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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해라] 14
1. # 병원응급실 (낮)
어느새 침대에 걸터 앉아있는 복수. 담담하다.
복수를 바라보고 선 미래의 절망감, 흐느낌.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복수를 바라보는 미래.
미래 : (목이 매인다.) 알지 말라구?
복수 : 응.
미래 : 걔두 모르냐?
복수 : 응.
미래 : 아버지두 모르구?
복수 : 응.
미래 : 어머니두 모르구?
복수 : 응.
미래 : 니 동생두, 꼬붕이두 다 몰라?
복수 : 응.
미래 : 나만 아네?
복수 : 응.
미래 : (한숨) 하. 왜 하필이면 나만 아냐? 살 떨리게...
복수 : (슬픈 듯) 그러게. 왜 하필이면 너냐, 미래야. 안됐다.
미래 : 사람들이 알면 어뜩케 되냐?
복수 : ...사람들이 알면... ...내가 불행해지지.
미래 : 왜?
복수 : 왜냐하면... ...지금 니가 날 보는 것처럼... 사람들이 날 볼테니까...
미래 : 내가 어뜩케 보는데?
복수 : 니가 말해 줘. ...나, 어때?
미래 : ...(구슬피 운다.) 못 참겠다, 복수야.
복수 : ...그거네. 그렇게 참을 수 없는 눈으루... 모두가 날 보겠네. ...그러니까, 당근, 불행이지.
미래 : 나, 왜 몰랐지? ...간호사가 되겠다는 년이, 애가 이지경이 되도록, 아무것두 몰랐네?
(복수의 가슴을 툭 친다.) 아팠을 거 아니야아. (다시 한번 툭 친다) 무지무지 아팠겠네에... 나, 왜 몰랐지?
복수 : (슬픈 듯) 니 주먹이 더 아프다, 기집애. ...(미래를 진정시키듯) 안 아팠어. ...의사가 아플거라 그러는데... 증말 안 아팠어.
...의사들 웃겨. 안 아픈 걸 자꾸 아픈 거래. 의사들 웃겨.
미래 : 어뜩케 안 아프냐, 띨빵아? 당연히 아프지. 그렇케 심한데....
복수 : (픽 웃는다.) 몰라. ...안 아프드라. ...세상이 재미나서 그런가?
미래 : 그렇게 신나냐? 사는게?
복수 : 응.
미래 : 좋겠다, 새꺄. 신나서 좋겠다. (서럽게 운다.) 빙신아. ...뭘 해야 되잖아. 그냥 이러구만 있으면 어뜩해, 빙신아.
복수 : ...하구 있어.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죽지 않으려구, 얼마나 많이 하는데...
운동두 많이 하구, 밥두 잘 먹구, 좋은 일두 하구, 나쁜 일두 하구... 다 해. ...그 동안 못해 본 거 다해.
...얼마나 많이 하는데... 배신두 했잖아, 너한테...
미래 : (복수를 안는다.) 이 꼴통아. 넌 맞아야 돼. ...골구루 놀구 있어, 진짜. 엉엉엉.
복수 : (눈물맺힌 눈으로) 또 운다. ...남들이 다 알아두, ...너는 몰랐어야 되는데...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징징댈 줄 알았어, 내가.
부등켜 안고 우는 미래와 미래의 등을 토닥이는 복수. 눈물이 흐른다.
2. # 지하철 플랫폼 (낮)
벤취에 꼬붕과 나란히 앉은 미래.
꼬붕은 고개숙이고 있고, 미래는 멍하니 허공만 바라본다.
꼬붕 : 형, 괜찮어?
미래 : ...괜찮어.
꼬붕 : 내 얘기 했어?
미래 : ...널, 본 거 같다드라. ...꼬붕이가 아니라 나였다구... 야구장 가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 친거라구... 그렇게 우겼다?
꼬붕 : 믿어?
미래 : 믿겠냐? ...또 너 찾겠달까봐 간 떨려, 나.
꼬붕 : ...
미래 : (아련히 꼬붕을 본다.) 꼬붕아. 니 얘길 하고 싶어두... 그거 알면, 복수 또 고생해. 그지?
꼬붕 : 응.
미래 : 박 정달 돕는 건 좋은데, ...지갑은 털지마라.
꼬붕 : (풀이 죽을대로 죽어서) 원래, 이 일이 그런건데, 뭐. ...형사 돕는 대신, 내가 작업하는 거 눈 감아주잖아.
나 말구두 많이 해. 특별한 거 아니야.
미래 : 그래서, ...또 작업 시작했어?
꼬붕 : 아니. 아직은...
미래 : 먹을게 떨어지면 밥은 내가 사 줄테니까... 지갑 털지 마라. ...박정달 돕더라두, 지갑은 털지마.
...그래야, 빠져나올 구멍이 있지. 알았냐?
꼬붕 : ...응.
미래 : 깜빵에 안 간 거... 다행이다, 꼬붕아.
3. # 액션스쿨 (낮)
웃통을 벗은 채 가슴과 어깨에 붕대를 감은 양 찬석.
양찬석과 함께, 창검 합을 맞추어 보는 복수. (둘 단독으로)
양찬석은 칼로 복수는 창으로 꽤 현란한 동작의 합을 맞춘다. 복수가 곧잘 양찬석의 움직임에 대응한다.
양찬석이 복수의 얼굴을 사선으로 긋고 마무리 동작을 하면,
복수, 창을 바닥에 떨구며 죽을 듯, 말 듯, 죽을 듯, 말 듯 몸을 앞 뒤로 흔든다. 매트릭스처럼...
양찬석 : (계속 흔들거리는 복수를 보며) 술 취했냐? 안 죽을라구 기를 쓰네. ... 폼 고만 잡구, 죽어 임마.
(복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민다.)
복수 : 에고, 에고... (미소 지으며 바닥으로 꼴까닥.)
양찬석 : ...요즘은 죽을 때, 꽥 죽어야 돼. 옛날처럼 뜸 안 들여. ...야, 다시 창 들어. ...좀 밋밋하드라, 아까.
복수 : (씩씩하게) 네. (일어서며 양찬석에게) 감독님은 통뼌가 봐. 뼈 부러진지 얼마나 됐다구, 씽씽 나냐? 사람이냐?
(오른 손으로 무심히 창을 드는데 창이 손에서 떨어진다.)
양찬석 : 사람 아니면 어쩔래, 임마. ...창이나 들어.
복수 : (다시 오른 손으로 창을 집어들며) 인간같지두 않은 인간이야. (그런데 다시 창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복수, 순간 긴장한다. 바닥의 창을 바라보는 복수의 눈빛에 긴장감이 돈다.
복수, 창을 드는 오른 손에 꽉 힘을 준다.
양찬석 : 아유, 저거 폼 되게 잡네.
창을 들고 양찬석 앞으로 걸어오는 복수의 눈빛이 어둡다. 양찬석 앞에 선 복수가 어금니를 문다.
자신의 창든 손을 유심히 바라보는 복수. 창을 잡은 복수의 오른 손엔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4. # 연습실 건물 앞 (낮)
승용차에 장비를 싣는 밴드들. 운전대에 낯선이가 있는 걸로 봐서 친구의 승용차를 빌린듯..
정국과 기홍이 차에 오른다. 경과 별리가 남는다.
정국 : 나머지 챙겨서 와라, 경아. ...별리 넌, 썬구리 확실히 챙겼지?
별리 : (선글래스를 쓴다.) 응.
기홍 : 테이프 삐져 나왔다, 별리 누나.
별리, 선글라스 안 쪽에 검정테잎을 붙였다. 옆 쪽에 삐져 나온 테잎을 손으로 밀어 넣으며 연습실 쪽으로 간다.
정국과 기홍의 차가 떠난다.
별리 : 재까닥 챙겨서 가자. (바삐 지하로 달려간다.)
경 : 응.
저만치서 건물로 걸어오는 미래.
미래 : 야.
경 : (돌아본다.)
미래 : 공연하냐?
경 : 네.
미래 : ...공연해서 먹구는 사냐?
경 : ...언니. 저... 바쁘거든요? (현관으로 가려는데)
미래 : 야.
경 : (돌아본다.)
미래 : (경에게 다가온다.)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데... 나, 복수 따라다녀야 돼.
경 : ...왜요?
미래 : 사정이 있다니까?
경 : ...뭔데요?
미래 : 너한테 얘기하면 안돼.
경 : (퉁명스레) 언니. ...왜 그러세요?
미래 : 복수한텐... 내가 있어야 된단 생각이 들었다.
경 : (툴툴대듯) 왜 이렇게 변덕을 부려요?
미래 : 무슨 변덕? ...내가 언제 복수랑 끝낸다구 한 적 있냐?
경 : ...거의 그런 거 아니였나? 정황상?
미래 : 그야, 니 생각이지. ...나, 걔랑 못 헤어지니까, 니가 참을만 하면 참든가... 나 땜에 피곤하면 헤어지든가...
(현관으로 들어선다.)
경 : (소리친다.) 우리 안 헤어져요. 아, 되게 멍청하네. ...언니가 복수씨 껌이예요?
(화가 나서 연습실로 향하며) 아, 되게 멍청하네.
미래 : 껌이다.
경 : (연습실로 들어가며 작은 소리로 궁시렁) 아우, 이제 짜증날라 그래.
미래 : (픽 웃는다) 조고 말하는 것 좀 봐. 히히. 저거, 되게 변했다.
(슬픈 듯 혼잣말) 기집애야. 넌 혼자 복수 감당 못해. ...내가 해줘야 돼.
5. # 클럽 공연장 (밤)
공연중인 밴드. 별리가 썬글라스를 끼고 “초능력”을 부른다.
클럽 안으로 들어오는 복수. 들어오는 복수를 보며 미소짓는 경.
키보드가 들어가는 부분. 그러다 키보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당황한 경이 건반 여기저기를 막 눌러보는데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밴드들 눈치를 챈 듯 연주를 하며 슬쩍 경을 본다.
경, 밴드들을 향해 고개를 살짝 흔든다.
관객들이 느낄 수 없지만, 밴드들은 눈짓으로 애드립을 한다.
경, 얕은 한숨으로 건반을 퉁퉁퉁 튕겨보다가 포기한 듯, 힘없이 손바닥을 건반 위에 내린다.
이 때, 아무렇게나 올려놓은 손 아래 건반음이 새어나온다.
당황한 경이 건반에서 손을 뗀다.
경을 째려보는 정국의 힘찬 드럼 소리로 잡음을 덮는다.
당황하는 경의 모습을 의아한 듯 바라보는 복수.
6. # 클럽 앞 (밤)
악기를 들고 나오는 밴드.
복수는 경의 키보드를 대신 매고 뒤쫓아 나온다.
정국 : (화난 표정으로 경을 보며) ...연애나 해. 밴드하지 말구...
경 : 고친건데...
기홍 : (못마땅한 듯) 점검 좀 제대루 하지.
악기를 든 정국이 복수를 째려보곤 기홍과 함께 멀어진다.
별리 : (경의 등을 툭 치며) 실수 좀 했다구 세상 쫑나냐? (복수를 보며 친근하게) 점점 이뻐지는 거 같다, 아저씬?
(경에게 미소) 간다.
복수 : (부끄러운 미소) 이쁘대.
경 : (별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궁시렁) 드디어 남자보는 눈이 생겼군, 언니가...
복수 : (경의 팔을 툭 치며) 히.
경 : 히히. (그러다 인상) 아, 근데, 연애하느라 일 못하는 건 맞는 거 같다. ...다 복수씨 때문이야.
복수 : 아, 말을 그렇게 하냐아... (삐진다.)
삐진 얼굴로 구지 경의 손을 잡고 걸어간다. 복수를 바라보며 걷는 경의 얼굴엔 미소가 돈다.
7. # 악기 수리점 앞 (밤)
악기를 맡기고 나오는 복수와 경. 걷는다.
경 : (궁시렁) 치. ...악기가 낡긴 뭐가 낡아. ...자기네들이 실력이 없어서, 못 고친거지.
복수 : ...키보드 새루 사주까요?
경 : (장난스레) 네.
복수 : ...돈 받으면 사주께요.
경 : (미소) 앨범두 한 장 내 줘요.
복수 : (미소) 그러죠, 뭐. 또.
경 : 잠실 운동장에서 단독 공연 시켜주세요.
복수 : (미소) 하, 참. 일두 아니네. 또...
경 : ...또... 외국 순회 공연두 할까?
복수 : 그냥 내친 김에... 다 해요. ...할 거 다해요. ...전용기 하나, 개비하지, 뭐. 또.
경 : 아이스크림.
복수 : 아이스크림? 내가 못할 거 같죠? 당장 사준다, 내가. ...돈이 넘쳐나, 그냥.
경의 손을 잡고 지하도로 걸어가는 복수.
8. # 지하철 안 아이스크림 집 (밤)
아이스크림 콘을 먹으며 매표구 안으로 들어가는 둘.
9. # 플랫폼 벤치 (밤)
복수의 오른손은 경의 손을 잡은채 왼손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경 : 근데, 복수씨.
복수 : 네.
경 : 소매치기들은 맨날 같은 장소에서 일해요?
복수 : (자신있게) 활동구역이 대충 있어요. 벗어나면 다른 쪽 애들이 태클 거니까...
(그제사 짜증) 아이, 아이... 별 걸 다 가르쳐 주네. 뭐 잘난 전공이라구... (경에게) 금방 나 잘난척 한 거 같죠?
경 : 네.
복수 : 근데, 왜요?
경 : 여기서 복수씨를 우연히 두 번이나 봤어요. 소매치기 할 때랑, 지난 번 감옥 갔을때...
복수 : (당황) 아, 경이씨. ...고만. 아, 끔찍하게 감옥이 뭐예요. 유치장이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물며) 경이씨 머리 속엔 음악만 넣어둬요. ...요즘요. ...내 몸에 남아있는 쓰레기 냄새가,
...경이씨 몸에 닿는 거 같애서... 참 심란해. ...경이씬... 그냥, ...음악속에서만 살아요. 내 나쁜 냄새, 되도록 피해가면서...
경 : 그런게 어딨어요?
복수 : 왜요?
경 : 내가 공준가요? 좋은 데서만 굴러다니게? 난 복수씨 쓰레기 냄새, 같이 맡을래요.
복수 : 싫어요. ...난, 경이씨가, 내 냄새나구 드런 기억 갖는게 싫어요.
경 : (무심하게) ...자기 안에 쓰레기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아마 그래서 사람들은 착하구 이쁜 것만 보고 싶은가 봐요.
자기 안의 쓰레기 안 볼려구... 그래서 드런 거 보면 토하구... ...근데, 난 내 쓰레기두 보구, 복수씨 쓰레기두 볼래요.
...난 비위가 강해서요. 토하구 그러지 않아요.
복수 : ...사람은... 좋은 거만 보고 살아야 돼요. 그래야 고생을 안해요. 우리 아빠가 그랬어요. 알지두 못하면서...
이 때, 경의 눈에 같은 플랫폼 저 만치 꼬붕의 모습이 보인다.
경, 벌떡 일어나서 꼬붕과 복수의 중간을 가리고 선다.
복수 : 응? 뭐해요?
경 : ...(멀쭝히 복수를 내려다 본다.)
복수 : (아이스크림을 옮겨 잡으며) 으응? (이때, 힘없는 오른 손에 옮겨 들던 아이스크림이 자신의 바지 위로 떨어진다.)
경 : 어머. (몸을 굽혀 아이스크림을 털어내려다가 문득 다시 몸을 세운다.)
복수 : (표정이 어둡다. 경을 보며) 꼬붕이 가린거예요?
경 : ...(고개를 끄덕인다.)
복수 : 왜요?
경 : ...사람은 좋은 거만 보구 살아야 돼요. 그래야 고생을 안해요.
복수 : ...(단호하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경 : ...꼬붕씨 보면, 또... 이상한 일 생길지두 모르는데...
복수 : 그래두... 할 수 없어요. (벌떡 일어서서 꼬붕을 향해 간다.)
꼬붕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복수. 놀라서 복수를 바라보는 꼬붕.
꼬붕, 망설이다가 돌아서려는데, 복수가 꼬붕을 잡아 품에 안는다.
꼬붕, 울먹이며 복수의 품에서 눈물짓는다. 꼬붕을 안고 있는 복수.
꼬붕 : 형.
복수 : ...자식. (안고있던 팔로 꼬붕의 볼을 감싸며) 정달이가 야당하래?
꼬붕 : 응.
복수 : 됐어. 안 해두 돼. 가자, 형이랑.
아이스크림을 든채 벤취에 서 있던 경.
복수의 등쪽으로 정달이 온다. 경이 놀라서 정달의 등뒤로 걸어간다.
경, 가방을 치켜들고 정달을 뒷통수를 때리려 할 때...
복수 : 경이씨. ...가만 있어요.
경 : (가방을 내린다.)
정달 : (미소) 호흡 잘 맞네. 아가씨랑...
복수 : (경에게) 경이씨. 경이씬 꼬붕이 도망 못가게, 여기서 꼬붕이 붙잡고 있어요.
(정달에게) 형. 나랑 토킹 어바우트 좀 하자.
정달 : 오케이.
복수가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고, 정달이 그 뒤를 따른다.
경, 물끄러미 정달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꼬붕의 팔목을 잡는다. 그리곤 꼬붕에게 아이스크림을 내민다.
경의 손등으로 녹아내린 아이스크림.
경 : 에구, 다 녹았네. ...(꼬붕을 보며) 아이스크림 사줄까요?
10. # 남자 화장실 (밤)
복수가 화장실로 들어와 변기칸이 비었는지 살피곤 화장실 현관문을 잠근다.
정달과 복수가 마주섰다.
복수 : 형. 나, 꼬붕이 데려갈래.
정달 : 빵에 들어갈 놈, 내가 빼온 건데, 왜 니가 데려가? 꼬붕이 내꺼야.
복수 : 형 심부름하면, 소매치기 눈감아 주잖아. 사실 이거... 법적으로 문제있는 거잖아. 형.
정달 : 이거 관례인지 모르는 검사가 있냐? 형사가 있는 곳엔 뿌락치가 있다.
복수 : 그래두 법대루는 아니지.
정달 : 그럼 다시 넣어, 쟤?
복수 : 아니 그러지 말구... 날 패. ...날 죽을 때까지 패. 형이 팰 만큼 패구 나면... ...꼬붕이 나 줘.
11. # 지하철 플랫폼 (밤)
경이 꼬붕이의 손목을 잡고 있다. 꼬붕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경 : 되게 안 온다.
꼬붕 : 저어... 땀나서 그러는데, 손 좀 놔줄래요?
경 : 안돼요.
꼬붕 : (짜증) 아, 땀나서 그래요.
경 : (손을 놓곤 꼬붕을 외면하며 꼬붕의 등쪽 옷자락을 잡는다.)
꼬붕 : 아, 도망 안가요.
경 : 그래두... 어뜩케 될지 모르니까...
12. # 화장실 (밤)
바닥으로 뻗는 복수. 다시 일으켜 세워 복수를 치는 정달.
복수의 얼굴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아주 만신창이가 됐다.
지친 듯, 복수를 바닥에 던지는 정달.
정달 : 너 소매치기 좀 해라. ...내가 왜 줄창 니 지역에만 있는데... 내가 꼬붕이 잡을라구 여기 있었겠냐? 너 잡을라 그러지?
복수 : (널부러진 채) 인제, 다 때렸어, 형?
정달 : 아니. ...숨 좀 돌리구...
복수 : 아, 빨랑해.
정달 : (다시 복수를 일으켜 주먹을 들다가 툭 내린다. 숨을 헐떡이며 미소짓는다.) 참 신기하네. ...어뜩케 소매치길 딱 끊냐?
진짜 신기하네. 소매치긴 마약보다 더 한 건데... 신기하네, 거 참.
..잘 살아 봐, 새꺄. 이제, 내가 너 찾아다니진 않겠지만... 기다리구는 있을거야. 여기서... ...소매치긴, 죽기 전엔 못 끊어.
복수 : ...난... 형 몰래...한 번 죽었어. ...지금 다시 살어.
정달 : 히히. ...그러냐? ...쪼금은... 믿을랑 말랑 한다. ...(바닥으로 밀어 던지며) 꼬붕이나 잘 키워, 새꺄. 간다.
복수 : (바닥을 뒹굴며 일어서질 못한다.) 아, 해방이다. (일그러진 얼굴로) 너무 좋다. 하하. 아, 증말 좋다.
13. # 지하철 플랫폼 (밤)
정달이 내려와 경과 꼬붕 앞을 지나쳐간다.
정달 : 복수, 화장실에서 잔다.
경과 꼬붕이 부랴부랴 계단위로 뛰어간다.
14. # 남자 화장실 앞 (밤)
꼬붕이 뛰어 들어가고, 경은 주춤주춤 입구에서 고개만 들이민다.
15. # 남자 화장실 (밤)
바닥에 널부러진 복수 앞으로 꼬붕이 들어와 복수를 안는다.
꼬붕 : 형.
경 : (고개만 쏙 내밀어 보다가 널부러진 복수를 보곤 부리나케 뛰어 들어온다.) 복수씨. (복수의 얼굴을 만진다.)
복수 : (꼬붕을 보고 웃는다.) 꼬붕아. 헤. 끝났다. 야, 이 세계 벗어나기 진짜 힘들다. ...쫑났어. 정달이 화끈하다. 멋있다.
꼬붕 : (운다.) 나 인제 진짜 안 그래. ...진짜 안 그래. 진짜, 진짜루...
눈물짓는 경. 상처난 복수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16. # 액션스쿨 - 사무실 (밤)
소파에 복수를 누이는 경.
꼬붕이 물수건과 약봉지를 들고 따라 들어온다.
꼬붕 : (경에게) 늦었는데, 들어가세요. ...내가 옆에 있을께요.
복수 : 니가 들어가.
꼬붕 : 왜?
복수 : 나 경이씨랑 쫌 더 있을라구...
꼬붕 : ...(망설이듯) 둘이 애인이야?
복수 : 응.
꼬붕 :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알았어. ...(복수에게 귓속말) 미래 누나한테 비밀루 할게.
복수 : (미소) 그래. 잘가.
꼬붕, 미소를 지으며 경에게 인사를 하곤 사무실을 나선다.
경, 부지런히 약 봉지를 푼다. 붕대와 반창고와 소독약, 연고를 탁자위에 내려 놓곤 물수건으로 복수의 얼굴을 닦는다.
경 : (웃는다.) 나두 더 있구 싶었는데...
복수 : (미소) 그럴 줄 알았어, 내가...
경 : 헤헤. ...나는요. 복수씨랑 같이 감옥간 날두 좋았는데...
복수 : 경이씨, 또 깨는 소리한다.
경 : ...왜냐하면... 나는 그날. 복수씨가 얼마나 드럽게 살았는지 봤거든요.
복수 : ...
경 : 참 많이 알았어요. ...감옥가기가 그렇게 쉬운 줄, 첨 알았어요. ...소매치기 중에, 스파이가 있는 것두 첨 알았구요.
복수 : 다, 몰라두 돼요. 구질 구질한 거 알 필요가 있나?
경 : 난, 복수씨 좋아하면서... 소매치기 좋아졌었거든요. 내가 당했으면서두...
복수 : 애두 아니구, 참. ...좋아할게 그렇게 없어요?
경 : 그냥, 복수씨가 소매치기니까... ...근데, 환상 빡 깨지드라. 참 드럽구, 험악하구, 치사한 일이예요? ...형사들 눈치나 보구...
그리구, 그 곳에서 벗어나기가 너무나 힘들어 보여요, 꼬붕씨 보면...
복수 : ...죽는 거 보다 더 힘든게... 살던 세상 바꾸는 일이예요.
...죽는건 세상을 버리면 되지만, ...살던 곳 바꾸는 건, ...세상을 바꾸는 일이니까...
경 : (얼굴을 닦아주며 미소) 복수씨, 위대해요. ...세상을 바꿨으니까...
복수, 활짝 웃더니, 경의 손을 당겨와 자신의 입술에 기습적으로 쪽 맞춘다.
복수를 내려다 보는 경의 미소. F.O.
17. # 복수의 집 - 복수방 (새벽)
헛구역질을 하는 복수. 심한 구역질로 얼굴이 노래진다.
18. # 복수의 집 - 중섭방 (새벽)
개수대 물흐르는 소리에 잠을 깨는 중섭, 눈을 비비며 문밖으로 나간다.
19. # 복수의 집 - 툇마루 (새벽)
물 한모금을 먹고 있던 복수가 중섭을 본다.
복수 : 왜 벌써 일어났어?
중섭 : 넌 왜 벌써 일어났어?
복수 : 도서관 가려구.
중섭 : 새벽부터 무슨 도서관이야?
복수 : 새벽엔 문 안 여나?
중섭 : 열지.
복수 : 그럼 가는 거지, 뭐.
중섭 : ...밥 먹구 가야지. 기다려. 밥 해주께.
복수 : 아니야. 됐어. (툇마루를 내려간다.)
중섭 : 복수야.
복수 : 응.
중섭 : 너... 도서관 다니는 거 맞어?
복수 : 응.
중섭 : 어느 도서관?
복수 : ...
중섭 : 어느 동네에 있는 거?
복수 : ...어느 동네드라?
중섭 : (갑자기 복수의 책가방을 든다.)
복수 : (놀라서 책가방을 뺏는다.)
중섭 : (다시 책가방을 뺏는다.)
복수 : ...(할말을 잃고 중섭을 바라본다.) 왜, 남의 가방을...
중섭 : (가방을 뒤적인다. 그 속에서 필림아트 영문판이 나온다.
책을 뒤적여 본다. 필름아트 중반까지 단어해석이 빼곡히 되어있다. 미소짓는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하네?
복수 : (그제사 안심을 하곤 가방을 뺏는다.) 아, 뭐하는 짓이야? 남의 가방이나 뒤지구...
중섭 : ...스턴트맨이 뭐냐?
복수 : ...(물끄러미 중섭을 바라보다가) ...아빠. ...나 사실은 그거 해.
중섭 : 스턴트맨 공부를 하는게 아니라, 지금 벌써 해?
복수 : 응.
중섭 : (미소) 뭔진 모르지만, 나쁜 일은 아니겠다. 영어루 된 일이니까...
복수 : 응. 좋은 일이야.
중섭 : ...근데, 대학 안 나와두 되는 일이야?
복수 : 응.
중섭 : 그건 쫌 그러네. 생각보다 좋은 일은 아닌가 부네.
복수 : 좋은 일이야.
중섭 : 그래두... 대학나와 하는 일 해. ...벌써 직업 만들 필요 없잖아. 찬찬이 공부해서 찬찬이 직업가져.
...스턴트맨 하지마. 내일부터 도서관 아빠가 데려다 줄거야.
복수 : ...돈두 좀 벌면서...
중섭 : 아, 돈을 왜 벌어?
복수 : ...필요하니까...
중섭 : 돈이 왜 필요해, 니가?
복수 : ...데이트 해야지.
중섭 : 그 돈 아빠가 주께. ...돈 생각 먼저하면, 아무 것두 못해. 꿈을 가져야지, 임마.
복수 : (머리를 흔든다.) 아, 골 아퍼. 부부가 달라두 어쩜 그렇게 다르냐, 한 사람은 돈, 한 사람은 꿈... (입을 닫는다.)
중섭 : (물끄러미 복수를 본다.) 누가 돈이 최고래?
복수 : ...뭐가? 갔다올게. (부랴부랴 나간다.)
중섭, 의아한 눈빛으로 복수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20. # 일식집 (낮)
무영과 말없이 식사를 하는 강.
무영은 식사는 입에도 안대고 술잔만 비운다. 강이 빈 술잔에 술을 채우면, 그대로 마신다.
술병이 비었다. 초인종을 누르는 강.
종업원이 문을 연다.
강 : (종업원에게) 사께, 한 병 더 줘요.
종업원 : 네. (문을 닫는다.)
무영 : 너두 한 잔 할래?
강 :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아니요.
무영 : ...(눈치를 보며) 와이프하곤 잘 지내?
강 : 아니요.
무영 : ...왜?
강 : 너무 착해요.
무영 : 그게, 왜?
강 : 재미없어요.
무영 : ...부부가 다 그렇지, 뭐.
강 : 결혼두 안해 본 분이, ...그걸 어뜩케 아세요?
무영 : ...
강 : 음식이나 많이 드세요. ...회 좋아하신대서, 모셨어요. ...좋아하시는 거, 해드리구 싶어서요.
무영 : 고맙다.
강 : 평생 볼 일 없을테니까... 지금 많이 드세요. ...내가 제사두 못 지내 드릴 텐데...
제사상 음식까지 드신다치구... 지금 많이 드세요.
무영 : ...(난처하다) 강아.
강 : (차갑게) 아버지처럼 이름 부르지 말아요. ...아버지 노릇은 다른 사람 시켜놓구, 아버지 명단에 덤으로 끼여 들지 마세요.
...(외면한다.) 음식 채하겠네, 김 교수님. ...그러니까, 말 걸지 말구, 회나 드세요.
무영 : ...(망설이듯) ...그 땐, 내가 결혼하기 힘들었다, 엄마랑. ...난...너무 가난 했구, 학생이었어.
...그래두, 그렇게 다급히, ...딴 사람이랑 결혼할 줄 몰랐다, 니 엄마가...
강 : 어머니 핑계대지두 말구, ...우리 아버지를 딴 사람이라 그러지 마세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주인공이구, 김교수님이 딴 사람이예요. 아셨어요?
종업원 : (살며시 문을 열며 사께 한 병을 상에 올리고 나간다.)
무영 : ...
강 : (술을 따른다.) ...아버지.
무영 : (놀라서 술든 잔을 떨어뜨린다. 입을 벌린 채 강을 본다.)
강 : ...이것두 마지막으루 불러 드리는 겁니다.
무영 : (눈물이 고인다.) 강아. ...미안하다.
강 : (손수건을 내민다.)
무영 : (손수건을 받는다.)
강 :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다시는... 우리 어머니... 만나지 마세요.
고개숙인 무영.
단호하지만 슬픈 듯 무영을 바라보는 강.
21. # 연습실쪽 버스 정류장 (낮)
경이 난감한 표정으로 걸어가고 미래가 자꾸만 경의 옷자락을 잡는다.
미래 : 응?
경 : 아, 내가 사줄꺼예요.
미래 : 니가 무슨 돈을 번다구 핸드폰을 사아? 핸드폰 비싼데...
경 : 비싸두 내가 사 줄꺼예요.
미래 : (복수의 핸드폰을 내밀며) 왜 헛돈을 써어. 말짱한 거 놔두구... 이거 복수 줘.
경 : 싫다니까요.
미래 : 니가 사주면 걔 번호 나한테 알려 줄 수 있어?
경 : 아니요.
미래 : 너 생각해 봐. ...복수랑 나랑 사귀는 동안에, 너, 이 핸드폰으로 몰래 복수랑 통화했잖아.
경 : ...
미래 : 응? 내가 사 준 핸드폰으루, 니네들 불륜했어어.
경 : ...근데요.
미래 : 근데는 무슨... 내가 그거 다 용서했잖아... 근데, 넌 이것두 못해 줘?
경 : (난감하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미래 : 핸드폰 새루 살 생각말구, 이거 줘. ...야. 7년을 사귄 애랑, 통화할 일 없겠냐? 내가 걜 미워하지두 않는데?
인간적으로 그렇지 않냐? 복수는, 나 미워하겠냐?
경 : ...
미래 : (핸드폰을 경의 손에 쥐어준다.) 줘, 복수. 너, 나한테 미안하다면서, 정작 해준건 없잖아.
부탁이다. 복수 연락처 하나는... 나두 갖구있자.
경 : (다시 돌려주며) 싫은데...
미래 : 그럼, 내가... 액션스쿨로 직접 찾아가서, 복수 만나서 줘?
경 : (핸드폰을 받아든다.)
미래 : 꼴에 질투두 하네.
경 : 언니... 우리 셋이요.
미래 : ...
경 : 좀 비정상적이라구 봐요.
미래 : ...너랑 나랑 밤낮으루 붙어 있어서 그래. ...정들어서... 복수랑 나처럼...
니가 이사 가. ...그럼, 딴 여자들처럼, 불꽃 튀게 싸울 수 있어. (뛰어간다.) 핸드폰 안 주기만 해. 그 땐, 나 진짜 환장해에?
뛰어가는 미래를 당혹스런 눈으로 본다.
경 : 왜 갑자기 들러붙지? 멋진 언니가?
22. # 연습실 건물앞 (낮)
뛰어오는 미래. 강이 기다리고 섰다.
미래 : (힐끔 강을 보곤) 아저씨. 또 왔어? 안됐다. ...나, 야구장 가야 돼.
강 : 데려다 주지, 뭐.
미래 : 알았어, 기다려, 그럼. (부랴부랴 올라간다.)
멀리서 걸어오는 경. 강을 본다.
경 : 오빠. 웬일이야?
강 : 쟤, 야구장 데려다 주려구...
경 : 잉?
강 : 뭐? 야구장 데려다 준다는데?
경 : ...(가까이 다가와) 오빠, 바람났어?
강 : 손두 안 잡았는데, 무슨 바람이 나?
경 : 언니 알면, 신경 쓰이잖아.
강 : 모르게 해야지, 그러니까. ...너만 말 안하면 되잖아.
경 : 말할 수두 있지.
강 : 니가 그런 애면, 아버지한테 벌써 일렀지. ...나, 가짜라구...
경 : (놀란 눈으로 강을 본다.)
강 : (담담하다.)
미래가 치어리더를 몰고 내려온다.
강 : 쟨 또 떼루 몰구오냐?
미래 : 야, 타. (치어리더들이 탄다. 강에게) 오늘은 내가 아저씨 옆자리에 타 줄게.
강 : 그건 좋다.
강, 차를 몰고 사라진다.
경 : (넋을 잃고 승용차를 바라보다가) 정신없네.
23. # 영화촬영장 - 분장실 (낮)
사무라이 복장의 복수. 특수분장을 하는 복수의 모습.
왼쪽 눈이 찌그러진채 감겨져 있다. 거기에 흉터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분장팀.
복수는 계속 오른 손을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옆에 중국인 복장을 하고 있는 앉아있는 양찬석.
복수 : 근데, 감독님.
양찬석 : 응.
복수 : 왜 중국인이랑 일본인이 우리나라에서 싸워요? 지들 나라에서 싸우지?
양찬석 : 거리가 너무 머니까 중간에서 싸우나부지, 뭐.
복수 : 그래두 좀 기분 나쁘다. ...액션을 후지게 만들죠, 감독님? 얘네들이 우리나라에서 멋있게 싸우면, 기분 나쁘잖아.
양찬석 : 그런 관점에서 액션을 만들잖아? 그럼 다 후져야된다? 조폭액션 있잖아. 걔네들 멋있게 만들어 줘야 되냐? 나쁜 놈들인데?
근데, 멋있게 만들어 줘야 돼. 그게 우리 밥줄이니까...
복수 : ...그래두, 우리나라에서, 일본이랑 중국 싸우는게 못 마땅해, 난... 아, 빌려준 땅값을 받든가, 그럼...
24. # 영화촬영 셋트장 (낮)
바람부는 언덕. 바람에 나부끼는 풀잎.
마주선 일본 복수와 중국 양찬석. 복수는 칼을 양찬석은 창을 들었다.
복수의 공격을 시작으로 화려한 창검액션이 이루어진다.
복수의 액션은 일본인 다운 절제미로 양찬석의 액션은 중국인다운 다채로움으로 대비된다.
복수의 액션이 땅에서만 이루어지는데 비해, 양찬석의 액션은 나무사이를 날아다닌다.
엔딩을 향해 치닫는 액션. (고속촬영)
문득, 복수의 한 쪽 눈이 당황한다. 오른 손의 칼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려한다.
복수, 순간적으로 왼손으로 떨어지는 칼을 받는다.
복수를 향해 힘차게 창을 내리찍는 양찬석에게 복수가 왼손 검으로 양찬석의 얼굴을 가른다.
바닥으로 쓰러지는 양찬석.
복수, 어두운 눈으로 자신의 오른 손을 바라본다. 주먹을 쥐어보이는 복수의 손.
생각에 잠긴 복수의 눈이 클로즈업 되고, 복수의 숨소리가 그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25. # 영화촬영장 일각 (낮)
양찬석의 볼에 붉은 칼 자욱이 나 있다. 양찬석, 삐졌다.
우찬석이 양찬석의 볼에 연고를 발라준다.
복수 : (양찬석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만지며 미안한 듯) 괜찮으세요, 감독님?
양찬석 : 아, 절루가. ...아주 나쁜 놈이야. 임마, 액션은 합을 맞춰야지. 애드립을 하면 되냐?
오른 손으로 검쓰다 말구, 왜 왼손으로 검을 날려? ...그러니 안 다쳐?
복수 : 아, 칼을 놓칠 뻔 했어요오.
양찬석 : 너, 일부러 멋있게 할라 그랬지?
복수 : (달래듯) 아이, 아니라니까... 그 와중에 잔머리까지 쓸까, 내가...
양찬석 : 언젠 액션을 후지게 해야 된다 그러드니, 저혼자 멋있게 나올라구...
복수 : 아, 거참. ...(버럭) 아, 손이 말을 안들었다니까... (화가 나서 멀리 걸어간다.)
양찬석 : 왜 지가 화를 내? 다친 내가 화를 내야지.
우찬석, 의아한 표정으로 복수를 본다.
26. # 세트장 일각 (낮)
한 켠에 가 앉아서 오른 손을 쥐었다 폈다하는 복수.
우찬석이 복수 앞에 선다.
우찬석 : (자신의 오른쪽 집게 손가락을 복수에게 들이민다.) 꽉 잡아 봐.
복수 : (우찬석의 손가락을 잡는다.)
우찬석 : (힘있게 자기 쪽으로 손을 당긴다. 힘없이 풀리는 복수의 손.) 다시 한 번... (이번엔 풀리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시도한다. 힘이 들어간 듯 하다가 힘없이 풀린다. 물끄러미 복수를 바라본다.) 되다 말다 하네.
복수 : ...
우찬석 : 옷 벗어. ...내가 할게.
복수 : 야. 한 컷만 찍으면 되는데, 어뜩케 옷을 벗냐? 스탭들 돌게?
우찬석 : ...(복수를 외면하며) 어째야 돼? (다시 복수를 본다.) 그럼, 검을 두 손으로 잡구 해. 찬석이형한텐 내가 말할게.
복수 : ...말하지 마. ...이상하게 생각하겠다, 야.
우찬석 : 찬석이 형 알어.
복수 : 뭘?
우찬석 : 내가 말했어. 너.
복수 : ...입 되게 싸네, 짜식. ...근데, 왜 나 안 말려, 양감독님은?
우찬석 : 이 일이 니 인생의 와이어래. 니 인생의 생명줄. 그래서 말리면 죽는대.
복수 : ...(고개 숙인채 어둡게) 사람, 참. ...인생을 아는군.
우찬석 : ...(눈가가 젖어온다.) 내가 이꼴 안 볼라구 병원에서 도망쳤드니,
왜 여기까지 쫓아와서 남의 속을 후벼 파냐? 위장병 도지게...
복수 : (여전히 고개숙인채) ...위장병 있냐? ...약 잘 먹어, 임마.
우찬석 : 으유, 씨. (돌아서 걸어가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다.)
복수, 쓸쓸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본다.
꼬붕이 다가온다.
꼬붕 : 형. ...어디 아퍼?
복수 : (힘없이) 응. 치질.
27. # 야구장 (밤)
타자가 치는 공이 1루로 날아든다. 관중석 사람들이 모두 일어선다.
그러나 미래의 뒷켠에 앉아있는 강은 그대로 앉아있다. 강의 머리로 떨어지는 야구공.
강 : 아야.
강,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의 발밑으로 구르는 야구공을 신경질적으로 아무데나 던져버린다.
사람들이 야구공을 주으려 와르르 몰린다.
강 : 에유, 저능아들.
미래 : (뒤에 앉아있는 강이 신경 쓰인다.) 남 얘기하구 있네.
강 : ...(아무 말도 않고 운동장만 본다.)
미래 : (돌아보며) 아저씨. 여기 왜 앉아있어?
강 : 야구 보잖아.
미래 : 오늘 왜 일 안해?
강 : 야구 보잖아.
미래 : 야구 볼라구 일 안해?
강 : 야구 보는데 어뜩케 일을 해?
미래 : (한숨) 그래, 봐라.
강 : 아씨, 되게 안 끝나네.
28. # 경의 집 - 거실 (밤)
경이 들어온다.
미선과 인옥의 대화.
미선 : 회사에서 계속 전화오는데, 핸드폰두 안받구...
인옥 : ...
미선 : 일 벌레가 일두 않구, 연락두 안되구... 어머니. 나, 자꾸 이상한 생각이 와요.
인옥 : 무슨 생각?
미선 : 여자 생긴거 아닌가...
인옥 : ...여잔 무슨 여자야? 걘 연애 한 번 안하구 너 골라서 결혼했어. 여자 싫어해.
미선 : ...아이가 없으니까, 맘 붙일데두 없구... 그러면 여자 생각 나잖아요.
인옥 : ...그런다구 여자 생각나니? ...그렇게 불안하면, 강이 사무실에 자주 놀러 가.
미선 : ...사무실 오는 거 싫어해요. ...괜히 야단이나 맞구...
인옥 : 니가 걔 학생이니? 왜 야단을 맞어? 부부야. 야단맞구 야단치는 사이 아니야. ...(혼잣말) 지 아버지 버릇 배워서 그래.
미선 : 어머니. 여자 생긴거면 어뜩하죠?
인옥 : 아, 귀찮아. 니가 알아서 해. 니들 문제잖아. (방으로 들어간다.)
미선 : 아가씨 왔어요?
미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경, 안방으로 간다.
29. # 경의 집 - 안방 (밤)
침대에 누워 얼굴까지 이불을 덮고 있는 인옥.
경 : 엄마.
인옥 : 올라가. 다 귀찮어.
경 : 엄마. (이불을 내린다.)
인옥 : (눈물이 고였다.)
경 : 엄마. (인옥의 눈물을 닦아준다.)
인옥 : (운다.) 나 땜에 이게 뭐니? 내가 잘못산 건, 나한테서만 끝날 줄 알았는데, 대물림을 하네? 이게 뭐니?
경 : (인옥을 안아준다.) ...나두 엄마 때문인줄 알았는데... 근데... 다 알아서들 살어.
...오빠는, 지금, 행복찾느라 헤매나 봐. ...오빠, 내버려 둬.
경의 품에 안긴 인옥의 서러운 울음.
30. # 야구장 (밤)
관중들이 빠져 나간 빈 야구장.
강이 아무말도 없이 앉아있다.
미래 : (서성대며 인상을 쓴다.) 아저씨. 안가?
강 : 너나 가.
미래 : 아, 왜 여기서 이러는데?
강 : 야.
미래 : 왜?
강 : 너라도 만나야 숨을 셔.
미래 : 응?
강 : 다행이야. 너 만나서... (일어선다) 가자.
관중석을 나가는 강. 물끄러미 강을 바라보는 미래.
31. # 신문사 (밤)
취재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동진. 노트북을 켠다. 노트북에 뜨는 이메일을 클릭한다.
화면에 경이 뜬다. 미소를 지으며 한 기자를 향해 말을 하고 있다.
노트북 경 : 한기자님. ...전 경입니다.
동진 : (미소) 누가 봐두 전경이네.
노트북 경 : (망설이듯) 한 기자님. ...이따금 이렇게 얼굴을 보여드릴까요?
동진 : 웬일루?
노트북 경 : 괜한 걱정인지 모르지만... 한 기자님이 너무 심심해 할까봐...
32. # 경의 방 (밤)
자신의 노트북 카메라를 향해 말을 한다.
경 : 방안 구석에 혼자 있던 노트북을 보구, 한 기자님 심심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내가 한기자님이 준 노트북이랑 놀아주면서, 한 기자님 쓸쓸한 거 달래 줄께요.
...나만 재밌게 살아서, ...너무 미안해요, 한 기자님.
33. # 신문사 (밤)
동진 : 아주 약을 올려라.
노트북 경 : 약 오르죠? 헤헤. ...또 놀러 올께요.
동진 : (외롭게 미소짓는다.) 재밌었어, 자기야. ...자주 놀러 와.
34. # 경의 버스 정류장 (밤)
벤취에 앉아있는 복수. 바나나 두 개를 들고 오는 경.
복수 : 그거 뭐예요?
경 : 집에 있길래 집어 왔어요. (내민다.)
복수 : 그럼, 우리 버스타구 서울 구경하면서, 이거 먹을래요?
경 : (미소) 천재다. 연애 진짜 잘한다.
복수 : ...칭찬인가?
경 : 네. 아참. (핸드폰을 내민다.)
복수 : 뭐예요?
경 : 미래언니가 주래요.
복수 : (경의 눈치를 본다.)
경 : 눈치보지 마요. ...사실, 내가 죽어두 안 받을라 그랬는데요. 핸드폰... 비싸잖아요.
...그리구... 내가 기를 쓰구 언니 못 만나게 하구 싶긴 한데요. ...그래두, 우리가 죄를 지은 건 맞아요, 언니한테...
언니가 보구 싶을 땐, 전화한통 할 수 있다구 봐요.
복수 : ...미래랑 통화하는 거 보구, 질투할라구...
경 : 질투나면... 질투하면 되죠, 뭐. ...그래봤자, ...복수씬 내 애인인데...
이 때, 복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복수 : 어? 미래니?
경 : (놀란다)
복수 : 응. 괜찮아. ...걱정마. ...별 일 없어. 응. (끊는다.)
경, 벌떡 일어선다. 일어서서 괜히 서성댄다.
입이 나와서 서성대는 경을, 복수가 재미난 듯 바라본다.
35. # 버스 안 (밤)
바나나를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는 둘.
복수의 눈이 희미해진다.
복수 : 경이씨.
경 : 네.
복수 : 나, 졸려요.
경 : 그럼, 자요.
복수 : (창가에 머리를 기댄다.)
경 : (복수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위로 올린다.)
복수 : (미소지으며 가물가물 눈을 감는다.)
한강을 건너는 버스 창밖으로 교각들이 보인다.
이 때, 타이어 터지는 소리. 펑. 버스가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드는 복수.
위험스레 핸들이 꺾이며, 사람들이 앞으로 쏠리면서 소리지른다.
앞으로 쏠리는 경의 뒷덜미를 잡아채며 중심을 잡아주는 복수. 경의 목이 졸린다.
해롱대는 경에게 미안한 듯 경의 등을 두들겨 주는 복수.
경 : (인상을 쓰며) 아, 자꾸 목을 졸라요?
복수 : 끔찍하게 목을 조른다 그러냐?
버스 안 사람들이 웅성댄다.
운전수 : 타이어 빵꾸났네. (운전수가 부랴부랴 내린다.)
복수 : (큰소리로 웃는다.) 하하하. 빵꾸래, 펑크지.
사람들이 복수를 쳐다본다. 무안한 듯 사람들을 보는 둘.
바쁜 사람들은 하나, 둘 밖으로 내리고 그래도 몇몇은 앉아서 사태를 지켜본다.
둘은 창밖을 본다. 창밖으론 한강 교각들이 다리마다 다른 색깔로 불을 밝힌다.
복수 : ...한강다리에 언제부터 불 들어 왔어요? 다리 마다 색깔이 들어있네?
36. # 버스 밖 - 한강 교각 (밤)
정지된 채 한 쪽에 서 있는 버스. 다수의 승객들이 펑크난 버스 앞에서 웅성대고 있다.
조그맣게 보이는 버스 밖 풍경을 배경으로 경과 복수의 대화는 이어진다.
경 : (E) 다리에 원래 불 들어오는 거 아니였나? 그럼... 원래 깜깜했어요?
복수 : (E) 저렇게 파랗구 빨갛구... 그랬나아? 아, 난 몰랐네. 원래 저렇게 조명이 있었구나아... 이쁘네에.
...여기서 보니까, 서울 이쁘네에.
F.O.
37. # 낙관의 승용차 (아침)
낙관이 뒷좌석에 타면 운전수가 데모 CD를 보여준다.
낙관 : 뭐야?
운전수 : 따님이 저한테 선물했습니다, 사장님. 운전할 때, 들으라구... (채널을 찾더니) 이건 사장님이 좋아하는 노래라구...
버터플라이의 “미친슈만”이 들린다.
가만히 경의 음악을 듣는 낙관. 신기한 듯 음악을 듣는다.
“미친슈만”이 끝나고 곧바로 “식민지”가 연주되자 점차 인상이 구겨진다.
낙관 : 아우, 시끄러. 꺼. (운전수가 끄자) 무슨 음악이 이래? ...아까 그거 다시 틀어 봐.
운전수 : 네.
“미친슈만”의 허밍을 들으며 창밖을 보는 낙관.
38. # 복수의 집 (아침)
집안을 청소하는 복수.
중섭이 출근할 채비를 하며, 복수를 본다.
중섭 : 아, 왜 청소는 하구 그래?
복수 : 오늘 쉬는 날이야.
중섭 : 그 스턴트맨?
복수 : 응.
중섭 : 얼른 그만 둬.
복수 : 알았어.
중섭 : (지갑에서 극장표를 내민다.)
복수 : 뭐야?
중섭 : 극장 간판쟁이 후배가 주구 갔어. ...애인이랑 데이트해. ...그리구 일찍 들어와. 아빠두 오전만 일하니까... (나간다)
복수 : 데이틀 하는데, 어뜩케 일찍 들어와? ...(극장표를 본다.) 잉? 만화영화네.
39. # 밴드 연습실 (아침)
핸드폰을 받고 있는 경.
경 : 오늘, 야외공연 있어요. ...공연만 없으면 갈텐데...
40. # 영화 상영관 (낮)
복수와 성호가 디즈니표 만화영화를 본다.
온통 아이들로 들어찬 상영관에 복수 혼자만 머리가 오똑 서 있다.
아이들은 깔깔대고 웃어젖히는데, 복수는 눈을 꿈뻑대며 성호를 본다. 성호도 복수와 같은 표정이다.
복수 : 시시하지?
성호 : 유치하다.
복수 : 담엔 애들꺼 말구 성인용으로 보자, 수준 안 맞아서 못 보겠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왁자한 극장에 둘은 심심한 표정으로 팝콘만 먹는다.
41. # 간판 작업실 (낮)
40대 중반의 그림제자와 커피를 마시는 양복차림의 중섭.
제자 : 선생님.
중섭 : 아, 선생님이라 그러지 마. ...마을버스 기사한테, 그런 말 하면 비웃어, 사람들이...
제자 : 비웃으라지요, 뭐. 선생님이 그림 가르칠 때, 얼마나 꼼꼼히 가르쳐 주셨는데... 학교 미술 선생님보다 훨씬 나았어.
중섭 : 낫긴...
제자 : 요기 정리 좀 하구, 소주 한 잔 해요, 선생님.
중섭 : 나, 잠깐 극장 좀 들어갔다 올게.
제자 : 왜요?
중섭 : 우리 아들녀석 애인 좀 보게... 일부러 극장표 줬어. 애인 델구 가라구... (씩 웃는다.)
42. # 상영관 안 (낮)
영화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중섭이 두리번대며 복수를 찾는다. 중섭의 눈에 복수가 보인다. 미소짓는 중섭.
복수가 성호를 보며 화장실로 손가락질을 한다. 성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화장실로 가는 복수. 성호, 휴게실 의자에 앉는다.
중섭, 성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옆에 앉는다.
중섭 :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 너, 누구니?
성호 : ...?
중섭 : (미소) 고 복수 알어?
성호 : 네. 우리 형인데요?
중섭 : (놀란다) 어떤 형?
성호 : 그냥 우리 형이요.
중섭 : ...(말문이 막힌다.) ...(조심스레) 어머니 이름이 뭐냐?
성호 : 정 유순.
중섭 : (난감한 표정으로 성호를 바라본다.) ...니 집이 어디니?
43. # 거리 (낮)
성호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복수. 복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복수 : 응. 미래니? ...야, 자꾸 니가 그러니까 더 아퍼어.
44. # 미래의 집 - 옥상 (낮)
미래 : 어쨋든 만나. ...내가 왜 핸드폰을 기어이 보냈겠냐? 만날라구 보냈지. ...일루와. ...동생델구 와, 그냥.
...딴데서 만나면 걔한테 들킬지두 모르니까... (한심한 듯 실소) 참. 처지가 완전히 바꼈네.
45. # 꼬꼬닭 치킨 (밤)
유순이 닭을 다듬고 있다. 문이 열린다.
유순 : 어서 오세요.
문쪽을 보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 중섭이다.
놀란 눈으로 중섭을 바라보는 유순.
중섭, 어색한 미소로 유순을 바라본다. 어찌할 바 모른채 눈만 깜박이는 유순.
46. # 미래의 집 - 옥상 (밤)
현관문 앞에 선 복수와 성호.
현지가 나와서 복수를 째려본다.
미래 : 야, 눈알 뒤집히겠다. (성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저, 누나하구 잠깐만 들어가 있어라?
현지 : (복수를 보며) 니가 여길 와두 되냐?
미래 : 내가 불렀어, 기집애야. 상관말구 들어가. (성호를 보며) 애 겁먹었다, 야.
현지 : ...넌 인간두 아니야. (문을 꽝 닫구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성호의 손을 끌고 들어간다.)
너한텐 유감없어. 니네 형이 문제지.
둘만 남은 옥상.
복수 : ...이래서 얼굴 보면 안되는데... 현지보니까, 슬퍼지잖아. ...옛날 생각나구... 이래서 마주치면 안되는데...
미래 : ...복수야. ...내가 생각 참 많이 했다.
복수 : ...뭘?
미래 : ...나, 너랑 끝까지 가구 싶어.
복수 : ...
미래 : 내 소원이야.
복수 : ...
미래 : 나랑 결혼하자.
복수 : (어이없다.) 미쳤어, 너? 기집애.... 너, 병 났어?
미래 : 그럼, 걔랑 결혼할래?
복수 : ...결혼, 그런 거 몰라, 난. ...난 연애만 할거야.
미래 : 너, ...걔한테 결혼하잔말 못할거야. 죽어두...
복수 : 내가 그럴 능력이 ...아직은 없으니까...
미래 : 능력 때문이 아니라, 니가 죽는단 생각땜에, 그 말 못해. 난 알어.
복수 : ...
미래 : 그러면서두, 걔 옆에 있는게 좋아서, ...나중 생각않구 걔 속여가면서, 마음만 하늘끝까지 키우구 있어, 너.
복수 : ...
미래 : (눈물이 어린다.) 멍충아. 지금... 걔 옆에서 얼마나 사는 맛이 나겠니? 알어. 나두. 나두 너 만나구 그랬으니까..
근데.. 어뜩할라구? ..너 아파서 괴로운 거, 아직은 숨기구 있지만.. 인제 소리까지 바락바락 지를 정도루 아플텐데...
그거 걔 앞에서 숨기려구, 기를 쓸텐데... 내가 그걸 모른척하니? 응?
복수 : ...난... 잘 모르겠지만... 죽을 거 같지가 않아. ...경이씨 옆에서, 내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죽을 거 같지가 않아.
미래 : 죽는데, 책임이 어딨냐? ...너, 죽어.
복수 : ...(멍하다.)
미래 : 걔나 나보다, 빨리 죽어.
복수 : ...
미래 : 난, 니 드런 꼴 다 볼 수 있는 사람이야, 복수야. ...난 니가 내 옆에서 눈감을 거 까지, 다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근데, ...걘, 너 죽으면 다쳐.
복수 : ...
미래 : 알겠냐? 너, 아파 죽겠다구 맘대루 지랄지랄 할 수 있어야 돼. 그래서 내가 니 옆에 있어 야 돼.
...걔, 세상 밑창까지 보내지 않으려면, 내가 니 옆에 있어야 돼. ...안 그러냐, 복수야?
복수 : ...(새삼 절망을 느낀다.) ...이렇게... 실감나게, 자세하게, 죽음을 느낀 적은... 첨이다, 미래야. 고맙다.
...니가, 나한테 증말, 대단히 멋진 사람인게, 한방에 가슴까지 차. ...대단해, 미래.
...근데... 화가 나. ...오늘, 니가... 나, 살맛 떨어지게 했어. 대단해. (현관으로 가서 소리친다.) 성호야. 가자.
현관에 머리를 붙인채 성호를 불러대는 복수의 절망감.
미래가 복수의 뒷모습을 쓸쓸이 바라본다.
47. # 택시안 (밤)
복수의 무릎에 누워 잠이 든 성호. 어두운 복수.
복수 : (핸드폰을 만지작 댄다. 이때 울리는 전화 벨. 미소) 경이씨.
48. # 야외 공연장 (밤)
공연무대 밑에서 악기를 챙기는 경이 한 손으로 핸드폰을 한다.
경 : (핸드폰) 언니한테 전화 왔어요? ...안 왔어요? ...나 없는 새, 언니가 꼬실까봐요. 헤헤.
...나 몰래 만나지는 마요. ...미래 언니, 강적이라, 만나면 넘어갈지두 몰라. ...밥은 먹었어요?
49. # 택시안 (밤)
복수 : (핸드폰) 경이씨. ...이제부턴 경이씨한테, 좋은 것만 보여주지 않을래요. ...드럽구, 후진 것두 같이 봐줘요.
50. # 야외공연장 (밤)
경 : (미소) 물론입니다. 고 복수씨.
51. # 택시안 (밤)
다시금 웃음을 찾은 복수의 얼굴.
52. # 꼬꼬닭 치킨 (밤)
테이블에 마주 앉은 중섭과 유순. 서로 말 없이 눈길을 돌린채 앉아있다.
유순 : ...
중섭 : ...
유순 : ...술 한잔 드려요?
중섭 : 아니.
유순 : ...평생, 입에서 술 떼기 힘들 거 같드니... 용하시네요.
중섭 : 복수 엄마 도망가는 바람에, 정신이 든거지, 뭐.
유순 : ...나 땜에 정신이 든게 아니라, 나 없어져서 해방이 된거겠죠. ...그래서 술 마실 일두 없어졌겠지요.
중섭 : ...
유순 : ...아니란 말, 못하시네.
중섭 : 내가, 참 못했어, 복수 엄마한테...
유순 : 아시네요.
중섭 : 뭐 도울 일이라두 있었으면 좋겠네.
유순 : 없어요. 안 나타는게 도와주는 거지요. ...복수가 생활비두 주고, 가게두 차려줬어요.
당신한테 받는 거라 치구... 받았어요.
중섭 : ...(놀라며) 복수가... 계속 돈 줬어?
유순 : (힐끔 본다.) 왜요? 아까워요?
중섭 : (단호하게) 복수한테 돈 받지 마.
유순 : (쏘아본다.)
중섭 : 필요하면 내가 줄테니까, 복수한테 돈 받지마.
유순 : ...(미움의 눈빛으로 중섭을 쏘아보더니 냉소) 복수 피라두 빨아 먹어요, 내가?
중섭 : 별로 안 달라.
유순 : (미간을 찌푸리며) 네?
중섭 : 걔가 왜 돈이 필요한지, 이제서야 알았어.
유순 : 당신, ...나한테 이래두 돼요? 기껏 찾아와서, ...이래두 돼요?
중섭 : ...당신한테 뭐라는 거 아니야. 그것만 지켜줘. 내가 내일 당장 통장이랑 도장 갖다 줄테니, 복수는 내버려 둬.
...복수, 당신만 아니면, 잘 할 수 있어.
유순 : (벌떡 일어서서 주먹으로 중섭의 가슴이며 어깨, 얼굴을 때린다. 손 가는 대로 그렇게 때린다.)
중섭 : (유순의 손을 피하지도 않고 그 매를 달게 받는다.)
유순 : (지친 듯 자리에 앉는다. 눈물이 흐른다.) 어뜩케 그렇게 매정해요? 나한텐 왜 그렇게 정이 안가요?
...몇 십년이 흘러두, 그렇게 끔찍해요? 나, 아직두 당신한텐 벌레 같아요? ...벌레보듯이, 내 손만 닿아두,
소스라치구, 소스라치구, ...그렇게 살았어두, ...(목이 매인다.) ...난 당신 좋아했어요. (엉엉 울어댄다.)
중섭 : ...(고개를 숙인다.)
유순 : (엉엉 울어대다가 일어선다. 눈물을 훔친다. 다부지게 중섭을 바라본다.) 가세요. 다신 오지 말아요.
복수가 주는 돈, 받아야겠어요, 나. ...사람 죽이구 버는 돈만 아니면 돼요. 아니, 그렇다 해두, 나만 모르면 돼요.
그 돈으로, 우리 성호랑 잘 먹고, 잘 살래요. 당신네 부자 못지않게, 우리 모자두 아주 잘 살아야겠어요.
중섭 : ...(천천이 일어선다.) 미안해, 복수엄마. 그 전에두 미안했고, 지금도 미안해.
앞으로두 또, 미안해 할 일 만들까봐, 나두 겁이 나. ...그렇지만, 복수 엄마. 난 당신한테 맞아죽을 놈이지만,
복수는 아니야. 복수는 내가 아니야. ...나 대신, 복수한테 보상받아선 안돼.
...걘... 우리 같은 부모를... 참아주고, 아껴주는, 천사같은 놈이야. ...미안해요, 복수엄마. (문쪽으로 간다.)
유순 : ...복수아버지.
중섭 : (돌아본다.)
유순 : (눈물을 훔치며 차갑게) ...내가 어뜩케, 복수피를 빨아 먹은건대요?
중섭 : ...소매치기해서 살았어, 복수.
유순 : ...(벌컥 눈물이 흐른다. 목이 막힌다.)
중섭 : 내 탓이야. 복수엄마한테, 면목이 없어, 내가.
중섭, 어둡게 문밖으로 나간다.
유순, 나가는 중섭을 바라보며 얼어붙듯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다. 허공에 눈을 둔 채...
이 때, 문이 벌컥 열린다. 놀라는 유순.
복수가 성호를 업고 들어온다.
유순 : (눈물을 훔치며) 자?
복수 : 응. (별실로 들어가며) 눈이 왜 그래?
유순 : (퉁명스레) 눈이 뭐?
복수 : 코는 왜 빨개?
유순 : 들어가서 애나 눕혀.
복수 : 엄마, 아빠 못 봤지?
유순 : 뭐?
복수 : 이 쪽으로 오다 보니까, 아빠가 양복입구 저 쪽 길루 가드라?
유순 : ...
복수 : 들킬까 봐, 쏜살같이 달려왔다. (별실로 들어간다.) 이 근처에 볼 일 있나?
별실에서 나오는 복수.
복수 : 나, 갈게.
유순 : ...복수야.
복수 : 응.
유순 : ...저녁해주께, 저녁 먹구 가.
복수 : ...저녁먹을 시간 한참 지났네. 갈래.
유순 : ...그래두 ...먹구 가.
복수 : (유순을 본다. 그리곤 능글맞게 웃는다.) ...그래, 그럼. 기깔나게 음식 한 번 만들어 봐.
첨이네, 첨. 엄마가 자청해서 저녁 차려주는 거.
유순, 냉장고에서 달걀 두 알을 꺼낸다. 떨리는 유순의 손에서 떨어지는 달걀.
복수, 벌떡 일어선다.
복수 : 에유, 미끄러졌어? 안하던 짓을 한다 싶드라.
유순 : (고개숙인다.) 잘못했다, 복수야.
고개 숙인채 엉엉 울어대는 유순.
복수, 놀란 표정으로 유순을 바라본다.
복수 : 엄마.
유순 : 잘못했다, 복수야.
바닥으로 내려앉으며 울어대는 유순, 멍하니 유순을 바라보는 복수. 포즈.