에 들어갔다.
역시나 낯선사람에 대한 경계심, 호기심이 가득한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아이들.
그런 눈빛의 반 얘들과 눈을 마주지치 못하고 난 고개를 숙여 내 발만 쳐다봤다.
"드디어 우리반에도 전학생이 왔어요~!
우리모두 따뜻하게 맞아줍시다!!
그럼 단비야. 이제 니 소개를 하려무나~"
난 떨리는 손가락에 힘을주어 분필을 집은다음 칠판에 내 이름 석자를 쓰기 시작했다.
"선생님! 제가 전학생온걸 환영하는뜻에서 노래 한곡 부르고 싶습니다!"
"노래? 좋지~ 어서 한곡 뽑아봐."
날 환영하는 뜻에서 부르는 노래란 말이지?
얼마나 잘 부르나 감상좀 해볼까?
여전히 칠판에 이름을 쓰고 있는 난 귀를 귀울였다.
"용감한 어린이의 친구 우리우리 호빵맨~
세균맨 혼내주는 우리 호빵맨~
밀가루로 만든 호빵맨 용감한 친구 호빵맨~
단팥으로 만든 호빵맨~"
호빵맨노래........
......오한이 밀려온다.
아닐꺼야....
그래...아닐거야..
그 많고 많은 학교중에 내가 그 놈이 있는 학교에 전학왔을리가 없어.
제발 아니기를....절실한 마음으로 바라고-
내 이름을 모두 쓴 다음 두려운 마음으로 뒤를 돌아봤다.
반 아이들의 웃음소리에도 앉지않고 호빵맨 노래를 끝까지 부르고 있는 저 놈!!!!
오! 맙소사!! 이런 우연이..!! 이런 악연이!!!
노래가 모두 끝나고 놈은 날 쳐다보며 반가움과 장난 반반 섞인 말투로 말했다.
"내가 어제 그랬지? 우린 또보게 될거라고."
전학첫날 앞으로 이 곳에서 지내게 될 날들에 대해 부풀어오른 설레임은
졸업때까지 저놈 은파도를 보고싶지 않아도 볼수밖에 없다는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어제 또 보게 될꺼라고 저놈이 나한테 한 말.... 그냥 흘려보냈는데...
이런뜻이였다니..... 으아아악~~~!!!!!!
내 아름다운 서울생활!!
집에선 녹차아저씨한테 갈굼당하고 학교에서는 은파도한테 채이게 생겼구나.
카페 게시글
하이틴 로맨스소설
[ 장편 ]
난 오늘 재벌을 만났다 -①③-
-꽃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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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8.15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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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은파도가 누구드라ㅇ_ㅇ?아!그 호빵맨속바지본!
ㅋㅋㅋㅋㅋ 아웃겨요
은파도가 누구일까??이런...;;;모르겠는걸...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