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산제도 ‘걸게’ 지냈겠다, 영실로 둘 내려와 렌트카 되찾아 브레이크만 밟으며 서귀포 호텔로 돌아왔고, 돈내코로 내려간 넷은 도중에 족발에 맥주 들이켜는 만행을 저지른 뒤 택시로 호텔에 도착했다. 4시 조금 지나서였다.
왜 회장님 방을 따로 잡지 않았느냐고 막 뭐라고들 한다. 야단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방을 더 잡는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누가 하나 확 싸지르지도 않는, 묘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하여튼 전날 마마 혼자 잔 방에 뒤늦게 온 두 형이 자겠다고 하고, 마마도 그냥저냥 넘어가는 분위기다. 어차피 침대는 싱글 하나, 트윈 하나여서 남녀가 어깨를 부딪히며 잘 일은 없었다.
씻고(왜 남의 객실에서 씻느냐, 안 씻는다고 하더니 갑자기 씻느냐 말들이 많았다) 택시 불러, 전날 장 보며 눈여겨봐뒀던 서귀포오일장으로 향했다. 토요일 밤이라 전날보다 훨씬 더 인파로 북적였다. 택시 기사들이 정말 찬바람 쌩날 정도로 무뚝뚝한 게 인상적이다. 제주흑돼지와 해산물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누군가의 선전과 달리 돼지고기만 파는 식당 앞에서 만나 조금 더 걸으니 해산물을 쪄주는 식당이 나온다. 테이블 셋만 있는 식당에 쳐들어가 둘을 합치고 빙 둘러 앉아 갈치회와 전복찜, 모듬해산물찜, 연어초밥 등을 먹었다. 주인들이 굉장히 소박하네, 생각했는데 다음날 형들이 중국 사람이 주인이라고 해, 아 바보같은 난 그걸 몰랐구나, 자책했다.
회와 찜을 먹었더니 탕 생각이 간절했다. 일부는 땅콩만두 줄을 서고 난 매운탕 하는 곳을 찾아 다녔다. 어찌어찌해 식당 찾아 공기밥도 꽤 시켜 배불리 먹었다. 식당 나와 아침 먹을 컵라면과 더 마실 술과 마농통닭 한마리 튀겨 택시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닭튀김 갖고 탔으니 냄새에 고역이었을 것이다. “제주 호텔이나 렌트카 비용 등 너무 싸서 다음에 또 와야겠다”는 말은 가뜩이나 화 난 것처럼 보이는 택시 기사 앞에서 하면 안될 얘기였다. 난 민망해져 고개를 밖으로 돌렸다.
호텔 돌아와 우리 객실에서 밤바다를 안주 삼아 또 마셨다. 난 배 불러 통닭은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맛있다며 먹으며 맥주를 들이붓는 이들이 놀랍고 놀라웠다. 그렇게 밤 11시쯤 파하고 헤어져 잤
는데 제기랄, 또 새벽 3시가 조금 안 됐다. 옆에서 탱크 하나, 15년쯤 된 경유차 하나가 들끓는다. 또 파자마 차림으로 로비로 내려갔다. 전날은 오전 5시쯤 내려가 2시간쯤 기사 쓰고 조깅했는데 이날은 아침 7시까지, 중간에 한번 전원 연결장치 가지러 객실을 다녀온 것 빼고 고 자리에 그대로 앉아 기사를 썼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이날도 이제 갓 대학 졸업한 듯한 아가씨가 프론트를 지키고 앉았는데 참 신기한 인간이네, 했을 것이다.
그 시간에도 제법 많은 이들이 체크 인하고 아웃하고, 맡겨놓은 차 키 달라는 둥 로비가 이따금 분주해지는 것이 신기했다.
이 호텔의 메인 키는 뽑으면 암흑 천지가 됐다. 산바람 형이 내게 문자한 것을 객실 올라가서야 알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답답해 문자를 보낸 것이었다. 난 나름대로 잠을 안 깨우려고 배려한 것이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17일 오전 7시 조금 넘어 총무 보고 생수 사오라고 해서 물 끓여 컵라면 4개 끓여 먹었는데 조식 따로 하지 않고 이렇게 간단히 먹는 것도 괜찮다는 평이었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많이 먹어댔으니 라면 들어갈 데가 어디 있어 했는데, 마마와 입짧은 총무만 빼고 다들 잘 먹어 또 놀라웠다.
전날 아침 김포공항을 떠나기 전부터 그렇게 렌트해오라고 했지만 그냥 택시 타고 대책 없이 온 두 형이 문제였다. 이날 아침 소카나 렌트카를 알아보려고 하는데 될 리가 없다. 제주에서 찾아오려면 추가 비용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났다. 어쩜 저럴까?
차 구할 때까지 호텔에서 기다리라, 뭐 이런 식인 것 같아서 혼자 짐 싸들고 루프탑 올라가 파란 하늘을 보며 감정 가라앉힌 뒤 전화를 걸었다. 우리 먼저 머체왓으로 떠나겠다고 했더니 그제야 그러란다.
머체왓 가는 중에도 전화 걸어와 렌트카 트렁크에 짐 넣게 좀 기다려달란다. 결국 마음 좋은 사람들이 참기로 했다. 애초 계획은 함께 머체왓 둘러보고 둘은 택시 불러 제주 가서 렌트카 찾아 함덕해수욕장 옆 서우봉 근처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는데 뜬구름 총무가 바로 렌트카로 아톰 형과 함께 제주 갔다가 우리가 머체왓 돌아보면 도착해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수정했다.
머체왓 길은 공사 중이어서 통제했다. 마마와 산바람 형을 먼저 출발시키고 30분쯤 기다리니 두 형이 도착해 아톰 형은 총무와 렌트카 픽업하러 떠나고 난 희용 형과 함께 소롱콧길을 따라 갔다. 아기자기한 머체왓과 같은듯 달랐다. 조금 거친 맛이 있었는데 중간에 말 방목지 근처 편백나무 숲을 지나는 것은 같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서중천이 생각보다 엄청 넓은 것이 놀라웠다. 집채만한 바위가 한라산 정상에서부터 쏟아져내리는 물줄기의 위력에 구멍 나고 할퀸 자국이 선명한 것이 놀라웠다. 만약 폭우가 내릴 때 이곳을 지나다가는 큰 우환을 당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주의할 일이다.
소롱콧길을 다 돌아 나오니 산바람 형이 커피를 마시잔다. 길을 되짚어 소롱콧길 끝나는 지점에 놓인 평상 위에 걸터앉아 얘기를 나눴다. 백록담이 훤히 보이는 풍광에다 유채, 성질 급한 놈들은 벌써 망울을 터뜨렸다. 한참 시간을 보냈는데도 렌트카 갔던 이들은 함흥차사다. 움직일 때는 몰랐는데 가만 앉아 있으니 따듯함이 포함된 바람에 찬 기운이 도저하다. 40분쯤 괜한 시간 보냈을 것이다. 도착한 이들 가운데 주범은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사과 한마디 없다.
한 시간 못되게 달려 함덕해수욕장 앞 또바기 음식점은 사정이 있어 쉰다고 했다. 마침 두 블록 전에 길게 줄지어 서있던 버드나무집이 떠올라 갔더니 20여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맛집이 분명해 보였다. 매생이와 해산물 두 종류의 칼국수를 파는 집인데 1인분에 만원이다. 칼국수가 얼마나 맛있길래 세종대왕 한 장으로 모시나 싶었는데 어렵사리 들어가 좍 둘러보자 모든 것이 명약관화해졌다. 결코 비싸지 않다. 굴이나 홍합, 해산물 양이 장난 아니다.
줄 서기 전 미리 주문하는데 매운맛, 보통, 순한맛이 있다고 해 보통을 시켰는데 후회됐다. 다음에는 순한맛을 시켜야지, 매번 배울게 있다. 배를 불리고 서우봉에 올랐다. 여느 오름처럼 이리저리 돌아가는 코스가 여럿 있는데 두 번 정도 순한 길을 타고 정상에 오르니 해변에는 카이트서핑이 떠오르고 제주 남동쪽 오름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뒤에 한라가 넉넉한 품을 열어준다. 일출 명소도 있는데 가족과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일행은 서둘러 내려가 카페 델문도에 들른다고 해서 난 조금 더 서우봉을 둘러보기로 했다. 사실 정상 오르기 전 두 군데 일본군 땅굴을 봤는데 일출 명소에서 곧바로 해안 쪽으로 떨어지니 무려 17개의 뚫다만 동굴이 유적처럼 보존돼 있다. 태평양전쟁에 혈안이 된 일본군은 이런 식으로 해안 쪽에 뚫은 동굴과 반대편에서 뚫은 동굴을 관통시키려 하다가 전쟁이 끝나는 바람에 그만 둔 것으로 보였다.
한 시간쯤 서우봉 주변을 돌아보고 델문도에 들렀다. 이게 어떻게 인허가가 나지? 의문이 들 정도로 입지가 기막히다. 바다 암초 서너 군데 위를 연결해 마치 섬이 떠오른 것처럼 카페가 들어섰다. 난 화가 잔뜩 나 카페 안에 들어가자마자 화장실 찾아가 변을 한 바탕 봤다. 그리고 다시 차에 시동을 걸어 6명이 함께 하는 마지막 일정을 함께 하기 위해 제주시로 향했다.
첫댓글 저의 시산제 고유문(축문)이 제관들에겐 무지 길게 느껴졌던 모양이군요. 내용이 지루해서가 아니라 바람이 거세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마음이 앞선 탓이라고 제맘대로 풀이합니다. 알 대장! 산행기 쓰느라 수고 많았다. 뜬 총무도 애 많이 썼고. 저녁 시간 날짜 잡자.
마감시간 늦추지 않느라 수고했네. 은근히 선배들도 까면서... 희망과용기갸 술 산다잖아...ㅎㅎㅎ 근데 제주도는 가끔 한번씩 가기는 해야겠더라. 음식이 맛있어서리...
몇 년 전에 모슬포에서 가까운 알뜨르비행장이란 곳을 일부러 가본 적이 있어요. 섯알오름 입구, 일제 강점기 때 사용됐던 흉물스런 비행기 격납고가 아직도 보존되고 있죠. 바로 앞, 밭에서 감자를 수확하던 농부들의 평화로운 전원과 묘하게 대비를 이루던 제주의 아픈 모습이었어요.
산행 기획부터 산행기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대장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