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덕의 거울
<55>
아씨시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장으로부터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을 기증 받아서 형제들이 언제나 거기에서 살며 겸손하게 처신하도록 바라다.
성 프란치스코는 주께서 형제들의 수가 더 늘어나게 될 것을 바라고 계심을 알고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내 친애하는 형제들과 아들들이여, 하느님께서는 우리 형제가 더 불어나게 되길 바라고 계심을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형제들이 기도할 수 있는 교회를 주교님이나 성 루피노의 주교참사들 아니면 성 베네딕토의 아빠스로부터 얻고, 또 그 근처에다 형제들이 쉬며 일할 수 있는 초라한 작은 집을 진흙과 나뭇가지로 짓는 것이 훌륭한 일이며 신앙깊은 일이라 믿습니다. 주님께서 형제들의 수가 늘어나기를 바라시는 이상, 특히 형제들이 기도드릴 수 있는 교회가 없으니 이곳은 형제들에게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적합한 장소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느 형제가 죽게 된다면 여기에 묻기에도 적당치 않으며 세속 성직자들의 교회에다 묻는 것도 적당치 않을 것입니다.” 모든 형제들이 그의 제안을 지지하였다.
그래서 그가 아씨시 주교에게 가서 이를 부탁하였다. 그러나 주교는 “형제여, 여러분에게 줄 교회가 없군요.”하였고 주교참사들도 같은 대답이었다. 그러자 그는 수바시오의 산에 자리잡고 있는 성 베네딕토 수도원의 아빠스에게 가서 같은 요청을 했다. 마침내 아빠스는 동정심으로 자기네 수도자들과 협의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 프란치스코와 그 형제들에게 뽀르치운꿀라의 성모 성당을 양도하여 주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교회 중에서도 가장 작고 초라한 것이었다. 원장은 성 프란치스코에게 “형제여, 우리는 당신의 요청을 받아 들이기로 하였습니다. 만일 주께서 당신의 수도회가 발전되도록 하여 주신다면 우리는 이곳이 당신의 교회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하고 말했다. 그의 당부가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을 기쁘게 하였다. 더구나 그는 그 교회가 성모의 이름을 따고 있으며 작고 초라하므로 형제들이 얻는 이곳이 더욱 만족스러웠다. 그는 그 교회가 뽀르치운꿀라로 불리워져서 또한 기뻤는데 그 말은 (어머님의 집)이 되고 또 가난한 작은 형제의 으뜸되는 교회가 된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말이었다. 그것은 이 교회의 초창기 때부터의 이름이기도 하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것은 형제들이 어떤 다른 교회도 가지지 말고, 최초의 형제들이 세운 교회 외에는 교회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언제나 말하였다. 이렇게 해서 옛 예언서의 말이 작은 형제회가 생김으로써 이루어진 셈이다. 비록 그 교회가 초라하고 거의 쓸모가 없을 정도라 하더라도 아씨시 시민들과 전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정성을 다하여 지켜왔다. 또한 오늘날에도 그들의 정성은 여전히 대단하여 하루가 달라져 가고 있다.
그리하여 형제들은 지체하지 않고 거기로 가서 살았으며 주님께서는 거의 매일처럼 수를 늘려 주었다. 그들에 대한 소문은 스뽈레또 계곡이며 온 지역으로 놀랄 만큼 퍼져갔다. 옛날에는 천사의 노래가 거기서 자주 들렸다고 해서 천사들의 성모 성당이라 불리워졌다. 아빠스와 그의 수도자들은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에게 무상의 선물로 교회를 양도하였지만 성 프란치스코는 경험이 풍부한 목수로서 자기의 집 즉 자기 수도회를 절대 가난이란 견고한 초석 위에다 세우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매년 아빠스와 그 수도자들에게 라스케라 하는 작은 물고기를 바구니에 가득 담아 보냈다. 이는 그들의 보다 큰 가난과 겸손의 표시로서 그리고 형제들이 자기들 소유의 땅이라고는 없다는, 또 남이 소유하고 있는 땅에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형제들이 아무것도 사고 팔 권리를 갖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형제들이 매년 그 수도자들에게 생선을 보내면 그 수도자들은 항아리에 기름을 담아 보내곤 하였는데 이는 성 프란치스코의 뜻에 따른 겸손함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풍성한 은총 때문에 이 교횔ㄹ 이 세상 다른 어떤 교회보다 더욱 아껴 주신다고 성인이 진심으로 말하였음을 그와 함께 지낸 우리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 후, 성인은 이 교회를 보존하는데 온갖 정성을 다하였으며 모든 형제들이 다 같이 마음속에 길이 새겨 두도록 그의 유서에 기록하게 하였다. 그가 죽을 때 쯤해서 총 봉사자(총장)와 다른 형제들이 있는 자리에서 말하였다. “형제들이 언제나 이 교회를 보존하는데 온갖 정성을 다하도록 뽀르치운꿀라의 성모 성당을 내 형제들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초창기 시적의 형제들은 언제나 이렇게 하였습니다. 이곳은 그 거룩하고 소중한 곳이며 그리스도와 영광스런 동정 마리아께서 선정하신 곳이므로 초대 형제들은 낮이나 밤이나 끊임없이 기도하고 묵상함으로써 그 존엄성을 보존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정해진 묵상을 마치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생기면 언제나 정성을 다하여 하느님을 찬미하는 일과 나눌 시간이 생기면 언제나 정성을 다하여 하느님을 찬미하는 일과 구원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만일 그 때 어떤 사람이든지 무익하거나 쓸데없는 말을 하면-이런 일은 거의 없었지만-즉시 다른 형제들로부터 훈계를 받았습니다.
이 형제들은 단식과 철야 기도, 추위와 부족함을 느끼는 가운데서도, 그리고 또 육체노동으로써 자기들 몸을 단련시켰던 것입니다. 그들은 나태하지 않기 위해서 자주 밭에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고 나중에는 하느님 사랑으로 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덕성을 기르면서 이곳을 성역화하였으며 자기 자신을 거룩하게 보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형제들과 평신자들이 더 자주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으며 기도와 작업은 소홀히 하면서 한가한 이야기에 더 열중하고 세속일에 더 눈길을 돌리고 있으니 이곳은 지금까지 바쳐온 그런 정성으로 보존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열의에 차서 말을 맺었다. “이곳을 위해 착하고 거룩한 가족을 이루는 대에 가장 큰 관심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총 봉사자님과 종의 직접 관리하에 두고 싶습니다. 성직자들보다 착하고, 보다 성스럽고 보다 적합한 인물을 형제들 가운데서 뽑아야 할 것이며 그들은 성무일도를 바칠 줄 알고, 평신자들이나 다른 형제들이 그들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도록 수도회 안에서 서약을 받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을 섬기도록 선정된 평신자 형제들은 성스럽고 분별력이 있고 겸손하며 정직한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평신자 형제들이나, 총 봉사자와 성직자에게 봉사하는 사람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곳을 출입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형제들은 총 봉사자께서 자기들을 찾아오시면 성직자들과 총 봉사자를 모실 형제들 외에는 구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봉사하는 평신자들은 그들과 잡담을 해서는 안 되며 혹은 세속적인 이야기나 그들 영성에 유익하지 않는 이야기는 해서 안 됩니다. 나는 특별히 이곳의 순결함과 성스러움이 보다 잘 보존되도록 아무나 이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여기에서는 어떤 불순한 일이나 말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곳 전역이 하느님께 대한 찬송과 찬미를 드리며 순견과 성스러움으로 보존되도록 합시다.
또한 어떤 형제든지 죽게 되면 총 봉사자님은 다른 집에 살고 있는 착한 한 형제를 그 자리에 보내서 그 자리를 채워 주셨으면 합니다. 다른 형제들이 때때로 정결하지도 못하고 정직하지도 못하다 하더라도 나는 이곳이 축복되고 또 거울로서 그리고 모든 형제들의 신성한 귀감으로서, 하느님과 복되신 동정녀의 무덤 앞에서, 타오르는 등불로서 영원히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이곳 때문에 하느님께서 형제들의 결함과 과오를 용서하시며 당신의 작은 나무인 이 형제회를 영원히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
Mirror of Perfection
55
How he humbly obtained the church of S. Mary of the Angels from the Abbot of S. Benedict at Assisi, and how he wished the friars always to live there and behave with humility.
When blessed Francis saw that the Lord willed to increase the number of the friars, he said to them: ‘My dearest brothers and sons, I realize that God wills to add to our numbers. It seems good and godly to me that we should obtain from the Bishop, or from the Canons of St. Ruffino, or from the Abbot of S. Benedict some church where the friars may say their Hours, and have some poor little dwelling near by made of clay and wattle where the brethren may rest and work. For this place is not suitable or adequate or the friars now that the Lord wills to increase our numbers, especially as we have no church here where the friars can say their Hours. And if any friar were to die, it would not be fitting to bury him here or in a church belonging to the secular clergy.’ And all the friars supported this suggestion.
Son he went to the Bishop of Assisi and put this request to him. But the Bishop said, ‘Brother, I have no church to offer you,’ and the Canons gave the same answer. Then he went to the Abbot of S. Benedict on Monte Subasio, and made the same request to him. The Abbot was roused to sympathy, and took counsel with his monks; and guided by the grace and will of God, he granted to blessed Francis and his friars the church of S. Mary of the Porziuncula, which was the smallest and poorest church that they had. And the Abbot said to blessed Francis, ‘See, this congregation of yours to grow, we wish this place to become the chief of all your churches.’ His suggestion pleased blessed Francis and his brethren, and he was delighted with this place granted to the friars, especially since the church was named after the Mother of Christ, and was so poor and small. He was also happy that it was called the Porziuncula, which foreshadowed that it was destined to become the Mother-House and chief church of the poor Friars Minor, for it had been known by this name from earliest times. So blessed Francis used to say, ‘This was why the Lord willed that no other church should be given to the friars, and that the first friars should not build a new church or have any but this’; for in this way an old prophecy was fulfilled by the coming of the Friars Minor. And although it was poor and nearly in ruins, the people of the city of Assisi and the whole district had for a long time held the church in great reverence. To-day their reverence is still greater, and grows day by day.
So the friars at once went to live there, and the Lord added to their numbers almost daily. And the fragrance of their reputation spread marvelously through the Vale of Spoleto and many parts of the land. But in ancient times it had been called S. Mary of the Angels, because it was said that the songs of angels were often heard there.
Although the Abbot and monks had made a free gift of the church to blessed Francis and his friars, he, as a good and experienced master-builder, wished to establish his house-that is, his Order-on a firm foundation of absolute poverty. So each year he sent to the Abbot and monks a basket or jar full of little fish, known as lasche. This served as a reminder of their greater poverty and humility, and of the fact that the friars were to possess no place of their own, or live in any place that was not the property of others, so that the friars had no right to buy or sell anything. But when the friars carried the fish to the monks each year, the monks used to give them a jar of oil, in recognition of the humility of blessed Francis who had done this of his own free will.
Those of us who lived with blessed Francis testify that he solemnly affirmed that it had been revealed to him that the Blessed Virgin had a greater love for this church than for nay others in the world, because of the many favours that God had granted there. So thenceforward he held it in the greatest reverence and devotion; and in order that the friars should always remember this in their hearts, he had it written in his Testament at his death that all friars should do likewise. For about the time of his death he said in the presence of the Minister General and other friars: ‘I wish to entrust and bequeath the friary of S. Mary of the Porziuncula to my brethren by my reverence and devotion by the friars. Our earliest brethren always did this, and because this place is holy, beloved, and chosen before all others by Christ and the glorious Virgin, they preserved its sanctity by constant prayer and silence day and night. If they had occasion to speak after the close of the appointed silence, they did so with the greatest devotion and sincerity, and only on matters which concerned the praise of God and the salvation of souls. And if ever anyone began to talk unprofitably or idly-although this seldom occurred-he was at once corrected by another friar.
‘These brethren used to discipline their bodies with many fasts and vigils, with cold, nakedness, and manual labour. To avoid idleness they often helped the poor in their fields, and afterwards gave them the bread of the love of God. They hallowed the place with these and other virtues, and kept themselves in sanctity. But since those days, because friars and layfolk visit the place more often than before, and because the friars are less zealous in prayer and good works, and are more undisciplined in engaging in idle conversation and discussion worldly events than they used to be, the place is not held in so great a reverence and devotion as was customary hitherto, and as I would wish it to be.’
Having said this, he ended with great fervour, saying, ‘I wish this place always to be under the direct control of the Minister General and servant, so that he may exercise the greatest care and responsibility in providing a good and holy family for it. The clergy are to be chosen from among the better, more holy, and more suitable of the friars, who best know how to recite the Office and who are fully professed in the Order, so that both layfolk and the other friars may see and hear them gladly and with great devotion. The lay-brothers chosen to serve them are to be holy men, discreet, humble and honest. I do not wish anyone else, whether layfolk or friars, to enter the place, except the Minister General and the lay-brothers who serve them. The friars themselves are not to speak to anyone except the brothers who serve them and the Minister General when he visits them. Similarly, the lay-brothers who serve them are never to gossip with them or tell them worldly news, or anything that is not of benefit to their souls. I particularly desire that no one else shall enter this place, so that its purity and holiness may the better be preserved, and that nothing unedifying be done or said there. Let the whole place be kept pure and holy with hymns and praises to God.
‘And whenever any of the friars shall pass away to the Lord, I wish the Minister General to send a holy friar from another house to take his place. For even if other friars have at times fallen away from purity and sincerity, I wish this place to be blessed, and to remain for ever as a mirror and holy pattern for the whole Order, and as a lamp burning and shining before the throne of God and of the Blessed Virgin. For the sake of this place may God pardon the defects and faults of all the friars, and protect this Order, His little plant, for ev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